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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화 (8/1,404)

# 8

#8화 하늘에서 빛이 내리면 (2)

마주치기 전까지 찰나의 순간. 재중이 형이 해준 말이 기억난다.

선치는 애들 있으면 무조건 피하라고.

근데 그건 오크 마법사의 젠이 랜덤이 되기 전의 이야기고. 저들의 숫자와 장비를 보니 비슷해 보인다. 재중이 형이 말한 수준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다.

그사이 남자 셋이 먼저 도달한다.

그 선두에 선 덩치가 좀 있는 사내가 검을 살짝 흔들면서 인상 쓰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저건 우리가 먼저 발견했으니까 양보하지?”

먼저 치고 들어올지 알았는데 의외다. 숫자가 같으니 일단은 대화인가? 보자마자 반말 찍찍대는 걸 보니 기선을 잡으려는 건가?

검을 슬쩍 앞쪽으로 흔드는 걸 보면 여차하면 싸울 기세다. 근데 대화할 시간에 다른 놈들이 더 붙으면 난감한데.

그리고 왜 우리 것을 남 주나.

일단 PK가 일어나면 난 괜찮은데 우리 파티는 어떨지.

방패전사야 한 명 정도는 맡아줄 수 있을 것 같고, 문제는 챠밍과 이쁜소녀다.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반면에 저쪽은 여자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셋이다.

내가 둘을? 가능할까? 자리는…… 챠밍이 뒤쪽에 있고 그 앞에 이쁜소녀가 있으니 보호는 될 것 같은데.

슬쩍 방패전사를 보면서 눈짓을 하니 방패전사가 다시 눈빛을 준다. 만약 죽으면 나중에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님 귀환석을 쓰고 우리 파티가 사라질 시간 정도는 내가 벌 수 있으려나.

난 여차하면 싸울 생각이고, 방패전사도 같은 생각 같아 보인다. 슬쩍 뒤로 돌아보니 챠밍과 이쁜소녀가 날 바라본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등 뒤로 검을 살짝 흔든다. 알아들었을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수신호라도 정해둘 것을.

“그냥 빠지라고, 괜히 죽고 싶지 않으면.”

아이디가 빨간색이 아닌 걸 보면 저쪽도 그다지 경험이 없을 수도 있다.

슬쩍 발을 떼며 녀석들에게 다가간다.

“우리가 먼저 발견한 것 아닌가? 빠지려면 그쪽이 빠져야지. 안 그래?”

내가 으름장을 놓으면서 녀석들을 향해 그냥 성큼성큼 걸어간다. 녀석들이 당황하는 빛이 살짝 느껴진다. 맞지? 이놈들 PK는 초보 같다.

내가 더 가까이 다가가자 한 놈이 폭주한다.

“야! 그냥 쳐!”

왼쪽에 있던 놈이 방패를 앞세우고 검을 내려친다. 이걸로 확실히 정당방위다.

내려치는 검을 왼손에 든 검으로 비스듬히 빗겨내며 흘리자 휘두르던 자세가 무너져 당황한 표정. 그 틈으로 바로 반대 손의 검을 휘두르며 녀석의 목을 그었다. 아마 이걸로 HP가 뭉텅 빠져나갔을 거다

옆에서 도와주러 오자 반대편으로 돌면서 다시 목을 그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못 움직인다. 저건 경직이 분명하다. 사람도 몬스터처럼 경직이 일어나는가 보네. 좋은 정보다.

집중을 하기 시작하니 눈으로 주변 상황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들어와 감각들이 확실하게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경직된 녀석을 발로 강하게 밀어차서 다가오는 녀석들에게 보내줬다. 그 바람에 함께 엉켜서 나뒹군다.

슬쩍 우리 쪽을 살피니 방패전사가 앞에서 방패를 들어서 단단히 자리 잡고 그 뒤로 이쁜소녀, 챠밍이 있다. 챠밍은 이미 마법을 준비하고 내가 몰아붙인 녀석들에게 날렸다.

내게 목을 그인 녀석은 매직 애로우를 무방비하게 맞고 바로 빛으로 환해서 사라졌고 남은 두 녀석이 일어나서 내게 덤벼든다.

“방패전사 님 우측!”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패전사가 한 명을 방패로 몰아붙여서 때낸다. 다시 난 1:1 상황.

이쁜소녀는?

싸움 중인 우리를 빙 돌아서 뒤쪽에 떨어져 있던 상대편 궁수에게 방패를 앞세워 중요한 급소를 가리며 달려가는 중이다.

이쁜소녀가 궁수 여자의 시선을 안 끌어줬으면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우리에게 화살이 날아올 뻔했다. 활을 꺼내니 바로 달려간 모양. 판단이 좋네. 이쁜소녀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다.

그리고 앞에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저 녀석은 이미 내 상대가 아니다. 바로 검을 검으로 막아버리고 순식간에 녀석의 목을 그어 경직상태로 만들었다가 목을 따주었다.

차라리 방패를 앞에 내세우고 버텼으면 오래 버텼을지도 모르지만. 검을 휘두른다고 무너진 자세는 노릴 곳이 너무 많다.

방패전사 쪽은 챠밍이 도와줘서인지 편안하게 상대했는데 귀환석을 쓰고 도망가 버린 상태고.

이쁜소녀가 쫓아간 여자는 그만 도망가다가 넘어진다. 궁수는 원거리에선 다 좋은데 접근을 허용하면 방법이 없다. 활을 휘두르면서 싸울 수도 없고.

“꺅”

그 비명에 검으로 찌르려고 하던 이쁜소녀가 순간 움찔한다. 아주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그냥 검을 그 여자의 몸에 푹 찍어버린다. 그에 놀란 여자 궁수가 급하게 귀환석을 쓰자 순식간에 그 자리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사라지네. 한 명 당한 순간부터 바로 도망갔어야 하는데 판단도 느린 놈들이다.

전투 시에도 단축키로 지정된 귀환석이나 로그아웃으로 바로 빠져나갈 수 있다. 본인이 판단만 잘 한다면. 로그아웃은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오니 이럴 땐 귀환석이 나을 테고.

이쁜소녀가 못 싸울 거라고 걱정했던 내가 바보 같아졌는데? 판단력, 순발력, 결단력 모두 수준 이상이다. 챠밍도 싸움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미 마법을 준비해놨고.

말도 않고 내 멋대로 시작한 셈인데 알아서 다 보조를 맞춰주니 놀랍기만 하다. 누가 보면 미리 이야기를 끝내놓고 싸웠다고 하지 않을까?

“고생했어요.”

그렇긴 해도 역시 실제 사람 모습과 똑같은 사람과 싸운 흔적은 남아 있다. 이쁜소녀는 조금 열이 오른 모습이고, 챠밍도 긴장이 풀어졌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나마 멀쩡한 건 나와 방패전사네.

“방패전사 님은 멀쩡하게 보이네요.”

“뭐, 전 3세대를 많이 했거든요. 익숙하죠.”

그러면서 방패를 퉁퉁 검으로 치며 씨익 웃어 보인다. 승전보 후 즐기는 여유가 보인다.

난 살짝 오른 긴장감만 빼면 무난한 것 같다. 오히려 너무 주변이 차분하게 관찰되는 상황이 어색할 정도다.

이쁜소녀가 어느새 다가와서 근처에 주저앉는다. 긴장이 늦게 풀리는 타입인가? 살짝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멍한 표정이 꽤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보고 있다가 빨려들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위험하네.

“다 끝났어요. 고생했어요.”

“네…….”

괜찮은 건가? 싶어서 좀 더 살폈더니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다.

“대단하시네요. 솔직히 궁수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이쁜소녀 님이 안 뛰쳐나갔으면 저희도 몇 대 맞았을 거예요.”

“그냥 눈에 보여서요.”

칭찬받은 소녀의 발그레한 얼굴이란. 표현할 말이 없네.

“솔직히 마지막에 찌르진 못할 것 같아 보였는데 그것도 대단하고요.”

잠시 좀 전의 상황을 생각하던 이쁜소녀가 입술을 연다.

“저 사람들이 저희를 먼저 죽이려고 했죠?”

“네, 그렇죠.”

“그럼 살려 보내는 게 더 이상한 거 같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방패전사가 훅 끼어든다.

“명답이네요. 개들은 반대로 됐으면 우리 무조건 죽이려고 했을 걸요? 내 목숨 노리는 애들을 살려주는 건 정말 웃기는 일 맞죠. 잘 하셨어요.”

그 말에 이쁜소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챠밍도 옆에서 살짝 긴장 풀린 한숨을 쉬더니 눈빛이 살아났다.

“챠밍 님도 수고하셨어요. 마법 정말 잘 쓰시네요.”

“뭘요. 앞에서 다 싸워주셔서 전 뒤에서 편하게 한 걸요?”

“챠밍 님 마법 믿고 들이댄 거였어요.”

그 말에 서로 웃어 보인다.

다 괜찮아졌네.

챠밍과 이쁜소녀도 3세대 가상현실 게임 경험이 있으려나? 물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경험이 없는 데도 저 정도 대처면 정말 대단한 거고.

정당방위로 인정돼서 아이디 색이 변한 사람도 없고 아이템도 다수 떨어뜨려주고 갔다.

“아! 마법사.”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마법사가 있던 자리로 향했다. 다행히 그대로 있다.

“또 다른 녀석들 오기 전에 얼른 처리하죠.”

방패전사가 벌떡 일어난다. 나와 챠밍, 이쁜소녀도 일어나서 마법사 무리로 다가갔다.

***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마법사도 하나 더 잡아 지팡이와 마법서가 나왔다. 마법서는 방패전사가 팔아서 정리해 준다고 해서 믿고 맡겼다. 들고 나르면 뭐 내 사람 보는 눈이 잘못된 거고. 챠밍과 이쁜소녀도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숲의 지팡이는 챠밍에게 바로 넘겨주었다.

“휴…… 제 빚이 잔뜩 늘어났네요.”

챠밍이 한숨 쉬면서도 웃어 보인다. 마법사로서 얻을 걸 다 얻어서 그런지 기뻐하는 눈치다.

몬스터를 잡아서 나온 템도 많다.

* * *

0 숲의 팔 보호대 / 방어력 2

0 숲의 다리 보호대 / 방어력 2

0 숲의 신발 / 방어력 2

0 숲의 양손검 / 공격력 2∼6

0 숲의 장창 / 공격력 2∼6

0 숲의 방패 / 방어력 4

0 숲의 사각 방패 / 방어력 5

0 숲의 단궁 / 공격력 2∼4

0 숲의 장궁 / 공격력 2∼6

* * *

방어구는 모자란 부분들을 각자 적절히 챙겨서 나눠 가졌고 양손검은 이쁜소녀가 몇 번 들어보더니 한번 해보겠다고 가져갔다. 저 작은 체구의 소녀가 자기만 한 양손검을 휘두르려고 하다니…… 말려야 하나 싶은데 의외로 좋아하는 모습이라 그냥 해보라고 했다.

일단 장창과 활들은 쓸 사람이 없어서 판매하기로 했고, 겹치고 남는 방어구도 마찬가지로 처분하기로 했다. 내 물건은 시간 관계로 방패전사에게 처분을 맡겼다.

“수수료 좀 뗄 겁니다?”

“네, 고생 좀 해주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뭐 다 들고 날라도 할 말 없는 일이고. 게임하면서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템 하나에 수백만 원짜리가 되지 않는 이상은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다.

***

내가 잠들고 깨어나 PC방에 도착했을 때 로스트 스카이 홈페이지 게시판은 난리가 나 있었다.

―와…… 진짜 게임강국은 확실하네. 벌써 뚫었어.

―1서버 뚫었다며? 대체 누가 한 건데?

―인증 샷 들어갑니다. 족장 머리 팔아요.

―장난질 노노. 근데 진짜 뚫었더라. 오크 마을 변했음.

―하늘에서 빛이 내리는데 장난 아님.

―족장 잡고 뭐 나왔대요? 누가 제보 좀.

―족장이 들고 있는 글레이브. 끝판 무기 드랍함.

―글레이브 1억에 삽니다. 장난 사절.

―1원은 있냐?

게시판을 쭉 읽다가 진짜 궁금해져서 결국 2번 VRS에 연결을 했다.

“저거 뚫은 거 형네 맞아요?”

“어! 그거 형이다.”

이 형…… 진짜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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