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43화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17)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8.
> 로딩 중…….
술이 깨는 것을 속이 풀리는 것까지 확인하고서 겨우 접속을 시도했다. 술기운에 한숨 푹 자고 재중이 형은 팔팔하게 점심까지 넉넉하게 챙겨 먹고 갔다.
생각 잘 해보라는 말을 남기고서.
당연히 하나도 안 치우고 바로 내뺐다. 집을 치운다고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두통이…….
평소와 다른 시간에 접속했는데도 곧장 모두 인사를 하며 반겨준다.
재중이 형과 나눈 이야기들을 속으로 정리하면서 마을에서 기다리다가 우편이 온 것들을 보고 확인을 했는데…….
뭐가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다.
고작 이틀 안 들어왔을 뿐인데, 우편함이 몇 줄 넘게 가득하게 차 있다.
전부 스카웃을 하고 싶다는 길드 마스터들의 우편이다. 접속하지 않아서 답변을 못 했더니 중복해서 보낸 사람도 적지 않고.
영상이 엄청나긴 했나 보네.
그중에 우리 길드에서 보내온 우편도 있어서 열어봤다가 인상을 확 썼다.
“이건 장난하는 건가?”
전에 켈베로스와의 일전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딱 세 개의 아이템이 넘어와 있다. 그것도 별 볼 일 없는…….
우편에 있는 메시지에 드랍된 아이템을 복구해 주고 남은 것을 팔아서 분배해 줬다는데 말이야 그럴싸하고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거 밖에 안 돌아오는 것이 말이 되나? 내가 눕힌 사람만 거의 20명이 넘는데?
어이가 없어 앉아서 잠깐 기다리니 사냥에 나가 있던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가 모두 귀환을 해서 돌아왔다.
일단 이건 조금 있다가 물어보기로 하고.
절대 좋은 소리를 못 할 것 같으니까.
“제가 어제 과음을 좀 해서 못 들어왔네요. 별일 없으셨죠?”
내 말에 방패전사와 모두의 얼굴이 그다지 안 좋아 보인다. 무슨 일 있었구나.
“이것도 일이라면 일인 건데…… 길드 창 아직 안 보셨죠?”
“네, 무슨 일이라도?”
“그냥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길드 창을 띄워서 확인을 하는데.
이것도 장난하는 거지?
“혹시 오늘 만우절 같은 건가요?”
“아뇨.”
“아니요.”
“아니죠.”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날 보면 동시에 대답해 준다. 근데 이게 만우절이 아니면 설명이 가능한가?
내 눈이 잘못됐는가 싶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해본다. 프로그램이 이상한가? 뭐지?
“이거 제 시스템 창만 잘못된 건가요? 왜 이 여자가 부길마가 된 거죠? 이거 제게 제대로 설명해 주실 분 있나요?”
새로 올라온 길드 공지에 새로 운영진을 뽑았다는데 부길마를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씩 뽑았다는데 남자 쪽은 알기로 그간 길마를 도와서 옆에서 쭉 일했으니 이해를 할 수 있다. 지나다니다 몇 번 보기도 했고. 이해를 하겠는데…….
여자 쪽이 문제다.
딱 두 명을 뽑아놓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것도 민폐 가득하다고 소문 난 여자를 부 길마에? 다들 미친 거 아냐?
대체 접속하지 않은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저희도 들어와서 보고 어이가 없었는걸요.”
“난 이 여자 싫은데.”
챠밍과 이쁜소녀가 각자 싫은 티를 꽤나 낸다. 어지간하면 저렇게 표현을 잘 안 하는 사람들인데.
들어보니 내가 늦게 들어오니까 기다리는 동안 챠밍과 이쁜소녀에게 꽤나 안 좋은 모션을 취한 모양이다.
그 여자가 마음대로 켈베로스 때문이라면서 팀을 이리저리 보내려고 했다던데 방패전사와 나르샤가 나서서 한바탕 해서 넘어갔다고 한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을 빨았나. 지금이라도 가서 목을 따야겠는데.
그리고 이 여자가 부길마 라고? 대체 무슨 기준으로?
“길마가 뽑았다고 하니까 다들 일단 말을 아끼고 있는 중입니다. 투표 같은 걸로 하면 절대로 뽑힐 수가 없는 사람인데. 소문에 실제로 현실에서도 아는 사이라고 하네요. 사석에서 막말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봤다고 하고.”
말하던 방패전사가 쓴웃음을 짓는다. 이해 안 되긴 본인도 마찬가지라서 저런 표정인가.
“뭐, 사람이 모이면 어딜 가나 똑같은가 봅니다. 밑에서 뭐라고 한들 위에선 자기들 마음대로 해버리니. 인맥이 무서운 게 저런 거겠죠.”
진짜 인맥이라는 것이 저렇게 작용을 하네.
앞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눈에 훤하다. 우리와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로 묶인 그 여자가 부길마가 되자마자 하는 짓만 봐도 알겠네. 앞으로 온갖 잡음이 날 거다.
생판 모르는 사이에서도 저렇게 안하무인인데 부길마까지 달아줬으니 참 잘 돌아가겠다.
그리고 난 저렇게 매번 주변 신경 안 쓰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해버리는 길마 밑에서는 있고 싶지도 않다. 길드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걸 봐가면서 있어야 하나?
“아…… 그리고 우편으로 온 보상. 저한테 아이템이 겨우 세 개 날아왔던데 이건 누구 작품입니까?”
역시 방패전사가 쓴웃음을 짓는다.
“물어볼 필요도 없던 거네요.”
부길마가 된 그 여자가 분명히 옆에서 쫑알댄 것이 틀림없겠네. 아주 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구만.
“다른 분들은 보상 어떻게 됐습니까?”
“챠밍 님만 한 개 받으시고 나머진 주지도 않던데요? 수고했다고 아르로 푼 돈 좀 넘겨주고 끝입니다.”
“하! 진짜 이것들이! 저희 말고 다른 곳도요?”
“아뇨, 다들 쉬쉬하고 있던데 저희만 제대로 못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그거 때문에 따지러 갔었는데 길마 얼굴도 못 봤어요. 부길마 그년이 나와서 말하던데 진짜 싸대기 한 번 올리려다가 겨우 참았습니다.”
“파티 한 번 안 받아줬다고 아주 미쳐 날뛰네요. 이건 저희와 싸우자는 걸로 밖에 안 들리는데요?”
“그래서 주호 님 오실 때까지 일단 기다리고 있었죠.”
방패전사 뿐만 아니라 챠밍, 이쁜소녀도 꽤 분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렇게 열심히 싸웠는데…… 나르샤도 감정 표현이 잘 없는 편인데 이번엔 화가 엄청 난 모습이고.
한숨을 쉬는 방패전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이건, 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으니까 조금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제 물건 떼먹는 놈들이랑 제 사람 건드는 놈들은 그냥 놔둘 생각이 없어서요. 재밌을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다가 지금 상황에 제일 해 볼 만한 것들이 떠올랐다.
이건 나중의 큰 재미를 위해 남겨두고.
“일단은 길드부터 나가죠?”
이런 길드 1분 1초도 더 못 있어 주겠다.
나야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만 따라나서면 되는 입장이고, 나르샤는 방패전사와 인연이 있으니 나서면 좋고 아니면 마는 정도 쯤 되려나.
“챠밍 님, 이쁜소녀 님?”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챠밍과 이쁜소녀에게 질문을 했다.
“당연히 나갈 거예요. 여기 한 시도 있고 싶지 않네요.”
역시 단호하네. 표정이 확 굳어 있는 걸 보니 말 안 해도 알 정도다.
“저도요. 맘에 안 들어요. 이 길드.”
이쁜소녀도 마찬가지. 저 고운 얼굴로 인상을 확 찌푸린다.
내가 없는 이틀 동안 다들 어지간히 쌓였었구나.
가만히 듣고 있던 나르샤가 방패전사와 따로 이야기를 해보더니 곧장 대답을 해준다.
“저도 같이 나가죠. 아는 사람들이 좀 있긴 한데 어차피 방패전사가 아니면 저도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전 안 물어보셔도 될 것 같네요.”
방패전사는 그렇다 쳐도 나르샤는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맘에 안 드는 건 똑같은 모양이다. 이로써 만장일치네.
이제 걸리는 것은 하나도 없다.
탈퇴한다고 딱히 말해줄 필요도 없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일제히 길드 탈퇴에 손을 올렸다.
《 길드에서 탈퇴하시겠습니까? 》
예를 누르니 머리 위에 있던 길드 이름과 마크가 동시에 사라진다. 길드 창도 아무것도 없는 백지 창으로 변하고.
결국 길드에 들어와서 건진 건 나르샤 한 명인가? 아니, 애초에 방패전사의 지인이었으니까 길드에 안 들어갔어도 따라왔을지도 모르겠네.
“나오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요.”
답답했던 기분이 싹 가시는 것 같다. 길드 사냥터? 까짓것 아쉬울 것 하나도 없다.
잊혀진 고성 레이드도 마찬가지고. 저런 식으로 운영해서 잘도 깨겠네. 길마가 하는 걸 봐서는 저 길드도 오래는 못 갈 것 같아 보인다.
사실 바른말로 해서 켈베로스와 붙은 것도 나나 우리 팀이 아니었으면 이미 털린 게임이다.
“첫 길드를 이런 곳으로 골라서 죄송합니다. 제가 좀 알아보고 구하는 건데.”
방패전사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전 괜찮아요. 나중에 더 있다가 알게 돼서 불편하게 나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걸요? 이런 곳은 안 되겠구나 하는 교훈을 얻었으니 됐어요.”
“저도 괜찮아요. 그냥 맘에 안 들었어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둘 다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당분간 무소속이네요. 잊혀진 고성 레이드를 하려면 길드가 있긴 해야 할 텐데.”
방패전사가 레이드 이야기를 꺼낸다. 확실히 길드로 깨야 보상이 이벤트 보상이 들어오니까 이건 포기하지 않는다면 잊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지.
“아! 그건 따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마을 외곽의 큰 나무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입에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입에 물고서 내 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우편함에 엄청나게 많은 스카웃 제의가 있어요.”
“그럼?”
“그런데 또 다른 서버에서 받은 제의도 있어서요.”
어제 재중이 형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했던 말을 좀 우리 팀의 입장에 맞게 생각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흠, 정말 1서버. 필리언으로 넘어갈 겁니까?”
방패전사가 난데없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직 결정은 안 했습니다. 1서버에 아는 분에게 제의가 들어와서요.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저 혼자 가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챠밍이 살짝 손을 든다.
“전 가시면 따라갈게요.”
살짝 분홍빛 입가에 미소를 보이면서 고민거리도 안 된다는 듯 바로 결정해 버린다.
“그걸 그렇게 쉽게 결정하셔도 되는 건가요?”
“왜요? 안 되나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너무 쉽게 결정하시는 것이 아닌가 해서요.”
“레벨이야 하다 보면 오르잖아요. 아! 사냥 수입 때문에요? 전 그렇게 신경 안 쓰는걸요. 요즘 좀 많이 들어와서 좀 약간 놀라고 있긴 한데 전 상관없어요.”
“흠,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따라가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거든요. 이쁜이도 갈 거지?”
챠밍의 옆에 앉아서 귀를 기울이던 이쁜소녀도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갈 거예요. 저도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근데 저희 가서 떨어져서 해야 하나요? 그런 건 아니죠?”
“제가 그럴 것 같으면 같이 가자고 물어보지도 않겠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됐어요.”
이쁜소녀가 얼굴에 홍조를 띄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홍빛 헤어가 고개를 따라 살랑살랑 흔들린다. 앞으로도 저 스펙타클한 헤어도 계속 볼 수 있겠네.
딱히 챠밍이나 이쁜소녀는 여기 다른 인맥 같은 것은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 쉽게 결정했는지도 모르겠고.
하긴 내 설명을 들었으면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은 맞긴 하고 이건 충분히 설명도 했다. 다만 이건 오히려 돈 버는 쪽으로는 거의 신경을 안 쓰는 눈치다.
재미나 같이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건가? 뭐, 나 자신도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한데. 자꾸 게임에서 수익 쪽으로 신경 쓰는 걸 보니 방패전사에게 물들었나?
오히려 저쪽이 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쪽이네.
이제 큰 산은 방패전사인가.
방패전사는 고민이 좀 되는 모양이다. 나르샤도 있고 이쪽에도 인맥이 제법 있는 걸로 아니까 쉽게는 결정 못 할 테고.
방패전사와 나르샤는 둘이 이야기를 나눠보더니 방패전사가 나서서 말을 건다.
“저와 나르샤는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네요. 조금 생각해 보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저도 무리해서 넘어갈 생각은 없거든요. 편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다만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니까 오늘 안으로만 부탁드립니다.”
“정말, 전 새 길드를 찾거나 아예 길드를 만들거나 하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역시 제 예상을 매번 넘어가 주시네요.”
“저도 뭐, 어제 급하게 받은 이야기라서요. 거기다 신화 길드 일도 겹치니까 빠르게 이야기를 꺼낸 거죠.”
“신화 길드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렸듯이 전 제 돈 떼이고는 그냥 못 넘어갑니다. 거기다 우리 팀도 건드렸고. 뭐, 길드 사람이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천검이랑 그 여자가 웃고 지내는 것은 못 보겠네요.”
내 말에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 나르샤가 고개를 돌려 동시에 날 쳐다본다. 이건,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을 연상케 하는데? 눈이 반짝거리면서 집중을 한다.
대표로 방패전사가 질문을 던진다.
“그럼?”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묵직하게 한마디 말을 꺼내놓았다.
“해체 시킵시다. 신화 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