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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7화 (37/1,404)

# 37

#37화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11)

수는 8명.

큰 방패를 든 사람 한 명, 검방이 세 명, 양손검 한 명, 마법사가 한 명, 궁수가 두 명이다.

일단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가 우리 쪽에 가깝기는 한데 우기려고 들면 얼마든지 우길 수도 있는 애매한 위치라서 문제다.

방패전사에게 슬쩍 눈치를 주니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하긴, 사람 숫자가 얼마인데 다 알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하다.

그나마 2구역에서 사냥을 자주 한 나르샤 역시 마찬가지인지 별다른 귀띔이 없고. 챠밍과 이쁜소녀는 별로 그런 것에 관심 있어 보이지도 않고.

이미 서로 관심은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에서 멀어져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까지 가까이 다가섰다.

그중 검방을 든 덩치가 좀 큰 갈색 헤어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슬쩍 우리를 훑어본다. 우리는 일단 방패전사가 앞으로 나선다. 이런 쪽으로는 방패전사가 경험이 많으니까.

“신화 길드입니까. 지금 상황에 마냥 반갑다고 할 수만은 없겠네요.”

그러면서 눈길로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길드 마크와 멀리 떨어져 가는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를 바라본다. 지금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는 계속 우리들에게서 멀어지는 중이다. 이대로 놔두면 아마 잡기 힘들지도 모른다.

“저희도 마찬가지네요.”

상대방의 이름만 봐서는 당장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장비를 보이지 않게 살핀다고 눈알이 팽팽 돌아가는 중이고.

특히 저쪽 대장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우리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전부 네임드이거나 그에 준하는 무기들이니까. 시선이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니까 모른 척하기도 힘들 정도다.

방패전사도 느꼈는지 내 쪽을 살짝 보더니 검을 슬쩍슬쩍 흔들어 보인다. 이건 전에 미리 말해둔 수신호다. 여차하면 칠 테니까 준비하라는.

저쪽에서 먼저 쳐오든 우리가 먼저 치든 대화가 수틀리면 그때부터는 검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니까.

챠밍이 이쁜소녀와 슬쩍 붙고, 나르샤 살짝 뒤쪽으로 가서 섰다. 일단 마법사 보호가 우선이니까 이쁜소녀는 챠밍에게 거의 밀착 보호하듯이 나란히 섰다.

그리고 여차하면 나르샤는 단독 행동을 하면서 견제를 해야 하니 살짝 뒤로 빠진 상태고.

방패전사와 나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으니 일단 앞 열에서 대기.

내가 다시 신호를 주니 방패전사가 먼저 포문을 연다.

“저희가 확실히 가까웠고 먼저 발견하고 접근 중이었습니다.”

저쪽 대표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꾸한다.

“흐음…… 뭐, 저희도 딱히 이런 곳에서 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단 저희가 물러나도록 하죠. 괜히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방패전사가 단호하게 딱 선을 긋는다.

그리고 의왼데? 우리의 장비나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에 보인 관심에 비해서 너무 쉽게 물러선다.

역시 다른 길드와 부딪치는 건 다들 꺼리는 중인가? 지금은 속사정을 모르니 판단하기 힘들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싹 알 수 있는 스킬이 있음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다음에 볼 때는 웃으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 남자가 웃어 보인다.

저 웃음을 어디서 봤더라…… 계속 맘에 걸리네, 저 웃음. 표정은 웃고 있는데 입매가 굳어 있는 아주 묘한 웃음이다. 겉보기에는 전혀 이상할 것 없지만. 이상하게 맘에 걸린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가 물러서고 곧 자신들의 사람들을 이끌고 건물 너머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난 뒤 조금 지나니까 나르샤가 방패전사에게 걸어가더니 옆에서 뭐라고 살짝 이야기를 전한다.

뭐지?

아무 말 없이 뒤에서만 있던 나르샤가 나서서 뭔가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괜히 궁금해지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방패전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듯이 말한다.

“그럼 다시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를 잡으러 가죠!!”

외치고 난 뒤에 사람들 근처로 슬쩍 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한다.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 하고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십쇼. 진심으로 하지 말고. 적당히요.”

“네?”

이쁜소녀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반문한다. 챠밍은 바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르샤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눈치고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활을 꺼내 든다.

나르샤가 활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는 이쁜소녀도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글레이브를 손에 꽈악 쥔다.

역시 나도 소드들을 양손에 힘주어 쥐었다.

***

“주호 님, 따로 뭔가 맡기지 않겠습니다. 그냥 휘저으면서 원하는 대로 잡으세요.”

“네, 저만 프리인가요?”

“일단은요. 저쪽 건물 보이시죠?”

방패전사가 가리킨 곳에는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아직 그 형태를 거의 남기고 있는 2층 석조 건물이 있다.

“저기서 저와 이쁜소녀 님이 팀원들 보호 위주로 움직이고 나르샤, 챠밍 님이 점사 식으로 움직이실 겁니다. 아무래도 이쪽 수가 적으니까 1:1로 붙어버리면 곤란하죠. 저쪽이 근접 격수가 많으니까 벽을 껴가면서 싸우는 편이 좋을 겁니다. 통로가 좁으면 한 명씩 따로 싸울 수밖에 없거든요. 최악이 포위되는 거고요.”

“이해했네요. 전 따로 다니면서 하나씩 잡으면 된다는 거네요.”

“주호 님 민첩이 높아서 기동력이 제일 좋고, 저희 쪽의 최고의 패이니까요.”

솔직히 혼자 움직이는 편이 제일 좋긴 하다. 방패전사가 내 성향을 잘 이해한 모양이고. 오히려 주변에 누가 있으면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행동에 제약이 걸리니까. 방패전사가 저렇게 해주면 움직이기 편해진다.

방패전사가 모두에게 각자의 지침을 정해준 후 엘리트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주받은 워 울프 투사는 느릿느릿 걸어 다녀서 아직 멀리 가지 못했고 우리가 미리 지정한 건물 근처로 다가서자 방패전사가 먼저 나서서 엘리트에게 붙는다.

우리는 전력을 다하지 않고 그저 살살 피하기만 하면서 시간만 끌었다. 대미지를 주려고 노력하지 않고 단순히 피하기만 하는 것이라면 난이도가 대폭 줄어드니까.

한참을 그렇게 액션만 취하고 있었을까? 슬쩍 뒤로 빠져 있던 나의 시선에 한 놈이 접근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모른 척 일부러 뒤로 살짝 처져 있었더니 곧장 내게로 접근해서 칼질하는 것을 바로 검으로 빗겨내고 라이트 소드를 켜서 플레임 소드로 목을 그었다.

확실히 라이트 소드를 쓰면 딜이 확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하물며 급소인 목이면 더욱더.

화염 효과와 더불어 경직까지 한꺼번에 걸린다.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예측도 못 했나? 뻔히 들키게 들어와 놓고 저런 표정이라니.

“누굴 죽일 각오로 덤볐으면 그런 눈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냐?”

왠지 짜증이 나려고 하네.

그 탓인지 아이스 소드에 라이트 소드를 입히고 녀석의 눈들을 옆으로 그어버렸다. 사람의 얼굴을 검으로 긋는데 전혀 망설임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평온한 느낌.

그리고 현실에서 이러면 즉사겠지만 아직 살아 있기도 하고.

“눈이!”

보니까 남자의 눈 근처가 온통 얼음 조각들로 가득하다. 저러면 앞이 안 보이는 모양이네. 좋은 정보다.

거기에 플레임 소드와 아이스 소드로 연속으로 빠르게 목을 그어대니 죽음의 빛으로 변해서 사라져 버린다.

일단 하나.

딱히 몬스터와 사람의 차이를 모르겠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날 죽이려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서.

―습격. 작전 시작요.

내 말을 신호로 모두 미리 정해둔 행동에 들어갔다. 2층 건물 쪽으로 다들 달려서 자리를 피하고 저주받은 워 울프가 따라간다. 어차피 몬스터는 건물을 못 들어가니까…… 건물을 못 들어가? 흠, 이건 나름대로……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내가 알려주니 간만 보고 숨어 있던 놈들이 우르르 건물 사이사이로 빠져나온다.

“로킨이 당했어.”

“뭐?”

숨어 있다가 나와서인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놈이 있나 보네. 당황해서 정신을 놓고 있는 놈들도 보인다. 어이없어하는 놈들도 있네? 습격이 안 먹힐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나 보다.

일단은 7명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건물 쪽으로 재빠르게 빠졌다. 여기 있다가는 방패전사가 말한 최악의 조건인 포위당해서 싸워야 하니까.

내가 빠지니 줄줄이 사탕처럼 다 따라온다. 습격 이후로는 작전도 안 세워났나? 어떻게 저렇게 일관성 있게 행동할까.

―작전과 좀 다르지만 한 명 킬. 7명 몰고 가는 중.

<방패전사> 벌써 잡았습니까. 건물 안에서 창문으로 대기 중. 창문 쪽으로 유인 가능합니까?

―해보고 안 되면 후문 쪽으로 빠짐. 엄호 바람.

<챠밍> 네, 돌아서 오세요.

다들 건물로 들어가서 저주받은 워 울프를 공격하지 않자 다시 순찰 모드로 돌아갔는지 저 멀리 사라지는 중이다.

―3, 2, 1 지금!

내가 창문을 지나서 몸을 구를 때 창문에서 챠밍의 주문이 들려온다.

【 파이어 월! 】

시작부터 불 파티로 가는구나!

차징할 시간이 충분해서 풀 차징으로 날린 건지 그 범위와 위력이 상상 이상이다.

내 뒤에 떨어져서 따라오던 놈들 중 3명이 그대로 불 속에 갇혀서 허우적대다가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곧바로 건물 안에서 바인드가 날아와 한 명을 묶으면서 불 속에 완전히 묻어버렸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남은 두 명이 파이어 월의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서 달려서 빠져나가려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르샤의 풀 샷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대미지와 넉백 효과를 머리에 받고는 그대로 불 속으로 다시 엎어졌다.

딱히 뜨겁거나 한 것은 아닌데 HP가 줄줄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까?

남은 한 명이 도망치다가 다시 챠밍의 바인드에 발이 묶여서 그 자리에서 불타올랐다.

먼저 불 속에 있던 두 명은 물약이 따라가지도 못하는지 빛으로 화해서 죽어버리고 나중에 바인드가 걸린 한 명은 귀환을 써서 재빠르게 튀었다. 저놈이 그나마 낫네. 죽을 것 같으면 튀어야지.

파이어 월과 바인드 조합이라…… 좋은데?

아이스 볼은 중화가 되기 때문인지 딱히 안 쓴 모양이고.

화염 마법 한 방에 세 명이 쓸려나갔다. 파이어 월의 위력이 장난이 아니네. 엘리트는 불 속에서 한참 버티던데 사람의 HP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되다 보니까 아이스크림 녹듯이 샤르르 녹아버린다.

<방패전사> 이거 너무 잘 됐는데요? 저희가 숫자가 많으니 그냥 나가서 잡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잡으세요.

<이쁜소녀> 저희도 나가요!

건물 밖으로 우리 팀이 다 빠져나오는데 불의 기둥에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놈들이 상황 파악을 못 해서 허둥거리는 중이다.

―저도 하나 더 잡아야겠음.

<방패전사> 혼자 다 잡으시면 안 됩니다.

이제 여유가 남는지 농담까지 하네. 충분히 상황이 좋으니 나올 수 있는 여유다.

불기둥을 크게 돌아 녀석들의 뒤쪽으로 가서 제일 뒤에 있던 여자의 목을 그대로 베었다. 로브를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마법사인 모양. 아직도 도망 안 가고 뭐 했나.

“윽! 여기!.”

차마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 장검들에 난도질당해서 순식간에 빛으로 변해 사라진다.

―두 명째!

남은 수는 셋.

습격은 성공하면 타격이 크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알고 있으면 최악의 패가 된다. 지금처럼 아주 농락당할 정도로 최악의 패가.

그걸 한 번 해볼까?

뒤편에서 검방을 들고 있던 녀석이 나를 눈치채고 검을 내려치는데 전에 오크 족장에게 썼던 기술을 써본다.

이제까지 사람에게는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데 잘 될지 모르겠다.

녀석이 내려치는 검날이 쭉 뻗은 내 검날에 닿는 순간 내가 쭉 빨아들이듯이 방향만 슬쩍 틀어놓으니 검이 딸려가면서 완전히 자세가 무너져 가운데가 활짝 열렸다.

잘 되네. 너무 잘 돼서 안심될 정도다.

녀석이 깜짝 놀라서 외친다.

“뭐…… 뭐야?”

뭐긴. 지옥행 티켓이지.

그대로 플레임 소드로 목을 쳐버리니 역시나 굳은 돌이 되어버린다. 다시 양쪽 검을 교차해서 목을 날리니 바로 빛으로 변해서 사라져 버린다.

―세 명째.

하나같이 이럴 줄은 몰랐다는 눈빛이네. 남들을 헤칠 생각으로 덤볐으면 자기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가?

게임이라 즐기는 면이 있다지만.

잘 이해를 못 하겠다.

다시 찾아내서 죽여 버리고 싶은데…….

<나르샤> 나도 1킬!

<이쁜소녀> 저도 1킬요!

내가 하나를 더 잡는 사이 남은 두 명도 모조리 잡은 모양이다.

―끝이죠?

<방패전사> 네, 지금 아이템 회수 중입니다.

빠르네. 방패전사. 역시 아이템부터 챙긴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일단 이 게임에 대해서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우리가 조금만 약했으면 반대로 당하는 쪽이 우리 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밟지 않으면 밟힌다는 것을.

그렇다면…….

나는 밟는 쪽이 될 것이다.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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