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P 초상화 대회2 (59/181)

///// BP 초상화 대회2

미셸 게린은 파리의 집에서 출발해서 윌슨이 있는 런던의 호텔에 도착하는데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셸의 집이 파리의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태호가 있는 호텔도 런던 역이 있는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태호, 윌슨, 미셸은 호텔의 라운지에서 편하게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미셸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미셸은 프렌치 억양이 가득한 영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태호입니다." 태호는 불어로 대답했다.

미셸은 태호의 억양이 매우 세련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한층 호의가 짙어졌다. 다만 말투가 매우 올드했다.

"불어 발음이 매우 좋습니다. 불어를 따로 배우셨나 봐요?"

"조금 공부했습니다. 세련된 언어라 좋아하죠."

태호도 호의를 듬뿍 담아 대답했다.

"제가 알기로 태호 군은 뉴욕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빛의 마리아 III의 작가로 알고 있습니다. 제작 동기와 과정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빛의 마리아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완성 시켜보고 싶어 했던 작품입니다. Faceless의 카피를 봐도 저를 향해 손짓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올해 3월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영혼의 이끌림을 느꼈고, 마치 난 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세 개의 얼굴 후보를 제안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세 개의 얼굴을 떠 올릴 수 있었을까요?"

"첫 번째 후보는 라파엘로의 성모상과 닮았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성모상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죠. 두 번째 후보는 레오나르도의 성모상과 닮았습니다. 우리들 눈에 너무나도 익숙한 모나리자의 얼굴을 닮았지요. 세 번째이자 가장 인기가 없었지만 제가 선택한 세 번째 후보는 상상으로 그린 개인적으로 Faceless의 잃어버린 얼굴과 가장 비슷하다고 믿는 얼굴입니다. 전 시간이 되면 뉴욕에서 이 세 번째 얼굴을 기준으로 빛의 마리아 IV를 제작할 예정입니다."

"빛의 마리아를 무척이나 빨리 완성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림의 완성도도 무척이나 높고요. 혹자는 연습을 많이 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뉴욕의 빌바오에서 전시하는 빛의 마리아 III 은 빛의 마리아 I 과 II가 있다는 얘기가 되겠죠. 이미 같은 작품을 두 번이나 제작해 봤으니 연습을 많이 했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 그림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이에 대한 대답은 윌슨이 했다.

"아직 빌바오 미술관에 있습니다. 돌려받을 예정입니다. 두 작품 모두 빛의 마리아 III와 비교해 손색이 없으며 조만간 썬 갤러리에서 전시할 계획입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미술관에서 그림을 돌려주는 날을 차일 피일 미루면서 윌슨의 속을 썩이고 있다.

"뉴욕에서 찾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런던에는 어떤 일로 오셨나요?"

"두 가지 일 때문에 방문을 했습니다. BP Portrait Award에 작품을 출품하고,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서입니다."

"BP Portrait Award에서 주니어 부분 1위를 하셨던데 축하드립니다."

"축하받을 일은 아닙니다. 좀 실망스럽기도 했고요."

"어떤 부분이 실망스러웠나요?"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성적이 나오길 기대했습니다."

문제가 될 부분을 잘 피해 가는 태호를 보며 미셸은 옆의 윌슨을 힐끗 쳐다봤다. 아마도 그가 태호를 코치한 결과 일 듯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적을 기대하셨나요?"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말을 하는 순간 괜한 논란에 휩싸일 듯하군요. 저는 심사 위원의 판정을 존중합니다."

미셸은 존중한다는 태호의 말을 딱 거꾸로 해석했다. 논란이 일고 사건이 커져야 여기 세 사람 모두가 좋다.

미셸은 학교로 질문을 옮겼다. 태호가 미국 학교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아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초상화 대회를 계기로 영국행을 취소하고 미국을 택한다는 스토리가 나오면 더 좋았다.

"혹시 학교에 다니고 계십니까?"

"아니요."

"다니실 계획은 있으십니까?"

"네. 조만간 대학에 진학할 계획입니다."

"혹시 진학할 대학은 결정하셨습니까? 이번 일로 영국의 학교에 진학할 계획을 접으신 건 아닌지요?"

"뉴욕 근처의 학교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영국 진출에 대한 영향은 글쎄요. 없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태호는 미셸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 '윌슨 씨의 갤러리가 뉴욕에 있어서'라는 멘트를 뺐다. 일부러 파닥파닥 거리는 물고기 마냥 걸려줬다.

*

태호가 영국을 떠나 한국에 도착할 무렵, 마크를 실은 비행기도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14시간이 넘는 장기간의 비행이었지만 마크는 비행기 안에서 뉴욕에서 일어나는 태호 관련 기사를 정리하고 인터뷰에 할 질문을 다듬는다고 바빴다.

내리기 전 몇 시간 눈을 붙인 그는 광화문에 위치한 한국 지부에 들러 태호에 대해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들을 확인했다.

"13살에 자신의 작품이 전국 방송을 탔고, 15살에 패션쇼를 기획했다고? 18살에는 미국에 건너와 빛의 마리아라는 작품을 제작했고? 정규 학교를 다니지 않았어? 왜? 인생이 미스터리 그 자체네. 혹시 이 친구 그림 구할 방법이 없겠나?"

마크도 태호라는 친구에게 특별함을 느꼈다.

*

마크와의 인터뷰는 태호가 도착한 다음 날 이루어졌다. 하루를 푹 쉰 태호는 마크를 만나러 종로의 빅토리아 호텔로 향했다. 인터뷰를 돕기 위해 한국에 같이 온 윌슨의 숙소도 빅토리아였다.

"뉴욕을 넘어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마크는 태호와 호텔의 회의실에서 세 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바로 기사를 송부하지는 못했다. 태호와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움 미술관의 김정호 과장과의 인터뷰, 대한 대의 김 창기 교수와 발해 대의 강 재범 교수와의 인터뷰, 사진작가 양준만과의 인터뷰까지 진행한다고 마크는 잠잘 시간마저 부족했다.

완료된 기사는 완성되어 이틀 뒤에 뉴욕으로 송부 되었고, 뉴욕 타임스는 마크가 송부 한 기사와 사진을 주말 특집으로 대대적으로 실었다. 이틀 전 르몽드에서 태호에 대한 기사를 한차례 실었기에, 런던에서 일어났던 일은 알만한 뉴욕 미술계는 다 알았다. 태호를 더 알고 싶다는 요구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하던 찰라였다.

뉴욕 타임스의 프런트는 태호가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어린 작가지만 과감하게 문화란 한 면을 할애해 태호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일대기를 사진과 함께 기사로 올렸다.

"무슨 위인전 같구먼. 피카소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은데..."

윌슨이 뉴욕의 공항에서 산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고 난 소감이었다. 넝굴채 굴러 들어온 어린 천재를 유럽에 뺏기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나부터도 유럽에 보내기 싫었는데 오죽이나 할까."

윌슨은 영국 미술계에 재를 뿌린 르몽드와 천재를 품고 싶어 하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며 몇 년 전 그림 하나를 보고 한국까지 날아간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벌써부터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늘어가고 있었다. 옛날 명성을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다.

*

르몽드가 시작한 폭격은 뉴욕타임스의 대대적인 폭탄 지원으로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초토화 시켜버렸다. 여기에 자국 미술계를 까는데 주저함이 없는 썬과 두 데일리 (미러, 메일)까지 합세하자 심사위원을 맡은 6명의 신상 정보를 바탕으로 인신공격성 기사가 줄줄이 나왔다. 기존에 이들이 심사를 맡았던 상들에 대한 형평성 논란은 기본이고 게이와 레즈비언 같은 성 취향 문제까지, 빠지는 주제 없이 다양한 방면의 기사가 나왔다.

얼마 후, 르몽드는 어느새 조용히 빠지고 더 타임스, 가디언, 데일리 텔레 그래프가 영국에서 새로운 주자로 등장했다. 이들 영국 매체는 상에 대한 논란은 점잖게 국립 초상화 미술관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태호에게 호의를 잔뜩 담은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논조가 '이 예술계의 신성을 영국이 품어야 한다'로 바뀌었다. 이는 BBC에서도 이어졌다.

*

BBC News에서는 BP Portrait Award를 소개하는 5분짜리 짧은 다큐멘터리 느낌의 뉴스를 내보냈다.

"여기는 올해의 BP Portrait Award에 선택된 55개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입니다. 이 상은 매우 성공적으로 정착된 예술상으로 초상화 기법을 작품 활동에 잘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입니다. 1등에게는 삼만 오천 파운드의 상금이 주어지는데 전 세계 현존하는 미술상 중 가장 상금이 큰 편에 속합니다. 올해 수상자는 맨체스터에 활동 기반을 둔 찰스 맥코이로 ..."

"2등은 로즈 와일리로 상금은 12,000 파운드, 3등은 한스 홀바인으로 상금은 1만 파운드입니다. 젊은 예술가 상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권태호라는 작가가 받았습니다. 나이는 18살이며 어떤 정규 교육도 받지 않은 순수 아마추어 작가입니다. 현재 전시회는 물론 런던 미술계가 태호라는 작가가 제작한 나의 스승이라는 작품으로 떠들썩한 상황입니다."

"이 그림이 화재를 불러일으킨 까닭은 작가가 뉴욕의 빌바오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빛의 마리아 III라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이 작품은 뉴욕에서 Faceless에 준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나의 스승이 BP Portrait Award에서 주니어 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니어 상은 30세 미만의 작가 중 장래가 촉망된다고 판단되는 작가에게 주는 상입니다. 다른 의미로는 Faceless에 준하는 작품을 제작한 작가가 BP Portrait Award에서는 3등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의미로 심사의 형평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져 나오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다른 배경에는 그림에 담긴 인물 때문입니다. 초상화에 담긴 인물은 보통 작가 본인 이거나 일반인을 그린 작품인데 반해, 나의 스승이란 작품에 담긴 그림은 나름 파리에서는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양준만. 파리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 사진작가는 프랑스에서 보그, 엘르 등의 잡지에 사진을 제공하는 프리랜서 작가이고 한국에서는 영화배우와 포스터 그리고 광고 사진을 찍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양준만이라는 작가를 개인적으로 아는 업계 사람들은 이 그림이 주는 특별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면 -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가브리엘 씨.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프랑스에서는 이쪽 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가브리엘에 대한 소개가 화면에 텍스트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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