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4화 (54/1,404)

# 54

#54화 여기가 도시섭? (10)

“쉬면서 몇 번 생각을 좀 해봤거든요. 어떻게 트윈 헤드 헬하운드를 테이밍 시킬 수 있을까. 사실 저렇게 타자마자 다른 헬하운드들에게 달려가는 녀석은 제가 올라탄다고 해도 쉽지 않아요.”

나르샤가 내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주호 님이 마법을 튕겨내실 수 있다고 해도 한 방향도 아니고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제멋대로 흔들리는 헬하운드 위에 올라타고 다 걷어내시긴 힘들 거야.”

사실, 저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어느 방향에서 오든지 튕겨내는 것 자체는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체력.

전에 지붕 위에서 쳐낼 때는 챠밍이 뒤에서 힐을 계속 시전 해줘서 버틸 수 있었지만 트윈 헤드 헬하운드에 올라타면 정말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데 아마 물약으로 차는 수준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마력이야 악세를 하나 더 바꿔서 올라타면 어떻게든 된다고 하지만.

“뭐, 한 마리 잡는 데 너무 힘 뺄 필요는 없겠죠. 보시다시피 여기…… 장소가 꽤 협소하죠?”

“네, 입구 쪽만 빼면 이쪽은 보기가 힘들겠어요. 여기에서 테이밍 하는 건가요? 아님, 다른 곳에서?”

챠밍이 재미있겠다는 표정으로 궁금한지 바로 질문을 한다.

“여기서 테이밍을 바로 하지는 못할 겁니다. 보시다시피 순찰 구역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요.”

“확실히 여기는 헬하운드가 안 지나다니네요.”

일부러 찾으러 들어오지 않으면 모를만한 구석이니 내가 개발자라도 여기까지 헬하운드를 돌게 만들진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여기서 좀 떨어진 대로 쪽으로만 도는 것도 확인했고.

“일단 시작은 나르샤 님.”

“말씀하세요.”

“전에 폴링했던 것처럼 대로에서 한 마리만 끌고 여기까지 오실 수 있겠죠?”

“네, 한 마리는 어렵지 않아요.”

헬하운드를 15마리나 끌고 여기저기 한바탕 휘저으면서 다니시던 분인데 한 마리는 너무 쉽게 느껴질지도.

거기다 지금은 테이밍 시도하던 사람들이 거의 사라져서 몹이 제각각 따로 다니니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끌고 여기까지 오시면 됩니다.”

내가 가리킨 곳은 골목길 안쪽.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테이밍을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주호 님이 올라타시지 않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겠네요.”

챠밍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아이스 소드에 가 있다. 다른 이들도 다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이것 자체에 그렇게 놀란다거나 하지는 않고 당연하다는 듯 쳐다보는 중이다.

“네, 서프라이즈 같은 것이 없어서 아쉽지만 전 아이스 소드로 최대한 못 달려나가게 막을 겁니다.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사실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래서 다른 준비를 하긴 했는데…….”

내가 오른쪽 상단을 자꾸 흘깃흘깃 쳐다보니까 모두의 시선이 날 따라서 움직인다.

“아, 이건 그냥 시계를 본 거에요.”

모두가 그 말에 속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전 보시는 쪽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았어요. 준비를 하셨다고 하시기에.”

챠밍도 내 시선을 따라 상단을 보고 있다가 똑같이 속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준비한 것이 맞긴 한데 이상하네요. 시간이 됐는데.”

내가 꺼내놓은 말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한다.

때마침 골목길 왼쪽의 2층 건물의 창문에서 한 사람이 새처럼 뛰쳐나와 날 듯이 우리들 옆에 착지했다.

“제가 말한 준비가 이제야 왔네요.”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서프라이즈!”

아…… 쪽팔려.

두 팔을 짝 벌리면서 서프라이즈를 외치는데 내가 다 부끄럽다.

“다들 또 뵙네요.”

재중이 형의 웃음기 가득한 인사를 하는데 이미 이미지가 좀…….

왜 늦었나 했더니 건물에 올라간다고 늦었구만.

평범하게 나타나면 안 되나.

“네,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뛰쳐나와서 당황할 법도 한데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방패전사가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재중이 형이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눈 뒤 곧장 날 바라봤다.

“넌 형이 왔는데 인사도 안 하냐?”

“네네. 어서 옵쇼.”

“성의가 영 없구만.”

재중이 형이 내 인사를 받고는 피식 웃는다.

“그건 어떻게 됐어요?”

“당연히 가져왔지. 이거 빌려온다고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너 지금 바로 절해도 모자라.”

바로 구한다고 무리를 좀 하신 모양이다. 그래도 저렇게 막 구해오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네.

“충분히 제값 할 겁니다.”

***

나르샤가 대로로 나가서 트윈 헤드 헬하운드 한 마리를 풀링하러 간 사이에 남아 있던 사람들끼리 마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이건 두 분이 정말 잘해주셔야 해요.”

내가 방패전사와 이쁜소녀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저희가요?”

“네, 두 분도 헬하운드에 올라타시기는 할 겁니다.”

“아까 나르샤가 탄다고 하지 않았나요?”

방패전사가 궁금함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랬죠. 다만 두 분은 다른 방식으로요.”

“어떻게 하면 돼요?”

이쁜소녀도 궁금한지 귀를 쫑긋 세운다.

“나르샤 님이 한 마리를 풀링 해오면 저와 재중이 형이 어떻게든 묶어둘 겁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아시다시피 헬하운드를 안 잡고 있으면 주변에 있는 헬하운드를 한 마리씩 띄엄띄엄 불러들여요. 아시죠?”

“네, 그건 알아요.”

“그럼, 두 분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접근하는 헬하운드를 한 마리씩 올라타서 멀리 가세요.”

“아…… 저희는 몹을 몰아내는 역할이네요.”

이쁜소녀가 바로 이해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전사도 알아들었는지 눈빛이 달라졌다.

“네, 접근하는 헬하운드를 2층 건물에서 지켜보다가 각기 다른쪽으로 타고 멀리 가시는 것이 임무입니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것이 타고 있다가 몹이 몰리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나마 체력이 높은 두 분에게 맡기는 겁니다.”

“그럼 타고 나가서 무작정 가면 되는 겁니까? 그럼, 돌아오기 힘들 텐데요.”

방패전사가 타고 나간 뒤의 일을 걱정하는 듯 물어본다.

“아…… 그 정도로까진 안 가셔도 되고요. 몹이 한두 마리 몰리기 전까지만 타고 가세요. 그리고 건물 아시죠?”

“이해했네요.”

“아! 뛰어내려서 건물에 들어가라는 거죠?”

방패전사만큼이나 이쁜소녀도 센스가 좋네. 하나만 말해도 바로 알아듣는다.

“네, 건물로 들어가 버리면 어그로가 풀려서 다 흩어지니까요. 지켜보시다가 좀 멀어진다 싶으면 잘 피해서 다시 오시면 됩니다. 너무 멀리 가시면 돌아오시기 힘드니까 적당히 가셔야 해요. 이건 개인 판단에 맡길게요.”

내 말에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우리에게 오는 헬하운드를 적당히 멀리 보내놔야지 우리가 헬하운드를 테이밍 하는데 집중할 수가 있다.

첨엔 재중이 형네 길드 사람들을 불러서 오는 족족 잡아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입이 많아지면 나눠 먹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까.

딱 지금, 이 정도 인원이 적당하다.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이쁜소녀가 손을 흔들면서 먼저 2층 건물로 올라갔다. 그 뒤로 방패전사는 반대쪽으로 올라가고.

이 방법이 정 안 되면 재중이 형네 사람들이라도 불러서라도 해봐야겠지만.

두 사람이 얼마나 잘 떼어놓고 잘 돌아오는지가 관건이다. 잘못하면 테이밍하다가 몹에 둘러싸여서 포기할 상황이 나올 수도 있으니.

“나르샤 님이 오네요. 챠밍 님은 아이스 볼로 최대한 느리게 만들어만 주세요. 그리고 나르샤 님이 위험할 때 힐 해주시면 됩니다.”

“네, 맡겨주세요.”

챠밍이 지팡이를 꼬옥 쥔다.

“불멸 형은 오른쪽 부탁해요.”

“꼼수 있으면 끼워달라고 했더니 하루 만에 건수를 물어 오냐. 준비도 많이 했네. 나 참, 헬하운드를 몰아서 쫓아내는 건 생각도 못 해봤네.”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웃는다.

“저희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해야죠. 그리고 입이 늘어나면 먹는 게 안 맞잖아요.”

“뭐, 해 먹을 수 있는 건 끼리끼리 해 먹는 것이 맞지. 이거 참 호랑이 새끼가 이렇게 무럭무럭 크고 있을 줄 몰랐네.”

“호랑이가 될 때까지 더 커야 합니다. 판 깔아주신다면서요?”

“판이야 이미 시작됐지. 잡음이 좀 있긴 한데. 아무튼 이거 제대로 살려보자. 오랜만에 재밌어지려고 하네.”

재중이 형이 나르샤가 끌고 오는 헬하운드를 보면서 눈빛을 빛낸다.

머리 두 개에서 화염 마법과 얼음 마법이 쏘아지는 걸 나르샤가 구르면서 피하고 다시 일어나서 완전히 골목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양쪽 건물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가 뛰어내렸다.

이건 꼭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는 악당이 된 기분인걸.

“자, 그럼 갑니다.”

내가 먼저 헬하운드에게 뛰어가서 앞쪽 다리의 관절 부분을 아이스 소드로 재빠르게 그었다.

그러자 바로 관절 부위에 생기는 얼음 결정이 헬하운드가 잘 움직일 수 없도록 막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식이냐?”

재중이 형이 내 뒤를 뛰어오더니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반대편 앞다리의 관절을 아이스 소드로 그어냈다.

저 아이스 소드가 재중이 형이 빌려온 네임드 무기다. 스파크 윙드 스피어는 이런 식의 일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혹시 구할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하루 만에 구해왔다.

거기다 챠밍이 범위가 넓은 아이스볼로 뒷다리 근처를 맞추니까 역시나 움직임이 완전히 느려진다.

움직임이 상당히 굼떠진 헬하운드를 보고 있던 나르샤가 우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장 헬하운드 위에 올라탔다.

스태미나와 연관이 있는지 몰라도 테이밍을 시도하면 시도한 사람의 HP가 타고 있는 동안 꾸준하게 깎인다. 헬하운드는 엘리트급이라서 얼마나 깎일지 궁금했는데 확실히 일반 몹보다는 깎이는 폭이 크다.

“챠밍 님, 적당히 보시고 힐도 넣어주세요.”

물약만으로도 될 것 같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라서 미리 말을 해두었다.

“네, 잘 보고 있을게요.”

난 헬하운드의 왼쪽에 붙어서 앞다리와 뒷다리의 관절을 계속 느리게 만들고, 재중이 형은 내 반대편에서 역시 같은 식으로 하는 중이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는데 재중이 형이 반대편에 서니까 헬하운드가 거의 꼼짝도 못 하고 구슬픈 울음만 내뱉었다.

저 울음소리로 주변 헬하운드를 불러들이는데 그건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그건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잘 해주기를 바랄 뿐.

“이거, 진짜 제대로 각 나오는데?”

재중이 형이 계속 관절을 아이스 소드로 그어가면서 헬하운드의 등에 올라탄 나르샤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아무렴요. 누가 생각한 건데요.”

챠밍은 쿨마다 아이스볼을 날려서 꾸준히 느리게 만들어주고 나르샤가 HP가 좀 많이 줄었다 싶으면 힐을 넣는 식으로 관리를 잘해주는 중이다.

“아이스 볼 구해달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이유가 있었네.”

“보시다시피. 잘 하죠?”

“어, 필요한 부분에 제대로 맞추네.”

우리 대화에 챠밍의 얼굴이 살짝 붉게 변한다.

거의 3m도 전진을 못 하고 그 자리에서 계속 묶여 있는 헬하운드의 등에서 나르샤가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갈기를 잡고 출렁출렁거리는 헬하운드 등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나르샤가 민첩이 높으니까 일부러 이 역할을 맡겼다. 이건 일반 몹과 다르게 로데오 수준이 다르니까 반응이 느리면 바로 튕겨 나가 버리니 나 외엔 나르샤 밖에 할 사람이 없다.

중간에 터져 나오는 마법은 내가 소드로 쳐서 날려버리니 재중이 형이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재밌는 짓을 하네?”

“이걸로 먹고 사는 중이에요.”

“흠, 담에 하지 말고 있어 봐.”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하더니 헬하운드가 화염 마법을 쏘아내자 그대로 아이스 소드로 빗겨내서 하늘로 쳐내 버렸다.

하…… 진짜 괴물이네. 그걸 보자마자 따라 하나.

“이거 재밌네.”

재중이 형이 HP 잔량을 확인하더니 씨익 웃는다.

“와, 남의 필살기를 그렇게 훔치는 게 어딨어요.”

“특허 냈냐? 그리고 이건 아무나 못 따라 하겠는데?”

하긴 아무나 못 따라 하니까 이제껏 막 썼는데. 역시 프로게이머를 딱지치기로 따낸 것은 아닌 모양이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대략 십오 분쯤, 지금껏 다른 헬하운드가 안 나타난 것을 보니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이십 분쯤 지날 때 드디어 헬하운드의 눈빛에서 뻘겋고 퍼런 잔광이 사라졌다.

“어? 된 것 같아요.”

챠밍이 지켜보다가 제일 먼저 변화를 눈치챘다.

나르샤도 출렁거리던 등이 얌전해지자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서서히 잡고 있던 갈기를 놓았다.

나르샤의 긴장 가득한 표정이 이제야 웃음으로 변했다.

“이게 되긴 되는 거였네.”

재중이 형도 밝게 웃는다. 누구보다 먼저 했다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트윈 헤드 헬하운드에서 푸르고 붉은빛이 터지더니 테이밍이 성공했다는 표시로 크기가 작게 변하기 시작했다.

나르샤가 어느새 헬하운드 아래로 내려와서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챠밍도 옆에 와서 밝게 웃으면서 나르샤와 눈을 맞추고는 같이 갈기를 만지기 시작했다.

“미녀와 야수네.”

재중이 형의 간략한 감상평에 나도 웃었다. 이때가 제일 좋다. 상상했던 일들이 실제로 펼쳐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됐어요. 이제 오셔도 됩니다.

<방패전사> 정말 된 겁니까?

<이쁜소녀> 빨리 보고 싶어요.

―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방패전사와 이쁜소녀에게 연락을 넣어두고 챗창을 다시 닫았다. 함께 즐겨야지.

“어때요? 이 정도면. 형이 말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쯤 되겠죠?”

내가 테이밍 된 헬하운드를 가리키면서 웃어 보이자 재중이 형이 내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진중한 표정으로 변해 말을 꺼냈다.

“넌……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이건 그렇게 쓸 물건이 아니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