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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란색4 (Happy Yellow) (142/181)

행복한 노란색4 (Happy Yellow)

처음 윌슨은 갤러리를 찾아오는 모든 고객에게 별 제한 없이 그림을 팔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울증 환자들에게 우선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림을 사가는 고객 중에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걸 알고 난 후 윌슨은 그림의 판매 우선순위를 바꿨다. 짧은 기간이지만 우울증 환자들로부터 감사 연락을 어마어마하게 받았기에

사전에 준비한 그림이 완판되고 난 후 주문 제작으로 바뀌었는데 윌슨은 주문 시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요구했다.

"그냥 팔면 되지 소견서를 왜 요청하는 겁니까?"

이런 불만들이 쇄도했지만, 윌슨이 겨우겨우 달래서 돌려보냈다.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코스트코 고객센터 노릇까지 하려니 피곤했다.

*

로버트는 뉴욕을 몇 번이나 들락거린 후에야 태호의 그림을 손에 넣었다. 자신이 몰리라고 생각하는 골든래트리버가 담긴 그림을 구매했다. 거금 십만 불이 들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새 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현금만으로는 부족해 대출까지 받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니 대만족이었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정신과 상담은 여전히 받고 있지만, 약의 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게 하는 약을 줄여준 것만으로도 십만 불 이상의 가치를 했다. 게다가 이 그림은 나중에 되팔 수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현금 20만 불을 주고 사겠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고 그 가격은 계속 우상향이었다. 이 그림은 소비재가 아닌 자산이었고 자신이 한껏 즐길 수 있으니 삶의 퀄리티가 올라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이 있었다.

"그림 하나로는 부족한데···."

로버트에게 최근에 생긴 고민이었다. 그림을 집에 두자니 직장에서도 자꾸 그림 생각이 났다. 일종의 분리 불안 증세였는데 들고 다니던지 그림 하나를 더 사지 않는 이상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모마와 빌바오에서 나오는 행복 시리즈 안내 책자를 들고 다녔지만 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뉴욕으로 다시 날아가 그림을 주문하고자 했지만 지금 주문해도 이년 뒤에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패닉에 빠졌다.

*

로버트 같은 사람이 늘어나자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요즘 계속해서 연구되는 분야이긴 했지만, 태호의 그림을 모델로 발표되는 논문이 조금씩 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심리학회.

학회 참석자들은 논문 발표가 끝나자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최근 근황을 공유했다. 근래의 가장 핫 토픽은 태호의 그림 얘기였다. 오늘도 그와 관련한 발표 사례가 두건이나 있었다.

"요즘은 태호 작가의 그림 아니면 논문을 못 쓴다는 얘기가 나온답니다."

"그렇게 영향이 큽니까?"

"이대로 가다간 교과서에 실릴 판입니다. 모수가 크진 않아도 소수의 환자에게는 효과가 확실합니다.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가벼운 환자들은 끊은 일도 있어요. 이러다 보니 효과가 없는 환자들도 구매하고 그러니 그림은 구하기 어렵고 그렇습니다."

"무슨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아티팩트 같군요. 우울증을 고치는 그림이라. 허허, 참···. 무슨 문제는 없습니까?"

"의존이 심한 환자는 그림과 떨어지면 분리 불안 증세를 보인다고 합니다. 농담 삼아 부적처럼 그림을 들고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답니다."

"카피 된 그림을 걸면 될 거 아닙니까? 요즘 프린터가 얼마나 잘 나오는데."

"그걸로 해결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태호는 일 인당 한 작품밖에 안 팔고 두 번째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림값만 올라간다고 하는군요."

"누가 보면 태호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어떻게 그림으로 우울증을 고쳐요?"

노학자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중년의 학자는 심각했다.

"태호의 그림이 효과가 있고 영향을 미치는 환자 수가 전체 비중을 따지면 작지만 그래도 수백 명은 되다 보니 이런저런 말이 도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플라세보 효과까지 있다 보니 큰 효용이 없는 환자 중에 태호 그림을 구해보려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고요."

"그림은 어떻게 구한답니까? 가격은 얼마고요?"

노학자는 호기심에 물었다.

"10만 불인데 조만간 올릴 거랍니다. 시장가는 25만 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고요."

유명 작가의 그림이 비싸기는 하지만 25만 달러면 생존 작가의 작품가 중 거의 최고 수준이었기에 노학자는 깜짝 놀랐다.

"생존 작가 작품이 뭐 그리 비싸답니까?"

"태호라는 작가가 빛의 마리아라고 Faceless의 완성작을 제작한 작가인데 작품이 천만 달러에도 심심찮게 거래가 되다 보니 10만 달러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뉴욕에 있는 제 친구들도 이 친구 작품을 못 구해 난리라고 하네요."

"허허. 우리도 하나 사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교수님은 구매하셨나요?"

"지금은 우울증 환자들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장에 풀린 물건도 없답니다. 지금 가격이 오르는 것도 매물이 없어서고요. 아무래도 환자들은 팔 생각이 없을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림이 있다가 없으면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더군다나 우울증 환자들이니 더 그렇지요."

"그 그림들은 어디 가야 볼 수 있답니까?"

노학자는 최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 눈으로 그림들을 확인하고 싶었다.

"뉴욕 모마와 빌바오에서 전시하고 있답니다. 선생님, 기회가 되시면 같이 가서 보시겠습니까?"

"그럽시다. 조만간 날 잡아서 같이 갑시다. 고마워요."

*

태호는 폭증하는 주문량에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무리 스케치가 빠르고 채색도 빠르다지만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량은 천하의 태호도 감당이 안 되었다.

"대형 프린터기라도 설치해 놓고 할까?"

"똑같이 그리게? 추천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

눈 밑에 다크 서클이 한가득한 제이크가 와서 태호를 말렸다.

"조금씩 다르게 그리는 것도 힘들어. 한두 작품이어야지!"

태호는 시리즈를 그리면서 조금씩 구도를 바꿨다. 그래서 비슷한 그림은 있어도 같은 그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너에게 고맙다는 연락이 정말 많이 늘었어. 불평도 늘었지만."

"알아, 안다고. 나도 신기해. 우연의 우연으로 몇 명이 좋아진 거 같은데 지금은 무슨 기적의 신약처럼 떠받들고 있잖아. 혹시 내 그림 따라 그리는 사람 없어? 있을 거 같은데?"

태호의 말에 제이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술계 최신 트렌드를 알려줬다.

"학생 중에 이 행복 시리즈를 따라 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야. 우울 시리즈도 마찬가지고. 색으로 사람의 심리를 움직일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적 작품이 늘었다고 하더라. 당장 우리 학교부터 그렇데."

태호는 예상 범위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렇지만 그다음 말에는 정말 놀랐다.

"네 작품 카피본이 중국에서 제작되어 넘어온다더라. 태호에게 영감을 받아 제작한 뭐 뭐 뭐. 이런 작품들. 그림은 조잡하데."

"그럼 불평은 뭐야? 왜 안 파냐는 불평이야? 비싸다는 불평이야? 제작이 늦어지는 데에 대한 불평이야?"

"그 세 개는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고, 색다른 불평이 늘었어. 나체화가 왜 없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은 행복 시리즈를 보는 게 아니라 우울 시리즈를 봐야겠네. 안 그래도 성욕이 넘쳐 흐를 텐데."

"아, 그쪽이 아니고 발기 부전이래."

"그건 약 먹으라고 해. 좋은 약 나왔잖아."

"응. 다른 불평으로는 그림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 없냐고 물어보더라. 이건 생각해볼 문제야."

태호도 알긴 했지만, 해결책을 생각 못 해 지나갔던 문제다. 자신이 자선 사업가도 아니기에 마음에 걸렸지만 눌렀다.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벽화를 그려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야."

"벽화? 골치 아픈 거 아닐까? 벽화에 대한 소유권 문제도 그렇고. 손상하면 보수하기도 어렵고."

"그래도 네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이만한 이벤트가 없어. 뉴욕을 네 그림으로 채운다고 생각해봐. 돈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너 돈은 남아 넘치잖아. 돈 쓰는 데도 없더구먼."

"돈 쓸데가 왜 없어. 너무 돈이 많이 나가니까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거지."

"뭐에 쓰게? 부동산?"

"미술관."

제이크는 한동안 태호의 스케일에 놀랐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했다. 늘 보다보니 가끔 이 녀석의 사회적 지위를 잊게 된다.

"돈 많이 들겠다. 어디에다가 짓게?"

"뉴욕시? 가능하면 맨해튼."

"너 지금 10만 불에 파는 거 가격부터 올려야 해. 언제 벌어서 건물 올릴래? 벌어놓은 돈은 잘 굴리고 있고?"

"그럭저럭. 주식 사라고 해서 주식 사고 있다."

"무슨 주식?"

"구글인가? 그거 사라고 하던데?"

"누가?"

"제마네 부모님이. 너도 관심 있으면 그거 사둬. 눈 밑에 다클 서클까지 생기게 일하면서 돈 벌어 뭐해?"

"학비 갚고 있지."

"아, 미안. 그런데 학비보다 주식이 나은 거 같은데. 알아서 해라."

"구글이라고 했지? 나도 돈 생기면 사봐야겠다."

*

태호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롱 아일랜드의 제마 집을 방문해 제마네 가족과 식사를 했다. 태호는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문제를 마틴에게 꺼냈다.

"그러니까 행복 시리즈를 살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안 좋은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거잖아.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거네?"

"그렇죠."

"세금 혜택도 없는데 하려고?"

"정말요?"

"어, 없어. 교통비 정도나 줄까?"

"할 수 없죠. 재능 기부보다는 마케팅으로 접근하는 거니까."

"마케팅 이런 말은 하지 말고 재능 기부로 하자고. 알아서들 해석할 테니. 내가 여기저기 알아볼 테니 기다려보게."

한 달 뒤, 데이비드를 통해 연락이 왔다.

"뉴욕 시장은 하고 싶어 하는데 여론 눈치를 보고 있대. 아무래도 특혜 시비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별것이 다 특혜다."

"그러게.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네가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밀어붙여 보겠데."

"분위기?"

"시장에게 탄원서가 제법 갔나 봐. 제일 많았던 요청이 센트럴 파크에서 네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는 거였다고 하네. 시장도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안인데 정말 센트럴 파크에 네 그림을 걸면 100% 특혜 시비 생긴다. 안 그러겠냐?"

"분위기를 만들어 보라는 건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인데 비용 얼마 안 나오는 광고판이나 네 사무실 건물 외벽 같은 데에다 걸어봐봐. 그게 반응이 좋으면 언론사 취재 올 테고. 그때 넌 '재능 기부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요' 이러면 되지 않을까?"

데이비드의 아이디어가 제법 괜찮다고 생각한 태호는 컴퓨터로 제작한 도안을 외부 업체에 넘겼고 외부 업체에서 출력한 그림을 작업실 외벽에 설치했다. 제법 돈이 들어갔지만 좋은 게 좋다며 설치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태호는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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