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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구하기2 (feat 영화 개봉) (134/181)

디자이너 구하기2 (feat 영화 개봉)

프로젝트 런웨이는 2004년 시작한 리얼리티 쇼로, 참가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해 제한된 재료를 이용해 제한된 시간 내에 최고의 옷을 만들기 위해 경쟁한다.

매 에피소드 다른 주제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데 마크에게 제안된 에피소드는 최종 패션위크에 초대되는 3명을 뽑기 위한 마지막 무대인 에피소드 11에 등장하는 것이었다.

"다음 경연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하이디 클룸의 멘트로 시작한 지 얼마 뒤 태호가 이번 경연의 주제를 설명했다.

"나는 화가이자 패션 브랜드 Theo의 CEO로 초상화를 그릴 때 모델이 입을 옷에 관심이 많습니다."

태호가 이번 미션에 나오는지 몰랐던 크리스천은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태호를 잘 아는 디자이너가 이곳에 있나 보네요."

하이디 클룸의 언급에 태호도 손을 들어 크리스천에게 인사했다.

"여기 나오기 전에 마크 제이의 작업실에서 봤습니다. 태호는 루이뷔통 디자이너이기도 하거든요."

Theo라는 브랜드는 모르지만, 루이뷔통의 디자이너라는 말에 촬영장 분위기가 확 올라왔다.

"오늘 미션은 태호가 그리는 전신 초상화의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즉 모델이 돋보이는 옷을 제작해 주셔야 합니다. 제작비는 만 달러까지 가능합니다. 그럼 시작하죠."

하이디 클룸의 선언에 5명의 디자이너는 흩어져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디자인을 구상하고 드레스를 제작해 나타났다. 다만 태호가 제안한 주제의 어려움 때문에 제작진은 옷 제작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해야 했다.

사흘 후.

5명의 디자이너가 들고 나온 의상을 보니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디자이너들에 대한 가능성은 판단할 수 있는 약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이 익숙한 옷만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의상에 재능을 보이는 디자이너도 있다.

다른 30~40대 여성의 옷에 강점을 보이는 라미. 코스큠 제작에 능숙한 크리스. 이미 소속된 회사가 있는 질리안. 나이도 좀 있고 엘에이에 자리가 잡혀 있어 뉴욕으로 부르기 모호한 캐슬린. 이들 4명보다는 재기발랄하고 어리기까지 한 크리스천이 훨씬 태호의 구미에 맞았다.

태호에게 여기 있는 5명의 디자이너 중 누가 더 가치 있는지를 얘기하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태호에게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상에 재능을 보이는 디자이너가 필요했기에 크리스천을 이번 미션의 승자로 선언했다.

"여러분의 작품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 사업에 적합한 디자이너가 5명 중 크리스천이었다는 의미에요."

태호는 이번 미션의 승자를 발표하며 크리스천을 뽑은 이유를 밝혔다.

한 달 뒤.

크리스천이 프로젝트 런웨이에서 우승해 버리는 바람에 태호는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갑을 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네가 실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번 시즌 우승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물론 내가 제안한 미션에 네가 우승했을 때는 네가 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야."

태호는 크리스천의 실력을 인정하고 거의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계약을 제안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해. 수용 가능한 건 다 받아들일 테니."

크리스천은 잠시 고민한 후 자신이 바라는 바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일 년에 2번 패션쇼를 하고 싶어. SS 시즌하고 FW 시즌."

"좋아. Theo 브랜드의 패션쇼를 두 번 하게 될 거야."

사실 초상화 작업만을 놓고 보면 패션쇼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이게 없으면 좋은 디자이너를 데리고 오기 어려웠기에 태호는 바로 받아들였다.

"다만 초상화 제작 스케줄은 놓치지 말아줘. 또 다른 건?"

"혹시 연봉은 어떻게 되는 거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크리스천에게 태호는 처음부터 고민하고 스스로 자신이 통이 크다고 생각했던 금액을 제시했다.

"백만불."

"정말?"

크리스천은 깜짝 놀랐다. 사실 이게 크리스천에게 대박인 조건인 게 만약 그가 프로젝트 런웨이에 나가지 않았다면 태호는 아마 20~30만 달러 선에서의 연봉을 제시했을 것이다. 벨라도 지금 20만 달러가 채 안 되는 연봉을 받고 있다. 100만 달러라는 금액은 21살의 어린 디자이너에게 제시하는 엄청나게 큰 금액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내 고객들은 대부분 어마어마한 부자들이야. 요즘 누가 2백만 불이나 들여서 개인 초상화를 제작하겠어? 그런데 네가 별 볼 일 없는 돈을 받으며 옷을 제작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크리스천의 얼굴이 환해졌다.

"앞으로 오랫동안 잘해보자고!"

태호는 손을 내밀어 크리스천과 악수했다.

*

영화 Faceless는 6월 초에 전 세계 동시 개봉을 했다. 태호도 맨해튼 54번가 지그펠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 등장해 레드카펫을 밟고 각종 사진 촬영에 응했다. 그와 동시에 태호의 작업실 4층의 살롱은 통째로 개방되어 미국 전역에서 방문하는 관람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했다.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은 NBS에서 미국 전역에 알려졌으며, 더불어 태호의 살롱에 대한 소식은 미국과 유럽의 예술 관련 대부분의 언론 매체에 실렸다.

주드로와 나탈리와 함께 개봉하기 일주일 전 한국을 찾은 태호는 레드카펫 행사와 언론 인터뷰를 소화했고 다시 중국과 일본을 거친 후 영국과 프랑스까지 방문하는 강행군을 한 끝에 뉴욕에 돌아와 시사회에 참석했기에 무척이나 피곤한 상태였지만 성실히 참여했다.

19세기 후기 베르사유 궁전의 살롱을 통째로 옮겨온 듯 모습은 이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태호의 작업실 4층에서 볼 수 있었다.

태호가 꾸민 살롱에 걸린 작품들은 19세기 명화를 재해석한 후 탄생시킨 새로운 명화들로 그 하나하나가 오리지널 버전의 작품의 특징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살롱을 관람하고 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평가는 ‘루브르와 비교해 많이 부족하지 않다’ 이었으며, 그림에 대한 평가는 ‘오리지널에 비해 감동이 못하지 않다’ 였다.

미국 내 2천6백여 개의 극장에서 동시 개봉한 후 첫 주 주간 매출액 3천만 달러를 찍어 천 오백만 달러를 투자한 손익분기점은 가볍게 넘어설 것으로 보였다.

그 뒤 한 달 동안 미국 내 매출액만 팔천백만 달러를 찍으며 대박을 터트렸으며, 미국 외 매출도 6천5백만 달러를 기록하며 첫 달 매출만 1억4천7백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했다.

첫 주 뉴욕에서 일주일간 전시를 한 태호의 그림은 바로 한국, 일본, 중국으로 옮겨져 전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두 주연배우의 열연과 더불어 태호의 그림도 유의미한 매출에 영향을 미치며 관객을 극장으로 유도했다.

개봉 결과 북미와 유럽 시장보다 더 큰 시장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이었으며 그 중 탑 3가 중국, 일본, 한국이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영화 제작진은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전시를 해주기를 원했기에 한·중·일 세 국가에서의 전시가 끝나자 바로 그림들은 영국과 프랑스로 건너가 전시를 시작했다.

이 이벤트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3~4주 차 극장 관객 동원 수가 1~2주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보통 전주 대비 30~40%씩 떨어져야 정상인데 10~20%만 떨어지는 이상 현상을 보였고 이는 오롯이 그림의 전시 때문이라는 평가였다.

한 달이 지난 후 영화 매출은 꺾였지만, 태호의 그림을 보겠다는 관객은 미술관에 가득했다. 영화에서 보던 명화들을 실제 전시를 한다고 하니 호기심에 관람한 관객들에 의해 퍼진 입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찾게 되었다.

*

일주일 정도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전시회가 종료되자마자 태호의 그림 전체가 다시 한국으로 향했다. 다움에서의 특별 전시회를 위해서였는데 미술관 측에서는 태호에게 한국을 방문해 관객과 소통하는 행사를 요청했다. 한국을 방문하는지도 일 년이 넘었기에 흔쾌히 이에 응한 태호는 뉴욕발 한국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크리스천이 제작해 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입국 심사를 마친 태호는 핸드폰을 켜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의아해하던 태호는 곧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제야 연결이 되었다.

“지금 공항에 너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으니까 공항 직원에게 말해서 방법을 찾아봐.”

태호는 의아해하면서도 근처 공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출국장을 통과하려 했다.

“권태호 씨이신가요?”

“맞습니다.”

“지금 밖에 태호 씨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원들이 안내를 해 드릴 테니 안전하게 빠져나가시기 바랍니다.”

4명 정도의 공항 직원이 태호 곁에 붙고 나서야 밀려드는 사람들을 이겨내고 출국장을 빠져나왔고, 곧 아빠가 몰고 온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너 한국에서 인지도가 상당히 올랐어. 방송 출현한 것도 있고 영화가 뜬 것도 있고. 네 전시회 소식도 방송을 탔거든. 방송은 한국 방송뿐만 아니라 그 디자이너 나오는 프로 있지?”

"프로젝트 런웨이요?"

"그래. 거기 나온 그것까지 방송에서 소개해줬거든."

“그렇다고 그 정도로 저 많은 사람이 공항에 모인 게 설명이 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영화 때문인 거 같아. 한국 배급사가 JC였는데 미술관과 연계해서 대대적으로 널 띄우더라고.”

“엄마는요?”

"어, 할아버지가 수술 들어가셔서 거기 갔다. 우리도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해."

태호는 정말 놀랐다. 미국에 있으면서 할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많이 안 좋으세요?"

"심장이 안 좋으셔."

"이런. 어떻게 안 좋으시길래 수술까지 간 거예요?"

"너에게 말은 안 했지만, 약물치료는 전부터 하고 계셨어. 계속 조심한다고는 했는데 결국은 수술까지 간 거지."

"어떤 수술이에요?"

"관상동맥 우회술. 심장에 새로운 우회 혈관을 연결하는 수술인데 흔한 수술이지만 할아버지가 고령이시라 좀 걱정이지. 그래도 경험 많은 의사를 만나서 다행이다."

“그래서 지금 어느 병원 가는 거예요?”

“아산병원.”

아빠는 힐끔 태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근데 넌 옷이 좀 멋지다?"

"이거 크리스천이 해준 옷이에요."

"걔가 누군데?"

“그 프로젝트 런웨이 우승자요. 지금은 우리 직원이고.”

태호는 프로젝트 런웨이와 크리스천을 고용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

“실력은 검증되었구나?”

“센스가 정말 좋더라고요. 나이도 어려서 발전 가능성도 높고요.”

“네가 어리다고 표현하니 웃기긴 하다. 벌써 그런 말을 할 나이가 되었네?”

“결혼해도 될 나이인데요? 법적 나이이긴 하지만.”

“하하. 그렇네. 전에 왔던 제마라는 친구는 잘 있고?”

“걔야 잘 있죠. 이름 안 잊어버리고 계시네요?”

“며느리가 될 수도 있는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면 안 되지. 결혼 생각은 있고?”

“잘 모르겠어요. 걜 고등학생 때부터 봤더니 아직 동생 같지, 여자로는 잘 안 보이더라고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난 네 몸에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다."

"차라리 몸에 문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게가 점점 더 예뻐 보여서 깜짝깜짝 놀래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는 지난 일 년간 못다 한 얘기를 하며 아산병원 쪽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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