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욕의 거래2 (109/181)

110. 뉴욕의 거래2

태호의 작품 가는 최근 연이은 방송으로 인지도를 높인 데다가 루이비통과의 협업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가격이 그야말로 로켓이 하늘로 치솟듯 올랐다.

저러니 짐도 몸이 달아서 윌슨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저런 억지를 부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모마까지 태호 작품을 자신들의 컬렉션 목록에 넣는다면 미국 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주요 미술관들도 태호를 컬렉션 목록에 넣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구매를 할 돈이 있는지는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윌슨은 앓던 이가 빠진 듯 속이 시원했다.

*

다움과 여전히 연락을 활발히 하는 윌슨은 태호가 제작한 작품을 도록으로 만들어 전달했다. 2개의 사랑 연작과 주제에 해당하는 독립된 작품들이 8점이 있었다.

도록에서 두 번째로 선보인 사랑 6 연작은 20 작품 중 제일 잘 그려진 것들을 모아 한 세트를 만들었음이 틀림없을 정도로 빼어난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정 과장, 태호의 사랑 6연작 얼마라고 해?”

“막 칠백만 달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다움 미술관 확장 개장을 위해 한창 주요 컬렉션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획총괄과 최선렬 차장과 정 태영 과장은 태호 작품을 구매하는 것을 포기하자고 보고서를 올려야 할 걸 생각하니 골치가 아파졌다.

십 년 전 몇억에 거래되던 작품들이 이제는 몇십억에 거래가 되고 있다. 10년 사이에 딱 10배 넘게 올랐다.

“자네도 태호 그림 하나 사지 그러나?”

“하하, 부장님 농담도.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그림인데요.”

“왜 돈이 있는데 못 사나?”

“태호가 개인에게 그림을 팔기나 합니까?”

“개인에게 판 그림이 있긴 할 테지만 아무한테나 팔지도 않겠지.”

“최근에 마크 제이가 태호 그림을 샀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팔아도 그 정도는 명성은 있어야 판다는 거로군. 봉급쟁이인 우리는 죽어도 못 사겠네.”

“우리가 살 정도 가격에 그림이 나온 적도 없습니다. 아, 딱 한 번 있었군요. 그때도 그림값이 수천만 원이었는데.”

“그래. 그 자선 패션쇼 후에 나온 작품이 아마 최저가였지 싶어. 그래도 천만 원은 했던 거 같은데?”

“그 정도였을 겁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땡잡은 거네.”

“그거 우리가 대부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가지고 있었나? 관장님만 돈 버셨군.”

*

인기가 폭발적인 사랑 6 연작과는 다르게 호박 시리즈 작품들은 뭔가 반응이 밋밋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인기는 있었지만 사랑 6 연작에 비하면 좀 아니 많이 부족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핵심이 되는 4연장은 빌바오가 진작에 사갔기 때문에 구매 가능 리스트에 없었고, 그만큼 중요한 작품도 마크 등이 사갔다. 그 핵심을 뺀 나머지 그림들은 그림값을 추산을 하기가 애매했다.

먼저 그림이 다른 태호의 작품과도 달랐다. 뭐랄까 성의가 없어 보였다랄까? 못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다른 태호의 그림에 비하면 대충 그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퀄리티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림값을 정할 만한 참고자료가 너무 적었다. 오프라 쇼에서 한 점에 백만 달러라고 선언하듯 얘기했지만, 일반인이면 몰라도 전문가가 그 가격에 홀릴 이유는 없었다.

거기에 오프라 쇼에 소개된 그림이라 눈에 익숙하긴 했지만, 주제도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였기에 개인 컬렉터들은 구매를 주저했다. 메이저급이 아닌 미술관에서는 거래 문의가 왔었는데, 가격은 최대 80만 달러 선이었다.

윌슨에게는 실망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기다렸다. 아직 빌바오의 호박 4연작 구매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이는 윌슨의 심술이었다. '감히 태호의 그림을 겨우 이 가격에 불러? 넌 못 살 줄 알아',라는 심보로 말이다.

윌슨은 결국 아모리에서 그림을 팔지 않고 다음 전시회인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도 다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두 전시회에 부스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2-3만 달러가 깨지겠지만 지금 그 금액이 문제가 아니었다.

*

모마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 뉴욕 현대 미술관).

“5백만 달러로는 부족해요. 자금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짐, 생존 작가에게 오백만 달러를 쓰는 것도 무리예요. 그것도 겨우 이제 막 23살 된 작가에게 7백만 달러 라니요. 그 누구보다 반대하던 사람이 짐 당신이었습니다.”

모마의 재무 담당 이사인 리처드는 미술관장인 짐의 요청에 난색을 보이며 요청을 수용할 수 없음을 긴급 이사회에 모인 다른 멤버들에게 어필했다.

“전에 태호에게 했던 나의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히며 그 발언을 철회합니다. 혼선을 끼치게 된 점 사죄드립니다.”

리처드는 급작스러운 짐의 사죄에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였다.

“짐.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확신하게 만든 거죠?”

“지난달 한국의 다움에서 신규 미술관을 오픈을 위한 학술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참석했는데, 태호의 그림의 전시 계획에 대한 내용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태호가 13살 때 그렸다는 일명 탱화를 실제로 봤는데,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보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아 태호 관련 다큐멘터리까지 다 챙겨서 보고 BBC나 한국의 EBC 채널에 연락해서 더 자세한 조사를 했습니다.

정말로 그 엄청난 그림을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할까 말까 한 어린 태호가 일 년에 걸친 작업을 통해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다움 미술관에 부탁해서 실물 크기로 프린트한 탱화입니다. 상하부로 이루어진 두 개의 작품이 연작으로 되어 있는데...”

짐은 태호의 그림의 실물 크기를 쫙 펼쳐서 이사회 앞에 선보이며 이 탱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특히 이 큰 그림을 상부 하부로 나눠서 놓고 그 앞에서 그림을 볼 때의 느끼던 그 위압감을 묘사할 때는 매우 흥분하며 설명을 했다.

"이 그림 앞에 서서, 정면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보고, 위로는 부처의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수그러질 정도예요. 그림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난 불교 쪽 전공자도 아니어서 기본 상식 외에는 지식이 부족함에도 그림 앞에서 절로 경건해졌습니다. 내가 살면서 그 많은 작품을 만나봤지만 이런 작품은 처음이었어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찬 음료수를 건네자 단숨에 마시고 조금은 진정을 했다.

“차라리 그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천만 불을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의 태호 위상을 생각하면 더 오를 거라고 믿고 있을 겁니다.”

“짐, 그럼 다시 묻죠. 그 사랑 6 연작이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기에 우리 모마가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자신이 늘 찾는 미술사지만 다른 사람에게 미술사적 의미를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짐은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하고 대답했다.

“미술사적 의미를 지금부터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도 구매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특별한 의미도 없는 태호의 그림을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빌바오가 미리 선점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태호는 뉴욕 예술의 아이콘 같은 존재이고 앞으로 그 위치를 공고히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작품을 구매해 놓지 않으면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의 그림을 앞으로 구매하기 더욱 힘들 겁니다.

이미 일반 컬렉터뿐만이 아니라 은행가나 투자가 등 기업들까지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보고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믿을만한 작가의 그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팔리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금 7백만이지만 이때 잘 샀다는 평가를 아마 5년 안에 받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공방이 이어졌다. 평소 짐의 의견에 순순히 동의하던 사람들은 바뀐 짐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짐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자신들이 조금 오랜 기간 태호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선두 주자인 짐이 사죄까지 하며 그림을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자 이사회는 조금씩 움직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짐은 이사회로부터 작품 구매 비용으로 7백만 불을 승인받고 윌슨에게 전화를 걸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윌슨. 7백만 불로 모마와 거래했다고 밝히고 이 거래 끝내주게.”

“흠··· 알겠습니다. 그럼 그림은 언제 가져가실 생각이십니까?”

윌슨의 말이 마치 승리자의 포효같이 느껴져서 짐의 미간은 절로 찡그려졌다. 그래서 말도 퉁명하게 나왔다.

“당장 내일이라도 가져가고 싶군.”

짐의 말투가 어찌 되었든 윌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했다. 음의 높낮이는 무시한 채 텍스트에만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준비해 놓은 다음 연락드리겠습니다.”

“호박 시리즈 중 메인 테마는 얼마에 팔 건가?”

“지금은 백만 불입니다만.”

“그 작품이 백만 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짐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미 그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연작으로 말이죠. 조만간 빌바오와의 거래 내용이 모마와의 거래 내용과 같이 언론에 공표할 생각입니다.”

“팔렸다고? 그 가격에? 우리만 미친 줄 알았는데 빌바오도 어지간하군.”

“늘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미쳤다기보다는 시장이 미친 거죠.”

“기다려보게. 호박 시리즈도 구매 가능한지 알아보고 연락해주지.”

그리고 짐은 다시 리차드와 크게 언쟁을 한 뒤 다음날 윌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80만. 그 이상은 시간이 더 걸려. 승인될지도 불투명하고. 다시 말하지만 내가 원하는 호박 시리즈는 아까 가서 내가 직접 찍은 그 작품일세. 계약서 들고 갔는데 다른 작품이 있을 경우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그런 장난은 안 칩니다. 그럼 그 80만 불로 알고 있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태호 그림이 들어오면 그 빌어먹을 ‘빌바오’보다 먼저 우리에게 알려주게.”

“그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최대한 비슷한 시기에 연락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윌슨은 모마에게 크게 한 방 먹인 것을 만족했고, 또한 대박 거래를 터트린 데에 대해 더욱 만족해했다. 그리고 태호에게 연락해 거래 결과를 알렸다.

“모마가 그 가격에 거래했단 말이에요?”

“네가 그 똥줄이 탄 짐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어. 20대에 벌써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 어때?”

“돈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 별 감흥은 없어요. 필요하면 벌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업계에 몇 사람 없어. 태호 넌 벌써 성공한 거야! 빌바오에 이어 모마라니. 이제 전 세계가 다 자네 작품을 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은 거지. 축하해! 다음에 뉴욕에 오면 거하게 파티라도 열자고.”

“윌슨 씨도 고생했어요. 그래도 나랑 거래해서 고생한 보람은 있죠?”

“이런 고생이라면 평생을 해도 돼. 기분 끝내줘. 그리고 고마워. 우리 계속해서 잘해보자.”

“그래요, 윌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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