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빛의 마리아IV 제작1 (feat 백남준) (65/181)

65. 빛의 마리아IV 제작1 (feat 백남준)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 스튜디오를 나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다. 제이슨에게 전화를 걸자 얼마 되지 않아 제이슨과 에이미가 태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아침이었지만 어제와 달리 살짝 들뜬 표정이었다.

"미술관에 다시 온 걸 환영하네."

어제도 봤으면서 오늘에서야 일 년 만에 보는 듯한 인사였다.

"어제 만났었잖아요."

"어제는 비공식이고 오늘이 공식적인 첫 만남이자 자네 출근 첫날이지."

제이슨은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만난 표정이었다. 아니면 박씨를 물고 온 제비를 본 놀부의 표정이던가. 태호가 들고 온 황홀경 5연작이 내부적으로 큰 호응을 얻은 게 틀림 없다. 어제 보였던 약간의 초초함도 오늘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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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작품을 제작한다는 건 누가 봐도 모험이었다. 아무리 둔한 예술가라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관람객이 뒤에서 구경하는 환경에서 작품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신경이 굵거나, 아니면 그릴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태호는 신경이 굵지는 않지만, 사실 가늘지만, 빌바오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흔치 않은 기회인데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쇼에 기꺼이 광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이 결정에는 백남준 선생의 최근 기행이 영감을 주었다. 그처럼 일국의 대통령 앞에서 팬티를 내릴 깜냥은 안되지만 뉴욕 시민 앞에서 붓을 놀려 그림을 그릴 배짱은 있었다.

어릴 적 아이들의 소음을 끔찍이 싫어하던 태호도, 학생들과 부대끼기 싫어 학교를 안 가던 태호도 더 이상 없다.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태호만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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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과 에이미는 태호와 함께 작업을 할 Faceless 전시장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내부 정리를 마친 상태였다. Faceless는 복원이 완료되어 본래의 전시 공간에 들어가 있었고, 그 옆에는 태호가 그린 빛의 마리아가 시리즈처럼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꽤 큰 작품인 Faceless와 그와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 빛의 마리아 I, II, III가 나란히 서 있으니 마치 에반게리온의 초호 기와 2,3,4호기가 나란히 서있는 듯했다.

쓸데없는 생각에 피식 웃은 태호는 빛의 마리아가 걸려있는 벽에서 5미터 정도 떨어져 임시로 설치된 전동 이젤 앞에 섰다. 전동 이젤은 캔버스의 높낮이를 조절해 주는 기능이 있어 그림 그리는데 편했다. 전동 이젤 주위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낮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위를 쳐다보니 환풍기도 주위와는 다른 것이 설치되어 있었고, 혹시 물감이 튈지 몰라 주위의 작품들은 모두 보호 설비가 되어 있었다.

"물감은 어떻게 하겠나? 옛 방식의 재료를 쓰겠나? 아니면 현대 물감을 쓰겠나?"

"옛 물감으로 하죠. 빛의 마리아 III도 옛날 방식 물감으로 그렸으니까요."

"좋을 대로 하게. 여기 에이미가 종종 와 자네가 필요한 것들을 전달할 거야."

에이미가 태호에게 다가왔다.

"물감부터 커피까지.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

미술관은 태호가 Faceless의 다른 본 원작을 제작할 것이며 이를 미술관이 지원한다는 소식을 미술관 회원에게 알리고 뉴욕의 여러 방송에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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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작가가 오랜 시간 준비를 해온 전시회가 마침내 올해 초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할아버지였다. 여기에 전시회 준비를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윌슨과 태호를 통해 듣고 5만 달러를 마련해 태호를 통해 보냈다. 태호도 할아버지 이름으로 15만 달러를 보태 총 20만 달러를 미술관에 전달한 상태였다.

윌슨과 윌슨의 친구 매튜는 전시회가 끝나면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판매해 준다고 약속했다. 태호는 백남준 작가의 중요 작품을 이미 선 구매했고 필요하다면 추가 구매도 할 계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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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안쪽에서 태호가 빛의 마리아 IV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할 때, 미술관의 입구 쪽에선 백남준 작가의 작품 전시 준비로 매우 분주했다.

택시를 타고 온 태호네 식구들이 태호와 백남준 작가를 보기 위해 미술관에 왔다.

"먼 길 와줘서 고마워."

백남준 작가는 한국에서 뉴욕까지 찾아와 준 친우의 방문을 크게 반겼다.

"태호도 여기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길래 겸사겸사 왔지. 이번에 태호가 예일대에 합격했어."

백남준 작가는 태호가 미술관에서 빛의 마리아 IV를 제작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예일대 합격 소식은 듣지 못한 듯 놀라는 표정이었다.

"태호야, 축하한다. 오늘 같이 기쁜 날 내 밥 한 번 사야 되는데..."

"자네 바쁜 거 아는데 무슨. 다음에 한국에 와서 한번 보자고. 자네는 자네 할 일 해. 우리는 태호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고 자네 회고전 시작일에 다시 올테니."

"아니야. 자네가 여기 온 김에 나도 가서 태호 작업하는 걸 봐야겠어."

백남준 작가는 설치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태호를 따라 나섰다.

Faceless와 빛의 마리아가 있는 전시관에는 점심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고 있었다. 태호는 근처에 있는 가드에게 부탁해 의자 세 개를 요청했다. 의자가 도착해 백남준 작가까지 의자에 앉자 태호는 캔버스 앞에 서서 연필로 스케치를 시작했다.

순식간에 빛의 마리아는 외형을 갖추고 비록 완성도는 낮지만 그 찬란한 새 얼굴을 드러냈다.

"우와."

태호의 거침없는 손짓에 무슨 이벤트인지 기다린 관람객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Faceless의 새로운 얼굴의 등장에 환호했다.

태호는 얼굴을 천천히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식구들과 백남준 작가도 있어 마음을 바꿨다. 빛의 마리아의 새 얼굴이 백남준 작가 전시회에 새로운 흥행 요소가 되기를 희망했다.

백남준 작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태호의 춤 같은 스케치 모습을 넋을 놓고 구경했다.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백남준 작가를 찾아 나선 조수들이 Faceless 전시관까지 찾아오고 나서야 백남준 작가도 아쉬운 얼굴을 뒤로하고 자리를 비웠다.

태호네 식구도 아들과 손자의 그림을 한껏 감상하고 뉴욕에서의 일정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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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C는 태호가 미국으로 출국하자 빌바오에 연락을 해 태호가 작업하는 모습을 찍어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빌바오는 이 얘기를 듣고 아예 PBS와 BBC까지 포함시킨 3사 공동 촬영을 하자고 제안했고, BBC가 마지못해 승낙하면서 일은 바로 급 진전되기 시작했다.

PBS는 미국, EBC는 한국, BBC는 최종 편집을 책임지기로 했다. 이에 대한 총괄 프로듀서는 BBC에서 맡기로 했는데 다큐멘터리 제작 관련 가장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건 BBC였기 때문이다.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BBC에서는 PBS와 EBC에 연락해 태호에 대한 기초 자료를 요청했다. 빛의 마리아와 영국에서 BP 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과 미국에서의 이력은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PBS는 윌슨과 미술관의 제이슨과 토마스를 인터뷰 한 영상을 촬영해 BBC에 제공하였으며, EBC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태호에 관련된 영상을 자막을 입혀서 보냈다.

“태호라는 작가, 이렇게 보니 완전히 천잰데?” BBC에서 이번 방송을 총괄 책임자인 테디 페이지는 PBS와 EBC에서 보내온 자료를 다 보고 난 후 이런 결론을 내렸다.

“원더 보이지. 피카소가 저 나이 때 저만한 실력이 있었을까?”

이번 촬영의 메인 PD인 찰스 오스틴이 물어봤다.

“아니. 피카소도 저 나이 때 저 정도는 아니었지. 그림 실력만 놓고 본다면 저 정도 실력은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나 나올 수 있을 거야."

태호라는 작가의 상품성에 매우 만족한 두 사람은 작가와 다른 스태프들을 불러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기획안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테디는 아쉬운 듯한 마디를 더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저 친구가 영국 출신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태호와 관련된 영상을 받은 BBC는 판을 크게 키우기로 결정했다. 포커스를 Faceless의 또 다른 복원 버전인 빛의 마리아 IV의 제작 작업에서 태호라는 예술가 자체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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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PBS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뉴욕의 많은 방송사와 신문 기자들이 찾아와 태호가 작업하는 모습을 찍어갔다. 자연스럽게 BBC에서도 관련 다큐멘터리가 방송될 것임을 홍보하는 역할도 했다. 제이슨은 뉴욕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제작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한껏 표현했다.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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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네 식구들은 뉴욕을 한껏 즐겼다. 백남준 작가의 전시회 개막일에 다시 미술관을 찾았고, 리무진을 빌려 예일대를 방문, 태호와 사진을 잔뜩 찍은 후 돌아갔다. 다 큰 아들이자 손자를 두고 오는 숙영과 태호 할머니는 뉴욕 공항에서 서럽게 울어 태호를 당황하게 했다. 작품만 완성 시키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말로 겨우 달래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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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의 빛의 마리아 III이 나오기 전, 여신상에 대한 복구 의견은 크게 두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닮은 얼굴이었다. 근거로는 옷과 전체적인 구도가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다. 다른 하나는 성모 마리아 상일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근거는 당시 프랑스 파리의 주요 종교가 가톨릭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태호가 스케치한 그림은 명백히 그리스 여신의 얼굴에 가까웠다. 특히 바티칸 성당의 피에나에 보던 성모 마리아의 미사보 (veil) 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스케치로만 드러난 전체 윤곽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의도한 바는 갤러리들에게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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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본격적으로 채색을 시작했다. 스케치를 한 이유는 빛의 마리아 IV는 III와 다르게 온전히 마른 다음 그 위에 칠하는 웻 온 드라이 (Wet on Dry)로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감이 말라서 표면이 딱딱해진 후에 덧칠을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오랜 시간 이어온 작업으로 물감을 쌓아 올리듯 그릴 수 있어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하기 좋다.

태호는 옷 한자락, 깃털 하나,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빛줄기 하나하나를 정성껏 묘사했다. Gallery 들이 옆을 지나가며 힐끔 캔버스를 구경해도, 미술관에서 물이 담긴 텀블러를 놓고 가도 태호의 정신을 분산하지 못했다. 스케치에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유화는 스케치보다 채색을 하며 그림을 수정하는 게 보통이었기에 스케치에 일주일은 오랜 기간이었다. 태호는 물감의 질감과 붓 터치의 방향까지 고려해 청사진을 그리듯 정성껏 스케치를 했다.

마지막 스케치를 마친 순간 태호의 등 뒤에는 수십 명의 갤러리들이 숨을 죽인 채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채색이 된 것은 아니지만 수십 년 만에 여신은 온전한 머리를 다시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케치가 완성될 즘엔 많은 관람객들이 태호의 뒤에서 좀 떨어진 곳에 서서 숨소리조차 줄이며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호가 캔버스 앞에서 자리를 비우자 관객들은 참았던 숨을 다시 들이켜며 ‘와’하는 탄성을 질렀다. 캔버스에 담긴 스케치는 Faceless 원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 또한 빌바오가 약속한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Faceless의 새로운 얼굴까지 스케치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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