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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 (170/181)

인터뷰3

다음날.

태호와 제마는 Theo 옷 중 제일 평범한 옷을 입고 제일 화려한 옷은 호텔 컨시어지에 맡겨 놓았다. 나중에 사진 촬영을 할 스튜디오가 결정되면 차량을 이용해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청담동의 한 스튜디오 겸 카페. 2층은 스튜디오였고 아래층이 카페였는데 손님이 없었다. 특수한 목적의 카페인 듯했다.

"어서 오세요. 한국에서 보니 더 반갑네요."

입고 있는 옷으로 난 특별하다는 걸 외치고 있는 한 중년의 여인이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보그의 편집장 윤강희였다. 그 옆에도 비슷한 존재감을 가진 남자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허 태건입니다.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직을 맡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유창한 영어로 태호와 제마에게 인사를 했다. 태호는 허 태건이라는 사람이 마크와 같은 임을 직감했다. 옷차림에서 그런 DNA가 묻어나왔다.

윤강희는 제마를 보자 더 반가웠는지 아는 체를 했다.

"작년 SS 시즌 무대에서 마크 제이의 의상을 입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때도 눈부셨는데 지금은 더 파뷸러스 하네요."

두 편집장 이외에도 그들의 동행으로 보이는 사진사와 다른 기자가 있었는데 태호와 제마에게 소개했다. 윤 편집장은 그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세 사람의 포커스를 바로 자신에게 맞췄다.

"사실 한껏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언제 Theo가 미국 동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해외로 뻗어 나가는지를요. 그런데 미국 서부보다 한국에 먼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Theo를 아시나 봐요. 미국에서도 아는 사람이 드문데."

"호호호. Theo 브랜드는 저도 말로만 들었네요. 스티브 장례식 전까지는요. 그래도 로라가 Theo 옷을 입고 등장한 이후 업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죠. 처음 보는 옷이었거든요. 개인 부티크 삽에서 맞춘 옷인 줄 알았어요."

태호는 문뜩 Theo 브랜드의 이미지가 어떤지 궁금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들었어도 패션잡지 에디터의 의견은 그도 들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옷이라는 컨셉트로 초상화를 제작하는 회사로 에디터들 사이에서는 알려져 있어요. Theo 옷을 실제 본건 이번이 세 번째네요. 헬렌 아르노 여사가 입은 걸 본 적도 있어요. 사진이었지만."

"그래도 많이 보신 편이네요. 잘 안 입고 다니시던데."

태호의 말에 윤강희는 태호와 제마가 입고 있는 옷을 쓱 보더니 말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만 해도 디자이너 메이드네요. 누구예요?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윤강희는 Theo가 객원 디자이너를 활용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태호와 제마가 입고 있는 정장스러운 옷은 크리스천이 디자인한 활동복에 가까웠다. 장식이 엄청나게 달린 옷을 좋아하는 크리스천을 갈궈서 최대한 심플하게 제작한 옷이었다.

"크리스천이에요."

"아, 프로젝트 런웨이 우승자죠? 거기 있는 줄은 몰랐네요."

태호는 이 말을 듣자 크리스천에게 미안해졌다. 패션쇼를 일 년에 최소 2번은 하게 해주겠다고 장담했는데 옷 제작에 바빠 그러질 못했다.

태호가 못하게 막은 건 아니었고 그저 너무 일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를 추가로 고용하던지 수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와서 고생 좀 하고 있어요."

윤강희는 패션 얘기로 시작해서 로웰의 가족 이야기까지 물어봤다. 국적이나 군대 같은 태호가 곤란해할 질문은 일절 물어보지 않았으나 패션, 예술 그리고 돈에 대한 건 집요하게 물어봤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돈은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을 뿐 기사로 내보낼 것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혹시 Theo의 고객이 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본토 쪽 갑부들도 관심 있어 합니다."

태호는 본토 쪽 갑부들이 자신의 그림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새삼 놀랐다. 좀 더 클래식한 작품들에 더 관심이 많은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트로피 같은 거예요. 태호 작가님이 컨셉트를 정말 잘 잡으신 게 중국 최고 부자들 사이에선 태호 작가님 작품이 자신의 격을 올려줄 거로 생각하고 있다고 하네요. 마치 미국 동부 부자들처럼 말이죠."

태호는 본토의 돈만 많은 부자가 가진 허영심으로 이해했다.

물론 이런다고 태호가 아무나 고객으로 받는 건 아니었다. 회사 홈페이지가 이를 보여줬다. 여전히 연락처만 남기라는 게 전부였다.

"한국에 연락책을 하나 두려 합니다. 아시아 시장은 진작에 관심이 있었는데 미국에 연락할 생각은 안 하시더군요."

"그럼 혹시 어느 정도 할당하실 생각이세요?"

몇 명이나 그려줄 거냐는 질문이었다.

"정해진 건 없네요. 자주 올 수도 있고 일 년에 한 번 올 수도 있죠."

태호의 말을 윤강희는 고객을 가려 받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새삼 세상에서 제일 비싼 작가라는 게 떠올랐다.

기사로 쓸만한 정보는 다 건진 두 에디터는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에 돌입했다. 사실 두 사람은 인터뷰도 좋았지만, 세계에서 고용하기 제일 힘든 두 사람을 피사체로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호텔에서 배송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두 에디터의 즐거움은 배가 됐다.

태호는 정장 스타일이었는데, 검은색 재킷에 흰 티셔츠를 안에 입었고 재킷에는 흰색 페인트를 붓으로 뿌린 듯한 패턴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제마가 입은 드레스는 얇은 흰색 벨벳으로 온몸을 감싼 드레스였다. 몸을 감쌌지만 천이 얇았던 탓에 제마의 몸의 굴곡을 거의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옷은 발목까지 오게 디자인되어 있어 발에 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활동성을 강조한 옷이기도 했다.

목 아래와 가슴부터 어깨 뒤에 걸쳐져 있는 풍성한 주름은 천사가 날개를 접은 듯하기도 했고 로마 시대 의복인 토가의 끝자락을 어깨에 걸친 듯하기도 했다.

복잡하지만 눈에 탁 뜨이지는 않는 패턴이 들어가 얼핏 보기엔 단순한 듯 보이지만 절대로 단순하지 않은 옷이기도 했다.

마크의 작업실에서 벨라가 스케치한 디자인을 보고 반한 태호가 강탈하듯 낚아채 제마에게 선물한 옷이기도 했다. 벨라에게 평소보다 두 배 가까운 돈을 지급했지만 태호는 벨라 에게 한참을 갈굼 당해야 했다.

"왜 제마를 뉴욕의 톱 모델로 손꼽는지 알겠어요. 그 블링블링하고 러블리 한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는 돌변하는군요."

윤강희는 카메라 앞에서 확 달라진 제마를 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태호를 보고도 놀랐다. 제마 옆에서 미소 짓는 모습이 너무나 멋졌기 때문이다.

약 30분의 촬영을 마친 후 촬영팀은 태호와 제마를 놓아주어야 했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의상이 더 있었다면 아마 1시간이건 2시간이건 촬영을 이어갔을 게 틀림없었다.

*

인터뷰가 끝난 후, 태호는 부모님의 소개로 한 부동산 중개 법인의 임원을 만났다. 이름은 김 강후. 보통 김 상무라 불리는데 나이는 40대 후반이며 건설사의 부동산 거래 부서에서 일하다가 전직한 케이스였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태호는 큰 건물을 올리기 위해 땅을 알아본다고 방문 목적을 설명했다.

"빈 땅이 없습니까?"

"글쎄요. 당장 서울에 건물을 허물고 새로 올릴 만한 빈 땅은 없다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있다면 죄다 법원에 가 있는 물건들이지요."

소송이나 재개발 예정지가 아닌 이상 서울에서 쓸만한 땅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얼마 전 경복궁 옆을 지나 가보니 빈 땅이 보이긴 하던데···."

"경복궁 옆에 송현동 땅이 그나마 빈 땅인데 국내 대기업이 미술관을 지으려 하다가 실패했죠. 태호 씨가 지으려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외곽으로 나가면 그래도 자리가 있을 겁니다."

"외곽이라면 어디입니까? 제가 서울밖에 몰라서."

"경부선 라인 따라 땅을 알아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태호는 벽에 걸린 지도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평생 서울 밖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는 태호에겐 서울이란 이촌부터 광화문까지 그리고 서초구와 강담 일대가 다였다.

한참 지도를 쳐다보던 태호는 신사동이나 삼청동에 있는 건물들을 구매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 곳 다 괜찮을 겁니다."

김 상무는 태호를 힐끗 봤다. 유명한 화가라는 건 알지만 얼마나 부자인지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혹시 자금은 어느 정도나 동원하실 수 있습니까?"

태호는 천장을 바라보며 암산을 시작했다. 미리 계산을 해왔어야 했는데 너무 생각 없이 방문했다.

태호가 들고 있는 구글 주식은 전체 주식의 1.12%. 현재 구글의 가치가 200조를 넘어섰기에 단순 계산으로 태호가 보유한 구글 주식의 가치는 2조가 넘었다.

태호의 진정한 부는 들고 있는 구글 주식이 아닌 해마나 꾸준하게 팔리는 작품에 있었다. 초상화 판매액만 한해 8천만 달러가 넘었고 다른 그림이나 조각 등의 예술 작품이 8천만 불 정도에 거래되었다. 직원들 봉급 주고 윌슨에게 수수료를 주고 세금을 낸 후 태호의 호주머니에 떨어지는 순수익은 6~7천만 달러 정도였다.

"1천억 정도는 쓸 수 있으니까 괜찮은 땅이 있으면 연락해주세요. 확인하고 송금하겠습니다."

1천억이면 아무리 수수료를 적게 잡아도 자기 몫으로 수십억은 떨어질 것이다. 김 상무는 사무실을 떠나는 태호의 뒤통수에 90도 인사를 했다.

다음날, 좋은 소식이 있긴 바란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태호와 제마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뉴욕에 도착한 후 얼마 뒤.

신문과 잡지에 태호와 제마의 인터뷰 기사가 났다. 신문에는 태호 사진과 함께 최근 작품 활동과 아랍 에미리트와의 관계 등 예술 활동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뤘다. 거기에 처가인 로웰 가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강 기자는 인터넷과 뉴욕에 거주하는 지인과 여의도에서 일하는 증권사 직원까지 연락해 로웰 가에 관해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뉴욕에 100년 이상 터를 잡고 방귀깨나 뀌던 가문이었으며, 허드슨강 다이빙이 신종 레포츠였던 대공항 시절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을 바탕으로 뉴욕의 알짜배기 부동산을 줍다시피 해, 부를 일군 집안이었다.

로웰 가의 재력보다 더 놀라운 건 마틴과 엘리스가 정관계에 미치는 힘이었다. 마틴은 골프광으로 뉴욕의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을 주말에 초대해 라운딩을 즐겼다. 이런 골프 라운딩이 마틴 때부터 한 게 아니라 마틴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집안의 전통이다 보니 그 누적된 힘이 대단했다.

엘리스도 대학 때 알고 지내던 동창들이 워싱턴에서 다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퍼스트레이디인 힐러리와의 친분이 상당하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그 옛날 주지사 선거에 나갈 때부터 엘리스는 선거자금을 지원해왔다.

조금은 딱딱한 신문기사와는 반대로 잡지에는 태호와 제마 커플의 온갖 시시콜콜한 가정사가 메인 기사로 쓰여있었다. 연애 시절 이야기부터 뉴욕과 서울에서의 결혼식까지.

미국의 전통적인 명문가와 피부색이 다른 한 동양인과의 로맨스는 무작정 외국을 동경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외국 패션계와 연예계 소식을 비교적 정통한 두 잡지사의 에디터도 쉬이 접하지 못한 스토리였다.

그 동양인이 한국인이며 지금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사실 또한 이야기의 매력을 더했다. 더군다나 잘생겼으며 젊었다. 이제 3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잘생긴 예술가라니, 유부남인 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한 신문기사와 두 개의 잡지 기사가 공개되자 꼴 보기 싫은 양키 사진이 쌍으로 올라왔다는 욕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였고 대다수는 무관심했다. 그래도 몇몇은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국적까지 포기하게 되어 슬펐다는 태호의 인터뷰에 동정과 이해를 보냈다.

드러난 댓글은 그러했지만, 몇몇 태호에게 일반 사람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존재했고 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조용히 의견을 교환했다. 미술계와 패션업계 사람들이었는데, 둘 중 패션업계 사람들이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사진 정말 잘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얜 한국에 왜 온 거냐? 정말 Theo라는 브랜드 런칭 때문에 온 거냐?"

"그렇다잖아."

"한국에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얘 한국에서 결혼식 올렸잖아."

"부모가 한국인이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해도 자기 기반이 대부분 미국인데 굳이 한국에서 결혼식 한 거 보면 아예 한국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는 건 아니다."

"지인이 그 결혼식 참석했는데 아랍 에미리트 대통령이 대형 화환을 보내왔다더라. 하객들이 화환 보고 다 놀랐다던데?"

"왜?"

"너무 거대해서. 화환값으로 수백만 원은 족히 들었을 거라고 하더라."

"그런 화환이 있긴 한 거냐?"

"그렇다나 봐. 화환이라기보단 꽃밭이었다고 하던데?"

"그런데 아랍 에미리트 대통령이 걔한테 왜 화환을 보내?"

"거긴 대통령이 국왕이야. 국왕이랑 친분이라도 있는가 보지."

"대단하다. 로웰 가만 해도 갑부 중의 갑부던데 아랍 에미리트 국왕과는 어떤 친분이래?"

"그림 그려줬나 보지."

"그럴 수는 있겠다."

이런저런 얘기가 두서없이 교환되는 사이 누군가 물었다.

"걘 왜 이렇게 한국에 집착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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