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화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7)
“어……?”
본인이 해놓고도 얼떨떨한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이쁜소녀에게 뛰어가는 헬하운드를 나와 방패전사가 달려들어서 다시 막아 세웠다.
“어딜∼!”
방패전사가 방패를 들어서 몸 전체로 차징을 하니 헬하운드가 한번 휘청거렸고 그 사이로 뛰어들어서 아이스 소드와 플레임 소드를 연속해서 불꽃 머리 쪽의 목을 그어냈다.
불사르고 얼리기를 계속 반복하자 헬하운드의 시선이 내게 곧장 돌아선다.
이번엔 아예 내 쪽으로 얼음 브레스를 날리는데 공격할 것을 예측했던 터라 바로 움직여서 피해냈다. 미리 알면 빠른 마법이라도 머리가 나에게 향해지는 각도만 봐도 예측이 되니까 피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계속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아예 방패전사를 무시하고 내 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계속 피해 다니면서 끝없이 머리와 목을 베어냈다.
확실히 움직임이 빠르긴 한데…… 4족 동물이 공격할 방법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브레스만 조심하면 어지간한 공격을 전부 흘리거나 피해 버릴 수가 있었다.
내가 안 맞고 계속 피해 가면서 딜을 하니까 챠밍도 안심하고 마법을 쏟아붓고 이어 나르샤의 화살도 어김없이 날아와서 여기저기 박혀 들어간다.
정신을 차린 이쁜소녀와 방패전사까지 가담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겨우 헬하운드가 바닥에 쓰러졌다.
RTP가 높아서 그런지 반응에는 문제가 없긴 한데 민첩이 조금만 더 높았으면 좋겠다. 그럼 훨씬 여유가 있게 더 치고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감이 있다.
그리고 체력이 조금 낮다 보니 관리를 하면서 움직이려고 하면 제약받는 것도 좀 있기도 하고.
아마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10중 10은 다 중간에 죽었을지도 모르겠네.
“하…… 힘드네요. 챠밍 님 땡큐!”
확실히 외부에서 힐이 들어오니까 여유가 생겨 평소보다 조금 더 바싹 붙어서 싸울 수 있었다. 체력이 낮아서 실수로 한 대씩 맞으면 체력이 출렁출렁했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
“뭘요. 고생하셨어요.”
“그걸 그렇게 다 피하나요. 진짜 누가 탱인지 모르겠네요.”
방패전사가 옆에서 투덜거리는 모습에 그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한 번뿐이에요. 힘들어서 자주 못 해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의 상식선에서 충분히 납득할만한 대답이니까.
진짜 내 민첩에서 나올 수 있는 움직임을 한계까지 끌어내서 간만에 최대한 바쁘게 움직였다. 방패전사가 브레스를 방패로 막으면 HP가 너무 깎이니까 이번은 어쩔 수 없이 나섰고.
뭐, 마음만 먹으면 몇 번이든 할 수야 있겠지만 사냥 시간은 기니까. 이건 꽤 집중을 요하는 일이라 얼른 방패 전사가 익숙해져야 할 텐데.
전방에서 버티는 것은 웬만하면 방패전사에게 맡기고 싶은 마음이다.
전방에서 피해 가면서 딜하는 것과 누가 앞에서 버티고 있는데 측, 후방에서 약점만 파고드는 것과는 딜량에 큰 차이가 크기도 하고.
“말로만 들었었는데…….”
나르샤가 눈빛에서 관심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가 곧 사라진다. 확실히 그간은 내가 이 정도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 그거보다 이쁜소녀 님 어떻게 한 건가요?”
“네?”
“아까 브레스 쳐 낸 거요.”
내가 물어보니까 이쁜소녀가 상당히 당황한다. 아무리 봐도 저건 정작 본인이 어떻게 한지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그냥…… 피하기 너무 늦어서 그냥 내려쳤어요.”
역시 피하기 힘들어서 그런 것이 맞네. 첨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봐도 노리고 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는데.
“챠밍 님, 전에 제가 마법 쳐낸다고 연습한 것 기억나시죠?”
“네, 그때 그냥 막 얻어 맞으셨잖아요.”
바로 팩트 폭력을…… 아픈데.
“음, 그래서 제가 마법은 못 막는다고 했었는데 이제 보니 제가 틀렸네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쁜소녀를 향한다.
“네?”
갑자기 또 시선이 집중되자 당황하는 모습인데?
“라이트 소드가 있으면 마법을 쳐낼 수 있는 모양이네요.”
물론, 빠른 속도의 마법을 보고 반응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있어야겠지만.
왠지 라이트 소드의 가격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지금도 무시무시하게 비쌀 텐데. 소문이 나면 절대 못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흐음…….”
이쁜소녀의 글레이브에서 라이트 소드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문득 내 검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되려나.
“저기 챠밍 님. 죄송한데 저한테 마법 한 방만 날려주실래요?”
챠밍은 전에도 그랬던 일이 있어서인지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신호를 하고 곧바로 매직 애로우를 내게 날렸다.
빠르게 날아오는 매직 애로우의 궤적에 맞춰서 플레임 소드로 빗겨 쳐올리니 매직 애로우가 그대로 꺾여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어?”
“으음.”
“저게…… 되네요.”
이쁜소녀, 나르샤, 방패전사가 모두 얼빠진 소리를 낸다. 챠밍은 왠지 그럴 거라고 예상했는지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확실히 되네요.”
플레임 소드와 아이스 소드가 마법 효과가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된다.
“저 사람 뭐 하던 사람이야?”
금세 원래의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온 나르샤가 슬쩍 가서 물어보는데 방패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그 모습에 나르샤가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부담스럽네. 덤덤하던 표정에서 흥미라는 표정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니까.
“여기가 확실히 빡빡하긴 하네요.”
방패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곤란한 것이 방패전사 스타일이 방패로 막아가면서 싸우는 건데 애초에 마법 대미지가 워낙 크게 들어오다 보니까 막는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다.
오히려 회피하거나 원거리에서 잡는 쪽이 더 나아 보일 정도다.
“방패에 강화를 더해야 하나…… 이러다 날리면 진짜 울지도 모르겠는데.”
방패전사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들린다. 강화석이야 날리면 그만이라지만 확실히 네임드에 안전 강화 이상을 시도하는 것은 꽤나 고심할 만한 일이다.
“뭐, 여기서 워 울프 세트 완제가 다 나온다니까 사냥만 가능하면 여기만 한 곳이 없겠죠.”
워 울프 세트는 개당 최소 늑대의 혼이 100개 이상 들어간다. 지금 현금으로 늑대의 혼이 개당 5천 원인데 완제가 드랍된 것 하나 먹기만 해도 50만 원을 버는 셈이다.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무기나 방어구 종류에 따라 50∼100만 원 사이를 오간다.
악세라도 떨어지면 거의 100∼150만 원이고.
사냥만 보장되면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나은 곳은 없다.
일단…… 네임드 소드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한 자리에서 조금 기다리니 확실히 순찰형 몹인지 또 다른 헬하운드가 주변에 나타나서 어슬렁거린다.
“이번엔 제가 먼저.”
안 그래도 실험해 본 것들이 제대로 통하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으니까.
내가 다가서자마자 곧장 화염 브레스부터 뿜어낸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입에서 모이더니 곧장 내게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이건 아이스 소드로. 화염구가 이글거리는 경계의 한 지점을 순간적으로 소드를 기울여 빗겨내니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반동만을 주면서 화염구가 밀려나듯 검면을 타고 꺾여 멀리 튕겨 나갔다.
되네.
HP 잔량을 확인하니까 아예 안 깎이는 것은 아닌데 확실히 버틸 만할 정도로 대미지가 줄어들었다. 방패전사의 저 무식한 체력을 반이나 깎아 먹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거의 기적 수준이나 마찬가지다.
“진짜 인간이 아니네요. 저걸…….”
빠르게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아이스 소드 하나만으로 빗겨내서 멀리 날려버리는 것을 보자마자 방패전사가 감탄을 한다.
“예상은 했는데 정말 하시네요.”
챠밍도 자신이 도와주긴 했지만, 실전에서 저렇게 하는 모습을 보니 놀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쁜소녀, 나르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고.
“그럼 다들 사냥하셔야죠?”
다시 날아오는 얼음 덩어리는 플레임 소드로 각도를 바꿔 다시 한 번 쳐내면서 확인해 보니 이번엔 HP 감소량이 더 줄어들었다.
이것도 컨에 따라서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모양이다. 소소하게 컨 하는 재미가 있을 거라는 디렉터의 말이 떠오르네. 그냥 빈말로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마법 브레스만 처리되면 저건 그냥 머리 두 개 달린 이빨 좀 날카로운 늑대나 마찬가지다.
브레스만 빼버리면 이런 근접 박투는 방패전사의 몫.
“브레스 걱정하지 말고 붙으시죠.”
내가 좀 더 브레스를 신경 써야 하긴 하겠지만 아까 전과 비교하면 난이도 면에서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니까.
“그럼, 부탁드립니다.”
방패전사가 앞으로 나서고 이어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가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신경 쓴다고 내가 딜을 좀 소홀히 하는 면이 있어 전체적으로 딜이 줄어들긴 했는데 사냥 자체로만 보면 확실히 안정감을 찾았다.
“주호 님, 브레스 쿨 타임 돌아옵니다.”
난 그냥 감으로 모션을 보고 확인하고 움직이는 데 반해, 방패전사는 브레스가 나오기도 전에 바로 알려준다.
아니나 다를까.
트윈 헤드의 주둥이에서 일제히 화염과 얼음의 브레스가 뭉치더니 바로 뿜어져 나오는 것을 플레임 소드와 아이스 소드로 각각 미끄러지듯이 빗겨내 날려버렸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미리 브레스를 쓰는 징조라도 있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건 모르겠는데…….
그 말에 방패전사가 왼쪽 상단의 시계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시간요. 큰 스킬은 쿨타임을 재서 확인해야 하거든요.”
“그걸 일일이 다 재보시는 겁니까?”
“네, 큰 스킬들은 시간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미리 막으니까요. 탱 많이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편이죠. 여기도 스턴 같은 기술이 있으면 미리 막기라도 할 텐데. 아쉽네요.”
난 귀찮아서 저런 건 못할 것 같은데…… 탱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방패전사가 혼자 막을 때는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어서 몰랐는데 미리 알려주니까 훨씬 수월하게 브레스를 막아냈다.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더 쉬워지니까.
그렇게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대로 부분만 돌면서 헬하운드가 혼자 다니는 것을 찾아 한 번씩 위기 상황이 오면 챠밍의 힐에 도움을 받아가면서 큰 위기 없이 남은 시각 동안 사냥을 계속했다.
다만 두 마리가 보이면 일단 튀고 다시 돌아가서 한 마리를 찾는 식으로. 괜히 두 마리를 상대해서 물약 소비를 급격하게 늘릴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한 마리를 붙들고 있을 수도 있긴 한데…… 무리수는 두지 않기로 했다. 꾸준히 사냥해야 하는 곳에서 매번 무리수를 두면서 하다가는 파투나기 십상이기도 하고.
확실히 완제 워 울프 세트가 잘 나오긴 했다. 여기서 사냥만 꾸준히 하면 전부 완제를 구할 뿐만 아니라 꽤나 크게 벌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시간당 2구역에서 벌던 것의 거의 두 세배는 넘게 벌고 나니 조금 위험하지만 이젠 1구역에서 나갈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사냥터가 빡세서 그런지 드랍되는 빈도도 확실히 차이가 났다. 다들 인벤을 두둑하게 채우고는 웃으면서 마을로 귀환했다.
***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몸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어떻게 VRS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PC방에 안 나간다고 생각하고 접속 시간을 좀 더 늘리고 사냥에 임했더니 평소보다 많은 노동에 머리가 피곤한 느낌이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아까 사냥을 했던 일들이 절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라이트 소드라…….”
어지간하면 이런 소리는 잘 안 하는 편인데 정말 가지고 싶은데?
그냥 이쁜소녀가 검에서 빛이 난다면서 좋아할 때는 그러려니 했다. 확실히 반짝반짝거리는 것이 예쁘고 황홀해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트윈 헤드 헬하운드의 불꽃 마법을 글레이브로 쳐내버릴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화살을 쳐내는 식으로 마법을 쳐내는 것은 솔직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엉뚱한 곳에서 힌트를 얻어 플레임, 아이스 소드로 마법이 쳐내지는 것을 알았으니까.
뻔히 눈에 보이는 마법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네임드 소드 덕분에 이제 좀 머릿속에서 원하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좀 아쉬운 점은 지금 가진 네임드 무기들로도 충분히 마법을 쳐낼 수도 있겠지만 소드 컨 만으로 줄일 수 있는 HP 소모량은 한계가 있다. 최대한 줄여봤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
만약 여기에 라이트 소드까지 겹쳐진다면…….
머릿속에서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