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에미리트의 제안5
그림을 그리는데 걸린 다른 문제는 무함마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였다. 이는 매우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정말 목숨이 달린 문제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무함마드의 그림에는 얼굴이 지워지거나 글씨로 대체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약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면 누군가가 시미터를 들고 찾아와 지하드를 외치며 태호의 머리를 댕강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일을 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는 작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을 보니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 않으면 그림이 너무나도 미완성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태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냈다.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고 마르면 흰색 천을 덮기로 한 것이다. 무함마드의 얼굴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얼굴은 전부 태호가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채색을 담당할 작가에게 괜한 부담을 주기는 싫었다.
카라바조처럼 채색해줄 화가를 찾는 일은 샤키르에게 넘겼다. 이 그림은 존재만으로 많은 문제를 초래하는데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그것도 카라바조처럼 채색해 줄 화가를 찾는 게 쉬운 작업일 리가 없었다.
위험 부담은 둘째 치고 종교적인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이 그림을 이슬람교도가 그려야 할지, 종교가 없는 사람이 그려야 할지 등등 판단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꺼내기만 해도 거품 물고 논쟁 배틀을 벌일 종교 윤리 전문가가 수천 명은 되었다.
보안도 문제고 보수를 얼마나 제시하느냐도 문제였다.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몽땅 샤키르에게 떠넘긴 것이다.
채색을 도와줄 화가를 찾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샤키르는 처음에는 '어떻게 찾지'라며 고민하다가 이면에 놓인 수많은 문제를 깨닫고 하얗게 질렸다. 샤키르는 몇 시간 고민하다가 상부에 보고하기로 했다. 이런 문제는 바로바로 위에 보고해야 한다. 자신은 손과 발이지 머리가 아니었다.
샤키르의 보고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사람은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들어도 골치 아픈 이 문제를 국왕에게 보고할 생각이 없었다.
보고의 다른 의미는 책임을 넘기는 일이다. 이런 골치만 아프고 답도 없는 문제를 국왕에게 넘겨봐야 좋은 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어차피 자신이 머리를 굴려 판단하고 책임까지 지는 게 자연스럽다.
비서실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삶의 지혜가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에게 의사결정을 떠넘기는 것이다. 그는 샤키르에게 화가를 찾는 조사를 진행하고, 그렇게 찾은 화가의 프로파일이 담긴 자료를 태호에게 제공하여, 태호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들라고 지시했다. 태호가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면 보안과 보수 등등의 다른 문제는 샤키르가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비서실장의 지시가 담긴 이메일을 받은 샤키르는 이메일을 읽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답변이 아닐 수 없었다.
샤키르는 화가에 대한 조사를 처음부터 전문 업체에 맡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찾다 보니 이런 화가를 찾는 조사업체는 없었다. 인터넷에 화가들을 고용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지만 주로 작은 회사들이 회사 로고나 만들고 일러스트를 제작하는데 유용할 뿐 자신이 찾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이런 전문가를 찾을 수 있는 전문가를 고용하기로 했다.
*
헬렌 헌트는 아트넷과 아트 뉴스에서 오랫동안 일한 기자로 이 동네 마당발로 통했다. 특히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화가들과의 인터뷰를 자청해서 하러 다녔고, 미국 안에서는 물론 유럽 그리고 종종 남미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작가를 만났다. 그녀에게 이색적인 제안이 온건 3일 전으로 오늘에서야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샤키르가 헬렌에게 한 제안은 작가들에 대한 조사였다. 2년 계약직이었지만 연봉은 12만 달러로 그녀가 지금까지 받아온 연봉 중에 제일 높았다.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고 뉴욕으로 출장이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재택근무기에 뉴욕과 가까운 뉴저지에 사는 그녀는 이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업무 난이도와 비교하면 연봉이 너무 높았다. 헬렌은 샤키르를 만나보고 결정을 할 요량으로 뉴욕으로 향했다.
샤키르를 처음 만난 헬렌은 이 잘생긴 남자가 마치 첩보 영화의 에이전트처럼 느껴졌다. 공무원 냄새도 좀 났는데, 중동 국가 소속인 듯했다. 완벽한 뉴요커처럼 말은 하지만 35년 동안 사람을 만나는 기자 일을 한 헬렌의 감각은 이 남자가 뉴요커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샤키르는 헬렌에게 정말 필요한 말만 했다. 그것도 분명한 경고가 담긴 말이었다.
"이 일은 보안이 생명인 일입니다. 헬렌 씨를 위해서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제가 원하는 스타일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실력 좋은 화가를 찾아주시면 되는 일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Curiosity killed the cat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알면 다친다). 이 일의 전모를 알아봐야 헬렌 씨에게 결코 좋지 못합니다."
"이미 고양이 수십 마리는 죽인걸요. 그래도 아직 잘 살아 있네요. 호기심이 없는 기자는 없답니다. 난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십 년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쓴 일을 해온 사람이에요.
이 일이 불법적인 일과 연루된 겁니까? 충분한 설명 없이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게 되면 이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아시죠? 특히나 소송의 나라인 미국에서."
오히려 샤키르를 압박했다.
"불법적인 일은 아닙니다. 단지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까 두려울 뿐입니다. 이 일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헬렌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하는 데에 위화감을 느꼈다. 팽팽 돌아가는 그녀의 머리는 그림을 금기시하는 한 종교가 떠올랐다.
"혹시 이슬람과 연관이 있나요?"
"헬렌 씨가 이 비밀 유지서에 사인해야지만 설명 드릴 수 있습니다."
샤키르가 내민 비밀 유지서에는 온갖 흉측한 말들이 가득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거 사인한 이후 이 일로 누구에게 죽어도 난 모르고 책임도 안 짐'에, '만약 어디 가서 오늘 일을 밝히면 우리가 대신 죽여줄 수도 있음'이었다.
헬렌은 마음속으로 고양이를 죽였다 살렸다 했다. 이렇게 호기심을 자극받기도 오래간만이라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사인하고 난 후 새로운 제안이 있나요?"
헬렌은 뭔가 다른 제안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작가를 설득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조건으로 추가로 5만 불을 지급할 의향이 있습니다. 5만 불을 지급할 조건에 대해서는 사인하면 말씀드리지요."
헬렌은 비밀 유지서에 사인했다. 그녀의 얼굴은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위험보다는 지금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게 더 급해 보였다.
"저는 권태호 작가를 위해 일을 합니다. 권태호 작가는 현재 중동의 한 국가의 의뢰를 받아 작품을 제작 중이며, 저는 그 작품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헬렌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속으로 환호했지만 다른 의문이 생겼다. 중동에서 무슨 그림을 의뢰했기에 이 난리를 치는지 말이다.
"권태호 작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기에 이런 보안을 요구하는 건가요?"
영화 조스의 서서히 커지는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가 헬렌의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위대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헬렌은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브가 자신인 것 같았다. 놀란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질문을 이어갔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죠?"
"몇 명 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보안 수준은 어떤가요?"
"헬렌 씨가 비밀을 지켜주시면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요. 앞으로 헬렌 씨가 섭외할 작가가 비밀을 지켜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지요."
...
헬렌이 오히려 샤키르를 다그치며 추가적인 위험요소가 없는지 살폈다.
"추가 수당에 관해 얘기해보죠."
"헬렌 씨가 조사한 작가는 헬렌 씨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작가를 섭외하시든 아니면 섭외한 작가가 비밀을 지키고 이 작업을 맡아 진행해 주도록 설득을 해주셔야 합니다."
샤키르의 얘기는 헬렌보고 이 일에 완전히 동참하라는 얘기였다. 샤키르는 헬렌이 넘어오도록 처음부터 이런 판을 짰다. 호기심을 이기는 사람은 성인 외에는 없다.
*
헬렌의 업무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웠다. 컨설팅 업무가 보통 그렇듯 전문가에게는 쉬운 일이고 아닌 사람에게는 이보다 어려운 일이 없었다. 헬렌에게는 이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카르바조처럼 그리는 화가를 찾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태호의 맘에 드는 카르바조를 그려줄 수 있는 작가를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채색이라도 말이다.
*
샤키르와 헬렌이 채색을 도와줄 작가를 찾는 사이 태호는 다음 작품에 대한 스케치를 마쳤다. 무함마드가 아내 카디자 빈트 쿠와일리드의 품에서 편하게 잠드는 모습이었다.
보통 카디자로 불리며 40세에 25세의 무함마드를 남편으로 맞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해로했다. 오늘날 이슬람이 있게 한 사람 중 하나로 지금도 매우 큰 존경을 받는 여인이었다.
무함마드가 40살에 이슬람을 창시하기 전까지 행복하면서도 종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끈 사람이 카디자이기에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은 매우 행복해 보이게끔 구상했다.
카디자는 튜닉 (목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짧고 헐렁한 옷)에 모자가 달린 맨틀 (외투)를 입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튜닉을 입은 무함마드가 그녀의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카디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눈에 봐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태호는 카디자를 30대 중반의 현숙한 여인으로 무함마드를 지혜가 가득한 20대 후반 정도의 외모로 묘사했다. 이런 달달한 장면을 묘사하기에 매우 적합한 미술 양식이 있다. 로코코다. 로맨스물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처럼 두 등장인물을 묘사해 두 사람의 사랑과 젊음을 한껏 드러냈다.
튜닉의 소재는 고급 양모로 했다. 튜닉에는 지금도 이슬람 사원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목 테두리를 금실을 넣었고, 실크 자수도 튜닉 끝자락에 넣어 그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기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화려함이었다. 7세기에 메카에 왕조가 있었다면 왕족들이나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배경은 야자수가 자라는 오아시스 마을이었다. 두 사람이 앉은 곳에는 공작새와 사자 문양이 들어간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그 뒤로는 오아시스와 야자수가 그 뒤에는 낙타와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태호는 샤키르에게 프랑스아 부셰처럼 그려줄 화가를 찾았다. 샤키르는 고민하기도 싫다는 듯 이를 헬렌에게 토스했다.
- 무함마드가 분쟁의 진원지인 흑석을 옮기다
-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히라 동굴에서 만나는 장면 - 카라바조의 그림
- 아내 카디자의 품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모습 - 프랑스아 부셰
-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무함마드가 사막을 홀로 걸어가는 모습
- 무함마드와 열두 제자들의 모습
- 메디나에서 이슬람 공동체를 만드는 모습
- 바드르 전투
- 우흐드 전투
- 메카를 무혈 입성하는 모습
- 카바 신전에서 수많은 우상을 부수는 장면
- 산을 옮기기 위해 직접 걸어가는 장면
- 아내 아이샤의 품에서 죽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