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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시작

면접을 본 10명의 지원자 중 그림 제작 속도가 너무 느리거나 이력과 실재 인물과 괴리가 있는 사람 둘을 제외한 후 8명을 채용했다.

이 8명은 한동안 태호에게 초상화 제작에 대해 다시 교육을 받았는데 한두 달 안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기에 꾸준한 교육이 필요했기에 그 뒤로도 틈만 나면 태호는 교육을 지속하였다.

*

그 사이 루이비통 본사에서는 벨라를 태호와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활용하기로 했다. 태호의 초상화 고객을 벨라가 확인한 후 사내에서 적절한 디자이너를 찾아 연결해 주는 역할이었다.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기에 벨라는 이 일을 받아들였다.

Theo의 창사 첫 고객은 아르노 회장의 아내 헬렌 메르시에 아르노였다.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그녀는 40살에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다. 이미 세 아들을 둘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

지난번 파리에서 아르노 회장과의 식사 때도 동석했기에 태호는 그 자리에서 Theo의 첫 고객이 되어달라 요청했고 그녀는 흔쾌히 응했다.

헬렌의 의상 디자인을 해줄 사람은 벨라가 입도 열기 전에 이미 결정이 되었는데 존 갈리아노가 진작에 손을 들고 대기 중이었다.

그가 헬렌을 위해 준비한 의상은 블랙 이브닝 드레스였는데, 오른쪽 가슴과 허리에는 하얀색 꽃무늬가 돋음 되어 있는 디자인의 옷이었다.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디오르의 아이콘 핸드백인 작은 흰색 새들백이었고, 목에는 작은 펜던트를 하고 귀걸이와 결혼 반지 정도만 했을 뿐이다. 헬렌이 보석류를 그다지 즐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태호는 직접 사진을 찍어가며 헬렌의 여러 포즈를 찍은 후, 아르노 부부를 앉혀놓고 어떤 그림을 원하는지 특별한 요청사항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 모든 의사결정을 태호에게 맡길게요. 부담 갖지 말고 원하는 데로 그리세요.”

태호는 뉴욕으로 돌아와 일주일에 걸쳐 직접 초상화를 그리고 직원들도 자신의 그림을 따라 그리게 했다.

태호는 이 그림에 매우 신경을 많이 썼다. Theo라는 브랜드를 단 첫 그림이기도 하거니와 아르느 회장 부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태호는 초상화 배경에도 매우 많은 신경을 섰다. 드레스는 매우 세련되었지만 화려하지는 않았다. 손바닥만 한 금빛으로 반짝거리는 6각형 타일이 뒷 벽면 전체를 덮고 있는 배경에 헬렌이 정면을 도도하게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헬렌의 모습에서 존 싱어 서전트의 마담 엑스 느낌도 났지만, 태호가 배경으로 잡은 타일 때문에 그림은 좀 더 예리했고, 또 선 처리가 훨씬 깔끔해 사실주의 화풍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무엇보다 그림에서 눈에 띄는 건 헬렌이었는데, 태호가 20년 전 헬렌의 사진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그렸기에 젊고 아름다운 모습의 헬렌이 그림에 담겨있었다.

작업은 한 달이 채 안 걸렸지만, 물감이 마르는데 시간이 걸려 거의 석 달 뒤에 아르노 회장이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뉴욕에서 파리로 날아간 태호는 그림을 헬렌에게 전달했다.

헬렌은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너무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 아르노 회장을 만족하게 했다. 이를 본 태호는 아르노 회장에게도 넌지시 하나 그리자고 했다.

"회장님도 초상화 하나 제작하시죠?"

"난 아직 내 초상화를 맞닥뜨릴 자신이 없네. 조금 나중에 하자고."

태호는 입맛만 다셨다.

"태호, 그림값은 어떻게 할 건가요?"

태호는 미리 생각해 뒀던 그림 값을 말했다.

"이백만 달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 최근 거래된 그림 값과 비교하면 싸긴 하지만, 너무 비싸면 고객이 유입이 안 될 것 같아요."

"알았어요. 나도 주위에 태호 작가의 초상화를 많이 알릴게요." 헬렌이 대답했다.

그림에서 얻은 이익 중에 그림값의 10% 정도를 존 갈리아노에게 전달했다. 존은 한사코 안 받겠다고 했지만 태호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일을 더 맡길 수가 없다며 강제로 돈을 입금 시켜버렸다.

헬렌을 시작으로 태호는 주위에 초상화 사업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첫 반응을 보인 건 데이비드의 엄마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주위에도 이 사실을 알렸는데 다들 환호하다가 워낙에 비싼 가격에 다들 움찔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거릴 듯했다.

태호는 충분히 돈을 쓸만한 사람에게 접근했다. 그중의 하나가 마크였다. 태호의 질척거리는 꼬드김에 두손 두발 다 든 마크는 스스로 제작한 옷을 입고 나서려고 했다.

"마크! 이 사업 컨셉트는 Theo 브랜드 옷을 입은 초상화라고요."

결국 태호가 벨라와 함께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마크에게 입힌 후에 전신 초상화를 제작했다.

*

연말이 되자 빌바오에서는 다음연도 일정을 논의하고 확정 짓기 위해 분주했다.

“올해 태호의 두 번째 전시회를 빌바오에서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시기는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입니다. 에이미, 진행사항에 대해 보고해 주세요.”

“네, 제이슨. 썬 갤러리의 윌슨을 통해 태호의 그림 중 태호의 어린 시절 작품 등 미공개 작품을 확보했습니다. 한국의 다움을 통해서는 화면에서 보시는 그림을 확보하려는 노력 중입니다. 문제는 다움에서 Faceless 복원작, 즉 빛의 마리아V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Faceless 복원작을 전시 못 할 경우 미술관이 받는 손실은 어느 정도 입니까?”

“최근 미술관을 방문하는 고객은 Faceless와 복원작과 빛의 마리아의 여러 버전을 보기 위해 오는 고객이 매우 많습니다. 다움의 작품 없이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차라리 다른 버전의 빛의 마리아를 더 오랜 기간 대여하는 것으로 협상하는 게 좋겠습니다.”

“기간은 어느정도로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일 년으로 하되 추가 요청이 있으면 일년 반 정도 선에서 합의가 가능할 겁니다. 저쪽도 우리가 빛의 마리아는 대여에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그렇게 추진하죠. 결과 나오면 알려주세요. 이사회에 보고를 올려야 하니까요.”

*

“빌바오의 반응은 어떤가?”

“Faceless 복원작을 빼고는 문제 없다는 입장입니다.”

“앙꼬 없는 찐빵을 먹으라고 주는군. 근본적으로 우리도 태호에게 주문을 해서 받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응할지는 둘째치고 얼마를 요구할지 감이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아니야. 응할 수도 있어. 태호가 졸업하고 회사를 세웠다는 얘긴 들었나?”

“처음 듣습니다만.”

“회사를 세웠는데 성격이 좀 특이해. 루이비통 산하로 들어갔더군.”

“패션 회사를 세운 겁니까?”

“자네가 알아봐봐. 내가 얻은 정보도 여기까지니까. 이 회사를 통해 미술 쪽 직원을 꽤 많이 채용했어. 미국 전체 젊은 미대생들은 다 지원했을 거라고 하더군. 조건이 꽤 후했나 봐. 태호가 작품도 별로 없고 비싼 이유는 학생이었다는 것도 있지만 모든 작업을 다 손수 제작했다는 문제도 있었어.”

“예술품을 남의 손을 빌어 만드는 게 진정으로 자신의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 과장. 현대차가 북경에 공장을 세웠어. 거기서 소나타를 생산해. 그럼 그 차가 한국차일까 중국차일까?”

“단장님, 그건 다른 문제죠.”

“같은 문제야. 해석의 차이일 뿐이라는 거지. 앞으로 태호는 직접 모든 걸 다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옛날부터 많았어.”

“그렇다면 앞으로 태호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나오겠네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선점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래야 좀 싸게 하지 구매할 수 있지 않겠어?”

“미국에서의 태호의 행보를 빨리 조사해봐. 안되면 우리도 관장님 찬스를 써야 하지 않겠어?”

단장은 최 과장을 통해 태호에 대한 정보를 모았지만 별로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먼저 있는 그대로 관장에게 보고부터 올리기로 했다.

“태호는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요. 지금 우리가 사용 가능한 자금 알아봐 주세요.”

김관장은 이렇게 지시를 한 후 서현에게 연락을 했다.

“태호는 지금 뭐하니?”

“걔? 무슨 회사 차렸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제 바쁘다고.”

“다른 얘기는 없고?”

“아! 엄마한테 전해 달라는 얘기가 있었다. 주문 제작 가능하니까 필요하면 전화 달라고 했어.”

“얘는 그걸 지금 알려주면 어떡하니! 언제 그런 얘기 했는데?”

“일주일도 안 됐어.”

“일주일씩이나 된 거지! 연락처는?”

“문자로 보낼게.”

김관장은 미술관의 가용 금액을 보고받고 태호에게 주문하기엔 금액이 모자란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해서 이 금액에 태호가 작업을 안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작품 구매를 위해 잡은 예산은 약 100억.

이 금액 중 꼭 집행해야 하는 금액은 90억. 여유자금이 10억인데 이걸로 들이밀면 ‘네 고객님 감사합니다’ 라고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30억을 써도 될까 말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장님. 그래도 먼저 10억으로 먼저 제안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사람을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가할 수도 있습니다.”

단장의 말에 솔깃한 김 관장은 김 과장을 통해 연락을 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래서 일단 먼저 정보를 더 모으기로 했다.

“태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걔 돌아왔던데? 뉴욕이래.”

“요즘은 자주 연락하네?”

“엄마가 그림 사고 싶다며? 일부러 전화 더 자주 하고 있지.”

“뭐한 데니?”

“루이비통 회장 아내 초상화 그린다고 하던데?”

“헬렌 메르시에?”

“어, 헬렌 뭐라고 한 거 같아. 엄마가 어떻게 알아?”

“아르노 회장 내외가 워낙에 유명한 컬렉터잖니. 우리처럼 자체 미술관도 가지고 있고. 그런데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고? 패션 회사를 설립했줄 알았는데 왜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네. 서현아. 네가 물어봐봐. 지금 우리가 주문하고 싶은데 최근 태호 작품가가 워낙에 올라서 얼마를 투입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다고.”

김관장은 서현을 통해서 결국 태호가 진행하는 사업의 실체를 알고 되었고 여러 면에서 안타까웠다.

"다성이 품는다면 할 수 있는 사업이 정말 다양했을 텐데."

당장에 있는 의류 사업도 글로벌 브랜드로 런칭이 가능하게 끌어 올릴 수 있을 테고, 미술관도 분점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태호에게서 날아온 긍정적인 소식은 지금 바로 다움의 주문을 소화할 여력이 있다고 알려온 점이다. 다만 가격은 흉악했는데 옆집 개 이름을 부르듯 60억을 불러왔다.

이 정도를 받지 않는다면 빌바오나 모마에서 자신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앞으로의 모든 작품에 디스카운트를 요청할 것이라는 말로 애써 양해를 구했다.

“60억? 무슨 그림이 60억이나 해? 그 녀석이 피카소야?”

남편 찬스를 쓰기 위해 가격을 알려주자 이해할 수 없는 가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당신 그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상어도 산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가격도 거의 40억이었는데 어떻게 그거보다 이게 더 비싸?”

“상어보다 빛의 마리아가 훨씬 볼만할 거에요.”

남편을 가까스로 설득한 김 관장은 주문을 넣으려다가 뒷골이 싸해서 그림 크기를 물어봤다.

“원래 크기의 1/4 버전이 그 가격이에요. 관장님이라 특별히 싸게 드리는 거에요. 얼마 전 아트바젤에서 100억보다 더 받았거든요. 전에 공표했듯이 빛의 마리아는 이제는 같은 이름이나 크기로 제작하지 않아요.”

다움은 결국 60억에 그림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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