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오프라 쇼2
화면에는 탱화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TV화면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프라가 굳이 이 그림을 보여준 이유는 그 다음 질문에 있었다.
“실제 그림은 이 그림보다는 훨씬 큽니다. 태호, 이 그림을 그리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거의 일 년 넘게 작업을 했죠.”
“13살짜리 아이가 일 년에 걸쳐 저 큰 대작을 작업했다니 믿을 수가 있습니까?”
방청객은 박수로 대답했다.
“무엇이 그 어린 태호 군을 이 작업에 매달리게 했습니까?”
“어린 마음의 종교적 열정도 있었던 것 같고 또 어떤 계시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저 아래 그림의 중앙에 담긴 부처가 관세음보살입니다.
어느 날 저 부처가 바위에서 보이더군요. 마치 자신을 그려달라고 손짓을 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리려고 하니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3개월을 바위 앞에서 지내며 기억을 끄집어 내어 스케치를 하고 나중에 10개월에 넘게 채색을 하고 나서야 완성된 작품입니다.”
"지금 태호의 얘기는 이미 BBC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가 된 적이 있는 얘기입니다. 저 작품은 다른 걸로도 유명한데 오늘 밝혀 볼까요?"
어리둥절해 있는 태호를 향해 오프라가 말을 이었다.
"저 탱화와 이 초상화를 합쳐서 한국의 다움 미술관에서는 태호에게 당시 백만 불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구매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어떻게 알았죠?”
방청객들 사이에서는 놀라움의 '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움이 알려주던데요?”
“하하. 지금까지 비밀로 해 달라고 했거든요.”
“왜일까요?”
“예상입니다만, 13살짜리 꼬마에게서 백만 불을 지불하고 그림을 샀다고 하면 당시 사람들이 미술관을 비웃었겠죠. 지금이야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은 저 그림들을 그때 돈을 주고서는 도저히 구매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맞아요. 다움 미술관이 그 가격에 안 팔겠죠. 하하. 전 지금도 저 그림만 보면 천만 불을 주고서라도 되사오고 싶거든요.”
방청객들이 놀라워한다. 그들의 머리속에 천만불이라는 단어를 결국 집어 넣었다.
그런 방청객들이 가라앉을 때까지 노련하게 분위기를 살피던 오프라는 이제 쇼의 마무리를 위해 클로징 멘트를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일단 대학을 먼저 졸업을 하고 초상화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태호의 성공을 빌겠습니다."
오프라의 멘트와 방청객들의 박수와 함께 촬영은 끝이 났다.
*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방송 프로 중 하나인 오프라 쇼는 평일 아침 9시에 방송하며 보통 5백만에서 8백만 사이의 평균 시청자를 동원한다.
2003년 슈퍼볼이 시청자가 1억 14백만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작은 숫자이지만, 전체 미국 시청자의 5-7%가 매일 방송을 지켜보는 대단한 프로그램이다.
금요일 방송으로 태호가 천재화가라는 공식을 미국인들 머릿속에 주입 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제는 뉴욕커들만 아는 화가가 아닌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게 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더군다나 비록 평가액이지만 1백만 불이 나 하는 그림을 선뜻 선물하는 모습은 이 천재 동양인 화가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까지 비치게 만들어 미국인의 호감을 이끌어 내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걸 차치하고 무엇보다 윌슨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 방송을 통해 태호는 이미 12-13살 그 어렸을 때부터 수십만 달러를 받고 그림을 판매한 프로 작가이며 지금은 작품당 가장 고액을 받는 생존 작가라는 것을 미국 전역에 어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양키즈 구장에서의 시구와 프렌즈 출연 (아직 방송은 안되었지만) 그리고 오프라 쇼의 출연은 태호라는 상품을 미국 시장에 널리 홍보하는 최고의 광고였던 것이다.
*
오프라 쇼가 끝난 이후, 벨라의 전신 초상화가 윌슨의 갤러리에 걸렸다. 오프라 쇼에서 소개되어 꽤 인지도가 올랐을 거라 생각하고 야심 차게 전시했건만, 시장의 반응이 좀 뜨끈 미지근했다.
특히 태호와 벨라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점은 벨라의 전신 초상화를 보고 초상화 주문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벨라에게 모델 문의가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쪽에 솔깃했던 벨라도 광고를 의뢰한 업체가 빅토리아 시크릿이란 걸 알고 실망해서 접었지만 말이다.
윌슨은 주문이 없는 까닭으로 태호가 너무 최근에 뜨는 바람에 시장이 관망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봤다. 태호의 초상화를 낯설어 했다.
실제 윌슨의 매장을 찾는 고객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림은 괜찮은데 태호라는 브랜드가 완전히 정착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어서란 말을 많이 들었다.
그 가격이면 차라리 현재 생존 작가 중 목숨 줄이 오락가락하는 작가들을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고민한다는 것이다. 윌슨은 그럼 그거 사세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프로답게 자신이 거래하는 작가 중에 오늘 내일 하는 작가의 그림을 소개해 줬다.
오프라 쇼에서 소개된 그림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빌바오로 갔는데 빌바오에서 전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윌슨 얘기로는 한동안 빌바오에서 전시를 하다가 나중에 빛의 마리아가 한국에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갈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서로 태호의 작품을 가지고 있다 보니 순환해서 전시라도 할 모양인 듯했다.
한국에서 제법 대박을 친 예랑은, 오프라 쇼 이후 예일대를 방문해 태호의 대학 생활을 찍고 덤으로 호박 시리즈와 초상화까지 찍은 후 돌아갔다.
촬영전 학교 근처 바에서 맥주 한잔하며 들어보니 회사에서 태호에게 빌붙어서 먹고산다는 얘기까지 들은 모양인데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고 한다
예랑이 찍은 필름 속의 태호는 이제 3학년으로 바쁜 생활을 하는 모습이 담겼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불어 수업과 이탈리아어 수업에서는 거의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 능력을 발휘했고, 철학 수업 시간에는 교수와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공 수업인 예술과목에서는 주변 학생들과는 차원이 다른 실력을 보여주며 군계일학처럼 성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미술과 전공 학생들의 불평불만이 자자했다.
"성적 A를 원하는 학생들은 태호가 듣는 수업은 일부러 피합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인터뷰는 마지막에 방영된 학장, 로보트 스토와의 인터뷰 였다.
"예일대에서 월반이 가능했다면 태호는 지금쯤 박사과정을 밟고 있어야 정상일 겁니다."
예랑의 KBC 다큐멘터리가 나가고 난 후 제일 좋아한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드디어 손자가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학교에서의 성적도 우수한데다가 뉴욕에서 제일 핫한 아티스트라는 명성과 더불어, 이제는 전미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방송이 나오자 입끝이 그야말로 귓가에 걸렸다.
손자가 태호라는 걸 아는 모든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며 부러워했고 사방팔방에서 손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친구와 지인이 넘쳐났다. 지금껏 손자에 대해 물어봤을 때 말도 못 하고 냉가슴만 앓았던 그 한을 이번에 다 푼 것이다.
예랑에게 학장의 인터뷰 내용을 들었을 때의 태호의 생각도 학장의 의견과 다르지 않았다. 끝없는 과제와 시험, 프로젝트로 죽어 나가는 게 보통의 대학생활이었지만 태호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자신이 왜 이 학교를 왔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답은 곧 찾았는데, 바로 과에 아무런 친구가 없었던 것이다. 과의 모든 학생들이 자신을 경원시하기만 하지, 다가오거나 도움을 청하는 이가 없었고, 심지어 진지하게 그들의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인터뷰해 본 예랑의 말에 따르면 특정 과목에 대해서는 학점 킬러인 자신을 피해 수업을 들을 정도라고 하니 어떻게 보면 자신은 그냥 민폐 그 자체였다. 자신은 대학에 다니지만 홀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가는 고독한 철학자요, 미술의 목표는 설득이다. 지금까지의 태호의 미술은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닌 강요고, 자신은 철학자가 아닌 셀럽처럼 느껴졌다.
사실 이렇게 행동한 근원에는 우월감이라는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남들은 어려워하는 표현을 자신은 숨 쉬 듯 쉽게 할 수 있었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사람이 식사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학생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다음날부터 태호는 수업 시간에 좀 더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신경을 쓰면서 주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혹 먼저 다가가 수정할 필요가 있는 부분에 대해 말을 걸고 수정하는 것을 봐 주었다.
태호가 알려주는 내용들은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보다 어떤 부분들은 이해하기 더 편했고, 간혹 교수도 모르는 방법이나 테크닉 등을 제시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런 조그마한 노력들이 모이다 보니 점점 안면을 트고 수업 시간에 아는 척을 하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호가 점점 더 다가가고 동기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자, 이를 눈여겨 본 교수들이 다음 학기의 TA를 제안했다. 하지만 태호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사양했다.
이미 빛의 마리아 한 점을 학교에 기부하면서 학교로부터 수업료는 다 면제를 받았고 TA를 하면서 버는 수입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질은 얽매이기 싫어서인 게 더 크긴 했다.
한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태호는 수강하는 과목의 학생들 대부분과 안면은 틀 수 있었다.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이룬 성과였는데, 반대로 동기들이 얼마나 태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는지를 반증했다.
이미 뉴욕의 미술계의 차세대 선두주자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작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실력차가 비슷해야 질투를 느낄 텐데 거의 지도 교수의 지도 편달이나 다름없었기에 학생들도 어떤 논쟁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태호는 철저하게 테크닉에 대해서만 조언을 해줬는데 이 자존심 덩어리인 학생들에게 민감한 예술 철학에 대해 조언한다는 것은, 그냥 싸우자는 얘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
태호가 수업 시간에 만난 학생들 중 제일 실력이 좋아 보이는 학생은 제이크 데일. 1학년 때 세미나에서 처음 만났고 예일 미술 협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학생이었다.
오고 가며 인사 정도는 하고 지냈기에 근황은 모르지는 않았다. 그의 성적 취향은 여전했으며 패션 취향도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ART331 중급 회화.
태호는 일찌감치 그림을 끝내 놓고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의 작품을 관람하고 테크닉에 한해서지만 지적질을 하고 있었다.
학기 초부터 제이크는 태호가 하는 여러 수정 사항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를 하고 있었다. 가끔 지나가면서 제이크가 작업하는 것을 볼 때마다 태호는 이 점이 놀라웠다.
재능이 모자라던 노력이 부족하던, 아니면 지적질을 하는 태호가 못마땅해서 거부하던, 태호가 얘기한 수정 사항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학생들은 드물었다.
셋을 얘기하면 하나 정도 가져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셋을 다 챙겼고 그를 통해 그동안 묻혀있었던 장점들이 톡톡 튀어나왔다.
"제이크. 넌, 학교 다니면서 그림 연습을 한 적이 있어?"
"아니. 없는데."
"아니, 미대 갈 생각이 있었던 녀석이 어떻게 그림 연습을 하나도 안했어?"
"난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았지만, 글 쓰는 걸 더 좋아했거든. 내가 손재주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이유도 있고."
"농담이지? 몇 달 사이에 이렇게 실력이 좋아졌는데?"
"그래? 그렇게 달라졌나?"
"달라졌냐니? 너 내가 이렇게 잘한다고 칭찬하는 거 본 적 있어?"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우와. 정말이야. 네가 칭찬을 다 할 때가 있구나."
말을 듣고 나니 제이크의 목소리가 또 다른 '디스'처럼 들렸다.
"그래서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태호가 약간 시니컬하게 말했다.
"아니 아니. 황송하다고. 네가 좋아졌다고 하니까 되게 많이 좋아진 것 같잖아."
"아직 고칠 부분이 있긴 한데, 그건 숙련도의 문제고 시간이 해결할 문제니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야."
태호는 제이크가 적어도 이 수업을 듣는 30명 학생 중에는 제일 실력이 좋아 보였다. 이 정도면 어디 데려가서 자신의 개인 작업에 써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 태호는 소문이 돌 걸 각오하고 제이크에게 좀 더 신경을 써서 작품 등을 봐주기 시작했다. 얼마 후 태호가 엘리와 헤어지더니 금단의 영역에 눈을 떴다는 소문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