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마리아 조각상1
빌바오의 수석 큐레이터 제이슨 베이먼트는 오랜만에 태호에게 전화를 걸어 특이한 소식을 전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회고전을 한다고요? 그가 벌써 은퇴할 나이가 되었어요?"
"은퇴하고 싶어서 회고전을 여는 건지, 회고전을 열기 위해 은퇴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지금까지 은퇴를 입에 올린 적이 없는 작가이니 진짜 은퇴할 수도 있고."
"언제부터인데요?"
"11월 4일부터. 마우리치오는 진작에 뉴욕에 있다네."
"전시까지 얼마 안 남았네요. 그를 만난 건 지난번 베네치아 비엔날레 때 스쳐 가듯 한번 본 게 다긴 해요."
"자네 얘기를 꺼내니 만나고 싶어 하더군. 언제쯤 올 텐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안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로 말이나 당나귀를 이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당나귀를 전시실에 가져다 놓거나, 박제된 말이나 당나귀를 천장에 매달거나, 벽에 쑤셔 넣었다.
그의 작품은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아니 논란을 일으킬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낸다. 대표적인 게 '그 (Him)' 라는 히틀러가 성당에서 기도하는 작품이었는데,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히틀러에 피식 웃을 법도 하지만 가톨릭 신자들과 유대인 단체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작품이었다. 히틀러가 신 앞에서 회개할 기회를 줬다는 이유에서였다.
1960년생으로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는 정규 미술 교육 과정을 받은 적이 없었다. 다소 많은 나이와 독학한 미술가라는 핸디캡이 남들의 이목을 끄는 작품에 제작하는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뒤샹의 예술관을 닮았다고 하는데, 태호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뒤샹도 못 튀어서 안달이었으니까. 아마 뒤샹의 실력이 자신보다 못하다며 비웃을 사람이 카텔란이었다.
태호는 마우리치오가 은퇴한다는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 제작 말고도 큐레이팅이나 출판업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냥 '몇 년 작품 안 만들고 딴 일 하겠다'라는 말을 은퇴로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마우리치오의 작품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죽음이다. 박제된 말이나 당나귀, 다람쥐 등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은 분명히 죽음을 유쾌한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호는 이러한 방식이 어미 소와 송아지를 반 토막 내서 폼알데하이드에 담가 버리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관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라고 생각했다. 태호는 위트와 풍자가 혐오감을 일으키는 그것보다는 훨씬 자신의 미학과 맞았다.
평소 다른 예술가들과 교류가 활발한 편은 아닌 태호였기에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만남이 기다려졌다.
*
다음날 오후 1시.
태호와 제마는 미술관에서 제이슨과 에이미를 만나 전시 계획에 대해 들었다. 이미 전시관 중앙 로비에는 마우리치오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작품은 모두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작품을 모두 천장에 매달겠다고요?"
"어때 근사하지 않은가?"
"네, 정말 기발해요. 사실, 이 달팽이 건물이 작품 전시하기엔 좋진 않잖아요. 아예 중앙에 작품을 다 걸어버리면 관람객들이 작품에 더 집중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문제는 있겠네요."
태호는 미술관 가운데에 뻥 뚫린 빈 곳에 작품이 걸릴 모습을 상상했다.
"전시 자체가 좀 어수선해지지. 넓은 공간에 쫙 펼쳐 놓고 보는 게 제일 좋은 전시이긴 할 텐데···. 이럴 때는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이 좀 부럽기도 하고."
"그렇죠. 거긴 워낙 공간이 넓어서 아무리 작품 수가 많아도 다 넣을 수 있으니까요."
"어쩌겠나?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마우리치오는요?"
"곧 올 거야. 자전거를 타고 와서 빨리 오지 않아. 이 바닥에 있는 사람 중에 아침형 인간이 누가 있나? 봉급쟁이인 나나 일찍 출근하는 거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요?"
"근처 첼시에 방을 얻어서 생활해. 걷기 싫다며 그렇게 다니더군. 나름 볼만해."
*
2시쯤 나타난 마우리치오는 190cm 는 되는 키에, 청바지에 갈색 후드 티를 입었다. 말상인 얼굴에 큼지막한 눈코입이 얼굴을 조밀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이 꽉 찬 느낌이랄까. 길지는 않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연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회색 머리카락이 많이 보였다.
제마를 보자 이탈리아 사람 아니랄까 봐 느끼하기 이를 데 없는 인사를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하고 내버려 두면 볼 키스도 할 태세이기에 태호가 이탈리아어로 말렸다.
"기름 떨어질 거 같아요."
마우리치오는 깜짝 놀랐다.
"자네 이탈리아어도 하나?"
"가끔요. 이탈리아 남자를 만났을 때는 꼭 하는 편이에요."
"이탈리아어를 하는 동양인은 처음 보는 거 같아. 밀란에나 가야 있지, 뉴욕에서도 보기 쉽지 않거든."
머쓱한 표정을 짓는 마우리치오.
태호는 마우리치오의 발음에서 이탈리아 억양이 살짝 남아 있긴 하지만 매우 유창한 영어를 하기에 해외에서 주로 활동한다고 짐작했다.
"해외에 오래 계셨나 봐요?"
"첼시에서만 18년째 살고 있네. 밀란에 자주 왔다 갔다 하긴 하지. 일 년의 반은 뉴욕 반은 밀란에 있으니. 난 지금 국적도 미국이야."
이번엔 태호가 놀랐다.
"뉴욕에 계셨어요? 생각도 못 했네요."
"여기서 멀지도 않지만, 놀러 오라고는 차마 못 하겠군. 집 꼴이 말이 아니니."
예술가의 집에 놀러 갈 생각은 태호도 없었고 마우리치오도 없을 것이다. 깔끔한 예술가의 집은 정말 드물다. 특히나 여기저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일수록 더하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일 것이다. 태호가 보기에 그는 일 벌이기를 매우 좋아할 것 같았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태호와 마우리치오는 천장에 하나둘 매달리는 작품을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대한 모빌 같았다.
"밧줄이 투명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아쉬워요. 흰색이어도 방해가 되긴 하네요."
"맞아. 작품 무게를 버티는 투명한 밧줄은 없었어."
"아쉬웠겠어요?"
"더 아쉬운 것도 있었기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어."
"뭐가 더 아쉬우셨길래요?"
"미술관 외관을 핑크색으로 칠하자고 했거든. 너무 비싸다고 거절당했어."
핑크로 칠하자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기발했다. 태호는 이 작가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차렸다. 무언가 다르거나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혹은 볼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다면 마우리치오는 만들었다. 그것도 유머를 섞어서 말이다. 그 증거들이 지금 천정에 걸려있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바오로 2세'
'냉장고 안에 있는 여성 베시'
'찢어진 캔버스'
"저건 뭐죠?"
태호는 비교적 아래쪽이면서 관객 쪽과 가까운데 위치한 한 여인의 반신상을 가리켰다.
"스테파니"
"저런 작품도 만드셨어요?"
"피터 브렌트라고 잘 나가는 중년 사업가가 있는데, 그의 아내인 스테파니 시모어의 반신상을 만들어 달라고 의뢰를 받았어. 저 조각상의 별명이 뭔지 아나?"
"아뇨."
"트로피 와이프."
트로피 와이프란 성공한 중년 남성이 새로 맞은 아름답고 젊은 아내를 말한다.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얻는 트로피 같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태호는 바로 이해했다. 깨달음도 얻었다.
"이거 잘 팔리겠는데요."
태호와 마우리치오는 작품과 예술에 대한 자기 철학을 얘기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그렇게 두런두런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태호는 마우리치오가 자신을 보고자 한 이유를 물어봤다.
"궁금한 게 있었거든. 자네는 왜 회화에만 집중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 조각을 하지 않는지 얘기하고 싶으신 거예요?"
"다르게 얘기해야 오해를 사지 않겠군. 난 자네의 '빛의 마리아'를 매우 좋아해. 그 그림을 오래 보고 있으니 욕심이 생기더라고. 자네는 혹시 그 빛의 마리아를 스테인리스로 제작해 보지 않겠나? 지난번 베네치아 미국 전시관에서 자네 작품을 보긴 했네만 스테인리스로도 나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나오지 않아서 왜 그런가 궁금했거든."
태호는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조각상 제작을 마우리치오가 꺼내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만들 생각은 했었는데 다른 일로 잠시 잊어버렸네요."
"자네의 비범한 솜씨라면 대단한 작품이 나올 거 같은데, 여태껏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서 자네를 찾았어. 제프 쿤는 그 풍선 같은 토끼와 강아지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않나?
빛의 마리아로 다양한 재료로 조각을 만든다고 생각해보게. 토끼와 강아지뿐만 아니라 저런 스테파니 따위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게 아름다울 거야."
마우리치오의 설명을 얘기를 듣는 태호는 생각에 잠겨 잠시 멍해 있었다. 그러다가 태호는 빛의 마리아를 제작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건 시장에서의 비평 때문이에요. 베네치아 비엔날레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글도 있어요. '태호, 또 빛의 마리아를 우려먹다!' 신경을 안 쓰고 싶어도 자꾸 쓰이네요."
한복, 호박 시리즈, 탱화, 우울 시리즈, 행복 시리즈, 살롱 시리즈 등 여러 작품을 제작했지만, 태호를 유명하게 만들고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 깊숙한 각인된 태호의 이미지는 빛의 마리아의 작가다. 잊을 만하면 빛의 마리아 작품을 제작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신경 쓰지 말게. 평생 한 작품만 제작하는 사람도 있어. 자네가 제작한 시리즈가 몇 개야? 그리고 그 정도 비판에 움츠릴 정도면 나는 어쩌라고?"
만드는 작품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욕먹는 게 일상인 마우리치오에겐 태호가 겪는 비난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네가 똑같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빛의 마리아라는 모티브를 이용할 뿐이지 않은가? 그런 말에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렇게 따지면 제프 쿤도 작품 활동 접어야 해. 그 빌어먹을 토끼보다는 자네 작품이 훨씬 더 훌륭하거든!"
마우리치오는 태호 옆에서 자신의 작품이 설치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
마우리치오의 얘기에 용기를 얻은 태호는 빛의 마리아 조각상을 제작할 결심을 했다. 그리고 작업실에 한쪽에 마련된 칠판에 빛의 마리아를 어떻게 조각으로 구현할지 구상했다.
'실리콘'
'스테인리스'
'황금 도금'
대리석은 썼다가 지웠다. 금속 가공 기술이 뛰어난 지금 굳이 여러 가지 단점이 많은 돌로 조각상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스테인리스 조각상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클레이 (찰흙) 모형을 만든다.
2. 클레이 모형을 이용해 유리섬유 모형을 만든다.
3. 유리 모형에 맞는 철판 조각을 만든다. 평평한 철판을 손 망치를 이용해 구부리고 유리섬유 모형의 겉면에 대며 맞춰본다. 철판의 모양이 완벽하게 맞을 때까지 철판을 두드린다.
4. 철판 조각들을 용접한다.
5. 표면을 거울처럼 광이 날 때까지 다듬는다.
6. 도금하고 싶다면 여기에 황금을 덧입히면 된다.
실리콘은 조금 더 단순하다.
1. 클레이를 이용해 석고모형을 만든다.
2. 실리콘을 붇고 식힌다. 실리콘은 식으면 약간 수축하기에 고려해서 클레이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
3. 실리콘에 색을 입힌다.
태호는 둘 다 시도해 보기로 하고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다. 지난번 비엔날레 때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시 겪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일회용 작업이 아니라 꾸준히 관련 작품을 제작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