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노란색2 (Happy Yellow)
제이크는 LVMH에서 고강도의 인턴 교육을 받고 난 뒤 Theo로 복귀했다. 예술 전공이며 그중에서도 회화 전공인 자신이 왜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알기도 싫었지만 8만 불 연봉에 혹해 당장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예술 전공자 중에 예술을 본업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이만한 직업이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제이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찌 되었든 비슷한 업종에서 일하는 것이었고 무려 태호 밑에서 일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봉급도 높았고.
태호 이전에 가장 비싼 생존 작가였던, 물론 지금도 작품가가 올라가 가장 비싼 아티스트라는 타이틀 경쟁을 하는 제프 쿤은 많은 직원을 고용해 작품을 제작하지만, 봉급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그쪽에 일했던 전직 직원을 우연히 만나 들은 얘기로는 자신 같이 대학을 바로 졸업한 지 얼마 안 될 때는 업계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를 받았다. 여기 업계가 워낙에 봉급이 낮아 지금 자신의 봉급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조금은 우쭐해져 어깨에 힘이 들어갔을 때였다. LVMH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자신과 같이 인턴을 하던 직원인 캐시와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인턴 과정을 마친 직후였다.
"정말 Theo에 다녀? 태호 밑에서 일한다는 거지? 우와~. 좋겠다. 정말 정말 정말 부럽다. 나도 거기 다니고 싶은데."
"너 의상 쪽 아니었어? 왜 Theo에 다니고 싶어 하는 거야?"
"거기가 설립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돈은 제일 잘 주는 곳이야. 몰랐어?"
"의상 쪽이 많이 주나 보네."
"의상 쪽도 많이 주는데, 내가 듣기로 회화 쪽도 많이 주는 거로 아는데?"
"얼마나?"
"구체적인 액수는 몰라. 그냥 떠도는 얘기니까. 작품 판매가의 일정 비율을 준다고 들었어."
제이크는 기껏해야 1~2%를 예상했다.
"대충 얼만지 알아?"
"5-10% 정도?"
제이크는 충격에 빠졌다. 지금 회화 파트에서 일하는 8명의 직원이 태호와 일 년에 그리는 그림의 판매가가 아무리 못해도 천만 달러는 가뿐히 넘어서는데 5%만 잡아도 일 년에 50만 불이고 이걸 8명이 나누면 6만 불이었다. 회화 파트 직원들이 못해도 기본으로 6만 불은 커미션으로만 받아가는데 자신은 본봉만 8만 불이니 자신이 최저였다.
"어떻게 아는 거야?"
"회사 디자이너들 수입 정보가 아름아름 퍼져 있으니까. 태호도 여기 디자이너고 마크가 가끔 태호 얘기를 해서 그게 여기까지 흘러 들어오나 봐."
이제 막 제대로 된 사회 초년생이 되었지만, 제이크가 가졌던 우쭐함은 그 약효가 채 석 달을 가지 못했다.
*
제이크가 Theo로 복귀하자 태호는 막히고 고민했던 부분을 제이크에게 토스했다. 제이크는 두 달 정도의 인턴 교육을 통해 아티스트의 요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일을 어떻게 직접 하는지를 배운 게 아니라 일을 어떻게 시키고 결과를 확인하는지를 배웠다.
LVMH 같은 지주회사는 수많은 자회사를 가지고 있고 상당수 직원의 일은 자회사에 자료를 요청하고 그 자료를 취합하여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주 업무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문제를 파악해 적절한 자원을 배분하고 그에 소요된 비용이 적절했는지 평가하는 일도 많았다.
제이크는 이 업무를 상당히 빨리 배웠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있는 데다가 LVMH에서 작정하고 제대로 가르쳐서 그렇다. LVMH에서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Theo 때문에 떠맡았던 일을 제이크에게 떠넘겼다. 진작에 떠넘겼어야 하는 일인데 이런 일에 모르쇠를 펼치는 태호와 폭군 아르노 회장 때문에 냉가슴만 앓았었다.
LVMH에서 짜준 업무 리스트와 태호의 업무가 겹쳐지자 일이 폭주했다.
"태호, 우리 직원 하나만 더 뽑자."
태호는 이를 다르게 알아들었다. 이번 행복 시리즈 작업을 위해 추가 직원을 뽑을 생각이었기에 그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 직원도 뽑아야 해?"
제이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스케치만 했는데도 작품이 너무 커서, 지금 페인트 붓으로 칠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얼마나 크기에?"
"제일 큰 건 4m x 8m."
"게르니카냐?"
"그거보다 조금 더 크지."
"게르니카가 그리는데 2~3달 걸리지 않았어?"
"그런 그림이 한 16개 있다고 생각해봐. 내가 50개월 동안 저 그림만 그릴 수 없잖아. 게르니카 보다 공은 더 들여야 할 것 같은데."
제이크는 순간 몇 명을 고용하는 게 적절할지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태호에게 그냥 물었다. 이미 계획이 있을 것 같았다.
"몇 명 고용하고 싶어?"
"5~6명."
"그걸로 돼?"
"일단은."
"그럼 뽑는 김에 내 백업도 하나 뽑자. 지금 이대로 가다가는 나 휴가도 못가겠다."
"그렇게 일이 많아?"
제이크는 LVMH가 자신에게 떠넘긴 일을 설명했고 태호는 입맛만 다셨다. 자신이 버는 돈에 비해 얼마 안 되는 돈이고 다 경비처리 하는 돈이지만 왠지 돈 뜯기는 기분이 났다.
"그럼 의상 쪽에 하나 뽑아야겠네. 추천할 사람 있어?"
"그 직원은 내가 헤드헌터 회사에 알아볼게. 그림 쪽은 어떻게 할 거야?"
이 말에 태호는 골치가 아파졌다. 지난번 그 8명 직원을 뽑을 때 겪었던 그 혼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공지를 하면 아마 더 많은 작가가 지원을 할 테고 자신은 이 일로 한두 달은 꼼짝도 못 하고 입사 지원자 포트폴리오만 쳐다봐야 할 판이었다.
"그냥 내가 전시회나 졸업 발표회 돌아다니면서 알아봐야겠다."
"그러지 말고 내가 윌슨 씨하고 수소문해서 20명 정도 찾아볼 테니까 그중에서 골라. 넌 지금 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야."
태호는 순순히 동의했다. 그거보다 나은 방안도 없을 듯했다.
"계약 기간은 얼마로 할 거야?"
"일단 1년"
"오케이."
한 달에 한 명꼴로 5개월에 걸쳐 5명의 직원을 행복 시리즈 전담으로 뽑았다. 젊은 직원 위주로 뽑아 먼저 뽑은 8명의 직원보다 실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작업 속도가 빨랐고 성장 가능성도 컸다.
*
6명이 12개월 가까이 그림에 몰두하고 나서야 16점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시간이 남을 줄 알았지만 결국 모자라 대부분 직원이 계약 연장을 했다.
작품을 제작하며 태호는 꽤 괜찮은 부수입을 챙겼다. 콜라가 담긴 작품은 거의 다 완성 시킨 후 콜라 회사에 연락했다.
"콜라가 들어가는 그림은 완성을 했는데 어떤 브랜드를 써야 할지 몰라서요. 펩시에서 안 하시면 코카콜라 것 써야죠. 네, 그럼 생각해보시고 연락해주세요."
똑같은 내용을 코카콜라에도 전달했다. 사실 돈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 더 컸다. 결국, 한 푼이라도 더 써낸 펩시가 선택되었다.
야구 주제는 쉽게 해결이 됐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제마에 물어보자 벌떡 일어서더니 외쳤다.
"당연히 양키즈지!!"
제마의 박력에 순간 놀랐지만, 태호는 뉴욕에 메츠 팬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메츠는?"
"뉴욕에 메츠라는 야구단이 있었어? 뉴욕은 양키스만으로 비좁아."
제마는 그날 밤 처음으로 베갯머리 송사가 무엇인지 태호에게 보여줬다.
첫차는 마틴이 추천한 GM이 가져갔다. GM 쪽 임원과 친분이 있었는지 전화 몇 통을 하더니 10만 달러와 대형 캐딜락 한대를 받아 왔다.
"그쪽에서 그 그림 완성되면 자기에게 팔라는군."
"아직 가격도 결정 안 된 걸요?"
"그렇게 과한 가격만 아니면 사고 싶다더군. 우선권을 가지고 싶다는 거지. 어찌할 텐가?"
"우선권은 드리지만, 나중에 시장가로 판다고 하세요."
차까지 해결되자 남은 문제는 축구였는데 이건 뉴욕이 아닌 LA로 결정됐다. 뉴욕시를 대표할 팀이 아직 창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3층 작업실은 마치 금빛 현찰을 찍어내는 공장으로 변했다. 황금으로 반짝이는 맥주잔이 한쪽에 쌓여있고, 황금빛 축구화로 은빛 코너킥을 차는 데이비드 베컴을 보며 사람들은 웃고 얘기하며 맥주잔을 들이켰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와이키키 해변에는 보기만 해도 즐거운 골든래트리버와 살짝 들어 올려 품어주고 싶은 새끼 골든래트리버가 뛰어놀고 있었다. 뉴욕의 한 학교에는 금박의 임시 공휴일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황금빛 학사모를 하늘로 집어 던지는 졸업식도 근처에서 거행되고 있었다.
태호와 5명의 직원은 16점의 대형 작품이 완성된 후 남은 계약 기간 작은 크기의 행복 시리즈를 제작했다. 살롱 그림을 완성한 직원들도 그 후에 동참,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고 건조해 한 곳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어떤 예술가도 이런 작업 속도를 내긴 힘들 것이다.
*
빌바오와 모마에 특이한 전시회 안내문이 떴다.
제목은 행복과 우울. 이름만으로는 별 특별해 보이는 게 없는 전시회지만, 이 전시회가 뉴욕 대형 미술관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린다는 것이 신기했고 안내문에 있는 경고 문구는 더 특이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병력이 있으면 출입을 제한함."
두 미술관은 후원회에 있는 정신과 의사들까지 초빙해서 그림이 관객에게 미칠 영향을 확인했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감수성이 예민하거나 작품에 감정 이입이 크게 되면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접근을 제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행복 시리즈를 본 정신과 의사들은 작품에 큰 호응과 기대감을 보였다.
"이렇게 관객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부여하는 작품을 본 적이 없어요."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조금 작은 사이즈가 있다면 집에 가져다 걸어두고 싶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 집에 걸면 정말 좋은 작품일 듯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의 긍정적인 평가에 먼저 우울 시리즈를 보고 난 후 행복 시리즈를 볼 수 있도록 동선을 짰다.
전시회 입구에서 동의서까지 받으며 전시실 내부에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배치해 혹시나 고통을 호소하는 관객에 대비했다.
전시가 시작되자 대부분 관객은 별 탈 없이 이 우울한 그림을 보고 지나갔지만 몇몇은 치를 떨었다.
"다시는 저런 흉물을 미술관에 전시하지 마세요. 없던 우울증까지 생길 판이라고요!"
다만 소수의 사람은 눈물까지 흘렸고 그중에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겐 자원봉사자들이 붙어 심리 상담까지 지원했다. 은퇴한 정신과 의사들이 그들이었다.
우울 시리즈를 본 관객은 꼭 행복 시리즈 그림을 관람하게 했다. 무의식중에 남아있을 우울한 기분에서 완전히 벗어나라는 취지였다.
점점 우울 시리즈는 외면받았지만 행복 시리즈를 찾는 관객 수는 늘어났다. 빌바오와 모마에서 동시 전시를 한다는 걸 안 뉴욕시민들은 두 미술관을 모두 방문했다.
특히 우연히 미술관을 찾은 뉴욕 관광객들은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며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흥미로운 그림에 대한 글을 올렸다.
이런 관람객 중에는 LA에서 날아온 로버트도 있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 항우울증 약을 먹는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