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화 나눠 먹는 독약이 제일 맛있다 (6)
남들은 3층도 못 가서 허덕이는데 5층에 있는 네임드 보스를 잡다니 정말 앞서나가긴 앞서나가네. 재중이 형이 오징어포를 우물거리다가 말해준다.
“이왕 잡을 거라면 먼저 잡는 게 좋아. 처음 쓰러질 때는 그 네임드가 줄 수 있는 아이템을 다 쏟아내거든. 오크 족장 때랑 같아. 지금 족장 백날 잡아봐라 글레이브가 막 떨어지나. 점검 끝나고 계속 잡았다던 사람도 있던데 그렇게까지 해야 겨우 나오니까.”
글레이브 하니 공격이 생각난다. 이젠 꽤 유명인사다. 여러모로.
“그거 우리 서버 이야기 같네요.”
“너희 서버냐? 그놈도 머리는 참 잘 돌아가네. 그놈 덕분에 이제 점검 끝나면 다들 보스 러시하거든.”
“그래서 트윈 헤드 워 울프는 어땠어요?”
“그게 어땠냐면…… 보스 자체는 그렇게 강하지 않아. 다만 트윈 헤드에서 얼음과 불을 뿜어내는데 그걸 맞으면 정말 뒤가 없어.”
“브레스 같은 건가요?”
“음…… 비슷해. 불 마법 같은 경우는 범위 형인데 입에서 쏘아져서 꽤 넓은 범위에 퍼지거든. 맞을 때 확 깎이는 것이 아니라 불타는 동안 HP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어. 맞고 나면 절대 물약으로 커버 안 돼. 그냥 죽어야지.”
“너무 센 것 아니에요?”
“어, 진짜. 사기지. 첨엔 이걸 어떻게 깨라고 만든 건지 궁금하기까지 하더라. 사장님 맞고 난 뒤에 그냥 홀라당 타버리시고 아웃. 뭐, 진짜로 타는 건 아니고. 속성 방어 같은 것도 없는 데 좀 심하지.”
“그런데 어떻게 깼어요?”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던데? 얼음 마법도 쓴다고 했지? 입에서 얼음 덩어리 같은 것이 쏘아지는데 맞으면 그 부위가 굳어서 엄청 느려지거든. 그거 맞아서 못 움직이고 맞아 죽은 애들도 많은데 그 두 개가 겹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못 움직이고 HP가 깎여서 그 자리서 아웃?
“아니, 얼음이 풀리고 불 마법도 풀리거든. 둘이 중화된다고. 이걸 알아내려고 얼마나 팀을 갈아 넣었는지 모르겠네. 뭐, 알아도 얼음을 먼저 맞으면 너무 느려져서 불 마법 범위까지 가기도 쉽지도 않고. 불 마법 맞고 얼음 맞는 것이 그나마 좀 쉬워.”
“두 개 동시에 쓴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요?”
“그래, 저건 정말 급할 때 쓰는 응급처치 같은 거고 결국은 장비 빨로 인해전술이지.”
인해전술이라…… 우리 팀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네. 저건 정말 방법이 없어 보인다.
***
재중이 형은 잠들고 사장님은 집으로 가셨다. 그리고 난 카운터에 머리를 박고 있다. 가끔 생각이 복잡해지면 이런다. 복잡한 이유는 별것 없다. 트윈 헤드 워 울프.
어떻게 홀라당 해 먹을 수 없을까…… 고민 중인데 답이 안 보인다.
오크 족장과는 다르게 따로 보스 방이라는 개념이 없고 물약 빨로 버티면 승리. 물론 물약 빨을 세울만한 장비와 렙은 기본이고. 컨도 수준급이어야 한다고. 5층 구조가 복잡해서 한 번에 수십 명이 덤빌 수도 없단다. 마법도 좁은 공간에서 피하기 힘들다고 하고.
오크 족장 때처럼 높은 곳에 걸치기를 할 공간도 없다. 일단 제단 같은 구조가 없고 더욱 할 수 없는 이유는 점프도 한다니까 괜히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피하지도 못하고 맞아서 낙사하기 딱 좋다.
아무리 쥐어짜도 좋은 생각이 안 난다. 내 머리가 이 정도였나? 뭔가 확 떠오르면 좋겠는데 쉽지 않네. RTP는 머리에는 적용이 안 되나? 유혜선 팀장이 가상에서 무엇이든 가능할 것이라고 했지만. 여긴 현실이네.
RTP가 높다고 딱히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RTP가 높다고 똑똑해지면 정말 RTP 순대로 사람을 세워둘지도 모르겠다. 시험 성적처럼. 유일한 아쉬움이다.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4.
> 로딩 중…….
그간 높은 렙 몹을 패고 다닌 보람이 있는지 14를 찍었다. 이제 던전 몹들의 패턴에 익숙해져서 민첩 때문에 고생하지는 않다 보니 근력에 포인트를 분배했다.
* * *
이름 : 주호
레벨 : 14
【근력 3 ▲1】 【민첩 4+1】 【체력 3】
【지력 0】 【마력 1】
* * *
이제 힘이 1.2배, 움직임이 1.4배인가?
솔직히 근력보다는 민첩을 더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강한데 재중이 형 말로는 근력과 민첩이 너무 차이 나면 오히려 서로 제약이 있다고 한다.
초기화 템이 있어서 몇 명이 올 근력과 올 민첩으로 해봤다는데 원하는 만큼 힘과 움직임이 안 나온다니까. 아마 서로 보조하는 공식이 있지 않을까?
재중이 형이 알아보고 있다니까 아마 조만간 분석하듯이 알아내서 알려줄 것이다. 그런 것은 진짜 잘하니까.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차례로 귓말이 온다. 방패전사는 볼일이 있었는지 연락이 좀 늦고. 기다리는 사이에 모두 마을에서 만나 기다리니 방패전사가 접속을 했다.
“트윈 헤드 워 울프를 어떻게 저희끼리 또 해 먹을 수 있을까요?”
내 말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흔드는 것이 힘들 거라 보는 모양이다.
“이번엔 다른 사람들 사이에 껴서 잡아야겠네요.”
“네, 보통 다 그렇게 하니까요. 저번이 너무 특별했던 것뿐이에요. 매번 그런 식을 기대하면 게임 못 하죠 진짜.”
방패전사와 나란히 가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던전 입구까지 도착했다.
3층까지 들어가서 한참 자리를 찾다가 괜찮은 곳을 찾아냈다.
워 울프 전사 둘, 마법사 둘.
현재 내 레벨이 14고 챠밍, 이쁜소녀가 16, 방패전사가 17이다. 방패전사는 확실히 플레이를 오래 하는 모양이라 점점 차이가 벌어지는 중이지만 PC방을 그만두면 곧 따라잡을 수 있어서인지 전처럼 신경 쓰이는 느낌은 없다.
3층은 이제 다들 처음에 들어왔을 때보다 패턴도 눈에 익고 익숙해져서인지 워 울프 전사를 상대하는데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다.
“그렇게 괴물 같아 보이던 녀석들이 이제는 좀 쉬워 보이네요.”
방패전사가 전사를 하나 잡아서 싸우면서 말까지 하는 여유를 보여준다. 방패로 이리 막고 저리 막고 튕겨내고 빗겨 막고 여러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한 칼씩 차근차근 먹이면서 느리지만 확실히 안정적으로 처치 중이다.
이쁜소녀도 글레이브로 방어구가 없는 약한 부분만 강하게 노리면서도 피할 것은 다 피해 가면서 상대 중이고. 실상 잡는 속도는 이쁜소녀가 방패전사보다 월등하다. 공격성향에 무기도 네임드인 이유도 있고.
나와 챠밍은 둘이서 마법사를 하나씩 맡았다. 챠밍은 마법사와 1:1 구도로 피하면서 마법을 쏘는 연습을 겸해서 상대하는 중이다. 챠밍은 상대가 마법사다 보니 마법 시전 타이밍과 쏘는 방향을 보고는 느린 민첩이지만 잘도 피해내면서 동시에 마법을 날린다.
다들 잘하네. 다들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점점 숙련되어 간다.
반면 화살처럼 마법도 칼로 쳐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했다가 지금 HP만 잔뜩 줄어서 혼자만 고생이다. 시도는 좋았는데. 결과가 안 좋다.
그래도 마법사의 HP가 적은 탓에 빨리 녹이고 주변을 도와주니 금방 정리가 됐다.
“마법은 장검으로 못 쳐내네요.”
내가 아쉬움 정말 가득 담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하니 방패전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애초에 화살을 일일이 보고 촉만 건드려서 튕겨내는 것도 사람이 할 컨트롤이 아닙니다. 이젠 마법까지 쳐내려고요?”
“날아오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매번 피하려니까 아까워서요.”
내 말에 다시 방패전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못 말린다는 표정이다.
뭐, 그와는 별개로 이젠 정말 3층 몹을 잘 잡고 있다.
“확실히 좀 쉽네요.”
방패전사가 우쭐하고.
“처음보다는 쉬워요.”
이쁜소녀의 편안한 모습에 나와 챠밍은 그저 웃을 뿐이다.
좀 더 많은 수의 자리를 잡을 수도 있긴 한데 리젠 시간을 맞추려면 정말 숨도 못 쉬고 싸워야하기 때문에 5마리 방은 포기한 상태다.
어제 사냥 말미에 5마리 방을 했다가 정말 피 토하는 줄 알았거든. 방패전사만 신이 나서 모두의 눈총을 받았었다. 네 마리가 옳다.
덕분에 지금은 쉬엄쉬엄하면서 잡고 있으니.
“4층은 다 섞여서 나오죠?”
챠밍이 마법을 시전하면서 궁금했던지 물어온다. 방패전사가 바로 대답해 준다.
“네, 듣기로는 그렇다네요. 숫자도 제법 많아서 4층부터는 저희도 풀 파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희 이제 넷이서만 파티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우리끼리 하는 게 좋은데.”
이쁜소녀가 간만에 의견을 낸다. 계속 넷이서 했더니 익숙해진 모양이다. 한 번씩 내는 의견이 심장을 쿵 하고 찌른다니까.
“저도 딱히 더 안 늘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필요하다면 늘려도 상관없어요.”
챠밍도 불만은 없어 보이고.
이 사람들 나 없을 땐 파티를 어떻게 했지? 이제껏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네. 알아서 잘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어보면 나 없을 때도 셋이서 파티한 것처럼 들리는데?
“혹시 저 없을 때 셋이서만 하셨나요?”
“네. 주로 1층에서 셋이 해요. 자리가 없을 때는 다른 파티에 껴서 하기도 하고요.”
“그럼, 혼자 있을 때는 뭐 하시나요?”
챠밍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해준다.
“마을에 있거나 주로 퀘스트를 했어요. 딱히 단체로 하라고 만들어둔 퀘스트는 아직 없는 편이거든요. 같이하기엔 퀘스트 순서가 서로 안 맞기도 해서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었어요. 저랑 이쁜이는 이제 같이하고요. 방패전사 님은 많이 앞서 있어서 따로 하세요.”
“생각해 보니 전 퀘스트를 거의 안 했네요.”
들어오면 매번 들어 와서 사냥만 같이하고 있으니까. 퀘스트가 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다.
“저희가 템이 좋다보니까 그냥 사냥이 훨씬 나았거든요. 아마 비슷한 시기에 퀘스트를 하고 다녔으면 사람들에 치여서 시간만 버렸을 겁니다. 지금도 어떤 퀘스트 몹은 사람들이 줄 서서 잡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선택을 잘 한 거죠.”
물론 둘 다 병행하면 좋겠지만 난 그만큼 시간이 안 났으니까.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같이할 수 있는 사냥이 될 수밖에.
아마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였다면 퀘스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이제 PC방을 그만두면 퀘스트도 따로 챙겨야 할지도 모르겠네.
방패전사가 퀘스트 이야기를 하자 바로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낸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다른 것은 안 해도 메인 퀘스트는 진행을 좀 하셔야겠네요. 오크 지역은 어차피 보상이 안 좋아서 다 넘겨도 되는데 늑대 지역은 마지막 보상이 꽤 크거든요.”
“어떤?”
그 말에 옆에 이쁜소녀가 듣고 있다가 말해준다.
“액세서리 준대요. 올 스탯 +1 짜리요.”
“오!”
저건…… 무조건 해야겠는데? 무려 스탯이 다섯 개짜리다. 이 게임에서 성향 구분 없이 어떤 스탯이라도 쓸모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보상이다.
“이제 제가 시간이 좀 더 날 것 같아서요. 그때부터 해도 안 늦겠죠?”
“네, 잊혀진 고성에서 네임드 보스를 잡기 전까지만 선행 퀘를 클리어해 주면 됩니다. 마지막 목표가 네임드 보스라서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은 자리에서 한참 사냥을 하고 있다가 챠밍이 모두를 불러 세웠다.
“버프 시간이 끝났네요. 잠시만.”
【 프로텍트 쉴드! 】
챠밍이 마법을 쓰니 챠밍이 서 있는 발아래 하얀 원형의 마법진이 생기고 회전하면서 위로 빛을 환하게 뿜어낸다.
마법사의 낮은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쓰는 마법이다. 물론 모든 캐릭터가 다 쓸 수 있긴 한데 현재는 대부분이 힘 캐릭들은 지력을 안 올리고 있고 그래서 지력을 올리는 순수 마법사형만이 쓰는 마법. 마법을 시전한 본인의 모든 방어구의 방어를 +1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 저걸 쓰려면 지력이 4가 되어야 하니 아무나 막 쓰지는 못한다.
문득 마법을 쓰는 챠밍을 멍하니 바라본다.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챠밍 님, 그 마법은 본인 밖에 못 쓰는 거죠?”
“네, 제가 쓰면 방어구가 다 +1씩 올라가요. 전에 다른 사람에게 써 봐도 전혀 안 되던데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 주는 챠밍.
근데 왜 이렇게 저 말들이 걸리지? 어디서 계속 걸릴까.
“방어구가 +1로 계속 유지되는 건가요?”
“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
챠밍이 고개를 갸웃한다.
“혹시…… 옷 한 번만 벗어볼래요?”
“네에?!”
그 말에 다들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챠밍은 당황한 듯 말을 못 하고 있고. 특히 이쁜소녀는 흡사 변태 보듯 하는 눈빛이다.
그 뜻이 아닌데.
억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