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14화 하늘에서 빛이 내리면 (8)
내가 제단 위의 기둥 끝의 비석상을 바라보니 방패전사와 이쁜소녀가 검과 방패, 양손검이 아닌 커다란 장궁이 쥐고 활시위를 힘차게 당기고 있다.
활대가 전부 녹색 빛으로 장식된 숲의 장궁. 그 활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온다. 그와 동시에 챠밍도 손에서 매직 애로우를 쏘아붙인다.
“크어어어!”
나를 따라다니던 오크 족장이 화살과 빛의 마법을 동시에 맞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급소에 정확히 맞지 않아 대미지는 적겠지만 확실히 맞췄다.
오크 족장이 고개를 들어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올라가 있는 제단 기둥의 비석상을 바라본다. 보긴 하는구나.
속으로 빈다.
제발.
저놈이 돌대가리이길…….
***
알이 가득한 벼를 추수하는 기분이 이러할까?
우리는 지금 오크 족장이라는 벼를 한창 추수하고 있다.
난 제단 근처를 돌면서 가끔 날아오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빙빙 도는 중이고. 하늘에선 연이어 화살과 빛의 마법이 쏟아져 내려 족장의 등짝을 후려치고 있다.
“으어어!!”
시끄럽기는. 맞으면 쳐다보기는 하는데 공격을 안 한다. 아니 못하는 것이려나? 어찌 됐든 지금까진 예상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미 돌진 구간은 지나갔고 포효 지르는 구간인데 이마저도 내 팔을 검으로 쓱쓱 그어가면서 경직을 풀고 또 도망 다닌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자기 팔을 검으로 그으면서 좋아하는 인간은 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스가 혼자 판단이 된다면 점프를 해서 공격하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지가 스스로 올라가서 공격하겠지만.
딱 정해진 기술 안에는 기둥 위의 유저를 공격하는 방법 따윈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이게 정말 되는군요.”
방패전사가 허탈해하면서도 손을 쉬지 않고 화살을 날린다. 힘, 체력에 주 스탯이 가 있어서 민첩이 높지는 않지만 당기고 쏘는 속도가 느릴 뿐. 활을 못 쓰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직업이 정해져 있으면 이런 건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무기만 있으면 스탯이 허락하는 한 뭐든지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쁜소녀도 앙증맞은 손으로 열심히 활시위를 당기고 있고. 챠밍은 편안하게 앉아서 여유 있게 풀 차징한 마법으로 최대 대미지를 뽑아내는 중이다.
가끔 여유가 나면 손을 흔들면서 재밌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원래는 나까지 올라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한 상태다.
최소 족장을 제단 근처에 묶어둘 사람이 필요하고 만약 공격 범위 안에 아무런 유저도 없으면 HP가 리셋 되어버릴지도 몰라서이다.
이건 방패전사의 조언이기도 하고. 방패전사가 말하길 전에 하던 3세대 게임에서 보스 몬스터는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HP가 다시 꽉 차버린다고 해서 지금 내가 내려와 있는 중이다.
어그로를 끌 만한 사람이 넷 중에 나밖에 없기도 하고. 방패전사는 너무 느리고 챠밍과 이쁜소녀도 오래는 못 버틸 것 같으니까.
그나마 넷 중엔 민첩이 제일 높아 주먹을 피하거나 검으로 최대한 빗겨내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고 웬만한 움직임은 거의 다 읽어내고 반응할 수 있다.
애초에 이 작전은 나밖에는 할 수 없다. 40인이 번갈아 가면서 상대해야 하는 오크 족장의 공격을 오로지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까.
아무리 제단 위에서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프리 딜을 넣는다지만 40명이 초반에 나눠가면서 딜 넣는 것보다는 못하다.
그건 결국 내가 정말 오랜 시간을 네임드 보스에게서 잘 버텨내야 한다는 소리다.
이건 내가 나에게 내리는 숙제다. 얼마만큼 RTP를 잘 쓸 수 있는지…….
“조금만 더 힘내요!”
“파이팅!”
기둥 위에서 들려오는 챠밍과 이쁜소녀의 하이 톤의 응원에 힘이 더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챠밍과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응원하면서 공격하다가 중간중간 하얀 물약을 몇 개씩 바닥으로 집어 던진다. 그리고 난 그걸 주워서 바로바로 쓰는 중이고.
물약을 땅에 버리면 바로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울 수 있다. 그렇게 떨어진 물약을 먼저 쓰면서 최대한 버티는 것이 내게 배정된 임무다.
네 명분의 물약을 모두 내게 몰아준다면 오크 족장의 공격을 끝까지 버티는 것도 충분하다는 계산. 지금 최대한 다른 사람의 물약을 쓰고 광포화 구간에서 정신없을 때 내 물약만으로 최대한 버티면 된다.
안 돼도 되게 해야 한다.
한참을 피하거나 쳐내면서 버티자 포효 구간도 어느새 지나가고 원래 오크 족장이 앉아 있던 제단 의자 옆에 세워져 있던 글레이브를 집어 든다.
갑자기 챠밍과 이쁜소녀의 응원 소리가 사라진다. 넷이 모여서 의논하던 위기의 순간이 왔다.
어제 왔을 때는 분명히 그런 패턴이 없었으나 지금은 모르니까.
“혹시 글레이브 여기로 던지지는 않겠죠?”
긴장된 표정의 챠밍의 걱정.
“그러면 안 되는데…….”
역시 마음 졸이는 이쁜소녀의 걱정.
“날아오면 방패로 막아야죠. 뭐.”
방패전사는 그나마 나아 보이네.
근데 진짜 던지면 어떻게 하지? 망하는데.
***
걱정은 기우였고.
한 번 돌대가리는 영원한 돌대가리였다.
그리고 난 풍차를 돌리는 것처럼 미친 듯이 글레이브를 내게 몰아치고 있는 오크 족장의 움직임에 맞춰 정신을 최대한 집중해가며 글레이브를 빗겨 쳐내는 중이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놈 힘이 진짜 세다.
빗겨 치는데도 HP가 줄줄 새어 나간다. 횡으로 날아오는 건 숙여서 피하고 바닥을 쓸면 점프해서 피하고 내려치는 건 굴러서 피하고…….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거지만 일단 휘두르는 속도가 빠른 건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최대한 피해 보고 진짜 안 되면 빗겨 치는데 그걸 감당을 못하겠네.
레이드 팀 사람들은 이 구간에서 12렙 아래로는 그냥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 민첩이 느려서 못 피하고 힘이 밀려서 맞받아치지를 못하면 그냥 목숨을 내놓는 수밖에.
빗겨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HP가 계속 세지만 그나마 네 명분의 물약을 몰아주니까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이젠 정말 시간 싸움이다.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저놈을 눕히든지 내가 눕든지. 내가 누우면 오크 족장의 HP가 도로 가득 차 버리겠지, 아마도? 그러니 난 절대 누울 수 없다. 누우면 안 된다.
또다시 횡으로 쏜살같이 날아오는 글레이브.
생각을 너무 했나. 늦었다.
“하앗!”
나도 모르게 나오는 기합 소리.
극한의 집중. 글레이브의 창극이 공기를 찢어가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보자마자 바로 왼손과 오른손의 장검을 교차해 왼쪽 어깨 위로 글레이브의 창극을 긁듯이 밀어낸다.
키이이익!
쇠 긁는 아슬아슬한 소리가 귓가를 찌를 듯 울려 퍼지면서 이내 튕겨 나가는 창극.
진짜 죽을 뻔했다. 이번엔.
못 막았으면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판정인데 체력이 아무리 높고 방어구가 아무리 좋아도 저런 건 못 막는다. HP가 풀로 차 있어도 한 번에 깎이거나 최소 몇 초 경직인데 그럼 그냥 죽는 거다.
극도의 집중에 온몸이 고통으로 찌르르 울리기 시작한다. RTP가 방금 생각 이상으로 오른 기분이다. 분명히. 되도록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유혜선 팀장의 말들이 귓가를 스치듯 지나간다.
위기를 넘기자 긴장이 조금 내려가며 안정을 찾아간다.
기둥 위에는 숨 쉬는 소리도 안 들린다. 오직 화살 쏘는 소리와 마법이 날아가는 파동음만 들릴 뿐. 응원 소리가 끊긴 지 오래 됐다.
위에서도 필사적으로 쏘고 있을 터. 내가 쉬면 안 되지. 내가 쉬면 오크 족장이 화살과 마법을 피해 버릴 거니까.
“크어어어!!”
광포화 구간.
글레이브 구간까지 어떻게 잘 버틴 것 같다. 물약을 보니까 아직 내 인벤의 것은 하나도 소비하지 않았다. 챠밍, 이쁜소녀, 방패전사가 떨어뜨린 물약으로 30인분을 해낸 셈이다.
이제 에이스 10인분을 해야 한다. 물론 위에서 세 명이 프리 딜을 넣어주니까 정말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광포화 구간은 오크 족장의 HP가 적다.
다시 양손의 검을 힘겹게 치켜든다.
벌써 피곤하다. 극한의 집중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
제단이 떠나갈 것만 같은 고함을 지른 오크 족장의 온몸에서 붉은 오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의 구릿빛 근육들이 불끈거리면서 부풀어 오른다.
“적당히 세져라. 지금도 힘들다.”
두 손의 검을 더욱 꽈악 움켜쥔다.
지금부터는 진짜 집중해야 한다. 한 번 실수로 못 막으면 그냥 HP 하락 정도가 아니라 죽는 셈이니까. 내가 실수했을 때 커버해 줄 동료는 전부 제단 위에 있거든. 내가 실수하면 그냥 게임 오버다.
“크어어!”
“변신하는 걸 다 지켜보는 건 만화에서나 보고.”
내가 곧장 한참 2단 변신을 준비하는 족장을 향해 뛰쳐나간다.
단순히 버티면서 수세로 견디기에는 이 구간은 너무 힘들다. 한 번 기세가 넘어가면 끝없이 공격을 받아 내야 하는데 그건 아무리 나라도 지금 민첩 수치에서는 절대 못 한다.
물약 소모를 좀 하더라도…… 맞상대해야지.
내 검이 변신 중이던 오크 족장의 목덜미를 바로 찔러 들어갔다. 이럴 때가 아니면 목을 노리기도 힘드니까.
힘을 주면서 변신 중이던 오크 족장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에 기다란 검상이 한 줄 쫘악 그어지니까 그제야 글레이브를 세우면서 일어난다.
“정말 딴딴해졌네.”
유효타인 것은 손에 감각을 통해 확실히 알겠는데 미동도 안 한다. 내가 공격을 시작하자 제단 위에서도 공격 지원이 쏟아진다.
오크 족장의 변신 타임이 끝났는지 글레이브를 불끈 쥐고 내게 달려온다. 눈빛은 이미 시뻘겋게 변한 지 오래다.
횡으로 바람 소리를 내면서 휘둘러지는 글레이브가 무서운 속도로 휘어 들어오자 아예 그 속으로 파고들면서 창극이 아니라 창대를 두 검을 모아 아주 세게 올려쳤다.
끼기긱!
쇠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글레이브의 궤적이 크게 어긋나서 휘둘러진다. 동시에 오크 족장도 대번에 휘청거려서 자세를 잃어버린다.
아예 회전이 시작되는 지점을 쳐버리면 적은 힘으로도 궤적을 완전히 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볼 능력이 내게는 있고.
완전히 가운데가 열린 오크 족장의 안에 파고든 그대로 검으로 오크 족장의 눈에 찔러 넣었다.
“크어어!”
“칫!”
그 짧은 사이에 머리를 흔들어서 눈 대신 얼굴을 상납한 오크 족장이 순식간에 뒤로 빠져나간다. 빠지는 오크 족장의 움직임은 민첩이 모자라서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다.
“나이스!”
“힘내요!”
“화이팅!”
제대로 한 번 파고들었더니 위에서 연이어 응원 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동시에 마법과 화살도 끝없이 쏟아지고.
내가 검을 들어 들어와 보라고 까딱까딱 흔드니까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또다시 달려들어 곧장 창극을 공기가 찢어질 듯 강하게 휘두른다.
싸움이 길어지고 긴장이 깊어질수록 이상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확장된 감각들이 몸에 와닿는다. 그리고 확연하게 보인다. 휘어져 들어오는 궤적이. 느껴진다. 궤적에 밀린 공기의 흐름이.
왠지 아까처럼 강하게 쳐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장검을 쭈욱 뻗어서 글레이브의 궤적의 한 점으로 밀어 넣는다.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짓이다. 저렇게 강하게 휘어져 들어오는 창극에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은 것 같은 검을 밀어 넣는 것은. 하는 나조차도 내가 미친 것 같다.
휘어져 들어오는 창극과 쭉 나아가는 검날이 만났을 때 오히려 창극이 검을 튕겨내지 못하고 마치 원래 한 몸인 것처럼 찰싹 붙어서 검날이 밀어내는 방향 그대로 밀려 올라가 버린다.
“어?”
“저게…… 뭐에요?”
“말도 안 돼…….”
오크의 글레이브가 휘둘러지는 방향에서 아주 약간 위로 밀려 올라가면서 나를 전혀 건들지 못하고 지나간다.
뭐지?
그냥 몸이 알려준다. 이건 된다고.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한계를 정하지 말라고.
오크 족장이 사람이었으면 엄청난 힘으로 휘둘러진 글레이브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밀려 올라가는 순간 경악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해놓고도 지금 얼떨떨하니까.
“뭐…… 아무튼 이제 맞을 시간이네. 입 꽈악 깨물어라.”
내 양손에 쥐어진 검에 힘이 가득 들어간다.
***
쿠웅!
징그러운 녀석. 정말 HP가 얼만지 문의를 해보고 싶다. 곳곳에 상처 입은 흔적이 가득한 오크 족장이 드디어 차가운 바닥 위로 엎어졌다.
“어? 넘어갑니다.”
방패전사가 알려주자 그제야 정신없이 공격하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얼싸안고 비명을 지른다.
“꺅!”
제단을 울려 퍼지는 두 여성의 하이 톤의 울림이 듣기 좋다.
“어? 어떻게 내려가죠?”
챠밍이 막상 내려오려다가 멈칫한다. 기둥이 생각보다 높거든. 원하면 뛰어내릴 때 내가 받아줄 수도 있건만. 방패전사가 사전 차단을 해버린다.
“아래 밧줄을 잡고 내려가면 됩니다.”
하…… 나쁜 사람. 안 되는 것은 일찍 포기하자.
기둥 밑으로 가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살짝 잡아준다. 오크 족장의 방해가 없으니까 다들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돌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너무 피곤하다. 오크 족장보다 낮은 민첩으로 공격을 피하고 흘린다고 너무 집중해서인지 골이 울리는 기분이다.
다들 내려오고 3, 40초 정도 더 지나니까 제단 천장이 열리면서 하늘의 먹구름들이 일제히 마을 범위 밖으로 걷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내리쬐는 따스하고 강렬한 빛이 쏟아지듯 제단 속으로 빨려 내려온다.
“와! 저희 진짜로 했어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챠밍.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이쁜소녀. 둘 다 내려쬐는 빛으로 인한 후광에 영화 속의 천사가 강림한 것처럼 아름답다.
방패전사는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저 힘이 없네요. 좀 세워주시죠.”
누워 있는 나를 방패전사가 손을 잡고 일으켜준다.
비록 좀 꼼수긴 해도 정말 넷이서 해냈다. 내일 어떤 공지가 올라올지 벌써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그때 방패 전사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친다.
아, 동영상 촬영 중이군. 아까 촬영 허가를 해달라고 해서 해줬었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건 편집본이랑 원본이랑 해서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네, 신경 못 쓰고 있었는데.”
“아까 허가받고 처음부터 했었죠.”
“나중에 필요하면 말씀드리죠. 고생하셨습니다.”
“저희가 고생은 무슨. 주호 님 밑에서 족장이랑 싸우는 거 보니 엄두도 안 나던데요. 혼자 그걸 어떻게 다 피합니까. 제가 밑에 있었으면 죽어도 수십 번 죽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그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방패전사가 날 보면서 질린다는 표정을 해 보인다. 놀람과 경악이 함께 섞인 그런 표정으로. 창극을 밀어 올리던 그 기술을 말하는 건가?
“하하, 어쩌다 보니 되네요. 얼떨결에 써서 저도 자주는 못 써요. 다음에 한 번 해보시죠. 짜릿한 것이 재밌네요.”
“말씀만 받겠습니다. 전 죽었다 깨어나도 똑같이 못 할 겁니다. 죽을 위기도 몇 번 있었는데 전 그런 건 절대 못 하죠. 차라리 막았으면 막지.”
“몇 번은 정말 죽을 뻔했죠.”
아찔했던 몇몇 순간이 기억에 스치고 지나간다. 그때 못 막았으면 지금 이렇게 웃고 있지도 못하겠지.
챠밍과 이쁜소녀도 옆으로 와서 환하게 웃는다.
“정말 고생하셨어요. 진짜로 될지 몰랐네요. 아까도 깜짝 놀랐거든요.”
“전 그런 거 못 피하는데…… 진짜 고생하셨어요.”
“두 분도 수고하셨어요. 빠르게 안 잡아주셨으면 오히려 제가 누웠을 걸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오크 족장이 떨어뜨린 아이템을 확인하러 간다.
“이게…… 글레이브네요.”
방패전사가 글레이브를 들어본다. 방패전사야 힘이 좋아서 드는 데 문제는 없는 것 같네. 근데 저건 누가 쓰지? 차라리 저 창이 양손검이면 좋을 것 같은데. 이쁜소녀가 저걸 쓸 수 있을까?
“모르는 마법서도 있어요!”
평소에 차분한 챠밍이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 확실히 새 마법서는 챠밍에게 좋을 것이다. 중복되지만 않으면 다 배우는 편이 낫겠네.
그리고 무기 강화석 30개랑 방어구 강화석 40개.
강화석. 실물로는 처음 본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주먹 반 개 크기의 투명한 사각 형태의 큐브. 각각 무기와 방어구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어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엄청 많네.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건가.
40명이 나눠야 할 템들을 고작 네 명이 다 해 먹는 셈이다.
강화석 말고도 무기, 방어구들도 많다. 다만 이건 당장 밖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그렇게 값어치가 높지는 않다. 활이나 지팡이, 갑옷 상의, 하의는 꽤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테지만.
진짜 핵심은 오크 족장의 글레이브와 마법서, 그리고 무기 강화석, 방어구 강화석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 통행증 수수료는 어쩝니까?”
문득 새어 나온 방패전사의 한마디에 모두의 몸이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