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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술, 무라카미1 (?) (50/181)

///// 일본 미술, 무라카미1 (?)

베이징에 갔다 온 지 2주 후 김 교수와 태호는 도쿄로 향했다.

"일본 갈 때는 따로 챙겨갈 건 없나 보죠?"

"인삼차 정도면 될 거야. 걔가 차는 즐겨 마시는 편이니까."

"작업실이 도쿄에 있죠?"

"카츠키의 작업실은 두 개야. 하나는 도쿄 근처 사이타마현. 하나는 뉴욕 브루클린. 지금은 도쿄에 있어. 도쿄는 처음이지?"

"외국 나가는 게 북경 다음으로 이번이 두 번째에요."

*

나리타 공항에서 한참을 열차를 타고 들어가 도쿄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고 사이타마현 (도쿄역 기준 북서쪽)으로 갔다. 태호 혼자 갔으면 도쿄역에서 100% 길을 잃었을 게 분명할 만큼 정신없고 번잡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알았으면 택시를 탈 걸 그랬어."

거의 만원인 지하철에서 김 교수가 푸념하듯 말했다.

"도쿄까지 왔기에 여기 사는 사람들 모습이라도 경험하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왔지만, 러시아워가 지났는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는 건 좀 의왼데?"

"그래도 지하철 2호선 정도는 안 되는 거 같은데요?"

"이렇게 붐벼서야 얘기를 나눌 수가 없잖아."

도쿄역을 출발해 4-5 정거장 정도를 지나자 살짝 한가한 1호선 같았다.

"이제야 좀 말 좀 하겠군. 오늘 가는 곳인 무라카미의 스튜디오의 이름은 히로폰 팩토리야. 얼마 전 연락해 보니 최근에 제작한 작품들이 아직 그 스튜디오에 있다고 해. 좀 급하게 일정을 잡은 이유도 지금 아니면 한자리에서 그 작품들을 다 보기 힘들 거라고 해서 그런 거니까."

"무라카미는 일본 오타쿠 문화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어. 지금은 대변인이지만, 나중에는 일본의 대중문화를 설명하는데 무라카미가 빠질 수가 없는 아이콘 같은 존재가 될 거라고 봐."

"오타쿠라고 하면 방구석 폐인 아닌가요? '히키코모리'라고 부르는?"

"오타쿠의 이미지 중에 '히키코모리'도 있지만 그걸로만 해석해서는 안 돼. 오타쿠는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 만화, 게임 쪽으로 과잉 몰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그쪽 산업의 팬이나 망가나 애니를 소비하는 문화 계층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거든. 이런 오타쿠 문화를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삼은 게 무라카미야. 영리한 친구지."

"일본 애니나 망가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인데 이를 대표하는 작가가 무라카미밖에 없나요?"

"나라 요시모토라고 유명한 팝 아티스트가 있긴 해. 하지만 무라카미가 훨씬 더 노골적으로 오타쿠 문화를 자신의 작품에 포용했지. 나라 요시모토는 무라카미에 비해 매우 점잖은 편에 속해."

"왜 히로폰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직접 물어봐. 추측되는 바는 있지만 나도 직접 물어본 적은 없으니."

*

사이타마현에서 내리고 나서 좀 걷고 나서야 카츠키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카츠키는 흰 티에 군용 반바지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크기가 좀 있는 동그란 안경테에 머리카락은 창이 짧은 모자로 눌러 정돈했지만 옆머리는 삐져나와 있고, 약간의 콧수염과 기른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턱수염을 하고 있었다. 딱 봐도 여자에게 인기 없게 생긴 30대 중반의 아저씨였다.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김 교수님."

"무라카미 씨도 잘 있었죠? 이런 멋진 스튜디오는 어떻게 마련했데요. 뉴욕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근근이 먹고사는 정도죠. 일본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여기, 이 잘생긴 친구는 누군가요? 혹시 같이 온다고 하던 태호 군?"

"내 제자. 권태호라고 여기서는 고등학교 1학년 입니다."

"반갑습니다 무라카미 씨."

"워낙에 잘생긴 청년이 와서 모델인 줄 알았습니다."

"별말씀을요."

"무라카미 씨는 뉴욕에서 살다가 와 영어 잘하니까, 태호 너도 영어로 대화해."

"아 그래요?"

"아직도 첨 만난 사람이랑 대화할 때나 빨리 말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면 힘들어요. 천천히 얘기해요."

"네. 저도 영어를 한국에서만 배워서요.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뉴욕 살다 온 나보다는 낫네요?"

두 사람은 완벽한 일어를 구사하며 얘기했고, 태호도 유창하지는 않아도 알아듣고 복잡하지 않은 의사소통은 할 정도의 일어는 구사했다. 태호는 무라카미에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며 편하게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고, 무라카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인드는 여전히 뉴욕에 있었다.

건물 2층에 마련된 작업실에는 이색적인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아이들 가방들이 보였고, 한쪽에는 귀에 알파벳을 새겨 넣은 귀여운 듯하면서도 약간은 괴기스러운 얼굴을 한 캐릭터가 있었다. 태호를 사로잡은 건 저 재미없어 보이는 가방이 아니라 이 독특한 캐릭터였다. 미키마우스에다가 도라에몽을 섞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안경원숭이를 섞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변종 캐릭터였는데, 특히나 눈빛이 이상했다. 태호는 속으로 타락 미키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자세히 보니 태호가 느끼는 이 괴기스러움은 눈빛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뭐랄까... 순수한 아이의 눈빛이 아닌 사기꾼의 눈빛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욕망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심지어 가지런하게 드러난 이빨은 날카롭게 변해 누구를 씹고 갈아버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태호 군."

"왜 작업실을 히로폰 팩토리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혹시 앤디 워홀의 팩토리에서 영감을 얻은 건가요?"

"맞아. 히로폰은 마약 이름이지. 일본 사람들은 오타쿠 문화가 마약 같다고 생각하거든.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가 맞아. 난 일본인들이 마약 같다고 생각하는 오타쿠 문화를 담은 작품을 대량 생산하겠다는 의미로 이렇게 이름 지은 거니까. 차이점은 내가 추구하는 팩토리는 앤디의 팩토리보다는 좀 더 기업 마인드가 더 들어갔어. 앤디 시절이, 좀 뭐랄까, 가내 수공업 같은 것이라고 하면 내가 추구하는 것은 공장형에 가깝지."

"공장형이라면 사람도 많이 고용하고 그래야겠네요? 사람을 고용해서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어요?"

"이제껏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작품을 만들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데 이를 웬만해서는 감당할 수가 없어. 예를 들어 내가 100점의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그걸 금박으로 장식하려고 해. 그럼 거기에 들어갈 작업량이 얼마나 되겠어? 혼자서? 절대 못 하거든."

"그렇긴 하겠네요. 만들고 싶은 작품이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다면 작품은 절대 태어날 수가 없겠네요. 한 사람이 평생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내 생각에는 어느 정도 부자를 타깃으로 한 작품을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경제적으로 자립이 되지 않으면 이 예술이라는 작업은 너무나도 힘드니까."

"그렇긴 하네요."

"확실히 말이 통하는 친구네요. 여기 고리타분한 친구들은 내 말을 이해를 못 하면서 순수 예술에 대한 정열만을 얘기하는데. 역시 김 교수 님 제자다워요. 굉장히 합리적이네요." 무라카미는 김 교수에게 말했다.

"시대가 변하면 예술도 변하는 거죠. 저는 다른 사람 손을 빌려서 작업하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임금과 이 작업에 참여했다는 증명만 확실하게 해주면 되죠. 그렇다고 무라카미 씨가 디자인하고 감독한 작품이 다른 사람께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대작을 어떻게 만들어요."

"맞아요. 사실 구상만 한 작품이 하나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난 불교 신자였어. 태호는 '나한'이라는 걸 알아?"

"알죠."

태호는 사진으로 자신이 그린 탱화를 보여줬고 무라카미는 놀라워했어.

태호는 어떤 계기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얼마 동안 그렸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무라카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도 그런 대작을 만들고 싶고 언젠가는 만들 거야. 준비가 되면 말이지."

"그때 초대해 줘요. 꼭 가서 보고 싶으니까. 도쿄에 계속 눌러사시는 건 아니죠?"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도 해야지. 자주 가는 편이니 만나기 어렵진 않을 거야. 단 지금은 아니고. 좀 시간이 지나면. 얼마 전에 뉴욕에서 돌아왔기에 도쿄에서 자리 잡을 시간이 필요하거든."

"나도 몇 년 뒤에 가요. 한 3년 뒤 정도?

"왜 미국 대학을 가려고 하는 건데?"

"런던과 뉴욕을 두고 골랐는데,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뉴욕을 추천하시더라고요."

"런던도 큰 시장이지만 뉴욕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니. 런던을 가도 결국에는 뉴욕에서도 활동을 하긴 해야 돼."

태호는 작업실을 둘러보다 타락 미키 옆에 세워진 뭔가 제작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피겨를 보았다.

"여기 작품들도 소개해 줘요."

"이건 미스 코. 이건 히로폰."

"거대한 피겨네요. 세일러문 같기도 하고."

"세일러문도 알아?"

"한국에서도 방송에 자주 나와서 모를 수가 없죠."

"누굴 제일 좋아해?"

"미스 코 닮은 애요."

"역시 태호도 나랑 취향이 비슷했어."

"아니거든요. 무라카미 씨. 그런데 미스 코는 모르겠는데, 히로폰은 너무 제프 쿤인데요.

"그게 한눈에 보이나?"

"노골적으로요."

"그럼 맞게 봤어."

"그런데 왜 좀 더 관능적으로 만드시지 그랬어요? 더 이쁘면 훨씬 인기가 좋을 거 같은데."

"내 주제는 제프 쿤처럼 욕망이지 육체적 아름다움이나 관능미가 아니거든."

"젖가슴은 왜 이렇게 크게 그리신 거예요? 물론 모든 망가 캐릭터들이 얼굴의 반이 눈일 정도로 괴물들인 건 아는데 얘는 가슴을 실리콘으로 들이부운 것 같네요. 이 하얀 게 젖이 아니라 실리콘 덩어리처럼 보일 정도로요."

"하하. 큭큭. 맞아. 맞아. 터질 듯 크지. 우리 일본 경제처럼 말이지."

"일본 거품 경제요?"

"몰랐나? 지금 일본의 경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데. 버블이라고 하지. 그리고 조만간 팡하고 터질 거야. 빵! 버스트."

무라카미는 손으로 풍선 터지는 모양을 묘사했다.

"그런 의미도 담았어요?"

"이 정도 의미는 넣어야 작품 아니겠어? 비평가들이 알아서 잘 평가해 주겠지."

"보통 작품 할 때 철학이나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시는 편이세요?"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살짝 더 과장하는 거지. 그러기만 하면 내가 작품을 제작한 의도를 알아서 판단해 주니까. 자신 입으로 떠들지 않아도 작품에 다 녹아 있으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지는 거고."

"보통 작품 제작할 때 자세한 의미를 다 부여하시나요? 예를 들면 이 히로폰의 소용돌이치는 머리카락 모양과 이 하얀색 실리콘이 소용돌이치는 모양이 유사한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미스 코의 가슴에서 나가는 밀크는 그녀의 몸매를 감싸고 나가는 스크루 기류고, 이 머리카락 역시 그 스크루 상징하지. 어떤 의미냐? 과장의 의미 외에는 딱히 더한 의미는 없는걸.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망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헤어스타일이라고."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나 망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건 쉽게 이해하겠는데,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일본 역사나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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