# 55
#55화 여기가 도시섭? (11)
테이밍이 끝나고 재중이 형과 잠시 기다리니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거의 동시에 골목길로 돌아왔다.
둘 다 테이밍된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보고는 꽤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진짜 하셨네요.”
방패전사가 감탄을 하면서 작아진 헬하운드를 위아래로 차근차근 품평하듯 쳐다본다.
“몹을 잘 떨어뜨려 주셔서요. 덕분에 방해 안 받고 쉽게 했습니다.”
이쁜소녀도 헬하운드 옆에 있던 챠밍과 나르샤 곁으로 갔다.
“고생했어.”
챠밍이 이쁜소녀의 연분홍빛 헤어를 쓰다듬어주자 이쁜소녀가 좋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나 이거 타 봐도 돼?”
이쁜소녀의 해맑은 질문에 나르샤가 재밌는지 살짝 웃어 보였다.
“타 봐. 양도를 안 해도 탈 수는 있으니까.”
그 말에 이쁜소녀가 곧장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갈기를 잡고 점프하듯이 몸을 띄워서 등에 올라탔다.
중세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능숙하게 올라타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민첩과 힘이 되니까 현실에서는 정말 힘들 것 같은 모션도 저렇게 가볍게 해버린다.
이쯤 되면 거의 초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트윈 헤드 헬하운드 옆에 모여서 왁자지껄한 모습을 보면서 따로 떨어져 있던 재중이 형이 내게 슬쩍 말을 걸어왔다.
“원래 내가 짜둔 계획이 몇 개 있었거든. 근데 뭐, 이젠 없어도 되겠네.”
“계획을 몇 개씩이나 짜뒀어요?”
“원래 내가 이런 거 전문은 아닌데 너 땜에 귀찮게 머리를 써서 좀 짜놨는데 필요가 없어졌다. 저거 덕분에.”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생각보다 값어치가 더 나가나 보네요.”
“성능은 둘째 치고 당장 희소성이 있으니까. 다만 단순히 표면상으로 받는 값으로만 치면 제값을 못 해.”
“그럼?”
“잠시 어디 연락 좀 하자. 잠깐 기다려봐.”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내게 좀 떨어져서 귓말로 어디론가 연락을 하더니 첨에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고 마지막엔 살짝 웃어 보였다.
뭔지 모르지만 일이 잘 되어 가는 모양이네.
재중이 형이 귓말을 마치고는 내 옆에 다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일단, 길드 문제 해결. 사장님 들어오시면 바로 가입하는 걸로 하고.”
“지금 이야기한 게 그거에요?”
“사실 몇 명이 좀 귀찮게 해서. 너도 알다시피 우리 길드가 친목 길드가 아니니까 새로 사람 받는 것이 좀 까다로워. 그런데 5명이나 한꺼번에 데리고 들어온다고 하니까 생각보다 반발이 있더라.”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안 넣어주면 내가 나간다고 했지 뭐. 지들이 어쩔 거야. 내가 나간다는데.”
재중이 형 생각보다 훨씬 무대포였구나. 그걸 그렇게 들이받네.
“그게 그런 식으로 해결이 돼요?”
“돼, 뒤로 호박씨 까 든 뭘 하든 난 관심 없고. 일단 약속은 지켰다?”
정말 내뱉은 말은 칼 같이 지키시네.
“근데 안 된다고 다 반대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진짜 나오려고 했어요?”
“난 딱히 지금 길드에 그렇게 미련 없어.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내가 있는 곳이 최고의 길드니까.”
와…… 자뻑도 심하면 병이라던데.
“어우, 그거 병이에요.”
“사실을 말한 건데 뭘.”
고칠 수 없는 병 맞구나.
“뭐, 이대로 내가 깡만 부리면 싫어할 놈들이 꽤 있어서 약도 좀 쳐놨지.”
“약이라면?”
“저거.”
재중이 형이 턱짓으로 우리 팀이 모여서 구경 중인 헬하운드를 가리킨다.
“저거 너희가 테이밍 했다고 하니까 다들 입에 거품 물고 일단 가격부터 부르라고 하더라. 너희 길드 가입 찬반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어. 가입은 당연한 거고, 일단 물건부터 받고 싶다는데?”
“하…… 저걸 그렇게 써먹었어요?”
“그래, 그리고 단순히 적혀진 값만 받아먹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고. 여기다 약을 하나 더 쳤지.”
또 있어?
“플레임 소드.”
“아! 그걸.”
“길드에다가 플레임 소드 빨리 구해오는 사람한테 먼저 거래 튼다고 해놨지. 내가 일일이 플레임 소드 구하려니까 귀찮아서 다 떠넘겼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알아서 가져오겠네요.”
“사냥할 시간도 부족한데 언제까지 플레임 소드를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대체 트윈 헤드 헬하운드 하나로 몇 가지를 처리하는 건지. 내가 부탁한 것들을 한 번에 싹 정리해 버렸다.
단순히 헬하운드를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했던 생각에 몇 번을 꼬아야 저런 식으로 생각이 가능한 건지.
나도 잔머리가 꽤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재중이 형도 상상 이상인데?
“그렇다고 쳐도 이쪽도 물건이 좀 좋아야 이야기가 더 잘 풀릴 것 같으니까 저거 성능도 좀 봐야지?”
마치 영화에서 본 마약 거래하는 것 같은 장면이 생각난다. 좋은 물건을 남몰래 구해 와서 비싼 값에 처리하는.
수정의 수치도 안 보고 헬하운드를 테이밍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냥 가격부터 부르라고 하는데 수정이 성능이 좋으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해진다는 소리다.
이제 헬하운드의 구경이 끝난 듯 모여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팀에게 다가가 나르샤에게 말을 걸었다.
“나르샤 님, 헬하운드 확인 다 하셨어요?”
“네. 저희는 끝났어요. 지금 보실래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나르샤가 거래창을 띄워서 헬하운드의 소유권을 넘겨주자 바로 헬하운드의 상태창이 뜬다.
“이건…… 전투는 안 되겠네요. 스탯이 엉망진창이네.”
확실히 일반 몹보다는 전체적으로 스탯이 좋긴 한데…….
굳이 내 경험치를 나눠줘 가면서 키워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노다.
더 좋은 몹을 테이밍 하지 않는 이상은 당장은 타고 다니는 용도 이외에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것이 이속이 블랙 울프보다도 훨씬 좋은 편이다.
“이걸로는 그렇게 큰 메리트가 없네요.”
내가 약간 실망한 투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을 걸었다. 재중이 형이 실망한 내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나도 그렇게 기대는 안 했어. 일반 몹들 테이밍한 수준을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오니까. 이건, 솔직히 뽀대 용이지. 우리가 진짜 눈여겨볼 건 수정이지.”
재중이 형의 시선이 내 옆에서 얌전히 소환되어 네발로 서 있는 켈베로스로 향한다.
“왠지 아까운데요? 잡기 힘들었는데.”
“또 잡으면 돼. 오늘 시간 좀 내봐야겠네.”
“형, 오늘도 노시면 랭킹 확 떨어지지 않아요?”
아까 확인해 보니 조금만 놀면 뒤로 쳐질 것 같던데.
참고로 우리 팀도 랭킹이 화끈하게 올라간 상태다. 거의 몇십만 단위로 급격하게 올라가서 누가 보면 핵을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떨어지라고 하지 뭐. 랭킹도 중요하긴 한데 더 중요한 건 내실이야. 이 정도 치고 나갈 원동력을 발견했으면 여기 올인해야지. 당분간은.”
이건 제대로 개장수를 시작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우리 개 팔아서 집사는 겁니까?”
“표현 좋고.”
재중이 형이 내 말에 씨익 웃어 보인다.
“아이스 소드 안 돌려주셔도 돼요?”
“이미 이야기 끝냈지. 좀만 더 쓰는 대신 잡힌 거 먼저 한 마리 준다고.”
“진짜 헬하운드 하나로 다 뽑아 드시네요.”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헬하운드 하나로 몇 가지를 해결하시는 건지.
“일단 수정부터 만들어봐. 이거 제대로 안 뜨면 우리 본전도 못 뽑아.”
“설마 그 정도로…….”
이건 좀 불안한데? 엘리트라면 확실히 더 좋은 수정을 줄 것 같긴 한데. 테이밍 된 헬하운드의 성능을 봤더니 좀 불안한 감이 있다.
내가 헬하운드를 테이밍 창에 집어넣고 수정으로 변환시키기 위해서 인터페이스를 조작하자 지켜보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내 손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좋은 거 뜨겠죠?”
궁금하다는 얼굴을 내 옆에 들이미는 방패전사의 말.
“뜰 거 같아요.”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챠밍의 말.
“조금 불안하네요.”
테이밍된 헬하운드의 성능을 제일 처음 봤었던 나르샤의 말.
“제발 좋은 게 나오길!”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 마음 졸이는 이쁜소녀의 말까지.
“부디 집 살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 뒤에 한마디 붙인 재중이 형의 기도하는 눈빛을 끝으로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변환시키니 손바닥 위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내가 아이스 소드로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다리 관절을 긋자 재중이 형도 반대편에서 똑같이 따라서 그었다.
헬하운드가 처음엔 3m 정도는 움직였는데 이젠 거의 제자리걸음 하듯이 처음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이것도 계속하니 느네.”
재중이 형이 아이스 소드로 다시 한 번 관절을 그으면서 웃었다.
“그러게요.”
역시 나도 따라서 관절을 그었다.
나르샤도 로데오 실력이 부쩍 늘어서 첨에 두 손으로 잡고 버티던 것을 이제 한 손으로 갈기를 잡고 버티면서 여유 있게 챠밍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들 열심히 하는 거에 비해 그녀만이 할 일이 없이 멀뚱멀뚱 서서 가끔 나르샤에게 힐을 주고 다시 구경만 하는 중이다.
“저 이래도 될까요?”
챠밍의 의문에 재중이 형이 칼질을 하다가 곧장 대답을 해줬다.
“챠밍 님까지 공격하면 테이밍 하다가 죽어버려서요. 그냥 딱 이 정도가 좋아요.”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새로 얻은 수정들을 각자 무기에 박아 넣었는데 중간에 자꾸 헬하운드가 죽어버려서 결국 챠밍의 마법을 봉인한 상태다.
지금 몇 마리째더라.
일단 오전 내내 잡아서 각자 무기에 박을 수정은 확보해둔 상태.
“형, 이거 풀어도 정말 괜찮을까요?”
내가 무기에 박힌 수정을 슬쩍 보고 다시 아이스 소드로 다리를 그었다.
“나도 지금 고민 중이다.”
재중이 형도 내 말에 생각이 많은지 말을 아낀다.
테이밍은 정말 똥이었는데, 수정이…….
다시 한 번 아이스 소드의 손잡이와 검신 사이에 박혀 있는 수정을 바라봤다.
그저 붉은 계통의 투명한 보석인데 이걸 박고 안 박고의 차이가 너무 나서 문제다.
『 헬하운드의 붉은 봉인 수정 / 크리티컬 증폭 +1 』
이걸 박아서 대체 얼마나 대미지가 올라갔는지 모르겠는데 나와 재중이 형이 혀를 내두를 정도니…….
“이건 나중에 혼자 체크 좀 해봐야겠다. 일단 길드 내부로만 돌리고…….”
재중이 형이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이게 적대 길드에 들어가면 머리 아픈 수준을 넘어가니까 재중이 형도 길드 내부로만 돌리는 길을 선택한 모양이다.
돈도 돈이지만 이건 전력비가 깨질 수도 있는 문제라서.
“이것도 문젠데…… 다른 수정은요?”
“그것도 일단 봉인. 이건 우리 정도 되니까 이렇게 대미지가 나오는 거지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 수정으로 이 정도 못 끌어내. 다른 사람들한테 이거보단 그게 더 문제야.”
지금 박혀 있는 붉은 수정 외에 다른 수정이 더 있다.
트윈 헤드 헬하운드에게서 한 가지 수정만 나올지 알았더니 아니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나도 재중이 형과 같은 생각이고.
“일단 최대한 뽑아내자. 이건 내가 봐도 문제가 있으니까. 쉬는 시간 없다. 잘 따라와라.”
재중이 형의 눈이 매섭게 번쩍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