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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5화 (25/1,404)
  • # 25

    #25화 나눠 먹는 독약이 제일 맛있다 (7)

    완전히 변태 같은 시선을 잔뜩 받고 겨우 변명 아닌 변명으로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쁜소녀는 아직도 눈빛에 그런 기색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 억울하다니까.

    “옷이 아니고, 그러니까 입고 있던 방어구 장비 아무거나 하나 건네줘 보실래요?”

    “으음?”

    챠밍이 의뭉스러운 소리를 내더니 일단 팔 보호대를 벗어서 건네준다.

    “이거면 되나요?”

    아무렴요. 다른 것을 더 달라고 했다가는 두 분이 절 잡아드실 것 같네요. 눈빛만으로.

    챠밍과 이쁜소녀가 팔 보호대와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음…… 역시라고 해야 하나.”

    내 목소리에 방패전사를 포함한 모두가 나를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고는 내 팔 보호대를 벗고 챠밍의 팔 보호대를 착용해본다.

    “역시.”

    착용했다 벗었다 해도 여전히 +1의 버프를 유지하고 있다. 이건 사용자가 아니라 방어구에 걸리는 버프다.

    “보시다시피 제가 입었다가 벗어도 여전히 +1 버프는 유지되네요.”

    “아! 그러면?”

    챠밍이 문제를 이해했는지 제일 먼저 반응한다. 아무래도 자기 마법이니까 이용방법을 순식간에 떠올렸을 테다.

    “제가 입고 버프를 걸어서 다른 사람을 주면 되겠네요?”

    “정답.”

    로스트 스카이는 직업이 없다. 그러다 보니 모든 방어구가 공용이다. 근력이 약해 무거운 옷을 입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다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 무거운 옷도 입으려면 입을 순 있을 테지만 제대로 걷질 못하겠지.

    반대로 말하면 가만히 서서 입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방패전사도 약간 놀란 모습이다.

    “제가 한 가상현실 게임은 대부분 직업과 입을 수 있는 장비가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 때문인지 생각지도 못했네요.”

    확실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근데 단순히 +1만 된다면 그냥 장비가 조금 더 좋은 상태일 뿐이다. 비슷한 수준끼리 싸운다면 분명히 큰 차이가 날 테지만.

    여기서 하나 더 해볼 시도가 있다.

    만약 이 시도가 안 되면 이건 그냥 묵혀둬야 하려나? 나중을 위해서? 그런데 내가 알아낸 것을 다른 사람이 못 알아낸다? 사람이 몇 명인데 이건 너무 낙관적이다. 지금 못 써먹으면 그냥 그저 그런 꼼수가 되다가 알려져서 패치될 뿐이겠지.

    “챠밍 님. 이거 다시 차 보세요.”

    아까 받은 팔 보호대를 다시 돌려준다. 챠밍이 받아서 착용하니 다시 챠밍의 몸 크기에 맞게 변형된다.

    “이건 정말 만약이거든요?”

    “네?”

    “프로텍트 쉴드 한 번 더 써보실래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챠밍이 다시 한 번 몸에 프로텍트 쉴드를 건다. 하얀빛이 바닥에서 올라와 챠밍 주변을 맴돌다 사라진다. 마법이 끝난 뒤 챠밍이 팔 보호대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다. 정말 깜짝 놀라서 어깨가 흔들리는 것이 보일 정도다.

    “저기…… 이건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챠밍이 나와 방패전사, 이쁜소녀를 차례대로 쳐다보더니 조심스레 팔 보호대를 벗어서 넘겨준다.

    방패전사가 먼저 받아서 확인하고 잠시 인상을 굳히더니 아무 말 없이 바로 이쁜소녀에게 넘겨준다. 이쁜소녀가 팔 보호대를 받자 역시 살짝 놀라더니 바로 물어본다.

    “……이거 써도 되는 건가요?”

    이쁜소녀도 심각함을 알았는지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어느 정도여야지 웃으면서 좋아할 텐데 이건 그 정도를 아득히 넘어간 셈이라. 마치 감당 못 할 물건을 손에 쥔 것처럼 두 손으로 조심히 팔 보호대를 잡고 있다.

    챠밍이 다시 팔 보호대를 받아 다시 입고 프로텍트 쉴드를 건다. 어디까지 되나 확인해 보기 위해 모두 몹이 안 덤비는 구석에서 자리 잡고 챠밍과 이쁜소녀가 팔 보호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력이 차는 대로 계속 시도해 본다.

    “계속 올라가네요…….”

    대충 20회 정도를 해도 계속 올라가는 중이다. 더 이상은 의미도 없다. 저 정도 수준의 방어구를 입고 근처를 다니면 HP가 전혀 안 내려갈 거다.

    “그만할게요.”

    챠밍이 이쁜소녀와 주고받던 걸 멈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방패전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다.

    “매번 왜 이래요. 진짜. 사람 부담 되게.”

    방패전사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한다. 그러면서도 마냥 싫다는 소리는 없는 것을 보니 이미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머릿속을 팽팽 돌리고 있는 중일 테다.

    “확실히 이건 좀 그렇죠?”

    내가 쓰게 웃으면서 답해준다. 이미 발견해 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없었거든. 물론 이제는 쓰느냐 마느냐의 결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방패전사의 투정 부리는 말에 챠밍과 이쁜소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달콤한 과실이 눈에 보이기는 하는데 먹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걸 쓰기만 하면 네임드고 뭐고 그냥 프리 패스다. 애초에 어떻게 맞아도 HP가 안 깎일 정도다. 딜만 나오면 못 잡는 몹이 없다.

    “지금 3층하고 필드에서 잡히는 마법사 수를 생각해 보면 이미 엄청나게 프로텍트 쉴드가 퍼졌을 겁니다. 그럼 분명히 누가 알아내도 알아내겠죠. 유통기한이 있는 셈이에요. 그것도 아주 짧은.”

    “먼저 써도 문제고 가만히 두고 봐도 조만간 누군가 쓸 거라는 말이네요.”

    “네, 정말 많이 하니까요. 이 게임. 거의 1000만 넘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데 분명히 알아낼 거예요.”

    “유통기한이 있는 물건인데 쓸 곳은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쓰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거네요.”

    내 머리 안에서는 이걸 안전하고 확실하게 쓸 방법이 생각이 안 난다. 방패전사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줬으면 싶은데 지금 하는 소리를 들어봐서는 딱히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저도 고민은 좀 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사이에 금방 누가 찾아내고 그러지는 않겠죠. 이거 숙제가 너무 어려운데요.”

    방패전사가 그냥 고개만 저어댄다. 숙제만 해결하면 상장이 나오는데 그 숙제가 너무 어렵다.

    “저기…….”

    그때 우리 이야기를 쭉 듣고 있던 챠밍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그러니까…… 전에 방패전사 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서요.”

    그러면서 조그마한 앵두 빛 입술을 열어 조곤조곤 의견을 말한다. 나를 포함 다들 챠밍이 하는 이야기를 다들 숨도 안 쉬고 듣는다. 몇 마디의 이야기가 끝난 뒤.

    “……이러면 어때요?”

    “확실히…….”

    “가능성이 있네요.”

    나와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쁜소녀도 마찬가지고.

    “잘 될까요?”

    챠밍이 물어온다. 의견을 내긴 했지만 누구도 확답을 주지 못하는 일이니까.

    “아마도요? 이건 될 것 같네요. 안 돼도 되게 만들 정도라서.”

    방패전사가 이제야 좀 편해졌는지 긴장을 풀면서 웃는다.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챠밍과 이쁜소녀를 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네.

    다들 한 번 오크 족장을 털어보더니 겁이 없어졌어…… 이건 내 잘못이려나.

    “그럼, 이렇게 하기로하고. 준비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면에서는 제가 발이 좀 넓거든요. 하루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틀 뒤 접속하시면 바로 착수하죠. 준비 끝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확실히 이런 역할은 방패전사가 제일 잘 할 것 같다.

    “그 날이 기대 되네요.”

    “잘돼야 할 텐데요.”

    “언니, 잘 될 거야.”

    이쁜소녀가 챠밍을 보며 웃어주니 챠밍도 마주 미소 짓는다. 스크린샷으로 남기고 싶은 광경이네.

    남은 시각 동안 3층에서 사냥을 쭉 하다가 서로 인사를 하고 접속을 끝냈다. D―2인가. 일명 독약 작전. 방패전사가 이름을 지었다가 유치하다는 이쁜소녀의 말에 고개를 숙인 것은 그냥 넘어가자.

    ***

    하루가 더 지나고 특별한 일 없이 PC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VRS에 누웠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4.

    > 로딩 중…….

    접속하니 늑대 굴 입구다. 어제 물건을 정리하고 바로 나갔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전사에게 파티 신청과 귓말이 날아온다.

    <방패전사> 오셨네요. 시간이 촉박하네요. 지금 바로 가시죠.

    ―지금 어디신가요?

    <방패전사> 지금 입구 앞입니다.

    파티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가니 정리가 끝나고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럼 가시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저희가 굉장히 피곤해질 겁니다.”

    방패전사의 말에 따라 모두 늑대 굴 3층까지 바로 갔다. 어제와 다르게 다시 사냥터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3층을 넘어가서 적당히 사람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어제 했던 프로텍트 쉴드를 막 쌓는다. 챠밍 혼자서 해야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대로 4층을 뚫고 5층까지 가죠.”

    실상 4층은 일반 워 울프부터 창, 활, 전사, 마법사까지 골고루 있어서 그냥 달려서 돌파하는 건 미친 짓이다.

    물론 평소라면.

    방패전사를 필두로 쭉 지나가면서 달리는데도 전혀 HP가 내려가질 않는다. 따라오는 워 울프 중에 사거리가 있는 궁수, 마법사가 계속 두드리는데도 깎일 생각도 안 한다.

    첨엔 급한 마음에 빠르게 달리다가 맞아도 안 깎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냥 적절하게 뛰기 시작했다. 챠밍의 달리는 속도도 감안해야 해서.

    “조금 천천히 가죠.”

    내 말에 다들 속도를 늦춘다. 조금 더 달리니 5층 입구가 보인다.

    “진짜 사기네요.”

    챠밍이 결국 한마디 내뱉는다. 달려오면서 쭉 참아왔던 한마디.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다른 말도 생각나지 않고. 한참 신나야 하는 부분이지만 마냥 신나기엔 걸린 것이 크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5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트윈 헤드 워 울프가 있다고 하네요.”

    5층은 딱히 다른 몹이 없다. 오직 네임드 보스만을 위한 자리다. 조금 들어가니 트윈 헤드 워 울프가 보인다.

    키는 2m가량, 붉고 푸른 머리털을 가진 두 개의 늑대 머리가 우리를 바라보면서 올 테면 와보라는 식으로 늠름하게 서 있다. 조금 뒤에도 저 늠름함이 유지될지는 모르겠다만.

    “갑시다!”

    방패전사가 혹시 몰라 넓은 큰 오각 방패를 앞에 내세우고 보스에게 접근한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각자의 무기를 꽉 쥐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정말 세 보이네요.”

    “제가 먼저 붙어보겠습니다.”

    방패전사가 달라붙었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형 방패를 두터운 손으로 후려친다.

    “HP가 아예 안 다네요.”

    방패전사가 뒤를 돌아보면서 씨익 웃는다.

    몇 번 공격을 받다가 이번엔 얼음 브레스를 맞았는데 방어구의 방어가 하도 높다 보니까 얼지도 않는다.

    화염 브레스도 맞았는데 역시 HP가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차오른다.

    “그냥 오세요. 이거 전혀 안 깎입니다.”

    “가시죠.”

    내가 챠밍과 이쁜소녀를 데리고 이번엔 아예 달라붙어서 트위 헤드 워 울프를 패기 시작했다.

    “크흐흐.”

    방패전사도 아예 방패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검을 잡고 미친 듯이 웃으면서 때렸다. 이쁜소녀도 이미 더 어떻게 표현 못 할 정도로 신나게 글레이브로 패는 중이고.

    챠밍은 무조건 바로 앞에서 풀 차징으로 마법을 모은 뒤에 쏴서 딜 로스가 전혀 없다. 나는 아예 매달려서 목만 후려치고 있고.

    피하는 과정이 전혀 없으니까 넷이서 패도 충분할 것 같다.

    정말 아무 고민 없이 한참을 때리다 보니까 트윈 헤드 워 울프가 비명을 지르면서 앞으로 쓰러지면서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 자리엔 수많은 아이템이 바닥에 떠서 둥둥 거리고 있고.

    “다 우리 거네요.”

    “우리 거죠.”

    챠밍과 이쁜소녀가 기뻐하고 방패전사 역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일 정말 어떻게 될지 기대 되네요.”

    내가 꺼낸 말에 방패전사가 다 잘 될 거라는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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