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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1화 (31/1,404)

# 31

#31화 밟지 않으면 밟히는 곳 (5)

“저쪽 팀에 반지를 구하는 분이 계셔서 의견을 한 번 물어봐 달라고 해서요. 혹시 생각 있으신가요?”

천검이 찾아오더니 반지를 팔아달라고 하면서 가볍게 웃음을 짓고 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웃음은 아닌데 조금 틀에 박힌 웃음이라고 해야 하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그런 웃음.

“궁수분이 민첩 반지를 찾고 계셔서요. 다른 반지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파신다면 가격은 섭섭지 않게 쳐 드린답니다.”

거의 150만 원의 가격인데 한 자리에서 바로 산다고 드는 걸 보면 저쪽의 궁수라는 사람도 게임에 돈을 많이 쓰는 부류인 모양이다.

하긴, 이 자리 있는 사람 중에 우리처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보스를 잡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 현금을 꽤나 쏟아부은 사람들밖에는 없겠지. 취미 생활에 몇백만 원은 흔쾌히 투척할 수 있는 사람들. 게임도 빈부격차구나. 아니면 앞서 나간다고 돈 투자한다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일단은 방패전사가 나를 쳐다본다. 결정을 해달라는 건가?

“잠시만.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천검을 놔두고 조금 떨어진 자리로 이동하니 어느새 자리에 블러디 워 울프 두 마리가 다 나타나서 어슬렁거린다.

챠밍과 이쁜소녀도 옆으로 왔다.

“어떻게 할까요?”

방패전사가 의사를 물어왔다. 아직은 팔면 네 명에게 각자 돈이 돌아가게 되니까 방패전사가 미리 물어본 것이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어본다.

“혹시 파실 생각 있으세요?”

“민첩이라서 전 잘 모르겠네요.”

챠밍은 자기 주 스탯이 아니다 보니까 그렇게까지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이쁜소녀는 딱히 관심이 없어 보이고.

다들 확실한 답을 내지 않자 내가 그냥 의견을 내 버렸다. 이럴 땐 확실하게 끊는 편이 낫다.

“그럼, 그냥 쓰시죠. 나중에 다른 스탯 악세가 구해지면 팔던가 하고요.”

굳이 빈 슬롯이 있는데 팔 이유는 없다. 재중이 형 말에 따르면 민첩 역시 필요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된다.

내 말에 방패전사가 천검에게 가서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아왔다.

“안 팔기로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딱히 급해 보이지도 않네요.”

방패전사의 말을 들은 천검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애초에 자기가 원해서 사러 온 것도 아니다 보니 사려고 굳이 여러 번 물어볼 필요도 없어 보이고. 팔면 그만. 안 팔면 또 그만이라는 자세다.

“정말 돈을 막 쏟아붓네요. 저희야 쉽게 구했다지만.”

방패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하는 것을 보면 방패전사도 딱히 저 천검이라는 사람과 친해 보이진 않는다.

“신경 쓰지 말고 사냥 계속하죠. 자리가 괜찮네요. 처음부터 이런 득템이라니.”

다시 신호를 주고 방패전사가 선두로 블러디 워 울프에게 달려들었다. 오면서 몇 번씩 잡아보고 여기서도 잡아봤더니 이젠 꺼림이 없다.

두 마리 중 하나를 방패전사가 딱 잡고 버텨주는 동안 다른 한 마리에게 접근해서 또 크고 빠르게 내려치는 대형 양날 도끼의 끝을 플레임 소드의 날로 진행 방향만 살짝 틀어놓으니 땅으로 가서 처박혔다.

이어서 바로 아이스 소드로 도끼를 잡고 있는 팔의 어깻죽지를 그어 올리니 얼음꽃이 피어난다. 이러면 한동안 도끼를 제대로 휘두를 수가 없어진다.

대부분의 공격을 양날 대형 도끼로 하는 몹에게 있어서 이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이쁜소녀가 라이트 소드로, 챠밍이 아이스 볼과 파이어 애로우로 계속 공격하고 빙결 디버프가 풀린다 싶을 때 다시 걸어버리니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바로 방패전사 님.”

곧장 다시 셋이 붙어서 방패전사가 잡고 있던 블러디 워 울프를 녹여 버렸다.

“이거 참, 주호 님이 붙으시니까 제가 딱히 막을 것도 없네요.”

방패전사가 기분 좋은 푸념을 하는데 그저 어깨를 으쓱해 줄 뿐이다. 확실히 아이스 소드…… 이건 대박이거든.

같은 종류로 하나만 더 구할 수 있으면 천만 원이든 이천 만 원이든 바로 결제할 수 있을 것 같다.

순식간에 두 마리를 녹여 버리고 나니 주변의 따끔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안 보는 척 은근히 다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모른 척하고 계속 사냥을 했다.

딱히 그 이후로 한참 사냥을 했지만 득템이라고 할 만한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지만 떨어지는 아르의 양과 강화석, 늑대의 혼들의 양이 다르다.

기본 무기와 방어구도 제법 떨어져서 가져다 팔면 큰돈이 될 것 같고.

아직 오래는 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사냥하면 엄청나게 수입이 올라갈 것처럼 보인다.

던전과는 또 다른 고소득 사냥터다.

가끔 양손 도끼와 대형 검을 든 순찰병들이 돌아다니면 두세 개 팀이 합쳐서 같이 쓰러뜨리면서 안면도 텄다.

거의 3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라서 바로 다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같이 몹을 잡다가 보니 움직임이 괜찮은 사람도 몇몇 보였다.

거의 몇 시간을 더 한 자리서 사냥을 했는데 처음 운이 너무 좋았던지 그 이후로 악세를 구경조차 못 해봤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네, 이만 들어가 볼게요.”

“고생했어요. 내일 봬요.”

“푹 주무세요.”

방패전사에 이어 챠밍과 이쁜소녀의 인사를 받고 접속을 껐다.

***

* * *

[ 공지사항 ]

* 길드 시스템을 업데이트합니다.

* 피난민 마을에 길드 조합 NPC가 새로 마을로 찾아옵니다.

* 길드 조합 NPC에게서 길드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 길드 조합 NPC에게서 다양한 퀘스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 EVENT ‘최고의 길드를 찾아라’ 가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EVENT 란을 확인해 주세요.

* *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길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하루도 안 돼서 업데이트가 되었다.

그리고 EVENT 란을 확인하니 서버마다 잊혀진 고성을 돌파하는 길드에게 상당한 보상이 걸려 있다.

다음 지역을 먼저 넘어갈 수 있는 선점권과 잊혀진 고성의 숨겨진 보물들이라고 한다.

적어도 저번 오크 족장을 잡아서 얻은 보상보다는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기대해볼 만 하지 않을까?

재중이 형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 전화를 걸어봤다.

다행히 아직 VRS에 들어가 있지는 않네.

―드디어 길드가 나오네. 왜 안 나오나 했다.

―길드 만드실 거죠?

―어, 들어가면 바로 해야지. 지금 대기하는 애들도 많아서 빨리 정리해 줘야 해.

―형이 길드 마스터에요?

―설마. 난 그런 귀찮은 짓 안 하지.

―그럼 누가 해요?

―누가 할 것 같냐?

―뭐, 괜히 물어봤네요.

사장님이네. 안 봐도 뻔하지. 진심 이제 통제하러 가시는 건가? 장난으로 한 것이길. 진짜 해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통제 같은 건 아직 꿈도 못 꾼다. 수많은 사람에게 밟혀 죽을지도 모르겠다.

―귀찮은 건 싹 넘겨 버리시네요.

―응, 적성에 안 맞기도 하고. 사장님 그런 거 엄청 좋아하시거든.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지 잘하지. 오늘 오시면 헤실헤실 웃음이 폭발하시겠네. 요 며칠간 길드, 길드 노래를 부르시던데.

―사장님도 참 별나시긴 해요.

―그냥 게임을 너무 좋아하시는 거지. 나랑은 좋아하는 기준이 좀 다르긴 하지만.

―어떻게요?

―흐음. 이게 설명이 되려나? 난 그냥 강한 몹이나 사람들 공략하는 재미로 하는 거고, 사장님은 게임 그 자체를 재미로 하시는 거고. 비슷하긴 한데 방향이 좀 다르지.

―뭐, 대충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네요.

같은 것을 해도 프로게이머와 일반인의 관점이 저렇게 다르네. 나는 무슨 재미로 하는 걸까? 지금까진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처음엔 내 마음대로 몸이 움직여져서 그 재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들어가면 반겨주는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냥 하는 것들이 만족스럽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요즘 열심히 하긴 하나 보네. 적당히 해라. 병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한테 들을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나야 워낙 단련되어 있으니까.

―길드 이름은 정했어요?

―모르겠다. 쪽팔리는 이름만 아니면 좋겠는데…… 사장님이 몇 개 생각하고 계시던데 맘에 안 들면 다른 길드로 튀어야지.

―사장님 센스가…… 모르겠네요.

어쩌면 로스트 스카이의 최고의 길드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 이름이 허접하다면 그것만 한 이미지 추락도 없겠구나.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6.

> 로딩 중…….

* * *

이름 : 주호

레벨 : 16

【근력 3+1】 【민첩 5+4 ▲1】 【체력 3+1】

【지력 0】 【마력 1】

* * *

어제의 사냥으로 레벨 16을 찍었고 스탯은 민첩에 하나를 더 넣었다. 누가 보면 궁수 쪽의 스탯이라 오해할 정도로 민첩에 몰아져 있는 스탯이다.

높은 민첩으로 움직임이 빠르고 제대로 몸을 제어하니 맞을 일이 거의 없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무기를 맞댈 경우에 줄어드는 HP를 제외하고는 거의 줄어들 일이 없으니까 저런 기형적인 스탯으로 되어버렸다.

근력이 너무 낮긴 하네.

대부분 목과 관절만 노리다 보니까 근력이 낮음에도 원하는 대미지가 깔끔하게 들어가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아직 크게 불편함을 못 느끼는 중이다.

대형 무기나 방패류를 드는 것도 아니고.

급하면 사서 바꿔도 되니까 일단은 이 스타일을 유지하는 편이 일단은 나아 보인다.

<챠밍> 어서 오세요.

<이쁜소녀> 안녕하세요.

<방패전사> 오셨네요. 공지 보셨나요?

―네, 길드 시스템 업데이트.

<방패전사> 천검이 저희가 길드 가입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그래서 일단 주호 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던 중입니다.

―방패전사 님이 괜찮다고 하니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하죠.

딱히 천검에 대해선 별생각은 없는 데 방패전사가 들어가자고 하니 방패전사를 따라 들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챠밍과 이쁜소녀는 또 그런 나를 따라 들어가는 셈이고.

<방패전사> 아마 곧 가입신청 메시지가 날아갈 겁니다.

―네, 길드 같은 것은 처음이라 그러는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챠밍> 저도 처음이에요.

<이쁜소녀> 저도요…….

이건 뭐, 방패전사 빼고는 다 게임 초보들이다. 첫 길드인데 좀 여유 있게 보고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그랬나 싶기도 하다. 방패전사가 추천했으니 괜찮은 곳이길.

<방패전사> 흠. 주의사항이 그냥 챗창에서 욕 안 하고, 상대방한테 무례한 행동만 안 하면 딱히 주의하실 것은 없어 보이는데요? 아마 길드 내에선 다들 말을 조심스럽게 할 겁니다. 다 여기저기서 데려온 사람들이라서 서로 서먹하기도 할 거고.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가요?

<방패전사> 네, 아마 대부분 그럴 겁니다. 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거든요. 길마 포함 몇 명 정도 더 알고 나머지는 다 모르는 사람이죠. 그냥 길마가 아는 사람들 인맥으로 데려온 거라 저도 잘은 모르죠.

확실히 초반엔 좀 서먹하긴 하겠네. 어차피 다른 길드도 다 모르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길드를 만드니까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사냥을 가기 위해서 좀 마을서 기다리다 보니 모두 모였다.

챠밍은 내가 없는 사이 부족한 목걸이를 하나 만들었다. 운이 좋은지 바로 지능 1짜리를 만들어서 이제 지능이 8. 총 마법 개수가 5개로 늘었다.

“힐 하나 더 넣으면 될 것 같아요.”

힐과 파이어 애로우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공격 마법이 두 개나 있어서 일단 힐로 결정한 모양이다.

그사이 또 팔아서 2000만 원 정도를 통장에 넣었다.

전에 넣은 5000만 원과 이번에 넣은 2000만 원까지 해서 거의 7000만 원을 삼 주 만에 통장에 꽂아 넣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거의 1500만 원에 해당하는 아르를 들고 있다.

쓸데가 있으면 바로바로 써야지. 늑대의 혼을 조금 더 주고 사더라도 아껴봐야 그냥 돈을 들고 다니는 것밖엔 안 되니까.

어차피 고성 내부에서 하는 사냥 자체가 수익이 엄청나니까 더 써도 될 것 같다. 이젠 자리가 없다고 해도 비집고 들어가서 사냥해야 할 판이다. 매일 쏟아지는 돈의 단위가 다르다.

왜 그렇게 돈질을 해서 강화를 하고 억지로 고성 내부에서 사냥하는지 체감될 정도니까.

시장에서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보충하고 있을 때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른다.

띠링!

《 신화 길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

아니나 다를까 길드 가입 신청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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