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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작2 (131/181)

영화제작2

래리가 제작하는 이번 영화 제목은 Faceless. 주연배우는 미남 배우로 유명한 '주드로'로 조연 배우는 '나탈리 포트먼'으로 결정되었다. 수없이 많은 주연배우 감들이 있었는데 마침 '주드 로'의 영화 일정에 펑크가 난 게 있어 래리가 낚아챘다.

나탈리 포트먼도 독립영화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Faceless 시나리오를 보자 독립영화 제작자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계약을 파기한 뒤 참여한 경우였다. 그녀는 그 정도로 이 역에 열정을 보였다.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우연히 그렇지만 최고의 조합을 찾은 래리였다.

명백히 주드로는 태호가 선택할 만한 주연배우 감이 아니었다. 그 잘생긴 얼굴을 망가뜨려 봤자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겠는가? 분장으로 주드로의 얼굴도 충분히 추남으로 꾸밀 수 있다는 래리의 차분한 설명이 없었다면 영국까지 날아가 진상짓을 떨었을 태호다.

바로 태호에게 투자의향서를 보내왔는데 주드로가 받기로 한 삼백만 달러 중 모자란 이백만 달러를 태호 호주머니에서 채울 심산이었다.

태호는 이백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수익 배분에 대해 조정을 요청했으며 투자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내었다. 그 뒤로 시나리오와 캐스팅이 완료되자 일사천리로 스태프진들이 구성되었고 촬영 대본과 촬영 스케줄이 결정됐다. 그리고 얼마 뒤, 프랑스 파리에서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보통 할리우드 영화 촬영 스케줄을 고려하면 영화 촬영을 결정하고부터 프리 프로덕션까지 약 6개월 만에 끝냈으니 매우 빠른 편이었다. 보통 할리우드에선 영화 제작을 결정하고 프리 프로덕션까지 진행되는 데만 일 년이 소요되는데 이 영화는 그 부분이 상당수 생략되었으니 매우 빠른 진행이었다.

런던에서 프리 프로덕션이 진행되는 사이 4층은 19세기 루브르를 연상케 하는 살롱으로 바뀌었는데 바닥은 나무패널을 교체해 패턴을 만들었고 천장은 태호가 그린 하늘 그림들로 채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실제 루브르 궁처럼 목각 조각으로 장식할 생각이었으나 가격을 둘째치고 제작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포기했다. 천장에 캔버스가 들어갈 자리를 짜놓은 다음에 아래서 정상적으로 제작한 캔버스를 나중에 끼워 맞추는 식으로 작업했기에 ‘난이도’가 높지 않았고 제작 기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완성된 천장은 가운데 햇빛이 들어오는 넓은 공간 주위로 푸른 하늘에 구름이 보이고 그사이를 아기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벽은 약간은 어두운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었고 나중에 그림들을 걸기 쉽게 다양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살롱 가운데에는 사각에 가까운 빨간색 원형 소파가 설치되어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태호는 4층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된 후 아래 작업실에서 완성된 그림들을 가지고 와 하나둘 걸기 시작했다.

태호를 비롯해 조수들도 능숙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6개월을 작업한 경과 건조 과정이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완성된 그림들로 살롱을 채울 수 있었기에 얼추 촬영 스케줄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

아르노 회장은 태호가 Theo라는 브랜드를 런칭 하자마자 초상화 작업을 몇 개 하던가 싶더니 얼마 뒤 그 작업은 완전히 접고 아무 소식이 없자 황당하기도 하고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3월 중순쯤 뜬금없이 4월 첫째 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뉴욕의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내오자 이걸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때마침 뉴욕 본사를 방문할 계획이 있었던 아르노는 초대에 응했다.

같은 초대가 마크 사단에도 갔고, 래리 등의 영화 제작진과 배급사에게도 갔으며, 제마네 식구들에게도 갔다.

윌슨은 자신의 주요 고객과 미술관 관계자 그리고 최근 태호의 그림을 고액으로 구매한 고객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태호는 한국의 식구들과 지인들에게도 보냈고 식구들이 모두 오기로 했다.

4월 첫째 주 금요일, 태호는 뉴욕 최고의 케이터링 업체를 섭외해 칵테일 파티를 열기로 하고 술과 애피타이저 등을 준비했다. 태호가 제일 좋아하는 감상 방법인 술과 그림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준비를 한 것이다.

태호의 작업실 일 층은 손님맞이를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미리 도착한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늘 태호가 준비한 행사에 대한 의견을 나눴으나 아무도 오늘 무슨 일로 태호가 불렀는지를 알지 못했다.

"오늘 태호가 무슨 일로 이런 초대를 했는지 아시나요?"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제마, 넌 알지 않아?"

마크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저도 듣기만 했지 본적은 없어서 뭐라 설명을 못 드리겠어요."

몇 달을 두문불출했기에 제마도 작업실에 와서야 태호를 만났을 뿐이다. 제마는 태호가 지난 6개월간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지만, 비밀을 지켜달라는 태호의 말에 침묵을 유지했다.

5시가 되자 태호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늘 제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먼 길 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4층에 제가 이번에 제작한 작품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계단이라 불편하시겠지만, 같이 올라가시죠."

4층까지 일행을 안내한 태호는 궁정에나 있을 듯한 고풍스러운 나무문 앞에 섰다.

"자 이제 놀랄 준비를 하세요. 어갑니다. 하나둘 셋!"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자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입에서 커다란 탄성이 일었다. 문 뒤로 보이는 19세기 살롱의 모습이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영감을 받아 꾸며진 살롱입니다. 이곳은 원래 학교 건물이었고 이곳 4층은 운동장으로 쓰이던 곳이었죠. 크기는 팔천 제곱피트 (200+평)이며 일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살롱처럼 인테리어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총 102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태호는 살롱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걸려 있는 작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벽면 아래부터 천장 근처까지 아카데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림들로 빽빽이 그림들이 들어차 있었고 태호는 그중 한눈에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있는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을 소개했다.

"보시는 그림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입니다. 오리지널 그림과는 다르게 소크라테스가 실제 독약을 마시는 구도로 제작되었죠."

입으로 독약을 가져가는 소크라테스의 얼굴에는 비장미가 흘러넘쳤으며 주위 제자들의 얼굴에는 엄숙함과 비통함이 손에 잡힐 듯했다.

"이 그림은 마돈나 델라 살루트의 현관에서 본 베니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원작과 비교해 낮이 아닌 노을이 지는 늦은 오후를 배경으로 삼았고 배 위치 등이 조금씩 다르지요."

그곳에는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흔히 터너의 마돈나 델라 살루트의 현관에서 본 베니스가 걸려 있었다. 풍경화에 감정을 담은 듯 그림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베니스의 운하 입구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다.

아르노 회장은 이 독특한 천재의 거대한 삽질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지금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위해 한 층을 19세기 파리의 살롱으로 꾸며 놓았다고 들었을 때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 정도의 열정을 보인 예술가가 근래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그림 하나하나가 거장이 그린 듯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태호가 작업한 것이니 이런 높은 완성도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그린다 해도 느낌까지 살리기는 쉽지 않은데 지금 보이는 모든 그림은 19세기 중반의 살롱에서 뚝 떼어서 가져온 것 같았다.

그중에서 자신의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 작품은 바로 살로메였다. 성경에 나오는 유혹하는 살로메를 표현한 이 그림은 쟁반과 칼을 들고 서 있는 살로메의 모습이었는데, 주름진 머리카락에 옷이 엉망이 된 모습과 그 살아있는 듯한 섬세한 피부와 옷의 금빛 구김 역시 바로 이 작품의 원작자 앙리 레뇨의 솜씨를 그대로 옮겨 온 듯했다.

아르노 회장 역시 개인 미술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기에 정말 많은 작품을 접하고 작가들을 접했지만 이런 천재는 지금도 물론 과거에도 없었다. 한편으로 자신이 이런 인물과 동업을 하고 이렇게 초대를 받는 게 마치 행운처럼 느껴졌다. 이런 작업이라면 Theo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욕심이 척추 끝에서 올라와 목 뒤를 타고 뇌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이런 살롱을 자신도 갖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었다. 회사의 주식을 넘겨서라도 태호와 조수들을 고용해 자신이 구상 중인 미술관에 이런 살롱을 구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태호는 그 짧은 시간에 19세기 아카데믹 명작들을 전부 재탄생시켜버렸다. 아무리 조수들과 작업을 했더라도 어떻게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에 이런 완성도로 제작해 냈는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벽은 이런 19세기의 마스터피스라고 할만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 천장은 하늘을 옮겨놓은 듯이 찬란하게 빛났고 구름 사이로는 천사들이 날아다니며 자신들을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다른 사유로 놀라움을 삼키고 있을 때, 래리를 빨리 정신을 차리고 태호에게 다가왔다. 이런 완벽한 세트장에서 촬영할 수 있다니! 어느 제작자나 감독이 이런 호사를 누려보겠는가! 자기도 머릿속에 정신없이 떠오르는 촬영 계획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살롱은 다 완성이 된 건가? 예상보다 빨리 완성했는걸. 난 적어도 프랑스에서의 촬영이 끝날 때까지도 다 안 끝날 줄 알았어.”

“좀 많이 신경을 썼죠. 살롱은 만족하세요?”

“대만족이야. 이런 고급스러운 살롱을 어떻게 구하겠어? 아니, 세트장이야 그렇다 쳐도 이 그림들을 어떻게 구할 거야?”

“그렸죠. 여긴 내가 봐도 최고인 거 같아요. 하하. 그건 그렇고 촬영은 순조로운가요?”

“자네가 보내준 그림들이 완성도가 높아 어떻게 찍어도 영상이 잘 나와.”

“이것들 그리면서 영화에 쓸 작품들까지 보낸다고 고생 많이 했습니다.”

태호는 너스레를 떨면서 자신과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해서 그림을 제작했는지 설명했다.

“배우들 연기도 괜찮나요?”

“내가 어떻게 골랐는데? 최고지. 자네가 나탈리 연기를 봤어야 해. 정말 팜므파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어. 그리고 자네가 걱정했던 주드로는 생각보다 훨씬 못생기게 나왔으니 걱정하지 말게.”

“다행이네요. 이젠 그림 작업이 끝났으니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Faceless 그릴 때 버틸 거 같네요.”

“그래. 그 작업이 남았지. 그럼 몸조리 잘하고 있으라고. 자네 덕분에 배급사에 큰소리칠 수 있겠어. 하하, 벌써 작품에서 대박 냄새가 나는구먼. 내 한가지 장담하지. 적어도 올해 아카데미 미술상은 우리가 차지할 거야. 하하”

태호는 오늘의 파티로 다양한 성과를 올렸다. 영화 관계자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확신을 줬고, 윌슨의 고객들은 얼마 전 천만 불을 기록한 태호의 그림 가격이 절대로 높은 가격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미술관 관계자들은 여기에 있는 그림들을 가지고 특별 전시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특히 김 관장이 이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할 경우 여기 있는 그림들을 전부 다움에서 전시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한국에서 전시할 계획이기에, 태호는 좋은 작품을 선정해 줄 테니 지금 골라보라며 김 관장을 달랬다.

마크와 벨라는 외도가 끝났으면 다시 본업으로 복귀하라고 종용했고, 앨리스를 비롯한 제마네 식구들은 마치 사위가 파티를 연 듯 살갑게 태호를 대했다.

오늘의 파티에 대한 소식은 얼마 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에 빠르게 퍼졌다. 일반인들은 태호가 매우 고급스러운 파티를 열었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지만, 사진으로 그림을 접한 미술관 관계자들은 말 그대로 경악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살롱이 전부 19세기 명화로 가득했는데 모두가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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