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예일대 - 시작1 (2부 시작) (70/181)

70. 예일대 - 시작1 (2부 시작)

미국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 위치한 예일대는 자유 교육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잠재력을 최대한을 발휘하는데 교육 목적을 둔 학교다. 일 년에 천이백여 명의 신입생을 모집하는데 입학생이 적다 보니 요구하는 고등학교 성적 및 SAT 성적도 매우 높다.

교육과정은 일이 학년 때에는 주로 인문학 및 예술,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학문으로서의 필수 과목을 수강해야 하며, 기본 능력으로는 글쓰기, 추론, 그리고 외국어를 수강해야 한다.

삼사 학년 교육과정은 전공 수업 위주다. 다행히 학기 제라 (semester 봄/가을학기) 쿼터제 (1년에 3학기가 있다)보다는 그래도 널널 하지만, 평생 A 외에 받아본 학점이 없는 학생들에게 B, C, D, F가 상대평가로 뿌려지기에 수업 내에서의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하다. D 학점은 각 반에 25% 정도라고 보면 된다.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ACT (American College Testing) 결과를 바탕으로 수업을 면제 받을 수 있는데 반해 여느 아이비 학교들이 그렇듯 예일대는 수업 면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매우 제한적이다. 태호도 이 정보를 강남의 학원을 다니며 입수할 수 있었기에 ACT는 가능하면 외국어로 채웠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학교 이메일 계정부터 만들고 난 후 건물 등을 돌아봤는데 길치인 태호에겐 이 일이 가장 큰일이라 다른 어떤 무엇보다 먼저 챙겼다. 학비와 보험료, 기숙사 비 등등을 수납하고 학교에서 타고 다닐 자전거를 구매했다. 지인들에게 쫙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첫날 카운슬러와의 인터뷰를 예약만 했고 둘째 날에야 겨우 만났다. 카운슬러와 상담을 한 결과 ACT 성적표를 기반으로 수업 면제는 받을 건 받고 가능하면 쉬운 테크트리로 졸업할 수 있는 루트를 짰다.

특이점은 외국어였는데 이탈리아어를 수강 신청을 했다. 이탈리아어는 태호와 거의 인연이 없는 언어였는데, 작년부터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르더니 지금은 생활에 문제가 없을 수준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태호가 Faceless를 본 후 가장 먼저 느껴지는 변화는 바로 언어였다. 그날 이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언어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불어였고 하나는 이탈리아어였다.

불어는 원래도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가 가능했고 이탈리아어는 거의 몰랐지만 생활 영어 수준으로 늘었다.

이탈리아어를 배운 적이 없는 태호는 자신을 남들을 의심하지 않게 만들지 위해, 대학에서 배운 걸로 둔갑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대학에서 배워야 하는 모든 교양수업을 언어로 대체했다.

*

그날 저녁, 룸메이트가 온 집안 식구를 다 이끌고 기숙사로 왔다. 미국에서 자식을 대학을 보낸다는 의미는 독립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게 아니어도 품 안의 자식을 오랜 기간 떠나보내는 것이기에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을 직접 차에 태워 대학 기숙사까지 데려다준다. 마치 한국의 남자들이 군대 입소를 위해 논산을 갈 때 온 식구들이 따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룸메이트는 상당히 많은 앵글로 색슨의 특징이 가지고 있었는데 약간은 붉은 머리카락에 높은 콧대와 인도의 간디가 주장한 핑크빛 피부, 눈가의 약간의 주근깨와 다부진 턱 선이 있었다. 그리고 룸메이트 아빠는 거기에 머리도 꽤 후퇴한 상태였는데 아들의 미래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상당히 잘생긴 얼굴이었는데 다행히 엄마를 닮았는지 영국 배우 주드 로 느낌이 났다.

룸메 아빠는 이분이 왜 국방성이 아닌 예일에서 어슬렁거리시는지 이해가 안 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터질듯한 몸매와 각진 턱, 곧은 콧대와 다부진 입은, 별 달린 모자를 쓰면 미 육군 장성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반대로 룸메 엄마는 곱게 나이를 먹은 중년 부인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눈가의 잔주름만 없다면 이곳 학생들보다 예뻐 보일 듯 했다.

리즈 시절에 한 외모 하셨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하는 것이 가능했다. 또한 뒤에 짐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은 잘은 몰라도 기사로 보이기에 이 집이 꽤 먹고살 만한 집이라는 것도 예상이 가능했다.

"태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난 데이비드 로웰이고, 이쪽은 엘리스, 이쪽은 마틴 내 아빠.

태호는 세 사람과 인사하고 얼른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룸메이트도 나에게 다가와 가족 소개를 간단히 해주었다.

"태호. 전공은 뭐고 어디 출신이야?"

"난 예술 (Art), 그리고 한국 출신. 여기 오기 전에 뉴욕에 몇 달 있었어."

"그럼 남한에서 날아온 거야? 혹시 북한에서 온건 아니지?"

"여기 북한에서 온 학생도 있어?" 태호는 놀라서 물었다.

"남한이구나. 내가 알기로도 거의 다 남한에서 온 걸로 아는데 혹시 모르잖아. 대학이니 북한에서도 올 수 있지."

"다행히 난 남한에서 왔지. 넌 어디 출신이니?"

"난 롱아일랜드."

"가깝네?"

"어. 헬기 타면 더 가깝고. 오늘은 짐이 많아서 차로 왔지만. 너 예일대에 처음 와봐?"

"두 번째. 전에 식구들과 한번 왔었지. 어제 캠퍼스를 한 바퀴 돌았는데 아직도 어디가 어딘지 거의 모르겠어. 어찌나 크던지."

"우리 식구들은 이 동네에 대해 잘 알거든. 다 이 학교 출신이야."

"정말 놀랍다."

태호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전에 강남 학원 원장에게 언뜻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비 학교들은 기부 입학도 흔하고 가족 전체가 같은 학교 출신인 귀족 집안도 종종 있다는 것을.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같이 저녁 먹으러 갈래?"

"좋아."

"그럼 바로 나가자. 아빠. 태호랑 같이 가도 되죠?"

그렇게 네 사람은 차로 이동했다.

차는 링컨 콘티넨털 리무진이었다.

차는 학교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는데 딱 봐도 오래된 식당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데이비드 부모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보였다.

룸메는 나이 차이가 있는 형 하나와 두 살 차이의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형은 의대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로 지금 병원에서 인턴 과정에 있었고, 데이비드 본인도 법대를 입학한 수재다.

저기 앉아있는 엄마도 현재 퍼스트레이디인 힐러리 클린턴과 로스쿨 동기로 동문수학했다고 한다. 아빠도 예일대를 졸업한 한마디로 가족 전체가 예일대 동문이었다.

데이비드는 얼마 대화를 나눠보지는 않았지만 구김살 없이 자란 부잣집 도련님 티가 팍팍 났다.

"태호는 영어가 아주 유창한데 미국 오기 전에 다른 나라 살았어?" 엘리스가 물어봤다.

"작년에 유럽 여행 두 달 한 게 미국을 제외한 외국에서 지낸 제일 오랜 기간이에요. 여기 오기 전에 뉴욕에 몇 개월 있었고요. 거의 한국에서만 배운 거죠."

"열심히 준비했나 보군."

"한글 책보다 영어책으로 공부를 더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 왜 영어로 된 책을 읽었어? 국제 학교를 다닌 거야?" 데이비드가 물어본다.

"이 학교가 제대로 다니려고 하는 첫 학교인데?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태호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데이비드의 가족은 놀라워하면서도 꼬치꼬치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태호 군 전공이 예술이던데 혹시 순수 예술 쪽인가 아님 산업 디자인 쪽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앨리스가 물어본다.

"순수 예술 쪽이죠. 산업 디자인이면 다른 학교를 갔을 것 같네요."

"그림 잘 그리겠네?" 데이비드가 물어봤다.

"내 또래에 나보다 잘 그리는 사람을 못 봤어."

"와. 대단한데?"

"넌 법대 선택한 이유가 있어?" 태호가 물어봤다.

"성적이 되던데? 하하. 농담이고. 학부에서는 두루 공부해 보려고. 법, 경영, 경제 이렇게 세 과목을 두루 공부해 보려고 해. 그중에서 법대가 제일 입학하기 어려운데 합격이 되었네.

"예일 공부가 어렵다고 악평이 자자하던데. 다 따라갈 수 있겠어?"

"엄마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아빠는 아무 말 없었고."

"데이비드. 학부 과정은 따라갈 만해. 네가 제대로 공부만 하면 말이지."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데." 데이비드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음식이 나오고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지만 곧 이어졌다.

"태호는 굳이 예일에 온 이유가 있어? 좋은 학교긴 하지만 집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잖아."

"사실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을 생각하고 있었거든."

"유명한 대학인가 봐?

"요새 영국 미술계에서 YBA라고 불리는 핫한 작가 그룹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들이 많아. 마이클 크랙 마틴 교수에게 배웠다고 해서 나도 관심이 있었거든. 그런데 윌슨이라고 브루클린의 썬 갤러리 사장이 예일대를 추천하더라고."

"썬 갤러리? 첨 듣는데?"

"한 20년은 넘은 갤러리야. 내가 거기랑 계약되어 있거든."

"벌써 전속 계약이 되어 있어?"

"갤러리에 내 그림도 걸려 있는걸."

"사진 있어? 있으면 보여줘. 룸메이트가 벌써 작가라니 이거 정말 신기한데."

"방에 있으니까 가서 보여줄게."

"네가 그린 그림을 그리면 그걸 갤러리에서 가져가 전시하고 판매하는 거지? 상업 작가 생활은 오래 했어?"

"내가 13살 때 그린 그림이 팔렸거든. 하지만 그 뒤로 그린 그림이 많진 않아서 실제로 판 그림은 몇 점 안 돼. 최근에 2점 팔았고. 대여해 준 그림도 있고."

식사가 끝난 후 방으로 돌아온 일행. 태호는 빛의 마리아 그림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다움 미술관에서 제작한 도록에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한 부분도 같이 보여줬다.

그림을 보는 세 사람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태호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Faceless 아니야?"

"Faceless는 얼굴 부분이 없는 그림이고. 빛의 마리아는 얼굴이 있지."

"그걸 네가 그렸다고? 잠깐만... 그럼 네가 그 Faceless의 원작이라고 하는 빛의 마리아를 그렸다는 거지?" 데이비드는 상당히 놀란 듯 태호의 얼굴을 다시 보며 말했다.

"어, 그런데? 그림을 알아?"

태호는 데이비드가 그림을 알아보는 게 더 놀라웠다.

"알다니? 뉴욕에서 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거 아니야? 방송에서 얼마나 자주 나왔는데?"

"그래? 가끔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해. 하지만 코네티컷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엄마와 할머니가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지."

말을 하고 돌아서서 앨리스를 보는 데이비드.

앨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빛의 마리아 작가가 한국에서 온 젊은 청년이라는 얘기는 들었는데 예일에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앨리스의 말투는 조금 더 정중했고 호기심에 차있었다.

"혹시 테일러 부인에 대해 아시나요?" 앨리스가 물었다.

"예. 제가 그림 그릴 때 뒤에 앉아 계시던 노부인이셨어요."

"나의 이모랍니다. 그림을 좋아하셔서 늘 뉴욕의 많은 미술관들을 찾아다니셨어요. 근처에 사시고 같은 교회라서 자주 뵙는데, 태호 작가에 대한 얘기만 몇 달을 하셔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답니다. 처음 볼 때부터 설마설마했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니 참 신기하네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뒤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셔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이렇게 룸메이트의 이모할머니인 줄은 몰랐네요."

"의자는 이모가 그 미술관에서 받은 특권이랍니다. 미술관 설립 때 거액을 기부하셨거든요. 또 페기와 가깝기도 하셨고."

태호가 빛의 마리아의 화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아들의 룸메에 대해 별 호기심이 없던 마틴까지 대화에 끼어들어 태호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그렇게 두 사람은 10분 넘게 태호 관련 기초조사를 다 끝낸 후에야 태호를 놓아주었다.

앨리스와 마틴은 데이비드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며 마지막 안부를 전했다.

"태호 군. 데이비드와 잘 지내요. 그리고 다음에 꼭 우리 집에 놀러 와요. 테일러 이모가 같이 식사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늘 얘기해 왔답니다. 방학 때나 연휴 때 갈 데가 없으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 집으로 놀러 와요. 언제든 환영해요."

"감사합니다"

따사로운 햇살 같은 미소를 보이며 태호에게 작별 인사를 하던 앨리스는 아들 데이비드를 보자 서릿발 같은 표정을 지었다.

"데이비드! 첫 주말 조심히 보내라. 무슨 말인지 알지? 사고 치지 말고."

"엄만 내가 무슨 사고를 친다고."

"우리 집 남자들 특징이잖니. 네 아빠부터 네 형까지."

"여보. 애들 앞에서 무슨!"

지금까지 비교적 차근차근 얘기하던 앨리스는 아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에는 단호하게 경고를 날리고 돌아갔다. 이 집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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