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설립 (feat 3부 시작)
태호가 BBS와 촬영을 진행하는 사이, 뉴욕에서는 아트워크의 케빈은 기자가 삐뚤어지면 얼마나 삐뚤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듯 힐난조로 윌슨의 거래 방식을 공격했다.
다른쪽으로는 과연 생존작가에게 작품 한 점당 천만 불을 지급하는 게 정상적인 시장의 반응인지를 놓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윌슨은 직접적인 반응은 하지 않고 자신의 갤러리 광고만 타 잡지에 실었다. 그것도 고액으로 말이다. 거기에 작가를 고용하여 차라리 생존 작가에게 돈을 지불하여 더 좋은 작품을 남기게 하는 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의 작품을 사는 거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논조의 사설을 쓰고 그걸 경쟁사에 실었다.
윌슨의 방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트워크의 케빈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일 뿐이라고 큰 갤러리 사장들에게 호소했다. 처음에는 윌슨을 아니꼬운 눈으로 보던 갤러리 사장들도 아트워크의 공격이 그 다음 달까지 계속되자 본격적으로 아트워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제야 아트워크도 공격을 멈추고 냉각기에 들어갔다. 윌슨은 머릿속에 아트워크를 쓰고 빨간 줄을 빡빡 그었다. 아마 아트워크는 태호의 인터뷰를 못하거나 아니면 가장 마지막에 하는 잡지사 될 것이다.
파리에서 두 달을 붙잡혀 있다가 결국 패션쇼까지 보고 나서 태호는 뉴욕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아르노 회장과 저녁을 같이 먹을 시간이 있었는데 아르노 회장은 태호가 지금처럼 마크 밑에서 디자이너로 일해줄 것을 제안했다. 물론 봉급과 스톡옵션 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었지만 태호는 루이비통의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역제안을 했다.
“졸업 후에 사실 전신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초상화를 제작할 때 고객이 입은 옷을 그대로 그려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괜찮은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서 입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디자인을 해줄 파트너를 물색하다가 파슨스 학생이던 벨라와 작업을 하려고 계약서를 쓰기 직전까지 갔었죠. 벨라는 지금 마크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에르메스를 뛰어넘는 아트와 패션이 접목된 브랜드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초소량 생산을 하거나 아니면 단 1벌만 생산을 하는, 의복이라기보다는 작품에 가까운 개념으로 말이죠.”
그 뒤로도 태호의 설명이 한참을 이어졌다. 그리고 태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아르노 회장은 태호의 계획이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비용도 얼마 들지 않으며 회사에 넘치는 디자이너에게 제작 동기도 제공할 수 있고, 더불어 하이엔드급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의상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마크와의 협업을 통해 태호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미 확인했다. 무엇보다 피카소 이후 최고의 천재 화가라고 하는 태호의 작품을 회사가 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가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나?”
“전체적으로 다 도와주셔야죠. 이 계획을 위해서 건물만 달랑 하나 사놓은 상태거든요. 회장님에게 이 얘기를 꺼낸 이유도 직접 하려고 하니까 너무 손이 많이 가는 거에요. 하려면 하겠지만, 족히 몇 년은 시간 낭비를 할 것 같아서요.”
“그렇지. 내가 사람 몇 명 보내주면 금방 사람 뽑고 세팅하고 일을 시작할 수 있을 테니.”
“그리고 회장님이 첫 고객이 되어 주셔야 되기도 합니다.”
“하하. 그래. 내 그렇게 하지. 그럼 제일 중요한 걸로 넘어가서 지분 구조는 어떻게 가져갈 텐가?”
“제가 한참 더 가져가고 싶지만, 판을 깰거 같으니 의류 판매는 5:5로 하시죠. 지분은 55:45. 그림은 9:1 입니다.”
“흠··· 그림 판매는 동의. 하지만 지분과 의류 판매는 우리가 더 가져가야 해. 사실 우리 디자이너에 우리 쪽 전문가들이 옷 제작도 할 텐데 자네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데?”
“그럼 의류 판매 금액도 6:4. 다만 주식은 50:50에 회장님이 한 주 더 가져가시죠.”
“주식은 그것보다는 더 가져가야겠네. 또 그 의류 팔아봐야 얼마나 남겠는가?”
“그럼 제가 의류판매 금액의 70%를 가져가는 걸로 하고 주식은 회장님, 아니 루이비통이 55% 가져가시는 걸로 하시죠.”
“주식이 60%는 되어야 돼.”
“그럼 의류판매 수익의 80%는 제가 가져갑니다?”
“그건 너무 많아.”
“그럼 75%로 하죠.”
“내가 많이 양보한걸세. 그러니 루이비통과의 협업도 소홀히 하지 말아주게나. 총 자본금은 얼마로 할 텐가?”
“일단 천만 달러로 할까요? 필요하면 나중에 더 넣도록 하죠. 주식 비중에 맞춰서요.”
“좋아. 그럼 오늘 이 자리가 회사 설립 기념 자리가 되겠군그래. 회사명은 뭐로 할 건가?”
“태호라고 하고 TH를 약자로 써야 될 거 같아요. Theo도 괜찮고.”
“그건 자네가 좀 더 고민하고 알려주게나. 자네 브랜드 아닌가?”
“회장님 지분이 더 많은데요?”
“자네가 없으면 끝나는 브랜드에 지분 타령하지 말게. 자네 회사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직접적인 게 아니니.”
“하하, 그런가요?”
“그럼 오늘 회사 창립을 기념하며 한잔해야겠군. 자 한잔 받게나!”
둘은 늦게까지 와인을 마시며 회사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뉴욕에 돌아온 태호는 윌슨에게 받은 그림 값을 회사 창립 자금으로 남겨뒀다. 집은 브루클린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콘도를 빌렸는데 일 년 후에는 집을 구매할 계획이었다.
이사까지 하고 나서 얼간이(대학친구)들을 불러 놓고 집 뜰 이까지 거하게 하고 나니 태호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다.
회사도 설립해야 하고 건물도 리노베이션 해야 되고 미술 직원도 뽑아야 하고 할 일들은 엄청나게 많은데, 일단 모두 뒤로 미뤘다. 지난 몇 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자신은 간절히 휴식이 필요했다. 루이비통에서 직원들이 와도 그림 작업은 거의 별개의 사업이라 자신이 직접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전에 태호는 차를 사러 나갔다. 5년째 탄 SUV에 질려버려 이제는 승용차 그중에서도 빨간색 스포츠카를 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무슨 차를 사기 위해 고민하지도 않았다. 바로 페라리 매장에 가서 F430을 주문하고 일주일 뒤에 차를 받았다.
몇 년 전 등록한 VIP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 밖에도 TV는 써니 브라비아 40인치로 했고, 소파는 팻보이 리클라이너를 주문했다. 그렇게 며칠을 집에서 빈둥거리던지 밖에 나가 쇼핑을 하며 정말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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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이사를 하고 난 몇 일 뒤, BBS 등이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전 세계에 방송했다. 평범할 수 있었던 다큐멘터리는 태호가 이탈리아의 메디치에서 한 촬영 내용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첫째는 앙리 보소라는 화가의 외모였다. 미남과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이고, 또한 보는 사람이 안쓰러워 고개를 돌릴 만한 외모였다. 둘째는 태호가 앙리의 자화상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그림을 두 점이나 (하나는 스케치지만) 주고 사들인 점이었다.
태호가 앙리를 그래도 볼만한 사람으로 그린 그림과, 앙리의 자화상을 더는 공개하기 싫다며 그림을 사들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재밌어했다. 마치 앙리와 태호의 시대를 뛰어넘는 브로맨쉽을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행동이 마치 안하무인 식으로 비쳐 태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태호가 열흘에 걸쳐 빛의 마리아 제작하고 그걸 메디치가에 건네는 장면이었다. BBC는 촬영 팀 3명을 남겨서 태호가 그림을 제작하는 모습을 촬영한 후, 방송 말미 3분 동안에 축약해서 보여줬는데 아름다운 빛의 마리아가 순식간에 허공에서 피어나듯 제작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 영상을 본 모든 사람이 태호의 그림 실력 하나만 놓고 보았을 때 세상 누구도 이보다 잘 그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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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바젤에서 보여줬던 태호의 카리스마는 미술품 수집을 막 시작한 초보 컬렉터들을 매료시켰다. 벌써 태호의 버킷 리스트라며 태호가 구매한 작가들과 작품 리스트가 콜렉터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했고, 가격은 급상승했다. 이 분위기를 눈치챈 뉴욕의 각종 전시회는 태호를 전시회로 부르기 위해 윌슨의 갤러리에 초대장을 보냈다.
뉴욕 뿐만 아니라 LA의 많은 갤러리도 모든 교통편과 숙박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태호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덕분에 태호 관련 일거리가 폭주한 윌슨의 갤러리는 태호 전담 직원을 하나 고용했고, 태호에게는 전용 비서처럼 활용하면 된다고 전달했다. 태호는 윌슨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전담 직원의 이름은 맥스. 태호는 첫 일거리를 지시했다.
“맥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조사 좀 해줘! 기한은 일주일.”
태호는 골치 아픈 일을 바로 맥스에게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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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열린 LVMH의 정기 이사회에서는 Theo라는 회사의 설립 및 태호를 Theo의 대표이사로 임명하는 안건을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그리고 아르노 회장은 관련 첫 지시로 루이비통 뉴욕 본사에서 Theo 회사의 설립 및 지원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했다.
뉴욕 본사에서는 법무, 인사, 회계 직원을 파견하여 주식회사 설립 및 자본금 적립 등의 업무를 시작했고 인사과 직원들은 태호를 만나 앞으로 회사 운영 방안 등을 놓고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업무는 초상화와 의상제작, 크게 두 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의상 제작 관련해서는 채용 공고를 하든지 아니면 루이비통 내부에서 베테랑 직원을 파견해서 시작하면 되지만 초상화 제작 같은 순수미술은 어떻게 직원을 고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초상화 등 유화를 그릴 줄 아는 직원들을 채용공고 하세요. 입사 지원 서류에 포트폴리오를 필수로 제출하라고 하시고요.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확인한 후 면접을 통해 최종 채용 결정을 할 겁니다. 국적 성별 불문이고 업계 최고 수준의 임금 보장이라고 하세요. 다만 나이는 가능하면 30대 초중반까지로 하죠.”
“태호님 이름만 걸어도 사람들이 몰릴 텐데요?”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고의 인재를 뽑아야죠. 수백만 불을 호가하는 그림을 그릴 사람들인데 낮은 시급을 받으면 일하는 것도 아이러니 아니겠습니까? 또 뉴욕 물가가 싼 것도 아닌데.”
이렇게 시작한 채용공고는 인터넷에 올라오자마자 뉴욕 뿐만 아니라 전미에 소문이 쫙 퍼졌다. 특히, 미대생 중 졸업 예정이거나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 폭발이었다.
태호는 집에서 좀 더 빈둥거릴 생각으로 모집 기간을 3주 정도로 길게 잡았는데 쌓이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어떻게나 많은지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들어온 입사 원서에는 예일대 출신들도 상당수였고 그의 동기들과 선배들도 꽤 있었다. 예일대 출신들만 50여 명이 넘게 지원을 한 걸 보니 그냥 전미의 미대생들은 다 지원한 것으로 느껴졌다.
태호가 원하는 직원은 태호가 지시하는 데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다였다. 수천 명이 지원을 했기에, 포트폴리오만으로 100여 명 정도 추린 다음, 여기서 다시 10명 정도를 추렸다. 그 뒤로 이력을 보기 시작했는데 현직 페인트 공이자 그래피터부터 예일대나 칼 아트 (Cal Art) 졸업생까지 다양했다.
태호는 이 사람들을 태호가 얼마 전 구입한 학교 건물로 불러 실기와 면접을 보기로 하고 인사과 직원들에게 처리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