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0화 (10/1,404)
  • # 10

    #10화 하늘에서 빛이 내리면 (4)

    “저희가 참여할 수 있나요? 제가 듣기로는 서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팀 정도만 고르고 골라서 준비 중이라고 하던데.”

    “그게…… 이건 좀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오크 족장 레이드를 준비하던 상위 팀들끼리 내분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원래도 깰 계획은 있긴 했었는데 이번 1서버에서 공략해서 나온 보상들이 좀 값어치가 있다 보니 서로 좀 더 지분을 얻으려고 하다가 따로 갈라섰다고 합니다.”

    서버마다 10개의 오크 마을이 있고 지금 12개 서버가 있으니 대략 120개의 공략 팀이 준비 중이려나? 재중이 형네 빼면 119개. 다 합치면 현금 보상만 거의 120억대네. 순수 통행권 발급 수수료만 해서. 족장 무기 경매나 강화석 등을 더하면 200억은 그냥 넘어가 버릴 것 같은데.

    한 번의 오크 족장 클리어 이벤트가 이 정도 규모라. 대단하긴 하다.

    “시작도 안 해놓고 보상 배분으로 싸우다니 볼만하네요. 그래서 그 갈라진 팀 중에서 한 자리가 부족하다?”

    “네, 서로 딱히 다른 상위 팀 애들이 없어도 자신들끼리 가능하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각자 따로 팀을 모으고 있고 그러다 보니 한참 여기저기서 지인들을 통해서 팀을 만들고 있는 상태고요.”

    재중이 형 말에 따르면 진짜 고르고 골라서 모인 최상위 랭커들만 모아서 했는데도 간당간당했다던데…….

    보아하니 딱 서로 전멸할 각인데? 이건 참여하면 안 되지 싶다. 물론 참여해서 구경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저들이 하루 이틀 사냥 더 해서 1, 2렙 더 올린다고 되는 일은 아닐 거다. 현질을 통한 장비, 물약, 개인 배틀 센스, 전략, 응집력까지 다 베스트로 발휘해야 될까 말까일지도 모르는데 어중이떠중이 모아봐야 답 안 나올 것이다.

    물론, 우리가 어중이떠중이라는 뜻은 아니고. 난 이 팀은 꽤나 좋게 보고 있거든.

    우리 팀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없고 떨어질 보상도 탐나는데…… 지금 참여했다간 돈은 돈대로 소비하고 리타이어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는 흔한 게 아닌 데다가 돈은 어차피 쓰라고 모으고 있는 거고, 무엇보다 족장을 상대해 보고 싶은데……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일단 조건은 들어봐야겠다. 조건에 따라 또 선택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글쎄요. 저희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긴 한데 여기저기 지인들로 모으는 건 아이템이나 실력으로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거기다 보상 문제로 싸웠다던데 후발 주자로 참여하는 저희에게 적절한 보상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방패전사의 모습. 고민하는 눈치가 보인다. 생각을 정리했는지 이윽고 입을 연다.

    “일단 1서버의 공략 팀과 마찬가지로 40명으로 이루어진 팀을 만들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유가 어차피 한 번에 오크 족장을 칠 수 있는 한계선이 그 수라고 합니다. 한 팀이 전멸하면 제단 입구가 다시 열리고 상대할 수 있다고 하니까요.”

    “그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보통 8명 풀 파티로 5개 팀이라고 하더라구요.”

    “네, 그리고 최초 참여 조건이 렙 12 이상이었는데 이번에 팀이 갈라지면서 10으로 낮췄답니다. 12렙 이상 랭커가 지금 시점에서 흔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11이나 10은 스탯에선 차이가 없으니까요. 사실 그 이유보다는 자신들이 받을 보상을 더 올리겠다는 생각이 클 겁니다. 12렙 이상이 더 받아야 한다는 논리로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소리인가요? 자신들을 제외하고 좀 낮은 사람을 받아도 깰 자신이?”

    “아무래도 하루나 이틀 더 장비를 모으고 준비를 하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선 모양입니다.”

    아닐 건데? 재중이 형 말로는 전부 12렙 이상에 장비 모두 당시 구할 수 있는 최고로만 현질을 통해 구했다고. 어차피 오크 밭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는 한계가 있고.

    이건 뭐 들을수록 가관인데? 갑자기 의욕이 팍 꺾이는 느낌이다. 시작부터 실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진짜 보상 배분에 눈이 돌아갔네. 애초에 성공을 못 하면 보상도 없는 건데. 사람의 욕심이란. 그 욕심 덕에 참여기회가 생기긴 했지만.

    “그리고 지인들을 통해서 정보를 제법 얻은 모양입니다. 공략에 힌트가 될. 1서버에서는 최초 공략이다 보니 과한 전력이 들어갔다고 보는 면도 있는 것 같고. 저희가 시도하게 되면 이틀 정도는 더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믿는 구석이 있다는 말인가 보네요.”

    “일단은요. 안 그렇다면 저렇게 갈라져서 사람을 모을 리가 없겠죠.”

    시도할 정도 수준은 된다는 건가? 애매하다. 판단이 좀 어렵네. 나 혼자면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재미로 참여해 보겠는데…….

    “그럼 일단 렙 때문에 걸리는 것은 없네요. 오늘 내로 10은 찍을 것 같고.”

    방패전사나 챠밍, 이쁜소녀는 전부 11렙 후반이다. 현질로 무장한 랭커들을 바싹 뒤쫓을 정도는 된다. 오크밭에서 올릴 수 있는 한계가 사실 13 정도라고 보면 이 정도도 대단한 것이다. 사실 우리 팀이 다른 팀보다 빠르게 몹을 녹이는 것도 있고.

    “네, 사실 렙보다 장비 쪽에 더 비중이 높습니다. 숲 세트 방어구는 다 있어야 한답니다. 물론, 물약도 최대치까지 채워서 가야 하고요.”

    숲의 갑옷 상의, 하의만 있으면 다 모으니 저 문제도 넘어갈 수 있겠네. 진짜 문제는.

    “혹시 무조건 방패를 들어야 합니까?”

    현재 방패를 아예 배제하고 있는 나로선 이건 중요한 문제다. 검을 두 자루 드느냐 한 손 검과 방패를 드느냐는 스타일상 차이가 좀 심하니까.

    “그건 모르겠네요. 따로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은 용인할 것 같긴 합니다만.”

    “네, 그건 한번 물어봐 주시고. 그럼 보상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성공 시 통행료 10% 보상금은 개인별로 나오는 것이니 기본 지급으로 들어가고, 강화석 70개 중 1개를 지급하고 나머지 드랍된 아이템을 팔고 나오는 수익에서 렙에 따라 차등 지급을 한다고 합니다. 마법사는 거기에 좀 더 지급한다고 하고요.”

    그 후 좀 더 자세한 수익 배분을 더 이야기해 준다. 들어보니 생각보다 아예 조건이 팍팍 한 것은 아니다. 40명이나 되니까. 물론 주축이 되는 녀석들이 좀 더 해 먹겠다는 소리 같은데 렙이 낮아 참가를 못 할 것을 생각해 보면 아예 수용 못 할 수준은 아니다. 깰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일단 기본 보상금이 너무 크니까.

    물론 상위 랭커끼리는 저 조건도 짜증 나서 서로 갈라졌겠지만.

    “그럼, 챠밍 님과 이쁜소녀 님 생각도 들어봐야겠네요.”

    날 떠보는 방패전사는 참여할 의사가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데 다른 둘은 아직 모르니까. 요 며칠 손을 맞춘 같은 팀이라지만 개인의 의견은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챠밍과 이쁜소녀가 언덕 위에 앉아서 웃으며 조곤조곤 뭔가 이야기 하는 중이다. 사이좋은 자매 같아 보여서 왠지 보기 좋네.

    처음에 서먹서먹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지금은 화기애애하다. 나와 방패전사가 편하게 서로 이야기하듯 저들도 비슷한 모양.

    “저기 레이드 팀 이야기 들으셨나요?”

    이야기 중이던 둘이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돌려서 바라본다.

    챠밍이 먼저 대답한다.

    “네, 낮에 방패전사 님이 말씀은 주셨는데.”

    “하실 건가요?”

    “주호 씨는요?”

    “글쎄요, 제 혼자만 의견도 아니고 다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했죠.”

    “전 재밌어 보이는데요? 할 수 있으면 해봤으면 좋겠네요.”

    챠밍은 색다른 것이 있으면 일단은 하고 보는 스타일 같다. 자기 의사가 뚜렷하다.

    찬성 한 표.

    “그런가요? 이쁜소녀 님은요?”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이쁜소녀가 돌아본다.

    “전 아무래도 괜찮아요. 같이 하기만 하면 돼요. 안 해도 크게 상관없고요.”

    중립 한 표.

    고개를 돌리며 꼿꼿이 서 있는 방패전사를 보면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뭐, 제 의견도 이하동문입니다. 알아서 하십쇼.”

    중립 한 표 더.

    이건 뭐…… 할 말이 없네. 이제 결정권이 나에게 넘어왔다.

    “그럼…….”

    ***

    “응? 오크 족장 공격 패턴이 어떻게 되냐고? 그거 알아서 뭐하게?”

    “알아야 할 일이 생겨서요.”

    재중이 형이 고개를 쑤욱 내밀고 날 바라본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너…… 혹시 족장 잡으러 가냐? 아니다. 그럴 리가 없지. 누가 가르쳐 달래?”

    눈치 하나는 척하면 척이시네. 족장 잡으러 가는 거 맞아요. 누가 가르쳐 달라는 게 아니고 제가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네요.

    “아뇨, 제가 알고 싶어서요.”

    “응?”

    “공략 같은 거 쓰려고? 그거 딱히 돈 안 될 텐데. 이미 다 퍼져서.”

    “게시판에 있는 반쪽짜리 말고요. 제대로 된 걸 원해요.”

    “너 설마?”

    재중이 형이 다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물어본다.

    “뭐, 그렇게 됐네요.”

    “너 게임도 별로 못하면서 무슨 족장이야? 렙이 얼만데?”

    “제가 지금 10이요.”

    “뭐?”

    재중이 형이 그 말에 깜짝 놀란다.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그런 표정인데.

    “너 혹시 집에 가서 잠 안 자냐?”

    “아뇨, 요즘 좀 피곤하긴 한데 쓰러질 정도로 안 자진 않아요.”

    “아놔. 잠도 제대로 자고 집에 가서 하는 시간 따져보면 절대 그 렙이 나올 수가 없는 데…… 너 현질 해?”

    재중이 형이 혼란에 빠진 상태로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현질이란 답을 찾아낸다. 아쉽게도 오답인데.

    “아뇨, 그냥 하는 거죠. 같이하는 파티가 있어서요.”

    잠시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보더니 그냥 알아서 수긍하는 모양새다.

    “근데 렙 10이면 레이드는 안 받아줄 건데? 하루 만에 사정이 바뀌었나?”

    그 말에 대충 내가 속한 마을의 레이드 팀에 대해 설명해 준다. 다 듣고는 재중이 형이 그저 웃는다.

    “완전 콩가루 집안이네. 그 서버. 크큭. 그래 가지고 무슨 레이드 하겠다고.”

    “뭐, 저도 딱히 기대하는 건 아니고 경험 좀 쌓아보려고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보기엔 그거 100% 파토 난다. 우리 섭에서도 날고 긴다는 애들 싹 모여서 겨우 한 건데. 뭐, 며칠 더 지나서 렙 오르고 경험 더 쌓이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이놈들이 하루 앞서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네.”

    어이없다는 듯 다시 웃어 보이곤 말을 이었다.

    “뭐, 무슨 수로 그 정도로 업 한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네. 잘 들어. 오크 족장은 말이지…….”

    한참 동안 재중이 형이 말해주는 이야기에 경청했다. 오크 족장의 공격, 방어 패턴. 특수기. 약점 등 게시판을 뒤져서는 들을 수 없는 생생한 정보. 확실히 이런 건 어디 가서 쉽게 못 구하지.

    “공략도 중요하지만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해. 아무리 좋은 공략을 만들어 가도 정작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이를테면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힐러의 역할은 불분명하지. 일단 물약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한데 장기전으로 가면 분명히 문제가 생겨. 마법 중에 힐이 없는 것도 문제고. 그럼, 결국 그 사람이 컨트롤로 극복해야 하는 거야.”

    “확실히 힐이 아직은 없죠. 나중에는 모르겠지만.”

    “글레이브 구간 넘어서 마지막 광포화 구간에서 최소한 10명은 온전하게 살아 있어야 해. 30명 정도는 그 전에 최대한 오크 족장의 HP를 깎아놓고 죽어줘야지. 포효 때문에 많이 죽는 것도 있고.”

    “흐음, 광포화 구간이 힘든가요?”

    “어, 거기서부터는 그냥 좀 잘하는 걸로는 안 돼. 족장이 엄청 빨라지는 데다가 또 강해지기까지 하니까. 아마 힘하고 민첩이 증폭되는 모양인데 상대하려면 정말 잘하는 에이스급 선수가 10명은 살아 있어야 최소한 이야기는 해보지.”

    “에이스라…….”

    “우리 때는 10명으로 광폭화 구간 시작해서 고작 세 명이 끝까지 남았어. 40명이 들어가서 고작 세 명. 날고 긴다 하는 인간들 다 들어갔는데 결국은 물약 부족으로 전부 리타이어. 물약 관리가 정말 중요해. 물약 관리가 가능한 사람들만 마지막까지 남았으니까.

    40명 중의 3명만 살아남았다라…… 난이도가 좀 높을지도 모르겠네.

    “그 이하로 남으면 딜이 모자라서 마지막 페이즈 절대 못 넘겨. 족장의 미친 공격을 마주하면서 어떻게든 딜을 넣어야 하니까. 딜 로스가 정말 심해. 마음대로 딜을 못 넣으니까. 그래서 더욱 에이스급이 필요하고. 에이스급 없으면 어차피 끝까지 가지도 못 해. 장비야 어차피 다 비슷할 거고 레벨도 중요하긴 한데 결국은 개인 컨이지. 아니면 광포화 때 한 이삼십 명 살아 있던지…… 물량으로 찍어 누르면 되니까. 근데 그건 포효 때문에 무리고.”

    듣다 보니 고민되는데.

    아무리 판단해 봐도 지금 꾸려진 레이드 팀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다.

    물론 다른 팀의 공략 결과를 보고 미리 정보를 알아가는 것만큼 유리한 점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다 메울 수 없는 공백. 그건 에이스급의 존재 여부.

    그 에이스급 유저들이 분산된 잡탕 레이드 팀이라…….

    어떻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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