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누가 Faceless를 그렸나? 1
태호가 Faceless를 처음 접합 날 꾼 Faceless의 제작자가 앙리 보나라는 사실도 알았고 아명이 Theo 라는 사실도 알았다. 더불어 아카데미 출신의 로마 미술 대상 (Prix de Rome) 수상자라는 것을 알지만, 감히 밝힐 수는 없었다. 밝히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근거로 삼을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Theo와 앙리 보나의 연관관계를 증명할 서류를 찾아야만 자신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그림으로 연관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앙리 보나는 Faceless 이전에는 Faceless와는 전혀 비교할 수가 없는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Theo라는 아명과 본명이 같이 적혀 있을 만한 서류를 찾아야 했고, 그런 서류로는 앙리 보나의 입학 서류나 추천서,사망 진단서나 시체 기증 시 남겨진 서류 등이 있었다.
루이비통 감옥을 빠져나온 태호는 바로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리에서 앙리 보나와 관련된 서류를 찾기 위해 프랑스 공공 기록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바로 난관에 부딪혔는데 외국인은 프랑스 공공 기록물을 기본적으로 열람할 수 없으며 학술 목적으로 열람 시에는 대학이나 문화공보관의 추천 서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고민하던 태호는 바로 빌바오의 제이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파리라고? 무슨 일로 파리에서 전화를 다 한 건가?”
“Faceless의 Theo가 아명이라는 제 주장은 알고 계시지요? 파리에 온 김에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추천 서한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누구에게 부탁할지를 몰라 제이슨 씨에게 전화했습니다.”
제이슨은 '그가 누군가?'라며 순간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남의 비밀스러운 연구주제이기 때문이었다. 목 끝에서 꿈틀거리는 궁금증을 억눌렀다.
“태호의 그 열정은 높이 사지만 정말 힘든 일일 거야. 거의 해변에서 바늘 찾기 같은 일일 텐데, 괜찮겠나?”
“찾아보고 제 가정이 맞으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 내 추천서를 마련해서 보내주지. 지금 파리 어디에 묶고 있나?”
“파리 17구의 노보텔에 있습니다.”
"일단 그곳에 머물고 있게 내 바로 서류는 만들어서 보내주지."
"고마워요."
*
다음날 추천 서류가 도착해 태호는 서류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카데미 입학 관련 서류는 비교적 찾기 쉬웠다. 비교적 잘 알려진 정보이고 미술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이기 때문에 도서관 사서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찾았다. 입학 서류에 Theo라는 이름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그런 자료는 없었다. 그래서 찾기 시작한 건 추천서.
중요 자료가 아니었기에 정말 뒤죽박죽 섞여 있었고, 자신의 멘탈이 뒤죽박죽되기 직전에 추천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추천서에 담긴 내용은 Theo의 청소년기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있었다.
입학 원서에 담긴 내용과 더불어 추천서의 내용까지 합쳐지니 아카데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찾았다. 그리고 태호가 찾을 수 있었던 정보는 딱 여기까지였다.
몇몇 공개된 기록, 예를 들어 '로마 대상' 수상자, 이외에는 알아낼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개인 신상에 대한 문서는 철저히 관련자에게만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 명성 높은 학자도 아닌 일개 대학생에게 기록 관리 담당관은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이상 일을 진척할 수 없었던 태호는 개학도 다가오기에 짐을 싸서 뉴욕으로 되돌아와 바로 제이슨에게 연락했다.
“잘 돌아와서 다행이군. 그래 원하는 자료는 찾았나?”
“찾았습니다. 그래서 찾은 자료도 보여 드리고 제안 드릴 것도 있습니다. 시간 되실까요?”
"Faceless에 대한 자료인가?"
"상당히 신빙성 있는 자료를 찾았고 가설을 제안 드리고자 합니다."
"좋아. 내 준비하지."
다음날 2시에 미술관을 찾은 태호는 미술관의 주요 큐레이터들과 모인 회의실에서 파리에서 찾은 입학서류를 화면에 띄웠다.
“이름은 앙리 보나. 1850년생으로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태어났으며 1867년 아카데미에 입학한 수재입니다. 20살이던 해 ‘로마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4년간 수학하고 다시 프랑스로 복귀 후 일 년 뒤인 1872년 아카데미를 졸업했습니다.”
태호는 파리에서 복사해 온 자료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보이는 편지는 당시 리옹 지방의 주교가 아카데미 입학처에 보낸 앙리 보나를 위한 추천서입니다. 여기 편지의 두 번째 문장을 보시면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앙리 보나를 추천하며'라고 분명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가서 보면 마지막 단락에 ‘Theo를 잘 부탁한다’는 문장이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드디어 Theo라는 이름이 등장한 첫 공식 문서에 모든 큐레이터가 문서 내용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자리를 앞으로 옮기며 스크린을 뚫어지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어 회의실 전체가 폭발 직전 클럽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 정보만으로 앙리 보나가 Faceless의 작가라고 주장하기엔 근거 자료가 좀 부족하죠. 가령 앙리 보나가 Faceless를 제작한 작가라고 해도 언제, 어떻게,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태호는 파리에서 찾은 앙리 보나에 대한 그림을 화면에 띄우면서 발표를 이어갔다.
“앙리 보나의 남아 있는 그림들을 보면 전형적인 아카데믹한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까지 유학하고 온 것을 보면 그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요.”
태호는 앙리 보나의 사망 시기가 미정으로 나와 있는 다른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그의 사망 일자를 알 수 없는데, 만약 우리가 그의 사망 일자를 Faceless 완성 시간과 동일하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는 유고작인 Faceless를 제작할 당시 건강은 정말 안 좋았을 겁니다.
그건 Faceless에 있는 거친 붓질을 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지요. 또 시력도 좋지 않았을 겁니다. 시력과 초기 인상파와의 관계는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백내장, 색약 등 눈의 건강과 인상파 그림과의 연관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만약 앙리의 사망진단서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자료가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그의 눈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앙리가 평소의 지금까지의 그의 그림과 다르게 Faceless를 왜 저렇게 그리게 되었는지가 설명이 됩니다.”
태호는 마지막 장표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앙리의 사망 일자가 확인되면 그 그림이 어떻게 Faceless가 미국으로 오기 전 마지막 장소인 파리의 파리 성당에 있었는지에 대한 연관관계를 찾아야 합니다. 앙리가 집에서 죽은 것이라면 누군가 앙리의 집에 찾아온 사람이 Faceless를 처음 발견했을 텐데, 그 뒤로 그림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태호는 슬라이드를 넘겼다.
"첫째는 앙리가 마지막을 보냈을 집의 실제 주인입니다. 파리의 빈민가로 예상되는 앙리의 마지막 집을 실제 소유한 주인이나 아니면 그 이상의 권력자가 그림을 자기 소유로 선언했을 가능성 높습니다. 손에 넣자마자 그림을 바로 숨겨버렸을 가능성도 높지요.
앙리가 가족이 없다거나 있어도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가정에서 말이죠.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우리가 앙리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가 없었겠지요. 가족을 통해서라도 자료가 나왔을 테니까요.
이번에 배운 사실이지만 프랑스는 각종 기록을 매우 잘 보관해오고 있었고 Faceless 정도의 그림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신문 기사에 날 법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다음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Faceless를 손에 넣은 권력자가 자의 혹은 타의로 Faceless를 파리 성당에 넘겼을 상황입니다. 파리의 빈민가 주인의 대부분은 파리의 귀족 등에 해당하는 유력가라고 들었습니다. 당시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와 그들의 관계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이상입니다.”
태호는 자신이 꿈에서 본 내용을 적절히 가설로 만들어 자신이 파리에서 찾은 자료와 연결해서 발표했고, 제이슨은 태호의 발표가 끝나자 손뼉을 치며 경이로워했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가정보다도 가장 진실에 근접한 것 같아.”
다른 큐레이터들도 마찬가지로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태호에게 다가와 악수까지 청하며 이 새로운 가설을 반겼다.
“자, 자네의 제안은 뭔가? 이걸 공동 연구하자는 자네의 제안은 기꺼이 받아들이지.”
제이슨은 태호가 제안할 것이 있다는 태호의 말을 기억하고 물어봤다.
“공동 연구에 저를 제1 저자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원하는 게 그게 단가? 논문에 이 정도로 기여를 했는데 당연히 제1 저자에 자네 이름이 들어가야지. 이걸로 석사 논문이라도 대체하려 하는가?”
“아니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태호.
“이번에 졸업하면 할 일이 많아서 석사는 하더라도 나중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자네가 좀 바빠야지. 작품, 학업, 패션. 바빠도 너무 바쁜 거 아닌가?”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두 번째 전시회도 추진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첫 번째 전시회도 여기서 했는데 두 번째 전시회로 여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디를 할 건가?"
토마스가 말했다.
"하지만 첫 전시회를 작년에 했는데 다시 한다면 여러 가지로 비판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작년 전시회는 빛의 마리아가 메인 테마였지. 물론 아름다운 작품이고 훌륭한 전시회였어. 다만 자네의 예술 세계가 빛의 마리아에 의해 조금은 묻혔지 않나 싶어.
준비가 되면 우리에게 연락하게. 자네가 아무리 작품을 빨리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년에 전시회를 하자는 건 아니지 않나? 조율하면서 진행하면 될 거야. 그리고 자네의 작품이 훌륭하면 개최 빈도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린 자네를 위해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도 있어."
토마스가 선언하듯 말하자 주위의 다른 큐레이터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미술관을 위해 헌신한 태호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없는 거 같아서 내가 미안할 지경이야. Faceless도 복원했으며 빛의 마리아까지 미술관에 스스럼없이 내놨지.
아! 우리가 돈을 주고 샀더라도 자네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건 맞아. 여기에 Faceless 원작자를 찾기 위한 연구 제안까지. 이 정도로 미술관에 많은 기여를 한 태호를 위해 전시회 정도는 문제 될 게 없어."
태호는 거듭 감사의 전했고 공동 연구는 바로 본궤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