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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바젤3
아트워크의 기자 케빈 테일러는 이번 아트 바젤의 출품하는 작품에 태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보고 살짝 놀랐다. 이건 축구로 치면 EPL 1부 리거가 라리가 1부 리그 게임에 출전해 경기를 치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북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잠깐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쓴맛을 보고 난 후, 유럽 쪽으로는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림 판매에 전혀 문제도 없었기에 더 의아했다.
태호의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하고 아트 바젤 전시회에 들어온 그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할 말을 잃었다. 수많은 사람이 세 작품 앞에 나란히 줄을 서 있었는데 진행 전람회 진행 요원들이 추가로 투입되어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사진 줄이었는데 다들 디카나 핸드폰으로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전람회 특징상 사람들의 카메라 소지는 금지하지 않았는데, 지금 여기 갤러리들이 보이는 행동은 마치 유명 미술관에 있는 명작 앞에서 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었다.
케빈은 슬쩍 그림으로 다가가자 진행요원이 제지했는데 ‘Press’ (기자)라는 명찰을 보여주자 비로소 그림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했다. 케빈은 순수하게 가격이 궁금해서였는데 그림의 제목과 특징이 적힌 흰색 라벨은 이미 손때로 가득했고 거기엔 매직으로 $2M+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2라는 숫자도 1에서 고쳤음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 이렇게 적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악순환을 일으켰는데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궁금해서 왔다가 그림을 보고 놀라고 가격을 보고 더 놀랐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둘 오다 보니 이렇게 진행요원까지 긴급 투입해야 했다.
이렇게 줄을 선 걸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에도 없는 케빈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난 후 윌슨과 인터뷰를 하려 했다. 윌슨은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하면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는 말이 안 되는 요청이었던 게 이번 아트 바젤의 최대어인 태호의 작품을 거래하는 딜러인 윌슨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사를 쓸 수가 있겠는가? 먼저 분위기 파악을 위해 부스의 다른 여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잠시 대화를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케빈은 목에 건 명찰을 들이밀며 말했다.
“네 그러세요. 뭐가 궁금하세요?” 제시카는 이제는 인터뷰가 귀찮다는 티를 겨우겨우 숨기며 케빈의 질문에 대답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몰렸습니까?”
“금요일 오전부터 시작되었어요. 태호 그림인 줄 알아보고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밀리다가 그림에 손상이 갈 뻔했거든요. 우리가 불만을 제시하니까 전람회 측에서 사람을 보내줬고요.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직 덜 말랐어요.”
“그림이 덜 말랐다는 얘기는 작품을 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얘기인데 언제 제작된 작품인가요?”
“작년 말부터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이번엔 물감을 두껍게 썼더니 아무래도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네요.”
“태호 씨도 여기에 있습니까?”
“개막할 때 왔는데 지금은 갔어요.”
“어디로 갔는지 아시나요?”
“파리로 갔을 거예요. 방송 촬영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무슨 방송인지 아시나요?”
“태호가 찍을 방송은 보통 다큐죠. 아시죠?”
고개를 끄덕인 케빈.
“그림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직접 들으면 좋겠지만 이름이?”
“제시카이에요”
“제시카도 태호 씨와 가까우신 분 같으니 제시카가 아는 내용을 들어도 좋을 거 같군요.”
“와. 취재 능력이 좋으세요.”
“이래야 먹고 산답니다.”
제시카는 그림에 대해 태호에게 들은 바를 풀어서 설명해 줬다. 그렇게 10분 정도 설명을 해주자 케빈도 작품에 대해 완벽히 이해했다.
“모든 예술작품이 이렇게 명료했으면 현대 미술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을 겁니다.
“태호 그림의 특징이에요.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 있지만, 작품이 어렵거나 복잡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고 마음을 움직여요.”
“많은 명화가 마음을 움직입니다만.”
“그럼 나중에 사람이 뜸할 때 저 앙리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왜 그러시죠?”
“몇몇 분들이 조용히 보고 계시다가 눈물을 훔치시더라고요. 적어도 그림을 집중해서 보신 분들은요.”
“그만큼 그림이 주는 감동이 큰 것이겠지요. 흔하지 않나요?”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게 쉽지는 않답니다. 그렇게 빠르게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요? 한번 지켜봐 보세요.”
“알겠습니다. 한가할 때 다시 와서 확인해 보죠.”
한참을 둘은 인터뷰라기보다는 태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그러다 케빈은 한번 둘러보고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전시장을 다 둘러보고 퇴실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앙리 앞에서 그림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두어 명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케빈 씨도 가서 그림 앞에 서보세요. 나쁘지 않은 경험이니까요.”
케빈은 그림 앞에 다가가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그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5분, 10분을 있었지만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
“내일 다시 와서 보세요. 시간에 쫓겨서 그런 것 일 수도 있으니.”
케빈은 제시카의 말대로 다음날 다시 한번 왔다. 어차피 윌슨과 인터뷰도 해야 하고 생존 작가의 작품의 최고가를 깰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그림들을 두고 기사를 써야 하기도 했다.
케빈은 아무리 봐도 눈물이 나올 정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옆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날 오후 연세가 꽤 있어 보이는 할머니가 그림 앞에서 그림을 한참을 쳐다보더니 끝내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는 걸 확인했다. 케빈은 얼른 달려가 그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아트워크라는 미술 전문 잡지 기자입니다.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그래요. 기자 양반. 뭐가 궁금하오?”
“저 앙리라는 그림을 보고 감정이 북 받으신 거 같은데, 혹시 연휴를 물어봐도 될까요?”
“별거 아니에요. 내 죽은 남편이 딱 앙리 저 사람 같았다오. 죽기 직전까지 자기 하고 싶은 걸 했지. 주위에서 다 말려도 말이오.”
“혹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피아니스트였고, 이름은 프랑시스 듸뷔시라오. 기자 양반”
미국인으로 프랑스 음악인까지는 다 알지 못하는 케빈은 나중에 확인을 위해 이름만 겨우 적어놓았다.
다음날 케빈이 인터뷰한 사람은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루소의 미망인인 클라라 루소였고, 이유는 프랑시스 드뷔시의 미망인 레나 드뷔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레나는 한마디를 더 남겼다.
“예술이란 게 이렇습니다. 진정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품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돈이나 명성은 예술의 진실성 앞에서 보잘것없지요. 이런 거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예술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에요.”
케빈이 기사를 쓰려고 동분서주하는 동안에도 그림값은 꾸준히 올라갔다. 특히나 황금의 마리아는 백만 이백만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육백만까지 올랐다.
얼마 전 피카소의 초기 작품이 일억 달러에 거래된 걸 생각하면 생존 작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디스카운트가 심하게 들어간 것이지만, 윌슨은 이것이 얼마지 않아 곧 바뀔 거로 생각했다.
전 세계 아니 미국만 해도 백만장자 천만장자가 발에 챌 듯 늘어나고 있고 닷컴 등 IT 기술주가 주식 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부자들이 세상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부자들이 집, 차, 비행기, 요트 등을 돌고 돌아 싫증이 나면 오는 곳이 결국은 미술품이다. 경제학 시간에 간단히 배운 공급과 수요 법칙에 의하면 현재 미술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확실히 적다. 정확히 얘기하면 태호처럼 확실한 블루칩이 시장에 드물었다. 즉 태호에 한해서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윌슨은 지금 너무나도 조심스럽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고 있는 것이었다.
윌슨이 이 사실을 깨닫고 나자, 평소답지 않게 거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정말 경매처럼 호가를 올리고 사람들을 안달복달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첫 출발로 제일 인기가 많은 황금의 마리아를 오늘 당일 12시에 판매 종료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문자 발송은 밤 11시까지. 그 뒤로 한 시간 동안은 최고가를 부른 사람에게만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를 위해 윌슨은 딸 제시카까지 동원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날 밤 11시까지 올라간 금액은 칠백만이었지만 그 뒤로 그 한 시간 사이에 가격이 무섭게 올라가 결국은 천삼백만 달러에 거래가 종료되었다. 이런 거래는 자신이 있었는지 스티브 코언이 막판에 정신없이 가격을 올려버리며 그림을 낚아챘다.
나중에 그가 이 거래를 회고하며 한 말은 천만 달라나 천삼백만 달라나 자신에게는 비슷한 금액이었고, 겨우 삼백만 달러 때문에 그림을 사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 날은 Faceless를 그리는 앙리가 거래되는 날이었다. 미술관 관계자들이 불을 켜고 이 그림을 손에 쥐기 위해 최종 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황금의 마리아에 비해 이 작품의 가치가 높으면 높았지 떨어지지 않아요.”
“도대체 얼마를 써야 한다는 건지.”
“어제 거래가가 천만 달러는 확실히 넘었다고 하더군요. 천이백만을 쓴 케네스 그리핀이 그림을 못 산 거 보면 코언이 샀을 거 같은데 그럼 이 그림에도 천이백만은 써야 한다는 소리예요."
“요즘 미쳤다는 얘기를 너무 자주 하는데 이건 시장이 미친 겁니다.”
“시장이 미친 건지 우리가 미친 건지 모르겠는데, 확실한 건 우리는 이제 누구도 가보지 못한 실존 작가 작품이 천만 달러가 넘는 시대를 직접 우리 두 손으로 열`었어요. 이제 고삐는 풀린 겁니다.”
이런 대화가 코언을 제외한 남은 선수들 사이에서 오고 갔다. 물론 코언이 두 번째 작품을 사지 않을 거라 말하지도 않았기에 그가 여전히 오늘 경매 아닌 경매에 선수로 뛸 가능성도 있다. 셈법이 복잡해진 참가자들이었다.
둘째 날은 10시 50분까지 어떤 가격 상승도 없었다가 11시가 되기 전까지 그 십분 사이에 천만 달러를 찍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그림은 오버슈팅 (overshooting, 목표값을 크게 상회함) 임을 알았지만 눈 질근 감고 지른 론 로더가 차지했다. 둘째 그림의 최종 가격은 첫 오백만 달러였다.
마지막 셋째 날, 나딘 쁘띠는 앞서 거래된 그림의 최종 가를 수소문해 본사 비서실에 보냈다. 전에 윌슨이 얘기한 것처럼, 첫째 날보다 둘째 날이 더 비쌌고 셋째 날에는 이 그림이 상대적으로 앞선 두 그림보다는 낮을 거라고 보고했다. 그래도 얼마에 거래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본사의 답변을 기다렸고 아르노 회장의 결정은 First에 천만 불을 다 쓰라는 것이었다. 삼백만 달러로 시작했던 가격은 11시쯤에 오백만 달러로 올라 있었다. 나딘은 10분 단위로 백만 불씩 가격을 올렸고 결국 천만 달러를 다 쓰고 나서야 그림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나딘은 밤 12시에 기쁜 마음에 방 안에서 만세를 부르다 항의 전화를 심하게 받았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에 있던 와인을 따며 자축했다. 지난 며칠간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나도 심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