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화 (4/1,404)

# 4

#4화 Lost Sky Online (3)

재중이 형 말대로 칼질 좀 하고 사람들한테 죽어서 귀환석이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딱히 지금 가봐야 이미 상당수의 유저들이 귀환석 근처에 갔을 테니까 의미가 없어 보여 일단 보류했다.

거기다 지금은 재수 없이 무기라도 떨어뜨리면 아예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고.

방랑하는 하늘 숲.

푸른 크리스탈에 느낌표가 떠 있어서 건드리니 퀘스트를 준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따로 주는데 메인 퀘스트는 주로 스토리 위주인 것 같고, 서브 퀘스트는 사냥 위주인 모양이다.

일단 제일 가까운 것은 여우 잡이.

북쪽으로 숲을 좀 가로지르니 주변의 큰 나무들이 좀 줄어들면서 중간중간에 공터가 제법 보인다.

그곳에서 생성되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여우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유저들.

얼핏 보니 여우가 리젠 돼서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간다.

모여서 잡는 사람도 있고, 혼자 뛰어다니는 여우를 따라 달리는 사람도 있고, 활을 쏘는 사람도 있는데 전혀 안 맞는지 다른 무기를 꺼내 드는 사람도 보인다.

저렇게 빨리 달려가는 작은 여우를 화살로 맞추는 건 거의 양궁 선수급은 돼야 할 것 같은데.

타켓이 딱 찍혀서 쏘면 그대로 가서 맞는다면야 쉬운 상대지만 이렇게 직접 몸으로 하나하나 컨트롤해서 잡으려고 하면 또 한없이 어려움이 올라간다.

“여우, 자리 구해요.”

운이 좋았는지 몇 번 외치지 않았는데 파티 초대가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창을 조작해서 파티 초대를 수락하고 들어가니 파티원 최대 수인 8명에 내가 들어가서 딱 8명이 되었다.

왼쪽 위에 순서대로 8명의 아이디와 HP바가 보인다.

파티장인 듬직하게 생긴 남자가 내게 자리를 지정해 준다.

“여우가 정말 빠르니까 그쪽에 서서 여우가 도망가면 잡아주시거나 못 지나가게만 해주세요.”

서로 적당히 눈인사만 나누고 리젠 장소를 바라보았다. 여우가 나와서 한쪽으로 달려가니 그 자리를 맡고 있던 남자가 못 지나가게 계속 몸으로 막아낸다.

“얼른 잡어요.”

그것을 두세 명의 남녀가 다른 곳을 더 틀어막아 도망갈 곳을 없앤 뒤에 남은 남자들이 단검을 들어서 마무리했다.

사냥이라는 것이 자리가 잡히면 그때부터는 반복일 뿐이다. 딱히 여우가 위험한 몬스터도 아니고.

“여우가 좋은 걸 주나요? 퀘스트가 완료됐는데도 사람들이 안 떠나네요?”

솔직히 여우 경험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딱히 돈을 많이 주지도 않는다. 잡기 쉽다는 것만 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 조금 잡고 나면 아마 다른 걸 잡고 싶을 텐데.

“여기서 조금 더 가면 바로 늑대가 나온다는데 늑대한테 물리면 HP가 너무 많이 깎여서 다들 여기서 아이템 얻어서 가려고 그런데요.”

내 물음에 오른쪽으로 가까이 자리 잡고 있던 푸른빛 롱 웨이브 헤어에 전체적으로 차분한 인상의 여인이 살짝 미소 지으면서 말해준다.

큰 눈매에 부드러운 눈웃음이 매력적이다. 얼굴은 작고 갸름하고,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큰 편인가?

단지, 그것보다는 목소리가 단아하게 차분한 것이 더 맘에 든다.

“여우에서 바로 늑대라니. 갭이 크네요.”

이야기하다가 보니 그새 여우가 나와서 내 오른쪽의 여인에게 뛰어온다. 이야기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건지 여인의 곁으로 여우가 재빠르게 빠져나가 버렸다.

그때 이미 눈으로 여우를 쫓고 있던 내가 여인의 뒤로 빠져나가는 여우에게 단검을 던졌다.

여우의 속도, 이동 경로, 회피 순간 등이 모두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조합되어 최적의 경로로 단검이 뻗어져 여우의 뒷덜미에 가서 박혔다.

여우가 맞자마자 부르르 떨더니 경직되어 축 처져 버린다. 아마 재중이 형이 말한 급소와 관련이 있는 모양.

“나이스!”

파티장이 격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망가 버리면 솔직히 자리를 벌리면서 잡으러 가긴 힘들다 보니 그냥 주변 다른 파티의 차지가 되어버린다.

“고마워요.”

옆의 푸른 헤어 여인이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한다. 사실 여우 한 마리 정도 빠져나가는 건 별문제도 없을 정도로 소소하다. 다만, 자신이 실수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에 좀 민감한 모양.

“그냥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감사할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게 쉽게 되나요. 놓치면 괜히 눈치 보일 뻔했는데 고마워요.”

고작 여우 한 마리로 꽤 화기애애해졌다. 고마워하는 여인이 눈앞에서 웃어주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재중이 형의 마음이 아주 약간 이해가 되네.

여우만 장장 두 시간 동안 주구장창 잡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지어준 별명이 여우 마스터다.

지나가는 여우를 단검을 던져 잡기 시작하면서 생긴 별명이라고 해야 하나.

마치 기계처럼 착착 여우의 목에 단검을 박아 넣는 모습이 신기했던가 나중에 가서는 구경하는 사람도 생겼었고.

옆에서 같이 여우를 잡으면서 주고받은 몇 마디가 맘에 들은 건지 여우를 대신 잡아 준 것이 맘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푸른 헤어 여인이 친구 등록을 권했다.

첫 번째 친구 등록이라…….

여인의 아이디는 챠밍.

뜻이 ‘매력적인’이던가.

“더 같이하면 좋을 건데 아쉽네요.”

“제가 이제 나가야 해서요. 다음에 해요.”

“네, 그럼 저 먼저 가볼게요. 귓말 씹으시면 안 돼요?”

“설마요. 사냥 재밌게 하세요. 계시면 연락드릴게요.”

재밌었지만 시간은 유한하고 게임을 할 시간은 적다.

아쉽다는 표정의 챠밍을 뒤로 하고 접속을 끊었다.

***

다음날 사람이 좀 몰리는 것 빼고는 특별할 것 없이 알바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접속을 했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

> 로딩 중…….

* * *

0 초보자의 팔 보호대 / 방어력 1

0 초보자의 다리 보호대 / 방어력 1

* * *

기어코 자기 전에 먹었던 아이템들을 그대로 드래그해서 착용하니 연한 갈색의 토시 같은 보호대가 팔과 다리를 감싸며 생성된다.

보호대를 보고 있는데 오른쪽 상단에 파란빛을 내는 모니터 표시의 이모티콘이 반짝거린다. 손가락으로 터치해 보니 이모티콘이 확 확대되면서 반투명한 푸른 창으로 변한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여긴 영상통화까지 되나 보네요.”

챠밍. 그녀가 푸른 창에 예의 그 얼굴을 비추고 있다. 깜짝 놀랐다. 영상통화라니.

“네, 저도 처음 알았는데 신기하네요. 제 모습 잘 보여요?”

“잘 보이네요. 사냥 중이셨어요?”

“아니요. 지금은 보부상 앞에서 정리 중이었어요.”

내가 나가고 나서도 상당히 오래 플레이했던 모양이다. NPC가 파는 물건을 알려주면서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도 알려준다.

이미 꽤 차이가 나는데도 접속하자마자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괜찮다. 누군가 반겨주는 건. 하지만 그와 별개로 게임은 따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니까 챠밍의 플레이 시간이 나보다 많은 모양. 이미 레벨에서 좀 차이가 난다. 아쉽지만 같이하긴 힘들겠네.

나중에 사냥터가 고정되거나 비슷해져 가면 모를까. 지금은 서로 불편하지.

하지만 내 이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챠밍이 찾아온단다.

“괜찮아요? 저는 어제 그대론데.”

“네, 그게 왜요?”

“렙 차이도 제법 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재밌기만 하면 되죠.”

뭔가 내 기준과 아주 다르다. 여자들은 원래 이런가? 뭔가 좋으면서도 마음이 복잡하네.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고 솔직히 나도 그렇게 반대할 생각도 없고.

“어떻게든 재밌게 만들어 드려야겠네요.”

“아뇨. 괜찮아요. 그럼 갈게요. 늑대 나오는 곳 정도에서 만나요.”

“네, 그럼 조금 있다가 뵐게요.”

영상을 끄고 걸음을 옮겼다. 조금 숲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이동하니 다른 공터에서 늑대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잠시 앉아서 사람들이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니 챠밍에게서 귓말이 온다.

<챠밍> 저 다 왔어요.

―네, 저기 보이네요.

챠밍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사실 오다가 길을 살짝 헤매서 늦었어요.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부드러운 미소가 눈에 와서 박힌다.

못 보던 장비가 제법 보인다. 그리고 이번엔 장궁을 들고 있다. 아무래도 저쪽이 더 잘 맞는 모양.

“으음, 일단은 파티 구해 봐요. 둘이 같이할 만한 파티가 있을 거예요.”

“네, 그럼 제가 구해보죠.”

파티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익숙한 파티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늑대 파티 구합니다.”

이제 겨우 3일 차인데 초보 존은 자리가 슬슬 남기 시작한다. 혼자 돌아다니는 늑대도 많고.

“여기로 들어오세요.”

아마 8명을 꽉 못 채운 파티가 많은 모양이다. 그중 적당히 가까이 있는 파티로 들어갔다. 남자 3, 여자 2명이 있던 파티다. 나와 챠밍이 들어가면 7명이 된다.

“반가워요.”

서로 대강 인사를 나누자 순하게 생긴 남성 파티장이 자리를 정해준다.

“기존에 하던 대로 일단 저랑 이 분이 늑대 정면을 방패로 막을 거고, 주호 님과 챠밍 님, 이쁜소녀 님이 오른쪽, 다른 두 분은 반대쪽을 돌면서 공격해 주세요.”

파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옆에 서게 된 여자를 봤다.

이쁜소녀라.

소녀풍의 귀엽고 부드러운 얼굴에 동글동글하고 큰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어깨선을 살짝 넘기는 연분홍의 회오리치는 듯한 헤어. 아마 롤 펌이던가? 신기해 보이는 헤어에 잠시 눈이 간다.

키는 챠밍보다 약간 작은 정도인가?

“그럼 갑니다.”

파티장과 또 다른 한 명의 남자가 방패를 들고 접근해서 시선을 끌어 근처로 가니 늑대가 돌아보고 경계하는 모습이다. 파티장이 방패로 한 번 가볍게 밀어내자 그제야 성난 표정으로 달려든다.

“웃차!”

늑대가 방패를 들이미는 파티장에게 이빨을 박아 넣으려고 하자 옆에 있던 사내가 슬쩍 방패를 옮기면서 방해를 한다. 저들의 임무는 시선 끌기.

다른 늑대는 안 붙게끔 적당히 늑대에서 멀어져서 대기하던 우리도 움직였다.

일단은 내가 왼손을 쓰다 보니 오른쪽에 서면 서로 방해가 될 수 있어 보다 왼쪽에 섰다. 난 늑대의 움직임을 좀 보고 움직이려고 했는데 이쁜소녀는 냅다 달려서 단검을 꽂아 넣었다. 보기와 달리 완전 저돌적인데?

소녀가 아니라 광전사다. 귀여운 외모와 너무 갭이 커서 일순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늑대가 돌아보려고 하니 반대편에서도 단검이나 창을 찔러 넣는다. 순식간에 몇 대 맞은 늑대가 놀라서 뒤로 물러서자 파티장이 다시 따라붙는다.

생각보다 합이 잘 맞다. 굳이 내가 없었더라도 잘 잡을 것 같다. 순하게 생긴 파티장은 생긴 것과 다르게 이를 악물면서 좀 왜소한 체격으로도 금방 달라붙어서 정면을 커버한다.

파티장의 센스가 나쁘지 않다. 맞을 때 맞아주고 들어갈 때 들어가면서 늑대가 좌우로 돌아보려고 하면 어김없이 방패로 늑대 앞을 막아선다.

늑대의 움직임을 죄다 읽고 있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그 덕에 이쁜소녀가 미친 듯이 개돌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파티가 잘 유지되고 있다.

내가 고작 두 번의 단검을 넣었을 때 이미 늑대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제야 파티장의 아이디가 눈에 확실히 들어온다.

방패전사.

그 덕분인지 전투 상황만 들어가면 광전사가 되어 버리는 이쁜소녀가 뒷걱정 없이 막 찔러 넣는 것이고.

다만 조금 더 신경 써서 찔러 넣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딱히 그러지를 않는다.

그냥 화풀이하듯 마구잡이로 찌른 달까. 저렇게 찌르기만 하면 기본 대미지는 들어가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그 증거가 바로 나다.

철저하게 목만 노리는 섬세함. 늑대가 어느 방향으로 튀어나가든 어느 방향을 움직이든 상관없이 내 단검은 철저하게 늑대의 목덜미만 노린다.

그냥 손을 뻗으면 목이요, 내려쳐도 목이고, 그으면 목이다. 내가 늑대였으면 환장할 노릇일 거다.

거기에 대미지 들어가는 자리도 거의 유사하다. 몹이나 사람이 대미지를 입으면 검으로 인한 검상은 붉고 길게 표시되는데 지금 늑대의 목에 난 상처는 한 줄 뿐이다.

난 여러 번 그었지만 줄은 단 하나. 이게 말해주는 건 정확히 그 자리를 다시 그었다는 거다.

지금은 혼전 상황이라서 다들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 예로 지금 내 옆에서 광전사처럼 무아지경으로 딜을 넣던 이쁜소녀가 어느 순간 딜 넣는 걸 멈추고는 나만 보고 있다. 저게 대체 뭐야 하는 표정? 딱 그 표정이다.

이쁜소녀는 지금 불가해의 어떤 경지를 눈에 접하고는 사고를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역시 멍한 표정으로 날 보는 챠밍도 있고.

***

“잠시 쉬죠.”

확실히 방패전사는 힘들만 했다. 늑대의 이동 경로, 패턴 등을 다 이끌어내면서 좌우의 파티원들이 딜 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저건 저것대로의 엄청난 재능이다.

방패전사 말고도 다른 파티원들도 지친 표정이다. 정말 쉴 틈 없이 잡았다. 무려 세 곳의 리젠 자리를 돌아가면서 달렸다.

“할 만한가요?”

챠밍은 나를 따라왔으니 내가 챙겨야 하는 것이 맞다. 렙 낮은 곳에서 사냥을 해서 약간 미안한 감정도 있기도 하고. 본인은 신경 안 쓰는 눈치지만.

“네, 덕분에요. 그리고 아까 그런 건 진짜 처음 봐요.”

아까 목만 같은 자리에 냅다 그어댄 것을 말하는 건가? 챠밍의 눈은 재미난 것을 본 초롱초롱한 눈빛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말도 안 되는 걸 봐서 믿기 힘들다고 해야 하나요? 주호 씨 가시고 저 파티 여러 번 해봤는데 비슷하게 하는 사람도 없었거든요.”

진기한 물건 보듯이 날 보는데 눈빛이 부담스럽네.

뭐, 재미난 구경이라도 시켜줘서 다행인가. 괜히 오게 해서 고생시키나 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이 가신다.

방패전사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날 보는 것이 느껴진다.

기존 파티에서 변한 건 나와 챠밍뿐인데 갑자기 잡는 속도가 두 배가 넘어가면 누구라도 눈치 안 챌 수는 없다.

그렇다고 챠밍이 엄청나게 활약한 것도 아니고 약간은 소극적으로 임했기에 자연스럽게 내게 시선이 온다.

방패전사가 슬쩍 몸을 들더니 조금 떨어져서 나무에 기대고 있던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대로 멧돼지를 잡으러 갈 생각인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딱히 다른 건 물어보지 않는다.

다만 다음 사냥터도 함께 하고 싶다는 의사는 확실히 내비친다.

“저야, 손발 잘 맞는 분들하고 가면 편하죠. 시간은…….”

일단 지금은 많은 여유가 있다고 느껴진다. 남들이 다 즐기는 수준의 RTP에서 움직이는 셈이니.

“네, 괜찮을 것 같네요.”

“혹시 친추 해도 되나요?”

“아! 물론. 괜찮죠.”

“감사합니다.”

“저도요.”

두 번째 친구인가?

그때 누가 뒤에서 내 상의를 잡아끄는 느낌이 든다.

돌아보니 이쁜소녀가 내 상의를 손끝으로 잡고 살짝 잡아당기고 있다.

“저도…….”

우물쭈물하면서 쳐다보는 소녀만 여기 있다. 누가 저 모습에 광전사란 이름을 붙일까.

“제가 고맙죠.”

“잘 부탁해요.”

“저도요…….”

***

“여기 물약 좀 받으세요.”

“예? 괜찮은데요?”

“방패로 막아도 HP 계속 내려가지 않나요? 전 물약 거의 안 쓰는 편이라 지금은 많이 필요 없어요. 어차피 귀환석 근처로 가면 물약 팔기도 하고.”

“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안 그래도 좀 간당하긴 했어요.”

애초에 탱, 딜, 힐이 정해져 있는 게임도 아닌데 방패전사의 저 방패를 다루는 재능이 없었으면 벌써 나가떨어졌을 거다. 이건 확실. 조금씩 떨어지는 물약으로 저만큼 버틴 것도 대단하다.

지금은 자의로 저러는 거지만 물약이 다 떨어지고 나면 결국 고생하는 건 본인이다.

“이제 다른 사냥터 가서는 확실하게 말씀하세요. 물약값도 앞으로 만만찮을 거예요.”

이건 재중이 형이 말해준 거다. 어설프게 하면 물약이 못 따라간다고. 방패전사는 잘 할 것 같긴 한데 저런 식으로 하다간 금방 말라 죽는다.

뭐 본인이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으면 바꾸겠지. 말해줄 수 있는 건 다 말해줬다. 옆에 따라다니면서 챙겨줄 순 없는 노릇이고.

그 모습을 본 챠밍도 물약을 적당히 덜어서 넘겨준다.

내가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챠밍도 방패전사가 고생한 것을 아는 모양이다. 그냥 살짝 웃으면서 건네준다. 아무 말 없이 내 의견에 따라주는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이것도…….”

참 그러고 보니 순한 애가 여기 하나 더 있었다. 물약을 꼼지락거리면서 건네준다. 귀엽네. 정말 스무 살 넘은 거 맞아?

* * *

이름 : 주호

레벨 : 2 ▲1

【근력 2 ▲1】 【민첩 1】 【체력 1】 【지력 0】 【마력 1】

0 초보자의 가죽 상의 / 방어력 2

0 초보자의 가죽 하의 / 방어력 1

0 초보자의 가죽 신발 / 방어력 1

0 초보자의 나무 방패 / 방어력 2

0 초보자의 팔 보호대 / 방어력 1 ◀ NEW

0 초보자의 다리 보호대 / 방어력 1 ◀ NEW

0 초보자의 장검 / 공격력 1∼4 ◀ NEW

* * *

장검을 그냥 들어봤는데 무겁다고 느껴져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근력을 올리니 가볍게 느껴지면서 휘두르기 편해졌다.

장검은 단검에 비해 최대 공격력이 1 더 높고 리치가 훨씬 길어져서 검 길이만 8, 90㎝ 정도 되어 보여 단검에 비해서 대미지 넣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이 게임은 공격을 받으면 어떻게든 HP가 깎이는데 방패로 막으면 특히 그 폭이 상당히 줄어든다. 몇 번 실험해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심지어 검으로 막아도 HP의 감소량이 줄어든다.

무심코 HP바를 보다가 알아냈는데 그 이후엔 되도록 검으로 막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완전히 정면으로 막는 것과 비스듬하게 빗겨 막는 것조차도 차이가 난다. 당연히 빗겨내는 것이 HP 감소가 덜하다.

이것으로 연습을 제대로 한다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결과적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티의 물약을 조금씩 모아서 방패 전사에게 넘겨주었다.

파티 했던 사람들 모두 다음 사냥터로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뭐 장비가 안 되는 사람도 있지만 어차피 모여서 때리는 셈이라 그 정도는 괜찮을 듯했다.

멧돼지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제법 많은 파티가 아직 사냥 중이다. 멧돼지가 이빨을 들이대면서 막 돌진하자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피하고 뒤에서 치고 그런 식이다.

확실히 사냥터마다 컨셉이 다 다른 것 같다. 이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려나.

저런 식의 돌진이면 마냥 방패로 막기는 힘들 것 같은데. 방패로 막아도 HP가 주르륵 내려갈 것이다.

반대로 돌진만 막아내면 그야말로 난도질이 가능할지도 모르고. 지켜보니 돌진 후 잠시 스턴처럼 경직되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돌진 자체가 스킬 같은데 사용 후 경직 같은 페널티가 있는 모양이다.

방패전사를 쳐다보니 고민 중인 것 같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입을 연다.

“이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고.”

“좋은 방법 있어요?”

“어차피 방패로 막아도 HP는 줄어요. 거기다 막으면 뒤로 밀려나 버리고.”

“아무래도 그렇죠. 그거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돌진하는 걸 못 막으면 한참 뛰쳐나간 멧돼지를 따라잡아서 때려야 하는데 시간 낭비죠.”

“그럼…… 이번엔 좀 무식하게 가죠. 멧돼지가 돌진하게 하고 방패전사 님이 정면에서 그냥 대놓고 막으세요. 그럼 파티원이 뒤에서 받쳐주는 거죠. 안 밀려나게.”

“그게 될까요?”

“안 되면 저기 저 사람들처럼 잡으면 되죠. 물약은 전부 몰아주는 걸로 하고 해보면 될 것 같기도 한데요?”

“흠, 한번 해보죠.”

방패전사가 좀 더 세밀하게 진형을 짜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는 멧돼지의 정면에 섰다.

“자! 와라.”

정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자 멧돼지가 그대로 돌진을 해온다.

“지금!”

방패전사가 방패를 내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방패에 몸을 기대 버티고 그 뒤로 두 명의 사내가 일렬로 붙어서 등을 받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가 방패전사 앞에서 그대로 멈춘다. 그대로 경직.

“찔러!”

옆에서 대기 중이던 모든 파티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서 칼침을 놓자 멧돼지가 아무것도 못 해보고 그대로 쓰러지면서 아이템을 뱉어냈다.

“하하…….”

“와…….”

방패전사는 내려간 HP를 채울 생각도 못 하고 멧돼지 앞에서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뭐 막는 기술도 필요 없다.

주변 파티원들도 다들 그냥 웃는다. 이건 노다지다. 잘못하다간 버그라고 욕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늘 밤 새죠!”

파티원 중 한 명이 기분 좋은 흥분에 몸을 들썩인다.

“이거 잘못하다 신고 들어오는 것 아니에요?”

“버그도 아니고 있는 시스템 그대로 쓰는 건데 왜 이게 버그예요?”

“아! 몰라. 먹고 고 합시다. 이런 걸로 뭐라고 하면 본사 가서 따진다.”

파티원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다. 결국은 하자는 거지.

솔직히 좀 쫄리네.

“자! 물약 나오면 방패전사 님한테 몰아주고 한 번 진하게 가봅시다.”

굳이 누군가 나서지 않아도 다 의욕이 충만하다. 좀 전까지 지쳐 있던 사람들 맞나?

아까 그 자리에 다시 멧돼지가 젠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패전사가 앞서 나갔다. 그러고는 그대로 쿵.

“찍어!”

슉슉슉 이건 내 입에서 내는 소리가 아닌지라.

칼날이 쉴 새 없이 멧돼지를 난도질한다. 이제 솔직히 나도 힘들게 목 안 딴다. 그냥 찔러도 죽는데. 그냥 이건 시체다. 박치기 실패하면 그냥 냉동 돼지가 되어 버리는데 더 할 것도 없다.

잡는 것이 워낙 빠르니까 순식간에 세 군데 리젠 자리를 차지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잡았다.

근데 이걸 바라보던 다른 파티도 똑같이 따라 하는 중이다. 모르긴 해도 내일이 되면 전 서버에 다 퍼지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은 꿀부터 빨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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