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화 여기가 도시섭? (3)
“여긴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뭐, 한국에서 가상현실 게임으로 난다 긴다 하는 애들 다 모여 있으니까.”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면서 다시 어깨를 으쓱한다.
“그리고 돈 많은 인간이 다 모여 있기도 하고.”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한다.
“걔들 들고 다니는 무기 보면 헉 소리 나올 거다. 다 돈으로 메워버리니까.”
그럼 어쩐다…….
당장 네임드 무기에 강화를 더 하기에는 좀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인데.
뭔가가 필요하다.
“네임드가 부담스러우면 사장님처럼 해도 상관은 없긴 해. 네임드는 일종의 외제 차 개념이라서.”
“그래도 네임드 추가 효과는 버리기 힘들죠.”
“뭐,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곧 죽어도 네임드 써야지. 구할 수만 있다면.”
이건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 강화가 낮은 것을 보완하려면…….
“혹시, 플레임 소드 하나 더 구해주실 수 있어요?”
“왜? 강화 더 하게? 플레임 소드는 고강할 정도로 좋지는 않은데…… 그냥 네임드 중에 좀 더 좋은 것뿐이야. 화염 추가 대미지 그거 얼마나 나온다고.”
역시 재중이 형도 모르고 있네.
“이따가 제가 뭐 좀 보여드릴게요. 보면 알아요.”
“서프라이즈냐?”
“비슷해요.”
“흠, 이런 걸로 헛소리할 놈은 아니니까. 좀 기다려봐. 아이스 소드는 몰라도 플레임 소드라면 웃돈 얹혀주면 파는 애들이 좀 있으니까. 플레임 소드는 값에 비해서 효율이 좋지 않아서 내놓는 애들이 있긴 하거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 할 판이다.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
템을 다 나눠주고 원래 약속했던 대로 재중이 형이 잠시 따라다니면서 우리가 사냥하는 것을 보기로 했는데 어디선가 온 귓말을 듣더니 곧장 안색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 서프라이즈는 나중에 보자. 형 지금 좀 가봐야겠다.”
“네?”
“아, 이 동네 치안이 영 별로라서 말이지. 몸 좀 풀다 올게.”
뭔지 안 들어봐도 알겠네. 백골이 이 동네는 조용할 날이 없다더니 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문제가 생기네.
“오자마자 스펙터클 하네요.”
“이런 게 더 재밌어. 너도 곧 익숙해질 거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 보인다. 저 웃음의 의미는 빨리 커서 같이 놀자는 소리겠지.
“가보세요. 저희야 템도 있겠다. 업 하는 건 문제가 안 되니까요.”
“어, 나도 좀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보자. 기다리진 말고. 대기도 좀 타야 하니까. 무슨 일 있으면 귓말 해라.”
“네, 다녀오세요.”
“아! 그리고 길드는 좀 있어봐라. 우리랑 적대 길드가 좀 많아서 괜히 불똥 튈지도 모르니까. 또 다른 문제도 있긴 한데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흠, 전에 집에서 이야기할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문제가 있나? 이건 진지하게 다시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진짜 간다.”
재중이 형이 우리 팀에게 인사를 하고 푸른 크리스탈을 누르더니 그대로 신기루처럼 변해 사라져 버렸다.
“바쁘시네요.”
방패전사가 재중이 형이 사라진 푸른 크리스탈을 보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뭐, 좀 그런가 보네요. 자. 저희는 저희 할 것을 해야죠?”
“저희 그럼 퀘스트부터 해야 하나요?”
챠밍이 날 물끄러미 보면서 물어본다.
원래는 퀘스트와 사냥을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흠, 딱히 전부 다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어차피 사냥 퀘스트는 지역마다 별개고. 솔직히 이 정도로 구해다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챠밍의 물음을 들은 방패전사가 자신의 무기와 방패를 보고는 의견을 냈다.
“전 싸워보고 싶어요.”
이쁜소녀는 자기 키만 한 양손검을 손에 쥐고 전의를 불태우는 중이다. 쟤 원래 저런 스타일이었지. 양손검을 쥐여주니 사람이 변하는구나.
생긴 건 완전 귀여운 소녀인데. 재중이 형이 보고 갔으면 재밌어했을 지도. 인사하면서 수줍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나르샤는 그냥 별 반응이 없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려나. 재중이 형을 볼 때 잠시 관심을 보이더니 지금은 그냥 고요하네.
어쩐다.
메인 퀘스트를 하려면 동선이 굉장히 긴데…… 이걸 다 하고 다니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고.
“그럼, 이렇게 하죠. 일단 늑대 지역으로 가서 늑대를 테이밍 하고 다시 돌아와서 메인 퀘를 하죠. 아무래도 타고 다닐 것이 있으면 금방 하지 않을까요?”
내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테이밍도 궁금하기도 하고.
의견이 한데 모이자 곧장 포탈을 탔다.
포탈의 빛이 사라지고 나오는 피난민 마을의 풍경들이 익숙하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쁜소녀가 포탈에서 나오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확실히 인파가 엄청나다. 전에 우리가 있던 그 마을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거의 세 배는 넘어 보여요.”
챠밍도 약간 놀랐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1서버는 확실한가 보네요. 꼭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기분입니다.”
방패전사도 역시 둘러보면서 감탄을 한다. 감정을 잘 안 드러내는 나르샤도 비슷한 표정이고.
물건을 팔려고 올려둔 개인 상점의 투명한 소개말 표지 때문에 대로와 골목들이 막혀 보이는 데다가 그 사이로 오가는 수많은 사람.
답답함까지 느껴질 정도의 인파다.
“아마 여기가 사람이 제일 많을걸요? 최초로 오크 족장 잡은 마을이니까요. 적어도 양옆의 마을 사람들은 다 이리로 넘어왔을 겁니다.”
그땐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이렇게 차이 나는 모습을 보니 재중이 형네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북적이게 만든 장본인들이니까.
인파를 뚫고 바로 협곡 관문을 지나서 바로 늑대 지역으로 올라갔다. 수많은 사람이 관문을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 더 지나니 흑갈색으로 변한 메마른 암벽 대지에서 곳곳에 파티를 맺고 사냥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희가 여기 필드에서 사냥하는 건 처음이네요.”
항상 그냥 지나다니기만 했는데.
“네, 그땐 던전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다음엔 바로 외성 2구역에서 사냥했으니 처음이죠.”
“저기! 굶주린 협곡 늑대 테이밍 해보면 안 돼요?”
이쁜소녀가 빨리 테이밍을 해보고 싶은지 보채는 느낌이 든다. 기억하기로 전에 얘들을 강아지 같다고 했었지?
눈빛이 초롱초롱하네.
“그럼, 가보죠.”
가장 처음에 나오는 늑대, 굶주려서 그런지 좀 마르긴 했으나 보기 흉할 정도는 아니고. 크기가 커서 충분히 타고 다닐 만하다.
가까이 다가가니 곧장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르 거린다. 이건 강아지와는 백만 광년쯤 차이가 있다.
“일단 몇 마리 잡아서 업부터 하죠. 지금 상태로 테이밍 하다가는 저희가 먼저 죽겠네요.”
방패전사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달려들었다.
굶주린 늑대가 앞에 나섰다가 방패전사의 블록에 막혀서 접근도 못 하고 빙빙 맴돌기만 하는 중이다.
확실히 전체적으로 방패전사의 움직임이 느려지긴 했는데 필드 몬스터를 상대로 힘들어할 정도는 아니다. 악세 네 개만 해도 레벨을 8은 커버해 주니까.
거기다 무기와 방어구까지 하면 여기 필드 몬스터로는 생채기도 못 내겠지. 특히 방패전사는 방어가 좋으니까.
레벨 1짜리가 여기서 이렇게 맞짱 뜰 수 있는 것부터가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전혀 안 밀리시네요.”
챠밍도 놀라워하고. 설마하니 이 지역의 몬스터가 아무것도 못 해보고 저렇게 밀려날 정도가 될지는 몰랐으니까.
그러면서 빠르게 마법을 준비해서 날렸다. 아직 다른 마법은 지력이 낮아서 못 배우니까 매직애로우가 곧장 뻗어가 늑대의 등에서 터졌다.
이어서 나르샤의 화살도 쏜살같이 날아가서 늑대의 머리에 꽂히고 이쁜소녀가 늑대의 옆으로 돌아가 목을 양손검으로 강하게 내려치니 굶주린 늑대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어?”
저 아직 한 대도 못 때렸는데요.
과연 이것이 돈의 힘인가.
건드려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굶주린 늑대가 죽어 있다.
동시에 모두의 몸에서 빛이 나면서 레벨이 오르는 이펙트가 터져 나온다.
한 마리 잡았다고 바로 레벨이 3으로 올랐다.
진짜 돈질이 이래서 무섭구나.
***
이쁜소녀가 이리저리 날뛰는 굶주린 늑대의 등에 올라타 한참을 낑낑대는 중에 벌써 몇 번을 튕겨 나갈 뻔하다가 겨우 다시 갈기를 잡으면서 버텼다.
“힘내!”
“좀만 더!”
이쁜소녀가 굶주린 늑대 위에서 로데오 경기를 하고 있으니 챠밍과 방패전사가 열심히 주변에서 응원을 하는 중이다. 나르샤도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고.
한참을 그렇게 버티다 보니 무섭게 노려보던 굶주린 늑대의 눈빛이 순하게 물들어가면서 격렬하게 반항하던 움직임이 순식간에 길들인 양처럼 얌전하게 변했다.
“됐어요!”
확실히 된 것처럼 보이네. 정말 얌전해졌는데?
그와 동시에 연한 광채가 주변으로 퍼져 나오더니 굶주린 늑대의 체격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원래 몬스터일 때보다 크기가 좀 작긴 한데 그렇게 작아지고 나니까 좀 타고 다니기 좋은 사이즈로 변한 것 같다.
이쁜소녀가 굶주린 늑대에게서 내려와서 옆으로 걸어가니 그대로 따라간다.
다시 반대편으로 움직이니 역시 따라다니고.
“이거 봐요. 저 따라와요.”
“네, 그래 보이네요.”
“성공했네요.”
나와 방패전사가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챠밍이 이쁜소녀 옆으로 가서 이제는 얌전해진 굶주린 늑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거…… 만져 봐도 되는 거지?”
“응, 언니. 만져봐. 안 물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가가서 갈기를 손으로 쓸어본다.
“부드러워.”
챠밍이 손을 대고 쓸어내리는데도 집에서 키운 강아지처럼 얌전하게 꼬리를 슬쩍슬쩍 흔들 뿐이다.
어느새 나르샤도 챠밍의 옆에 가서 손으로 쓸어보는 중이고.
그 모습에 그저 웃음이 나온다.
동물을 다 좋아하는 모양이네.
“방패전사 님은 안 해보십니까?”
“아…… 전 동물하고 별로 안 친해서요. 주호 님은요?”
“전 뭐 나중에 해보죠. 제가 저기 끼면 이상할 것 같네요.”
말대로 여자 세 명이 늑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기를 쓸어 담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으니 끼어들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생각보다 테이밍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네요.”
“저게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하니까요.”
“저렇게 안 되는 몹도 있나요?”
“뭐 아까 살펴보니 아무리해도 테이밍 안 되는 몹이 있다고 하네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다른 템이나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방패전사도 나랑 업데이트를 접한 시간대가 같은데 벌써 홈페이지를 싹 쓸어봤는지 나오는 정보가 다르다.
역시 이런 건 방패전사가 전문이라 편하다.
“근데 저거 타고만 다니는 건가요?”
“아뇨,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공격도 가능하다고 하는데 글쎄요. 생각보다 그렇게 세다고는 할 수 없다는데요?”
“테이밍 하면 많이 약해지는 겁니까?”
“네, 개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테이밍 했는데 몹이랑 똑같이 강하다면 문제가 생기겠죠, 아마.”
하긴, 저게 맞는 말 일 거다.
똑같이 세다면 여러 명이 같은 몹을 테이밍시켜서 우르르 몰려가서 사냥하면 동일 몬스터는 절대로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럼, 바로 밸런스 붕괴지.
내가 생각에 빠져 잠시 정신을 팔고 있을 때 이쁜소녀가 찰랑이는 분홍빛 미디엄 헤어를 불쑥 들이밀며 다가와서 손가락 두 개 크기만 한 작고 윤기 나는 푸른 빛깔의 투명한 수정을 보여줬다.
“이거 수정으로도 만들어져요.”
내게 얼른 확인해 보라는 듯 큰 눈망울을 깜빡거리면서 재촉한다.
『 최하급 봉인의 수정 / 민첩 +1 』
이건, 스탯 증가네. 그것도 민첩.
수정으로 바꿔서 무기에 인챈트 가능하다더니 이게 그건가?
이쁜소녀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새다.
“확실히 좋네요.”
내가 대답하자 이쁜소녀가 곧장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수정을 내민다.
“이거 쓰세요.”
“네? 이쁜소녀 님이 얻으신 건데…….”
“계속 얻을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주호 님은 칼도 두 개고.”
“흠, 그럼 잘 쓸게요. 그럼, 다음엔 제가 잡아서 드릴게요.”
내가 그대로 수정을 받으니 오히려 기뻐하는 눈치다. 확실히 요즘 알 수 없는 일이 많네.
그대로 무기를 꺼내서 수정을 올려놓으니 강화할 때와 비슷한 이펙트가 나오면서 무기를 감싸다가 흡수되었다.
『 +4 트윈 헤드 워 울프 아이스 소드 / 9 (5+4) ∼ 11 (7+4)
민첩+1(수정), 민첩 +1, 빙결 효과 』
이건…… 좋다.
이걸 보자마자 문득 머리에 스치는 생각.
“방패전사 님, 트윈 헤드 헬하운드도 분명 탈 수 있는 거였죠?”
내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