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루이비통과 협업 in 파리
윌슨의 발표가 있던 날 저녁, 뉴욕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단편으로 태호 관련 기사가 났다. 뉴욕 타임스 같은 전국구 언론에서는 작게 났지만, 예술 계통 잡지사는 달랐다.
태호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기사도 크게 났으며, 뉴욕의 타블로이드지에서는 700만 불의 사나이라는 자극적인 기사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뉴욕발 단편 소식으로 끝나던가 싶던 이 뉴스는 한국에서 크게 보도가 되었다. KBC에서 태호 관련 소식에 늘 레이더를 세우고 있는 예랑이 윗선에 보고하자 KBC 라디오 방송은 물론 KBC 9시 뉴스의 마지막 꼭지로 태호의 기사가 나갔다.
작년에 태호의 다큐멘터리로 짭짤한 재미를 봤던 KBC는 이번에도 김예랑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편성하는가 한편, 태호가 방학을 해 한국을 방문할 경우 예능 등 TV 출연을 타진할 계획을 세웠다.
“얼마 전 뉴스 들었다. 이제 정말 세계가 인정하는 작가가 되어 버렸네?”
“고마워. 어쩐 일이야? 보통 이멜이나 문자 보내더니?”
“좋은 소식 들었는데, 문자나 보낼 수 있나. 오랜만에 목소리도 들을 겸 전화했지."
"뭔가가 더 있다는데 백불 걸 수 있어."
"흐흐. 다큐멘터리 하나 찍자. 그리고 한국 들어오면 방송 출연 좀 해줄 수 있어? 예능 같은 거?”
“여기서 다큐 찍는 거야 그냥 찍으면 되는데 예능은 힘들 것 같은데? 내가 올해 여름에 한국에 들어가도 짧게 들어갔다가 나와서 방송할 시간이 없을 거야.”
“무슨 일 있어?”
태호는 루이비통과의 협업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줬다.
“협업한다는 건 알았는데 좀 떨어져 있다 보니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파악 못 했다.”
“아직 상품으로 나온 건 아니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이번 루이비통 가을 신상으로 네가 디자인한 옷이 나오는 거야?
“내가 디자인한 옷이 꽤 있으니까 아마도 꽤 나올 거야. 얼마나 어떻게 옷이나 가방이 나올지는 루이비통 본사에서 짠 전략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기하다. 그럼 넌 앞으로 루이비통 옷만 입고 다니겠네?”
“지금도 입고 다니거든요. 옷장에 있는 옷이 다 루이비통이거든요. 발에 채는 게 루이비통이거든요.”
“아 부럽다. 가방 하나만 얻어주라.”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가격도 비싸서 그렇게 막 들고 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얼만데?”
“2만 불에서 4만 불 사이?”
“어떻게 가방값이 내 연봉이야?”
“어··· 디자이너 메이드라 비싸던데?”
“야! 혹시 너 루이비통에서 마크랑 같이 협업하는 거 찍을 수 있어?”
“안되지 싶어. 신상품 정보를 찍어버리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
“그렇겠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 너랑 마크랑 협업하는 거 찍으면 대박일 텐데.”
“처음 나가는 영상이긴 하겠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쇼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나가는 거 아니야. 그 일련의 미친 짓들을.”
“미친 짓? 어떤 의미에서?”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서 쇼를 내보내는 거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그런데 그런 쇼를 마크는 일 년에 열 번을 넘게 하더라고.”
“멋지다. 정말 찍어 보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
“전에 BBC에서 한 방법을 써보는 게 어때?”
“BBC? 다른 방송사와 협업하는 거?”
“루이비통에서 방송 내용을 검열하는 거 동의하면 혹시 허락해 주지 않을까? 여기까진 그냥 내 생각. 누나가 잘 알아봐. 참고로 프랑스 애들 중에 젤 까칠한 애들이 이쪽 업계 애들인 건 각오하고 연락해야 될 거야. 어설프게 접근하다가 단칼에 거부당할걸?”
“나도 알아봐야겠다. 고마워. 잘 지내고 얼마 뒤 촬영하러 가기 전에 연락할게."
“촬영하는 건 좋은데 기말고사 기간에 오면 내 뒤통수만 찍을 각오해야 될 거야.”
“최대한 너 학기 일정 맞춰볼게."
예랑은 태호와의 전화를 끊은 후 짠 기획안은 다음날 윗선에 보고가 되었고 단번에 통과가 되었다.
다만 루이비통에서도 보안을 이유로 퇴짜를 놓을 확률이 높기에 좀 더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예랑은 태호의 촬영을 위해 며칠 뒤 출국을 했고 예랑의 상사인 0과장이 루이비통에 대한 제안을 위해 회사 내부의 프랑스 특파원 출신이나 유학생 출신 직원을 찾아 수소문한 끝에 루이비통 언론 담당 직원까지 잘 연락이 되었다.
그 후 통역까지 대동한 채 회의를 했지만, 간단히 거절당했다. 루이비통의 대답은 ‘재미는 있겠는데 딱히 그걸 찍을 필요는 못 느끼겠다’였다.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찍는 거지 무슨 괴변이냐 싶었지만, 그쪽이 절대 갑이라 KBC에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내부에서 찍자는 얘기를 해줘야 성사되기가 쉬운데 그러면 태호가 루이비통 내부에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다시 총대를 강제적으로 메게 된 예랑이 태호에게 부탁했다.
“안 될 거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놈들 칼같이 자르네. 네가 좀 거들어 주면 안 돼?”
“뭐라고? 찍게 해 달라고?”
“어.”
“누나가 염치가 없는 거야 KBC가 염치가 없는 거야?”
“둘 다지 싶다.”
“그럼 내가 얻는 건?”
“예능 찍게 해줄게."
“이야, 아재 개그 많이 늘었네.”
“뭘 원하는데?”
“나중에 내가 원할 때 나에 대한 우호 보도가 나가게 해줘.”
“너 뭐 사고 친 거 있냐? 약했어? 아니 대마인가?”
“그런 거 아닌데! 혹시 모르잖아. 나중에 영주권 따고 그러면 그걸로 한국에서 어떤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지.”
“국적 문제는 왜?”
“자꾸 옆에서 부추기네. 생활 불편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영주권은 따 놓으라고 하니까.” 영주권도 땄는데 시민권도 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건 그렇겠다. 조용히 처리해.”
“그럴 건데 혹시 몰라서.”
“알았어. 보고해 볼게."
예랑의 보고는 윗선에서 바로 수용되었다. 예랑은 태호의 제안에 따라 NHN에도 연락해 무라카미, 태호, 마크 이렇게 세 사람이 출연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고 제안을 했다.
태호도 마크에게 루이비통의 동아시아 진출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아티스트가 나오는 다큐가 마케팅에 효과적일 거라는 언급을 했다.
마크는 태호가 이렇게 제안하는 행간을 읽고 파리 본사의 마케팅팀에게 슬쩍 언급을 해뒀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일본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루이비통의 전략이 맞아떨어져 이번 뉴욕과 파리에서 열리는 SS 시즌 무대를 하이라이트로 삼아 촬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태호가 디자인한 옷과 무라카미가 디자인한 가방 여기의 마크가 디자인한 옷과 가방이 모두 선보이게 되었다.
꽤 스케일이 커져 거의 영화 분량의 다큐를 찍기로 결정이 났다.
감독은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루익 프리정이 맡기로 했는데 기자 출신의 패션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승낙하자마자 일본과 한국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바로 촬영팀을 마크에게 보내 일하는 시간 대부분을 밀착 촬영하기 시작했다.
또한 뉴욕에 다른 팀을 보내 태호의 최근 화제가 된 작품에 대한 소개 영상을 찍고 태호의 학교생활도 찍었다.
찍힌 장면 중에는 태호가 마크 에디션으로 그리고 있던 빛의 마리아도 있었기에 촬영팀은 크게 만족을 하고 돌아갔다.
*
3학년 2학기가 끝나자 태호는 겨우 2주 한국에서 쉬고 이번에는 파리로 날아와 곧 감금생활이 시작되었다.
파리로 넘어온 건 태호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마크를 비롯한 그의 팀 전체가 와 있었고 무라카미도 태호보다 먼저 도착해 작업 중이었다.
무라카미는 혼자 오지 않고 회사 직원들과 같이 왔다. 이미 일본에서 직원들과 가방에 들어갈 디자인들에 대한 작업들은 거의 다 완료된 듯, 루이비통 직원들과 최종 조율 작업에만 전념하는 모습이었다.
태호는 무라카미와 그의 직원에게 간단히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근황을 물었다.
“무라카미 씨 오랜만에 뵙네요. 반가워요. 이쪽은?”
깜짝 놀란 무라카미가 자기 직원들을 소개하고 곧 일어로 물어봤다.
“언제 왔어?”
“방학하고 한국에서 좀 쉬다가 지금 막 왔어요."
무라카미와 인사를 끝낸 태호는 마크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프랑스 스태프들도 곳곳에 즐비했는데 마크는 영어로 스태프들을 소개했다.
태호는 그들에게 불어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마크가 놀라워하면 태호에게 말했다.
“불어는 언제 배운 거야? 거의 네이티브 (원어민) 같은데?”
“학교 다니면서 배웠죠. 벌써 3년이나 했는데.”
“3년 동안 불어 하면 너처럼 정말 할 수 있어? 아닌 거 같은데?”
“전 여자친구가 프랑스 여자였어요.”
“오우. 바로 이해되네.”
무라카미는 지난번 뉴욕에서처럼 이 주 정도 일을 하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태호는 무라카미가 돌아가기 전날 술을 같이 하며 기어코 무라카미가 왜 결혼을 안 하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만나는 여자가 없다는 슬픈 대답을 듣고 태호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눈에서 ‘이 잘생긴 것들은 날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결혼식 때는 꼭 찾아가겠다는 쓸데없는 말까지 꺼내 무라카미의 빈축을 샀다.
루이비통은 지난번 태호가 뉴욕에서 작업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놨다.
이번 작업은 마크가 주도적으로 콘셉트를 구두로 제시하면 태호가 그 콘셉트에 맞춰서 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했다. 그러면 그 그림에 맞춰서 바로 그 자리에서 옷을 제작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쪽은 좀 하늘하늘하게 만들어봐."
"그 말랑말랑한 느낌 있지?"
"여기서 좀 더 강한 느낌이 나는 선이 없을까?"
마크의 콘셉트가 아무리 뜬구름 잡는 소리여도 태호가 그걸 한 번에 알아듣고 그림으로 콘셉트를 시각화하면, 다시 마크와 태호는 그려진 그림을 놓고 그 자리에서 바로 추가 수정을 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엔 마크뿐만 아니라 마크의 사단이 다 달라붙어서 그림에 맞는 가방과 신발 액세서리까지 디자인을 해버렸다.
태호는 거의 인간 포토샵 역할을 했는데, 마크가 콘셉트를 제시했지만 그걸 표현하는 건 태호였기에 태호의 생각이 상당 부분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가끔 마크가 태호와 의견 충돌이 나면 둘은 끝까지 달라붙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추가 수정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이런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협화음은 줄어갔는데 태호가 마크가 원하는 콘셉트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한 이후에는 그것에 맞춰서 작업해나갔기 때문이다.
그 뒤로 마크도 의견 충돌이 생기면 태호가 제시하는 방향을 어느 정도 쫓아갔다. 태호가 제시하는 방향은 대체로 미적으로는 완벽했기 때문이다.
태호가 의상을 안 배운 거지 색을 보는 능력은 탁월했기에 그 부분도 마크도 태호가 제시하는 바를 따라갔다.
그렇게 두 달 정도를 작업하자 80벌에 가까운 옷이 준비되었고, 가방 역시 옷 숫자에 육박했다.
파리 작업실의 직원들은 올해만큼 진도가 빠른 적이 없었다며 뒤에서 수군거렸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게 누구인지는 당연히 모두가 알았다.
변화의 당사자인 태호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두 달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주말도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