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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less 복원5 (56/181)

///// Faceless 복원5

긴급 이사회까지 소집이 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빌바오에는 이벤트 하나가 열였다.

'Faceless의 얼굴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이벤트에는 태호가 건네 준 세 얼굴 중 두 얼굴이 Faceless에 합성된 채 나란히 공개되어 있었다.

먼저 뉴욕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 미술관 앞에 두 그림이 걸려 있고 거기에 스티커 투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미술관 측의 홍보에 뉴욕의 지역 방송과 신문들도 예술란에 이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러자 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계획했던 2주가 지나 결과를 확인해 보니, 라파엘로의 성모상과 유사한 얼굴이 제일 많은 득표를 했다.

*

투표 기간 동안에는 제이슨이 윌슨과 매일 같이 전화를 주고받으며 그림 가격에 대해 흥정을 벌였다.

"아직 대학 입학도 안 한 '생존 작가'에게 3백만 불은 말도 안 되는 금액이야."

"그 어린 '생존 작가'는 이미 13살에 백만 불짜리 계약을 했어. 그 계약서 사본이 내 손에 있는데 보여줄까?"

"어느 미친 미술관이 13살 어린아이의 그림을 백만 불에 구매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다움 미술관."

"다움? 한국의? 왜? 단체로 미쳤나? 아니면 모 기업이 돈이 썩어났나? 반도체 호황이라 돈도 썩어나나?"

"이 가격도 낮춰 부른 거야. 다움 미술관 관장이 태호 그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한다네."

"일단 사본 팩스로 보내고, 무슨 그림을 백만 불에 팔았는지 사진이라도 보내."

"미안한데 사본은 팩스로 못 보내. 다만 내일 미술관에 찾아가서 사본을 자네와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그때 태호의 전 작품 사진도 같이 공개하고."

"하... 정말 일을 만드는군. 일단 알아보고 연락 주지."

*

"우리를 아주 호구로 아는군요. 3백만 불? 아무리 블러핑이 들어간 금액이라고 해도 2백만 불은 받겠다고 작정한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는 금액입니까? 우리가 키워주고 바가지도 써 달라는 얘긴데?"

토마스는 30만 불도 비싼 금액이라고 생각할 마당에 3백만 불을 부르자 뚜껑이 열리다 못해 폭발해 날아갔다.

"그게 이미 태호가 백만 불에 그림을 판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어떤 정신 나간 미술관이 그런 딜을?"

"한국의 다움 미술관입니다. 그 메모리 반도체로 알려진 다성이 지원하는..."

"숨겨둔 자식이라도 됩니까? 그런 정신 나간 딜을 하게?"

제이슨은 아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백만 달러가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이 그림은 얼마를 줘야 적정한 가격이라고 생각하세요?"

"백오십만도 최저라고 생각합니다. 윌슨의 전적을 생각하면 못해도 2백만은 받으려고 할 겁니다."

"2백만 달러도 말이 안 되는 게 소호에서 제프 쿤스의 그 얼척없는 토끼*를 사도 2백만 불을 안 합니다. 일 년에 겨우 그림 두 점 그리는 재스퍼 존스*도 백만 불이고요."

"그래도 빛의 마리아가 토끼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지겨운 국기 그림도 그렇잖아요."

한참을 구매여부에 대해 고민하던 토마스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이 그림을 놓칠 경우, 윌슨이 빌바오가 아닌 다른 미술관에 팔 경우,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하아... 요즘 제가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합니다. 그것도 같은 그림 때문에 그러니 미치고 폴짝 뛰겠군요."

"저도 비슷합니다."

"이사회에 이백만 불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빛의 마리아 IV는 어떻게 하겠답니까?"

"아직 그림 제작을 시작도 하지 않아서 협상 테이블에 올리길 꺼려 합니다."

"우리가 2백만 불을 주고 그림을 사면 남은 그림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됩니다. 우리가 올려주는 꼴이니 혜택도 우리가 누려야지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세워서 보고해 주세요. 초안은 다음 주 화요일까지입니다."

"관장님, 지금이 금요일입니다."

'그것도 오후'라는 말은 빠졌다.

"압니다. 그런데 이사회 보고가 다음 주 수요일이니 어쩌겠습니까? 제가 윌슨하고 딜을 할까요?"

토마스의 대답엔 냉기가 풀풀 풍겼다.

토마스의 정색에 제이슨도 겨우 표정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관장님. 빨리 준비해 보고드리겠습니다."

*

토요일에 윌슨을 만난 제이슨은 토요일 하루 종일 윌슨을 들들 볶아 백팔십만 불에 판매 계약을 가결했다.

거기엔 태호가 제작할 빛의 마리아 IV에 대해 10년의 대여를 보장하는 내용도 담았다. 제이슨은 처음에 백오십만불을 불렀지만 정말 간단히 거절당했다. 그때의 제이슨의 얼굴은 마치 삼국지의 관운장 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대여 기간이라도 늘릴 생각에 제이슨은 20년을 주장했지만 자신이 죽고 나서 팔면 무슨 소용이냐는 윌슨의 항의에 10년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얼굴 샘플이 포함되지 않았다. 제이슨은 간과했고 윌슨은 모른 척 말도 꺼내지 않았다.

*

엘리냐 팀의 Faceless 복원은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완료가 되었다.

태호는 이 복원 작업을 위해 실제로 한 일이 단 하나도 없었지만, 미술관은 태호에게 모든 급여를 제공했다.

Faceless에 적합한 얼굴을 찾는 서베이(Survey)에 대한 결과가 나오자 미술관에서는 태호에게 빛의 마리아 III에는 라파엘로의 성모상의 얼굴을 그려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태호는 일주 만에 완성한 후 그림을 미술관 측에 넘겼다. 빛의 마리아 III는 Faceless 와 함께 전시되기 시작했다. 빛의 마리아 III는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관객의 접근만 어느 정도 차단하는 선에서 공개되었다.

미술관은 가진 마케팅 역량을 총동원하여 뉴욕에 Faceless의 새 얼굴이 생겼음을 알렸다.

이 소식은 뉴욕에 미술계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수가 기존 대비 20% 넘게 상승했다. 권태호라는 이름이 서서히 뉴욕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5월 말이 다가오자 태호는 BP Portrait에 작품을 출품할 겸, 유럽 여행도 할 겸, 영국으로 떠났다. 빛의 마리아 IV는 태호가 미국에 돌아온 후 완성하기로 약속했다. 시기는 내년일 것이다.

*

태호가 완성한 빛의 마리아 III은 공개하자마자 어마어마한 대중의 환호와 혹독한 비평가들의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많이 본 듯한 얼굴.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의 표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 같기도 하고 라파엘로의 성모 같기도 하다."

"이런 틀에 박힌 모습을 기대한 것이 아니다."

대중의 환호는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비평이 이어지자 수그러들었고 늘었던 관람객도 서서히 줄어만 갔다. 미술관은 당황했다.

미술관은 비밀리에 기자와 비평가들을 미술관으로 초대해 태호가 제작해 둔 Faceless의 세 번째 얼굴(빛의 마리아IV용 그림)을 공개했다. 오프더레코드였다.

"차라리 앞서 공개한 두 후보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 이 그림을 선택지에 넣지 않은 겁니까?"

기자와 비평가들의 집요한 질문에 제이슨은 결국 실토를 했다.

"이 그림을 선택할 근거가 부족했습니다."

이어지는 기자와 비평가들의 비난에 토마스는 두 손을 들었다.

"빛의 마리아 IV를 제작할 예정입니다. 작가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제작을 시작하면 여러분에게 제일 먼저 알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행사는 엉망으로 끝나버렸고, 미술관은 윌슨에게 빛의 마리아 IV 제작을 가능한 빨리 시작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

토마스와 제이슨에게서 대학 추천서까지 받아내고 난 후 태호는 뉴욕을 떠날 예정이었다.

"추천서까지 써줬는데 가격을 그렇게 받았나?"

토마스와 제이슨은 '태호가 유럽으로 잠시 떠난다'하자 미술관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두분 추천서 고려해서 20만 불 깎은 건데요?"

"그랬나? 장당 십만 불 짜리 추천서였나 보군. 차라리 다 받고 우리에게 20만불은 커미션으로 주지 그랬나?" 토마스가 허탈해 하며 농담삼아 말했다.

"영국에서 뭘 할 건가?" 제이슨이 물었다.

"BP Portrait에 작품을 제출하려고요. 수상식이 6월 초인데 그전까지 유럽 여행을 하고 런던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그것보다 우리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휴고 보스 상도 있네만." 토마스가 말했다.

"상을 받으려고 하는 이유가 대학 입학 때 도움이 될까 해서거든요. 빛의 마리아 IV를 그리면 그 그림으로 휴고 보스 상에 도전해 볼게요."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예일대에 꼭 합격하길 바라네. 휴고 보스 상은 10월이 마감이니까 8월에는 와서 그리기 시작해야 될 거야."

"미술관 복원실에서 그려도 될까요? 전 그 장소가 너무 좋더라고요."

"나는 상관없다만 상은 받기 힘들 거야. 보나마나 특혜 시비가 일 거거든."

토마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시점은 잠시 9월.

9월이 되자 토마스는 제안서를 써준 것과는 별개로 예일대 미대 로버트 스토 학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은 대학 동기로 학교에 있을 때부터 많이 친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Faceless에 대해 들어봤나?"

"뉴욕에서 그 난리가 났는데 여기서 모를 리가 있나. 이름이 빛의 마리아? 누가 지었는지 정말 잘 지었더군. 그림과 너무 나도 잘 어울려. 작가 이름이 권태호라고 들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신진 작가인가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작가를 만났나?"

"얘기하면 긴데, 맨 입에 알려줄 수는 없어."

"그래? 내 뉴욕 갈 일이 있으면 꼭 한잔 사지."

"접수했어. 내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줄 거야. 매우 중요하지. 얘기해 주는 조건으로 술뿐만 아니라 밥도 자네가 사. 어때?"

"들어보고 적당하다면."

"이름은 권태호, 따로 영어 이름은 없을 거야. 한국인이고 현재 나이 18살. 이번 학기에 자네가 일하는 학교에 지원했어."

"뭐라고? 18살? 이제 대학 간다고? 올해 지원 한다면 내년에 입학인데?"

"그래. 네가 떨어뜨리면 난 콜롬비아 대에 이 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없어."

"너도 예일 출신인 건 잊었나?"

"멀리 떨어져서 그 친구를 자주 못 보는 것보다 콜롬비아 대에 두고 자주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지."

"여기 올 만한 성적은 나와?"

"몰라. 그 어린 녀석에게 성적을 물어볼 정도로 가오가 없진 않아."

"그럼 가오 없는 내가 확인해 봐야겠군."

"그러든가. 난 분명히 자네에게 태호라는 작가가 그 학교에 지원했음을 밝혔어. 나중에 동문들 만나서 딴소리하지 마!"

"그딴 소리 하지 말고 추천서나 제대로 써서 내."

"난 추천서도 이미 썼어. 난 내 할 일을 다 했거든. 그러니 지금부터는 자네 소관일세."

"이게 밥 사고 술 사고 들을 소식인가?"

"당연히. 그 녀석이 떨어지면 뉴욕 사람들이 얼마나 학교를 비웃겠나?"

"내 일단 알아볼게. 뒷얘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지."

"뉴욕에 빨리 오라고. 해 줄 재미있는 얘기가 많아."

*

예일대.

"지원자 중에 권태호라고 있나? 나이는 18살. 한국인."

로버트는 신입생 입학을 관리하는 직원 중 미대 쪽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네, 있습니다."

"현재 결과는?"

"이 학생은 현재 재심위 예정입니다."

"어째서?"

"GED 성적이나 SAT, 토플, AP 성적 등은 모두 커트라인을 넘겼는데, 정규 학교를 마치지 못해 다른 지원자들 보다 스토리가 좀 빈약합니다. 운동이나 음악 등 특별 활동을 한 이력도 없습니다. 미술 상을 받은 게 있긴 한데 이것도 심의 시 다시 내용 확인이 필요합니다. BP Portrait Award를 받았다고 적혀 있는데 수상 여부를 다시 확인 중에 있습니다."

"증빙 서류가 있지 않아?"

"그게... 서류가 없습니다."

로버트는 어이가 없어 다시 물어봤다. 상은 받았는데 증빙 서류가 없다니. 이건 명백히 학생 측 과실이었다.

"또? 다른 내용은?"

담당자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바로 알아채고 얘기를 독촉했다.

"추천서의 조작이 의심되어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서류 조작?"

"총 6장의 추천서가 왔는데 두 개는 한국의 대학교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는 한국의 다움 미술관장, 하나는 윌슨이라는 뉴욕의 딜러, 빌바오 미술관장과 수석 큐레이터의 추천서입니다."

"문제 될 게 있나?"

통화 내용처럼 토마스는 제대로 추천서를 썼다.

"한국 교수들과 미술관은 차치하더라도, 학교 기록을 보면 빌바오 미술관장과 수석 큐레이터는 지금까지 추천서를 써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추천서가 온 것도 이상하고. 거기에 태호라는 지원자가 요즘 뉴욕에서 유명한 빛의 마리아라는 작품의 작가라고 해서 진위 여부 확인이..."

"걔가 맞아."

"네?"

"그 지원자가 맞다고. 아까 빌바오 관장인 토마스에게 연락을 받았어. 태호라는 학생이 빛의 마리아를 그린 게 맞고."

"재 심사 의견란에 내 이름 넣고 빌바오에서 온 추천서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적게."

"만약 이 친구를 떨어뜨릴 거면 심사관에게 왜 떨어뜨린 건지 자세히 적어 달라고 해. 내가 이 친구에게 관심이 많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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