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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술, 사천왕3 (?) (49/181)
  • ///// 중국 미술, 사천왕3 (?)

    "이거 잘 말려서 한곳에 걸어 놔야겠어. 이렇게만 봐도 좋구먼."

    위에밍중은 짧은 시간에 그려진 이 그림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그림과 닮은 듯하지만, 태호의 그림에는 뭔가 다른 깊이감이 있었다.

    "좋아하신다니 다행이네요. 사실 큰 그림을 주셔서 미안했거든요."

    위에밍중이 선물이라며 준 작품은 그의 가장 트레이드 마크인 웃는 남자가 일렬로 쭉 늘어선 그림이었다.

    "신경 쓰지 마. 그림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야. 나에겐 이 그림이 더 가치가 있어."

    "그림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을까요?"

    태호는 위에밍중과 함께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김 교수도 옆에서 몇 컷 같이 찍었다.

    *

    위에밍중에게는 가지고 온 여행자 수표를 이용해 계산을 했고 웃돈을 주고 미술품 해외 배송업체에 구매한 두 점의 그림을 맡겼다. 그림은 둘 다 뉴욕의 윌슨에게 보내질 것이다.

    태호의 할아버지는 태호 그림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크기도 커서 보관하기도 좋지 않았다.

    태호는 윌슨에게 전화를 했고, 윌슨은 태호의 전화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위에밍중 그림만 두 개나 샀다고? 그 큰 걸 겨우 3만 달러에?"

    뉴욕에서는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그 두 배를 주고도 이만한 크기의 작품은 구하기 힘들었다.

    "처형이라는 작품이 정말 괜찮아요. 웬만하면 팔지 마시고 들고 계시는 걸 추천해요. 전시하면 다들 윌슨 씨를 귀찮게 할지도 모르니 개인에게 대여를 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아니면 그냥 남들 모르는 곳에 숨겨두고 계세요. 시간이 지나면 적어도 지금의 100배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태호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은 윌슨은, 일단 그림을 보긴 해야겠지만 팔기 보다는 잘 보관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바로 판다는 것은 마치 초특급 우량주를 지인 찬스로 사놓고 가격이 오르기도 전에 팔아먹는 것과 똑같았다.

    후에 뉴욕이나 홍콩 경매시장에서 팔아야 제격일 것이다.

    *

    이주 뒤, 태호는 한국에서 윌슨의 전화를 받았다.

    "방금 전에 작품들이 도착했어. 굉장한 작품이야. 하지만 사실 난 자네가 위에밍중에게 그려줬다는 작품이 더 좋아. 그에게 얘기해서 하나 더 그리라고 하고 싶군."

    윌슨은 사진을 통해 본 태호의 그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전에도 그런 기질이 보였지만 윌슨은 태호 그림을 언제나 1순위에 놓았다.

    "그냥 기념품 수준이에요."

    태호는 그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 정도로 자네 작품이 좋다는 얘기니까. 지금 이 처형이라는 그림을 보니까 더 그래. 스토리가 있는 작품은 언제나 매력적인 법이거든. 자네 말대로 아예 전문 보관 업체에 맡길까도 생각하고 있어. 바로 팔면 안 되는 그림이야. 숙성을 해야지."

    윌슨은 정말 그림 보관 전문 업체를 불러 그림 보관을 의뢰했다.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가 적정한 숙성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

    다시 중국 베이징.

    위에밍중의 작업실을 나와 팽리진의 작업실에 도착했을 떄는 이미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주황색 철문을 통해 작업실에 들어가면 위에밍중의 작업실과 마찬가지로 폐공장에 마련되어 있었다. 차이는 내부 벽돌을 흰색으로 칠했다는 점 밖에는 없었다.

    40평 남짓한 작업실에는 벽벽마다 작업 중인 그림들로 가득했다. 벽에 빈 공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비춰 팽리진은 작품 활동에 매우 열심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대머리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태호는 작업실을 가득 채운 캔버스와 그 캔버스를 가득 찬 대머리를 보고 살짝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대머리들이 죄다 물속에 있지."

    팽리진도 덤덤하게 자신의 그림에 대해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듯 말했다.

    위에밍중도 그렇고 팽리진도 그렇고 두 사람이 대머리를 너무 좋아했다.

    "혹시 이렇게 표현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머리카락은 사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신체인데 이걸 없애 버리면 개성을 없애 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문화혁명이 이랬지."

    문화혁명을 얘기하는

    "물이 의미하는 바가 뭐에요?"

    "순수를 상징해. 그리고 중립적이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할 수 있어. 물이 편안할 수도 있지만 공포스러울 수도 있지.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지만 물은 사람을 익사시키기도 하거든."

    "너무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우울하기도 하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건지, 이미 익사해서 물에 떠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제대로 본 거야. 내 의도가 그거니까."

    *

    태호는 정말 어렵게 작품 구매에 대한 말을 꺼냈다.

    "혹시 작품을 하나 구매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어떤 작품을 원하는가?"

    팽리진은 정말 쿨하게 작품을 고르기를 권했다.

    태호는 찬찬히 다니며 작품을 살펴보다 팽리진의 초기 대표작의 모습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그림 하나를 골랐다. 민머리를 한 남자가 물에서 얼굴만 내민 채 떠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그림 크기는 3m x 2m 정도로 꽤 큰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작품인데 잘 골랐어. 지금 제작하고 있는 작품의 중심 개념을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하고."

    "제가 운이 좋았네요. 이 그림이 제일 와 닿았거든요."

    *

    다음 날.

    태호는 은행에서 찾은 만 달러와 여행자 수표 2만 달러 더해 총 3만 달러를 들고 팽리진의 작업실로 향했다. 3만 달러를 본 팽리진은 깜짝 놀라며 돈이 너무 많다고 사양하려고 했다.

    태호는 돈다발을 안기고 그림 배송을 위한 업체를 불렀다.

    "나에게도 그림 하나 그려줄 수 있을까?"

    팽리진은 정말 쑥스러워하는 얼굴로 태호에게 부탁을 해왔다.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너에게 줄게. 팔려고 그린 그림이 아닌 좀 더 개인적인 그림이야. 잘 간직해줬으면 해."

    팽리진은 2층의 개인 사무실에서 50인치 TV 사이즈 정도 되는 그림을 하나 가져왔다. 그림엔 팽리진이 천안문에서 겪었던 일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었다.

    탱크가 천안문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날카로운 표정의 수없이 많은 민머리들이 탱크 앞에서 온몸으로 저항하는 그림이었다. 배경인 천안문 광장이 온통 꽃밭이었고 하늘은 정말로 푸르렀다.

    "내가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그림이야."

    태호는 김 교수가 말했던 가면이라는 단어의 뜻을 완벽히 이해했다. 팽리진이 그리는 민머리들의 허무하고 바보 같은 표정 뒤에는 이런 저항 의식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런 작품을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태호는 정말 기뻤다. 팽리진이 정말 뜻깊은 그림을 선물한 것이다.

    어제처럼 4개의 캔버스를 요청해 팽리진의 초상화, 팽리진의 민머리 캐릭터, 태호의 캐릭터, 태호의 초상화를 나란히 그렸다.

    위에밍중의 그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 4시간 만에 완성되었다. 팽리진의 개인적인 선물에 감동한 태호가 더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시간이 어제보다 배로 들었다.

    "여기 제 명함이에요. 혹시 나중에 한국이나 미국에 오실 일이 있으면 연락주세요. 참석할게요."

    태호는 명함을 건넨 후 팽리진의 작업실을 나왔다.

    *

    삼 주 뒤.

    "팽리진의 그림도 왔는데? 왜 일주일 건너서 오는 거야? 위에밍중과 하루 차이 아니었어?"

    "비슷하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운이 없었나 봐요. 그림은 어때요?"

    "좋아. 너무 좋아. 어디서 이런 그림을 구했는지 신통방통할 정도로."

    "그 천안문 그림은 팔면 안 돼요. 팔면 팽리진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요.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주제가 담겼잖아요."

    "그래. 이 그림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

    "일단 계속 가지고 있어요. 개인에게 비밀리에 빌려줄 수도 있을 테고. 아니면 나중에 제가 들고 있어도 되고요."

    *

    팽리진의 작업실을 빠져나와 호텔로 돌아가는 택시 안. 김 교수는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태호와 얘기를 나눴다.

    "오늘 만난 화가들은 아마 나중에 황제나 왕으로 불릴 거야. 워낙에 중국 사람들이 이렇게 묶어서 이름 짓는 걸 좋아해서. 위에밍중과 팽리진, 징샤오공은 확실하게 왕이라고 불릴만해. 현재 인기나 인지도에서 톱 급이니까."

    "양굉이 작가는 빠졌네요?"

    "양굉이 작가는 모르겠어. 위에밍중이나 팽리진도 양굉이를 높게 평가하지 않듯이 나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거든. 마치 북한 체제 선전 미술을 보는 듯 해서 재미도 없고. 그래도 양굉이까지 천왕이라 불릴거야. 천왕은 4명이 있어야 4대 천왕이 되니까."

    "정말 중국 미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까요? 항상 미술 시장의 성장에는 거품론이 따라붙었잖아요." 태호가 물었다.

    "예술품의 가격은 경제발전과 개인 재산의 증가와 같이 올라가. 지금의 중국은 미술품의 가격을 유지할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있지. 언제나 거품이라고 하지만, 사는 사람이 있으면 거품이 아니야. 여기에 예술품들은 재산 증식 및 증여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기도 하지."

    "위작 문제는 어떻게 해요? 우리나라 작품 중에 오래된 작품들은 늘 그게 문제던데요."

    "중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사실 훨씬 심하지."

    "현대 작품은 달라. 지금이야 기록 매체가 발전했기 때문에 유명 작가 사후에도 진품 판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 찝찝하게 가짜를 구매하는 것보다 물감도 다 안 마른 진짜가 더 안심되기도 할 테고."

    "교수님은 위에밍중이나 팽리진이 하는 팝 아트가 얼마나 유행할 거라고 보세요?"

    "지금이야 정치 팝아트를 하는 화가들이 득세를 하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아니야.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받아들이는 저런 과정도 십 년 정도 지나면 끝이 날 거야. 그리고 나선 다른 서양 미술을 중국 미술로 받아들이는 작업을 하겠지. 그것도 한 일이십 년 하고 나면 뭘 할까? 아마 자신의 고유의 색을 찾으려고 할 거야. 중국의 색을 찾으려 하겠지. 내가 아는 중국의 색은 저런 팝 아트와는 거리가 있어."

    "중국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이룩해놓은 위대한 유산이 있어. 그걸 낡은 것이라며 문화혁명 때 그렇게 없애버리려 했었지. 그걸 반성할 때가 되면 그 위대한 선조의 유산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할 거야. 내 생각엔 그때가 와야 마오쩌둥에 대한 진정한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어."

    "언제쯤 그런 시기가 올까요?"

    "후후. 그런 시기가 올까? 내가 죽기 전에? 모르겠어."

    이런 말을 하는 김 교수의 표정은 냉랭한 비웃음이 같이 번져있었다.

    "장훼얀의 말이 그런 면에서는 맞아. 여긴 시간이 좀 더 필요해."

    *

    저녁 비행기로 김 교수와 태호는 한국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일주일 뒤 도쿄으로 여행을 가려던 것은 2주 뒤로 연기되었다. 태호가 양어장에 들어갔다 나온 이후 조금씩 올라오던 피부병은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하반신 전체를 덮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들어갔던 양어장이 깨끗하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태호의 피부가 약했던 이유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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