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랍 에미리트의 제안6 (161/181)

아랍 에미리트의 제안6

샤키르의 다른 요구사항을 받은 헬렌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카르바지오에 이어 부셰라니. 태호는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작가들을 다 찾을 작정인 것 같았다. 헬렌은 일단 카르바지오에 집중했다.

이주 뒤, 카르바지오를 잘 이해하고 또 그처럼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찾았다.

만프레디 팔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59년생인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 대학에서 전통회화를 공부했으며, 피렌체 예술 복원 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복원 활동을 했다. 몇 년 전 도미, 필라델피아의 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전통 화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일을 했다.

헬렌은 그의 작품을 태호에게 보내 접촉을 할지에 대해 문의했다.

"그림이 아주 좋네요.“

태호의 승인을 받자 그녀는 바로 만프레디를 접촉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그와 접촉한 후 미팅을 잡았다. 뉴욕 근처 뉴저지에 사는 헬렌은 차를 몰고 필라델피아로 향했다. 한 시간 반가량의 거리였다.

만프레디가 은퇴 직전의 이 노기자를 만나겠다고 결심한 건 그녀가 아주 재밌는 제안이 있으니 들어만 보라고 해서였다. 처음 연락을 받고 전화를 돌려 알아보니 나름, 이 바닥에 오랜 기간 일을 해온 기자라는 걸 알았고 믿을 만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슬프지만 흔한 이야기였다. 아내와 사별하고 장애가 있는 딸에게 더 좋은 치료와 재활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왔다. 딸의 치료 수준은 이탈리아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가격도 훨씬 비싸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곤궁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일 년 전부터 작품을 제작해 인터넷을 통해 팔아 삶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크게 개선은 안 된 그런 상태였다. 이런 그에게 헬렌의 제안은 지금 상황을 타개할 어떤 기회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게 했다.

정장을 입고 나타난 헬렌은 맨 인 블랙에 나오는 에이전트처럼 보였다. 다만 눈썰미가 아주 좋은 만프레디가 보기에는 프로페셔날하게 꾸미고 나온다고 했지만, 왠지 어설펐다. 그런데도 만나자마자 비밀 유지서를 내밀며 그를 기분 나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뭡니까 이게? 난 그림 그리는 일이라 해서 나온 겁니다만."

"그 일이 보안을 요구하는 일이에요."

"불법적인 일이거나 국익에 저촉되는 일입니까? 포르노를 그리는 것 같은?"

"그런 건 아니에요. 이 작업이 언론에 공개될 경우, 참여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어요. 물론 우리는 작품을 대중에 공개할 생각이 없어요. 프라이빗 컬렉터를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작품이 공개될 경우 이 그림을 주문한 우리부터 문제가 생겨요."

"혹시 그림을 그린 후 죽여서 입막음하려는 거 아니오?"

"참여한 사람이 하도 거물이라 그러진 못할 거에요. 호호.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했네요. 사인하실 건가요?"

"보수는 어떻소?"

"지금 얼마 버시나요?" 헬렌은 직접 물어봤다.

"십만 불 정도요."

만프레디는 살짝 머뭇거리며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고 말했다.

한 육칠만 불 정도 벌지만 크게 반올림해 말했다고 짐작하는 헬렌.

"난 당신의 보수에 대해 협상할 권한이 없어요. 하지만 못해도 지금 버는 거에 두 배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헬렌은 자신이 약속받은 돈을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혹시 선금은 가능하오?"

"역시 내가 답해줄 수 없어요. 그건 다른 사람이 알려줄 거에요."

질문만 하고 비밀 유지서에 사인을 하지는 않으려 하자 헬렌이 손을 뻗었다.

"사인하실 건가요? 아니면···."

헬렌이 서류를 집어넣으려 하자, 그는 가지고 있던 펜으로 비밀유지 서약서에 단숨에 사인한 후 헬렌에게 다시 건넸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자세한 프로젝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전모를 들으며 오히려 편안해졌다. 좋아하는 작업을 하면서 돈도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정도 벌 수 있다니 나쁘지 않았다.

보안 문제가 있지만 자기가 개인 컬렉터라도 이런 그림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안도 그쪽이 더 신경 쓸 것이다.

작품이 공개되어도, 실질적으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릴 권태호라는 작가가 목이 날아가지 채색을 담당할 자신의 목에 시미터를 들이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경력단절. 이 년간의 커리어가 비어버리는 점. 그리고 계약직이라는 점. 그밖에도 자잘한 문제가 더 있었다. 학교 일도 계약직이지만 이건 앞으로 이 년간 기반을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옮기는 일이다. 렌트 계약도 남았고 딸 아이 학교를 옮기는 일도 문제다.

이런 만프레디의 사정을 들은 헬렌은 위쪽에 보고를 올릴 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삼일 뒤, 태호는 샤키르로부터 만프레디의 사정을 들은 후 자신의 작업장에 방문을 요청했다. 토요일 점심때쯤 나타난 만프레디를 만난 태호는 그를 작업실로 안내해 자신이 미리 작업한 캔버스를 보여줬다.

"이걸 저기에 그리는 겁니까?"

태호의 대답을 들은 만프레디는 피그먼트와 오일, 붓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능숙하게 물감을 섞고 팔레트에 옮기며 작업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시작하겠습니다."

만프레디는 큰 붓을 들고 거침없이 색칠해가기 시작했다. 밝은 부분부터 칠해가기 시작했다. 태호가 캔버스에 스케치는 이미 끝내놨지만 이렇게 망설임 없이 그려갈 줄 태호도 짐작하지 못했다. 복원 전문가라기에 작품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생각보다 빨리 칠을 하시네요."

"카르바지오만 수십 년을 보고 따라 그렸소. 스케치도 되어있고 완벽한 샘플도 있는데 채색에 주저할 이유가 없소."

강한 이탈리아 억양에는 강한 자존심도 묻어나왔다. 옆에서 만프레디가 채색하는 걸 한 시간 넘게 바라본 후 태호는 지금 작업을 마무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잘 그리시네요. 가능한 한 빨리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태호의 긍정적인 말을 들은 만프레디는 밖에서 기다리는 샤키르와 이차 미팅에 들어갔다. 태호는 만프레디가 밤에 들었고 이번 프로젝트 이후에도 계속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샤키르는 태호가 계약직 채용 후 정규직 전환에 환호하며 샤키르가 원래 생각했던 연봉에서 오만 불을 깎았다. 그래도 만프레디에 제안한 연봉은 18만 달러였다. 왕가가 의뢰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곤란했다.

"언제부터 일하면 되오?"

만프레디는 두 달 남은 학기를 마치고 학교를 나오기로 했다. 대신 그는 수업이 없는 날에 두 시차를 끌고 뉴욕에 와서 작업했다.

주말에는 딸과 같이 작업실로 출근했다. 만프레디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휠체어에 탄 딸이 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했다. 책을 읽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다 지치면 근처로 나가 산책을 하던지 식사를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은 두 사람은 뉴욕에 온 김에 이사 올 집도 알아보고 차도 바꿀 생각이었다. 중고차 대신 큼지막한 SUV를 골랐다. 두 사람에겐 이탈리아를 떠난 이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

한 장면의 스케치를 완성하는데 3~4주 정도의 시간이 보통 걸렸다. 좀 큰 작품의 경우 시간이 더 걸렸는데 바르나 전투나 우흐드 전투같이 캔버스의 크기 (385cm x522 cm)도 크고 등장인물도 많은 장면은 6~7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바르나 전투와 우흐드 전투는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그릴 생각이었다. 바르나 전투는 자크 루이 다비드, 우흐드 전투는 앵그르의 화풍으로 그릴 생각이었다.

*

한 명씩 투입되는 작가의 수가 늘어났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프리랜서 화가들로 채워졌다. 그림 그리는 실력은 출중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데는 실패한 화가들이었다. 물론 계기가 되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면 언제라도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갈 실력은 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로코코 화풍으로 그림을 채색해줄 작가는 40살의 뉴욕 예술대 강사 멜라니 스튜어트.

신고전주의 화풍은 프리랜서 화가인 데니스 윌리엄.

또 다른 신고전주의 화풍은 프리랜서 화가인 캐서린 알렌.

렘브란트처럼 그림을 잘 그리는 프리랜서 화가 미야 카터.

고야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는 고등학교 교사 앨란 루이즈.

자크 루이 다비드처럼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 화가 제이커 쿡.

반 고흐를 너무나도 사랑해 그의 스타일로만 30년째 그림을 그린 프리랜서 화가 줄리아 홀.

총 8명의 화가가 6개월 사이에 걸쳐 고용되었고, 그들은 태호의 작업실에 모여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갔다. 만프레디를 제외하면 모두 뉴욕이나 뉴저지에 사는 화가였고 출퇴근이 어려운 몇몇은 작업실 근처에 원룸을 얻어 이사했다.

태호 포함 10명의 화가가 12 작품을 두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각자 자신이 맡은 그림만을 채색했지만 6개월 정도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그림에도 익숙해져서 진도가 느린 작품에는 서로 달라붙어 채색했다. 시너지가 대단했다.

- 무함마드가 분쟁의 진원지인 흑석을 옮기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 권태호, 만프레디

-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히라 동굴에서 만나는 장면 - 카라바조 - 만프레디

- 아내 카디자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모습 - 프랑스아 부셰 - 멜라니 스튜어트

-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무함마드가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모습 - 수묵화에 채색 - 권태호

- 무함마드와 열두 제자들의 모습 - 렘브란트 - 미야 카터

-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드는 모습 - 미켈란젤로 - 권태호, 만프레디

- 바드르 전투 - 자크 루이 다비드 - 제이커 쿡

- 우흐드 전투 - 앵그르 - 캐서린 알렌

- 메카를 무혈 입성하는 모습 - 고야 - 앨란 루이즈

- 카바 신전에서 수많은 우상을 부수는 장면 - 귀스타브 쿠르베 - 데니스 윌리엄

- 산을 옮기기 위해 직접 걸어가는 장면 - 반 고흐 - 줄리아 홀

- 아내 아이샤의 품에서 죽는 장면 - 피카소 - 권태호

만프레디가 수석 화가 역할을 맡아 작품 제작을 지휘하고 있었다. 태호는 이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Theo 일도 많았고 언론 인터뷰나 광고 촬영도 종종 있어 작업실에 계속해서 눌러 앉아있기 힘들었다. 제이크는 이 일보다는 Theo 일로 바빴다.

작업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조금 지난 1월 그림이 모두 완성되었다. 말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건 굳이 뉴욕에서도 태호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샤키르는 초창기에는 프로젝트 세트업을 위해 바빴지만, 반년 정도 지난 후 팀이 안정적으로 세트업 되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면서는 여유로워졌다. 뉴욕에 거의 고정으로 눌러살면서 가끔 고국에 갔는데 이제 그의 호시절이 끝나간다. 태호와 팀이 전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었다.

샤키르는 아랍 에미리트 대사관과 연계해 거대한 12 작품을 항공편으로 아부다비에 보냈다. 아부다비에 도착한 작품은 모든 절차를 다 무시하고 곧바로 대통령 비서실로 향했다.

경호실에서 나온 요원들의 안전 검사가 진행된 후 그림은 대통령 궁 지하에 있는 전시실로 옮겨졌다. 초대형 작품이 12점이나 된다는 소식에 회의실을 개조하여 만든 전시실이었다.

국왕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얀'은 가슴이 설렜다. 이렇게나 빨리 그림을 완성할 줄 상상도 못 했고 이렇게 큰 작품들을 제작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림은 대통령실 비서들을 통해 옮겨져 전시실 벽에 걸렸다. 국왕은 그림이 잘 걸리기까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이날이 오기까지 일 년 반을 궁금해도 물어보지도 않고 기다린 그다. 그런데도 십 분도 안 걸리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