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 빌바오 특별전 (102/181)

103. 빌바오 특별전

“난 내 능력이 지금 탑 급 바로 밑 정도 되는 유명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들과 견줄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네가 말한 전략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내 품위 유지비나 제대로 벌 수 있을지 모르겠는걸.”

벨라는 태호의 말이 답답했던지 옆에 있던 물까지 마셨다. 태호는 벨라가 그러거나 말거나 느긋했다. 협상하는 방법도 교수님들에게 배웠기에 좀 더 차분하기도 했다.

“내 작품들을 통해 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서브 브랜드 론칭은 적극적으로 도와줄게.그로 인한 수익 배분도 결코 유명 디자이너의 서브 브랜드만 못하진 않을 거야.

한 가지 덧붙이면 나랑 같이 일할 너 이외의 다른 디자이너에게도 같은 기회가 주어질 거야. 신발이 되었던, 가방이 되었던, 옷이 되었던 말이야."

“어떤 디자이너의 작품이 들어갈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당연히 고객이 선택한 기준으로. 그럴 일은 별로 없겠지만 만약 고객이 선택이 매우 잘못된 경우에는 주위에 의견을 구하지.”

벨라는 태호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사업 방향이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네가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어떤 자금을 끌어올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네가 날 정말 고용하는 형태이고. 맞아?”

“사실 그게 고민이야. 자금이야 나도 충분히 끌어올 수 있거든.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내가 대부분 들고 가버리는 구조가 되는데 당연히 네가 만족하지 않을 테고.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 같아. 네가 완전히 독립해서 나갈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구축하는 브랜드가 약하다면 널 붙잡으면 안 되고 또 붙잡을 수도 없을 거 같고.

몇 년 뒤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지금 고민하는 것도 이르다는 생각이 드네. 하지만 큰 방향은 이래. 수익 부족 문제는 매장에서 네가 디자인 한 옷을 매장을 통해 판매하는 걸로 해결하자. 너뿐만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도 같은 문제를 고민할 테니 말이야.”

“수익 구조는?”

“디자이너가 너 하나 뿐이라면 매장 운영 등 비용을 뺀 순수익의 30%를 네가 가져갈 거야. 단 순수익이 낮으면 네 몫이 늘어날 거고.

예를 들어 네가 디자인해서 판 옷 매출로 발생하는 순수익이 10만 달러 이하라면 난 거기엔 손을 안 댈 거야. 20만 달러라면 40%고. 그 위 레벨에서는 30%. 난 이게 업계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알게 뭐야. 내가 만들면 되지. 만족할만해?”

“생각보다 조건은 좋아. 큰돈은 못 벌 거 같은데 꾸준히 즐기면서 디자이너를 할 수는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

큰 돈은 못 벌거 같다는 얘기에 태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난 이쪽 업계 사람들 일하는 거 보면 정상인들이 아닌 거 같아. 너무 승자 독식 구조야.”

“네가 할 말은 아닌데?”

“그런가? 흠.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나랑 같이 할 거야?”

“조율할 건 많은데, 일단 크고 급한 건 이걸로 많이 해소되었어. 그리고 중요한 게 하나 남았는데,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나도 잘은 모르지만 사업을 시작하려면 법률적인 도움들이 꽤 필요한 걸로 알아.”

“네 생각은 어때?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겠어?”

“네가 그린 그림 전시하면 주문이 들어오겠지?”

“거의 그렇지 않을까? 빛의 마리아의 다른 버전들이 여기저기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데 그러면 주문이 많아질 수 있어. 얼마나 들어올지는 모르지만 말이지.”

“너도 알다시피 이 학교 4학년 과정이 만만치 않잖아. 방학 때 아니면 작업하기 쉽지 않을 거야.”

“네 스케줄은 고려할 거야. 나도 주문을 많이 받을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네가 가용한 시간을 알려줘야 돼. 그거 맞춰서 스케줄을 짜던지 아니면 너 없이라도 진행할 거야.

어차피 졸업전까지 4벌은 제작해 주기로 한 거잖아. 만약 네가 의상이나 액세서리를 제작할 경우 네가 갈 이익은 만 불이고 제작비용은 별도로 나갈 거야. 동의해?”

“올해는 두 벌로 맞춰 볼 테니 내년 물량은 졸업 이후로 해줘. 지금 학교 스케줄로는 불가능해.”

“알았어. 그럼 조만간 계약서 만들어서 가지고 올게. 정식 계약은 내년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하자고. 한 가지 더. 누구를 서브로 고용할 생각이야?”

“이제부터 고민해 봐야 돼.”

“가능하면 가방 디자인 잘하는 사람으로 뽑아. 옷이야 나도 어느 정도 콘셉트를 제공할 수 있지만 가방은 나도 잘 몰라서 말이지.”

"참고할게."

태호는 학교로 돌아가 스타트업 관련 법률 자문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벨라의 비자 문제까지 회사 설립 관련해서 필요한 일들을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

빌바오 미술관에서는 한창 태호의 특별전 전시를 결정, 이를 위해 두 달 전부터 분주했다.

미술관은 늘 관람객 유치를 위해 일 년 내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이번 이벤트만큼 큰 이벤트는 신관 개관 이후 처음이었다.

한국인으로써는 두 번째, 빌바오 역사상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는 작가들 중 최연소였다.

이벤트 첫날을 휴관일인 목요일로 잡아 시장 등 뉴욕의 명사들과 기자들과 미술관 후원회 회원들만을 초청할 계획이었고, 일반인 공개는 다음 날인 금요일부터였다.

현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는 이번 이벤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참석 의사를 밝혔고, 뉴욕 주지사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를 초정하기 위해 빌바오가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파타키 뉴욕 주지사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예상 밖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태호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 테일러 (데이비드 이모할머니)가 마틴에게 부탁하여 성사된 방문이었다.

빌바오는 뉴욕시와 협의하여 시 차원에서 광고를 진행하였는데 시장의 관심이 지대해 이벤트 광고도 쉽게 진행이 되었다.

언론들도 관심이 컸는데 뉴욕 지역지는 물론 뉴욕에 본사를 둔 CNC나 NBS 같은 전국 채널도 관심을 가졌고, 로이터나 워너 등 국제적인 미디어들도 예술란에 뉴욕발 기사를 올릴 준비를 했다.

참석 의사를 밝힌 셀럽으로는 톰 행스 등의 영화배우와 시트콤 프렌즈의 주연배우 6명, 가수와 오프라 윈프리가 있었다. 이중의 하이라이트는 오프라 윈프리였는데 시카고에서 이 행사를 위해 날아오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

윌슨, 제시카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미술관에 도착한 태호는, 휴고 보스 측에서 협찬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오프닝은 9월 11일 저녁 6시 로비에서 간단한 발표로 시작되었다.

미술관 관장인 로스와 후원회 장인 데이먼 스미스가 나와 오랜 기간 기다려 온 Faceless 얼굴을 찾아준 태호의 특별 전시회에 참석해 준 내외빈을 환영했고, 그림을 그린 태호에게 찬사를 보냈다.

축사에서 토마스는 태호에게 특별한 감사 인사를 건냈다.

"빛의 마리아라는 품격 높은 Faceless의 완성 버전까지 제공해 우리가 상상하던 Faceless의 모든 모습을 갖추게 해줬다며 감사합니다."

태호도 미술관과 후원회의 지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는데 이 장면이 미국 전국 뉴스에 작품들과 같이 전해졌다. 환영 인사와 발표 등이 끝난 이후에 전체 일행은 2층으로 이동했다.

작품은 나선형 회랑이 아닌 신관 2층에 전시되었는데 접근성과 세 작품을 같은 높이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였다.

곧 천이 내려지고 작품이 공개되었다. 태호가 금박을 입히며 작업한 빛의 마리아의 가장 최신 버전이었다. 한학기를 들여 다섯 작품을 만들 때 팔지 않고 자기 몫으로 남겨둔 바로 그 작품이었다.

‘와’하는 감탄사와 함께 플래시는 없지만 수없이 많은 카메라의 셔터 음 소리가 층을 가득 채웠다. 토마스와 제이슨, 태호가 나란히 그림 옆에 서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 근처에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방송인이 태호에게 다가왔다.

"태호 작가죠? 만나서 반가워요. 오프라에요.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

태호는 전에 토마스가 얘기했던 놀라운 게스트가 오프라였다.

"반가워요, 오프라. 여기서 당신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토마스가 꼭 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왔네요. 호박 시리즈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웠고요. 그래서 말인데, 호박 시리즈를 포함해서 내 쇼에 작품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순간 태호의 머리엔 이건 무조건 해야 된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오프라 쇼에 출연한다는 얘기는 미국 전역에 한 번에 이름을 알린다는 얘기와 동일했다. 특히 예술가라면 누구나 원하는 기회였다.

*

태호는 프렌즈 측으로부터는 한 에피소드의 카메오 출연까지 제안받았다. 톰 행스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영화를 찍어보자는 농담 반 진담 반 얘기를 건넸다.

태호는 그전에 초상화를 하나 주문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를 했고 톰도 지금 영화가 마무리가 되면 꼭 주문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

사진 촬영 후에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제이슨과 태호가 메인 게스트였지만 첫 질문은 태호에게 집중되었다.

"빌바오가 사랑하는 작가이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빛의 마리아 이후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가?”

기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어느 정도 풀리고 나자, 작품 외적인 요소들 아니 대중들이 더 관심을 많이 갖는 사항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빛의 마리아는 총 10개의 작품이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빌바오에 있는 지금 작품 외에 다른 작품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

“빌바오에서 이 빛의 마리아를 얼마에 구매했는가?

이 질문이 아마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제일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었다. 제이슨이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정확한 금액은 밝히기 어려우나 실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에 구매했습니다."

곧 태호가 실존 작가 중 최고 가격을 갱신한 작가가 되었다며 그날 밤 뉴스에 바로 올랐다.

뉴욕발 소식은 곧 한국에도 전해져 저녁 주요 언론사에서 다뤄졌다. 스승으로 알려진 강 교수와 김 교수의 각각 다른 방송사에서 한 인터뷰가 그냥 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전파를 탔다.

‘실존 작가 중 최고가’라는 수식어는 세계 최고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가슴에 제대로 애국심 펌핑을 하여 국가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거기에 작년 여름에 태호가 타고 다니던 엔초 페라리에서 태호가 서현과 내리는 사진까지 웹사이트 올라와 한동안 잠잠했던 태호와 서현의 열애설에 불거졌다.

추가로 둘이 고등학교 동문이었다는 팩트와, 지난여름 한남동에서 둘이 데이트를 하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담까지, 디카에 찍힌 사진과 곁들여서 올라서 열애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주위 남자들을 단숨에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 비주얼.”

“남자가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여자가 다성 막내딸일 줄은···”

"서울예고의 역사적 킹카 중 1인"

“전에 사귄다던 미스 프랑스 출신의 여자친구는 어디에?”

이렇게 시작한 루머는 태호의 이촌동 미술학원 당시 원생들의 목격담이 더해졌다.

“원래부터 될성부른 나무였음.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천재로 이촌동에 소문이 파다했음.”

“중학교 때 미술 학원에서 태호가 직접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봤다. ‘천재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고 좌절했다.”

전에 EBC와 한 인터뷰 내용까지 겹쳐져 교육계를 흔들었다.

“정규 학교를 전혀 나오지 않은 태호가 어떻게 예일대에 다니고 있나?”

심지어 뉴욕에서 친구들과 클럽에 갔던 것까지 이야기가 돌았다.

“뉴욕 클럽에서 백인들과 지나가는 동양인 남자를 한 명 봤는데 그게 태호일 줄은. 그때 같이 있던 친구들이 상당한 미남들이었음.”

"태호로 추정되는 남자가 들어간 프라이빗 룸은 한 시간 비용이 백만 원이 넘는 최고가의 파티장."

"태호의 작품 제작의 원천은 대마초와 코카인인가?"

이런 여러 가지 팩트와 루머가 범벅이 되어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다음날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숙영 (엄마)이었다.

"너 서현과 사귀니?"

"아니요? 누가 그래요?"

"한국 인터넷에 너랑 사귄다고 그러던데 아니냐?"

"전에 같이 드라이브 몇 번 한 적은 있는데, 사귀는 건 아닌데요?"

"사귀지도 않으면서 드라이브는 왜 했니?"

"친구끼리 차 같이 타고 다닌 건데요?"

"너 대마초도 핀다던데? 그러면 안된다."

"엄마! 무슨 얘기에요? 그걸 왜 해요?"

인터넷에 떠돌던 루머를 하나하나 다 체크한 후에야 안심하고 숙영은 전화를 끊었다.

*

KBC는 물들어 왔을 때 노 저으라는 격언을 충실히 이행하며 지난 여름에 찍어둔 태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다시 방송했다.

미술관 측으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지만 KBC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방영 후 시민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곧 덕수궁 미술관도 보존 처리를 위해 잠시 옮겨두었던 태호의 빛의 그림자를 다시 전시할 수밖에 없었다.

KBC가 홈런을 칠 때 다른 방송국들은 인터넷에서 얻은 사진이나 영상 자료를 가지고 방송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나중에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는지 미국에 촬영진을 보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일을 추진했다.

*

뉴욕도 여러 빛의 그림자가 있지만,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들 때문에 완전히 색다른 빛의 그림자가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뉴욕에 알려졌다.

그 뒤로 뉴욕에서도 이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요구가 빌바오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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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가 제일 먼저 참석한 행사는 양키즈와 보스턴과의 경기의 시구였는데 리베라가 가르쳐준 직구로 공을 던졌다. 그 뒤로 잡힌 프렌즈에서는 에피소드 13편에 조이에게 프렌치를 몇마디 가르쳐주고 누드모델로 섭외하는 미술가로 등장했다.

더 이상 뉴욕에서 태호를 모르기는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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