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 기획2
그날 늦은 밤.
예랑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기획 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신 술 때문인지 그동안 생각하던 많은 부분이 한꺼번에 몰려와서인지, 머릿속이 복잡하고 터져나갈 거 같았다. 결국 컴퓨터에 그냥 떠오른 생각들을 마구 적어나가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어젯밤 휘갈겨 놓은 아이디어들을 읽어보면서 계속해서 정리를 해 나갔다.
그날 오후.
회의실에 회의를 주관하는 예랑. 화면에 태호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파일을 소개하는 슬라이드가 떠있다.
"먼저 태호라는 작가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이력을 소개하겠습니다."
예랑은 태호의 초등학교 자퇴부터 런던 초상화 미술관에서의 수상과 빛의 마리아에 대해 소개했다.
"김 대리. 이 사람의 이력은 잘 알겠는데, 실제 상을 받은 이력은 런던에서 받은 상 하나잖아. 너무 이력이 약한 게 아닐까?" 박 차장이 말했다.
예랑은 좀 더 부연 설명을 위해 발표 자료에 올리지 않은 뒷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차장님. 이 친구 그림은 다움 미술관의 김 유정 관장이 싹쓸이를 하다시피 수집합니다. 그것도 거액을 투자해서요. 이미 8년 전에 그림 2점을 어마어마한 금액을 주고 넘는 금액에 사들인 적도 있습니다."
"무슨 그림이길래?"
예랑은 성철 스님 초상화와 탱화가 담긴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성철 큰 스님 입적하셨을 때 불교 회관에 전시하던 그림 혹시 기억나세요? 하나는 성철 스님 초상화였고 두 점은 연작으로 탱화라고 불러요. 바로 여기 보이는 이 그림들이죠. 이 그림들을 보러 온 사람들 줄 때문에 종로가 한동안 마비 상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오 과장이 기억이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 나 기억나. 그때 종로 가보고 깜짝 놀랐잖아. 방송에도 나왔을 텐데?"
"그 친구입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작품을 완성하면 곧 학업 때문에 미국으로 갈 거예요. 개인적으로 같이 공부한 적이 있어서 어떤 친구인지 잘 압니다. 여기 기획서인데 읽어보시고 의견 주세요."
예랑은 손에 들고 있던 기획서를 나눠주고 자신이 기획 배경과 구성에 대해 간단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획 배경!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한 화가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하고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학벌 배경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고 전달한다. 구성 내용. 하나. 화가 태호의 첫 전시회부터 최근 전시회까지의 발자취와 수상 이력을 소개한다. 둘. 태호를 지도했던 대한대의 김창기 교수, 발해 대 강재범 교수, 양준만 사진작가를 인터뷰하고 태호의 교육 과정에 대해 소개한다. 셋. 국내외 태호 작가에 대한 평가와 기대감에 대해 설명한다."
김 창기 교수 얘기가 나오자 오 과장이 깜짝 놀란다.
"김 창기 교수님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죠? 어떻게 김 교수님에게 지도를 받았다는 건가요?" 오 과장은 대한대 출신이었다.
"태호는 9살 때부터 작년까지 대한대 김창기 교수님과 발해 대 강재범 교수님에게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았습니다. 김창기 교수님이 어떻게 지도를 했는지는 제가 아는 바가 없어 말씀드릴 수 없지만, 강재범 교수님과의 수업을 설명드리자면, 태호에게 듣기로는 두 교수님의 지도 방식은 동일했으며 과목만 달랐다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요. 무척이나 궁금하네요." 오 과장이 흥미를 드러낸다.
"외국 대학에서의 석사 과정 수업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책을 몇 권 선정해 일주일에 한 번씩 읽은 책 내용을 기준으로 토론식의 수업을 했습니다. 책에 적힌 객관적인 내용은 빠르게 넘어갔지만 저자의 주관이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하거나 의견이 다를 경우는 반박하는 수업 방식이었습니다. 옆에서 봤을 때 두 사람의 논쟁은 매우 치열했으며 방대한 지식 없이는 따라갈 수 없는 토론 수준이었습니다. 나중에 강 교수님에게 전해 들은 평가는 이미 16살 때의 태호의 지식수준은 최소 박사과정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보셨습니다. 물론 미술 분야에 대해 한정했을 경우입니다."
"김대리는 어떻게 알았어요?"
"강교수님 수업을 같이 참석했습니다."
"재밌는 얘기가 많을 거 같은데 그건 나중에 시간 나면 더 하고, 일단 난 이 기획 건은 찬성입니다. 어린 친구이지만 이렇게나 많은 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에요. 이게 김 대리 입봉작이 될 방송이니 만큼 오 과장과 성 대리는 김 대리가 이 건 진행하는데 필요한 게 있다면 도와줘요. 김 대리는 이 기획안 더 다듬어서 가지고 오세요. 디테일에 더 신경 써서. 부장님 승인받는데 문제없게 끔 신경 쓰시고."
박 차장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갔고 오 과장과 성대리는 김예랑에게 다가가 기획안 1차 통과를 축하했다.
"저 친구 잘 생겼어? 둘이 사귀어?"
"과장님! 전 젤 초등학생 때 봤어요. 전 그때 20대 대학생이었고요. 어린 조카뻘이지 어떻게 사귈 거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그때 얼굴이 남아 있어서 애 같은데."
"왜 못해! 나이 차이가 10살도 채 안 되는데."
"사진으로만 봐도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겠는데. 실제로 보면 어때?" 성 대리가 물어본다.
"며칠 전에 같이 종로에서 밥 먹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넋을 놓고 쳐다봐요."
"어머 어머 어머. 혹시 사진 있어?"
"사진은 없는데 다음에 인터뷰할 때 같이 가죠. 애가 어렸을 때부터 잘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지금은 돌아다니는 흉기에요. 여자 맘에 상처 입히는."
"좋아. 나도 인터뷰할 때 불러줘. 안 되면 휴가를 내서라도 간다. 혹시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는 거야?"
"대리님. 책임지고 독사진 찍게 해드릴게요."
"좋았어! 이 기획안 통과하게 다 도와줄 테니까 말만 하라고."
*
두 사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틀 만에 만든 기획서 수정안은 최 부장에게 보고 되었고 몇 가지 지적을 받았다.
"메시지가 혼재되어 있어. 단순히 작가를 소개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국내 교육 환경을 비판하고 싶은 거야? 교육 환경 비판이라면 이 기획 안 접어. 태호라는 친구가 그냥 규격 외야. 작가를 소개하고 싶은 거면 지금 프로그램하고 안 맞아. 별도의 독립 프로로 나가야 돼. 그런데 그 친구가 그럴 정도의 인지도를 쌓은 게 아니잖아."
최 부장의 부정적인 평가에 아득한 기분이 들던 예랑은 곧 정신을 차리고 머릿속에 겨우 정리되어 있던 다른 패를 꺼내 들었다.
"혹시 이건 어떨까요? 재능이 출정한 젊은이들을 각 분야 별로 선별하여 별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겁니다."
예랑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동에 후회가 썰물처럼 밀려들었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기획안을 수정하고 쳐다볼수록 이런 평가가 나올 것이 예상되었다.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별도 프로그램을 얘기했지만 이건 되로주고 말로받는 행동이었다. 받아들여진다면 한 달 야근 확정이었다. 말 한마디에 야근 한 달. 처참한 가성비였다.
최 부장은 예랑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아. 김 대리가 그럼 기획 안 수정해서 다시 가져와. 얼마나 걸려?"
"한 달은 주셔야..."
"이주 줄게. 큰 얼개라도 가지고 와. 세부 사항이야 같이 머릴 맞대고 고치면 되지."
그 큰 얼개라는 말을 믿을 정도로 예랑은 순진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2주 철야였다.
'제 눈을 찌르고 싶다'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예랑은 이해했다.
*
2주 뒤.
언어, 수학, 음악, 미술, 체육 등 유전적 요인으로 분류되는 재능을 가진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어렸을 적의 행적부터 지금의 생활과 활동에 대해 소개하는 기획안이 나왔다. 예랑이 2주 동안 밤을 낮같이 일한 결과였다. 덕분에 눈 밑에 시커먼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예랑은 흡사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가오나시 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랑이 다시 들고 간 기획안도 최 부장의 끝없는 질의응답을 거친 후 다시 반려되었다.
*
"시간이 좀 더 필요해."
태호를 만난 지 거의 한 달을 넘긴 뒤, 예랑은 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빨리 답변을 줄 것처럼 보였는데, 오래 걸렸네?"
"일이 커졌어. 장기 프로젝트로 바뀌었거든. 지금 작품 만드는 거 있지? 그게 끝나고 했으면 해서. 미국에서 전시회를 했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걸릴까?"
"한 6개월이면 될 거야. 미국 전시회는 뭐야?"
"윌슨 씨하고도 내가 찍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해 봤는데, 그분은 이걸 좀 더 키우시길 원하시더라.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네가 방송을 찍는 걸 뉴욕의 고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셔. 우린 동의했고."
"내가 뭘 해주면 되는 거야?"
"그림 완성하면 연초 정도 될 텐데. 네가 작업하는 것도 찍고 싶고, 완성된 작품을 뉴욕에 전시하는 것도 찍으려고 해. 너 작업실 있지? 우리 가끔 가서 촬영해도 될까? 이 촬영본은 윌슨 씨에게도 보내질 거야."
*
한 달에 한 번 꼴로 4명으로 구성된 촬영팀이 태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작업실에 놓인 5개의 캔버스를 스케치 때부터 완성되어 건조하던 시기까지 차례로 찍어갔다. 예랑은 그때마다 와서 태호에게 작품과 미국에서의 활동 계획 등에 대해 간간이 질문을 던졌다.
예랑도 거의 완성될 때쯤의 그림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림이 너무 야했다.
*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한 달 후.
이촌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태호와 EBC 촬영팀. 태호는 뭔가 의심쩍다는 표정으로 예랑을 쳐다보고 있었고 예랑은 사회생활 짬을 헛먹은 것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건 계획에 없긴 했는데, 작품이 너무 괜찮아서. 너 미국 가기 전에 충분히 영상을 확보해 두려고."
촬영을 따라나온 오영미 과장은 눈이 하트로 변한 채 예랑에게 소개를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는 오늘 내레이션을 도와주실 오영미 과장님이고, 이쪽은 음향감독이신 김용범 감독님, 저쪽은 촬영감독이신 이지안 감독님."
"처음 뵙겠습니다." 태호는 모두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림을 배경으로 위치한 의자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며 곤란한 질문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음향감독과 촬영감독은 장비를 점검하고 밝기와 음량들을 확인했고 오 과장은 인터뷰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러길 20분.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의 시작은 평이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질문의 수준이 높아져만 갔다. 특이점은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 순으로 질문이 이어진다는 점이었고, 질문 내용도 단순 확인으로 시작하여 작품에 대한 작가의 평까지 광범위했고 깊이도 결코 얕지 않았다.
딱 봐도 이건 예랑이 기초 작업을 하고 누군가가 도와준 것이다. 인터뷰가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된 후 첫 휴식시간. 태호는 예랑에게 물어봤다.
"이 질문들, 누나 작품이지? 질문 수준이 꽤 높은데?"
"너에게 괄시 받은 기간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걸 괄시라고 하면 안 되지. 발전을 위한 관심의 표현이지."
"그런 언어폭력을 단순히 관심이라고 표현하다니. 역시 가해자는 몰라."
태호는 모르쉐를 시전했고 예랑은 가오나시가 어이없을 때 짓는 표정을 지었다. 예랑이 한마디 더 하려던 찰나 태호가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이 질문 누가 봐준 거야?"
"어떻게 알았어?"
"수준이 높아서."
"강 교수님."
"그런 거 같더라. 근데 강 교수님 질문만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 알아?"
"누나랑 같이 수업을 들은 게 얼마인데. 누나 수준을 모를까."
"김 교수님도 도와주셨어. 허 수현 교수님 하고 윤 진환 교수님도 봐주셨고. 도쿄의 무라카미 씨도 질의서를 보내줬고 북경의 이안웨아웨아 씨에게도 질문을 보냈어. 뉴욕의 윌슨 씨도 도와주셨고. "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연락한 거야?"
"다들 흔쾌히 도와주셔서 그래도 수월했어. 나뿐만 아니라 부서 사람들도 고생 많이 했거든."
"다들 바쁘신 분들인데도 애 많이 쓰셨네."
"너 돕겠다는 나선 분들이니까. 애 많이 썼단 표현도 알고, 버릇없는 꼬맹이로 계속 남을 줄 알았는데 너도 철이 들긴 하나 보다."
"난 원래 철이 꽉 들어 있었지. 다만 적용 대상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던 것뿐이지."
"그냥 가만히 있어. 산통 다 깨는 소리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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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기획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