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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술, 사천왕1 (?) (47/181)

///// 중국 미술, 사천왕1 (?)

둘째 날 저녁, 김 교수가 예약한 식당은 사천요리 전문점으로 베이징에 있는 사천성 사무처가 운영하는 전문 음식점이었다. 전통 있는 사천요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약속 시간인 10분 이른 6시 20분쯤 도착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오늘 만날 사람들은 쑹좡에 터줏대감 같은 사람들이야. 팽리진과 위에밍중."

"중국은 좀 다른 곳이야. 딜러가 그림을 파는 게 아닌 작가가 직접 그림을 팔아. 화랑보다는 경매가 더 발달한 곳이기도 하고."

"두 사람을 어떻게 아시게 된 거예요?" 태호가 물었다.

"내가 포닥 (박사 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베이징에서 유학 생활할 때 알게 된 작가들이거든."

"어느 학교에서 포닥 하셨어요?"

"중앙미술학원."

"학원 다니셨어요?"

김 교수는 그냥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중앙 미술 대학교라고 이해하면 돼."

"네..."태호는 여전히 학원이 대학으로 이름이 바뀌는 걸 이해 못했다.

"팽리진은 광주 비엔날레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2년 전에도 한국에 왔었어. 몇 달 뒤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기도 하고."

"위에밍중은 팽리진에게 소개받아서 만나게 되었어. 서로 소 닭 쳐다보듯 하는 사이긴 해도 교류가 전혀 없는 건 또 아니니까."

"만약 그림을 사겠다고 하면 위에밍중이 조금 더 구하기 수월할 거야. 난 두 사람 다 추천하지만,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위에밍중을 추천해. 그 사람 그림이 아직 저평가된 상태니까."

*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 위에밍중이 오고 곧이어 팽리진이 식당 내로 들어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네 사람은 곧바로 음식과 술을 시켰다.

위에밍중과 팽리진 모두 30대 중반으로 두 사람 다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를 했다. 그들이 그리는 그림의 캐릭터도 삭발하고 있기에 많이 비슷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살짝 달랐다.

그림의 캐릭터처럼 팽리진이 좀 더 얼굴선이 굵었고 코가 더 발달했다. 둘 다 복장 센스는 그들의 그림만큼이나 단조로웠다. 우연으로 길에서 지나치더라도 절대로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스타일이었다.

"술은 우량예로 하시죠." 팽리진이 말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마오타이만 선물로 주고받으니 질리더군요."

팽리진은 웃으며 얘기했다.

"이 술이 52도긴 해도 목 넘김이 좋습니다."

"이 식당은 어떻게 아시고 예약하셨는지? 여기가 요즘에 부쩍 인기가 높아진 식당입니다." 위에밍중이 물었다.

"얼마 전 지인이 이 식당에서 식사했는데 전통 사천요리를 베이징에서 제대로 즐길 수 몇 안 되는 식당이라고 하시더군요." 김 교수가 대답했다.

어제와는 다르게 김 교수는 두 사람을 매우 정중하게 두 사람을 대했다. 어제는 허물없는 친구를 대하는 것이라면 오늘은 친하지만, 비즈니스로 만난 사이처럼 보였다.

음식이 나오자 비로소 팽리진이 술병을 따 김 교수의 잔을 채웠다. 서로에게 무척이나 예의를 다 하는 모습이었다.

"2년 전에 한국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번 신세를 갚을 틈도 없이 올해 또 신세를 지게 되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사게 해주시죠. 그래야 제가 마음이 편합니다."

"별말씀을요."

"여기 이 친구가 전에 얘기하셨던 제자이군요."

김 교수는 태호의 이력을 간단히 소개했다.

"학교를 안 다니고 교수님에게 사사하고 있다니 놀랍네요."

위에밍중이 태호를 보며 말했다.

"학교를 거부한 건 본인의 의지였나?"

"네. 학교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받는 건 생각만으로 숨 막히더라고요."

학교 얘기는 이제 태호 본인은 질리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태호는 이 주제를 꺼냄을 주저하지 않았다.

"중국 학교 교육도 한국 못지않게 천편일률적이야. 나도 학교 다닐 때 지겨워했지. 그런데도 학교를 벗어날 생각을 못 했어. 학교를 안 다니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는 분위기가 지금도 만연하니까. 태호 군은 그래서 대단한 거 같아. 어린 나이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태호는 학교에 다니지 않음으로써 얻은 것들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며 자신의 선택에 관해 설명했다.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학연은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 주는 건 맞죠.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예술을 할 생각이었고, 이쪽은 지인(知人)보다는 지음(知音)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배경이나 나이도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생각을 나눌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요."

팽리진과 위에밍중은 이 어린 친구가 이미 잘 정립된 주관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이제야 흥미롭다는 듯 태호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러자 태호의 다른 면모도 궁금해졌다.

"혹시 자네 작품이 담긴 사진 있나?" 팽리진이 물었다.

태호는 가방에서 탱화와 초상화 사진을 꺼냈다.

그림을 본 두 사람은 감탄했다.

"이 그림에서 가운데 부처는 관세음보살처럼 보이는군요.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그림을 본 후, 태호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바뀌었다. 김 교수의 제자에게서 조금은 가까이해도 될 만한 작가로 말이다.

"양광이 선생 작품 가격이 2만 달러를 넘어섰어요. 지금 중국 대졸자 평균 연봉의 30배가 넘는 금액이에요. 월급이 아닌 연봉이에요. 그는 그냥 마오쩌둥에다 맥도날드 아니면 코카콜라 로고를 섞은 것뿐인데, 대박이 났다 이겁니다." 팽리진이 말했다.

비교적 천천히 술을 마셨음에도 우량예 두 병을 셋이서 비우자 말술을 자신하던 그의 혀부터 꼬였고 김 교수와 위에밍중도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양광이 그 사람이 서양의 자본주의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린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그냥 잘 팔리니까 한 거지." 팽리진이 말을 이었다.

"양광이 선생이 머리를 잘 쓴 거 같아요. 서양을 양광이 선생이 제대로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오쩌둥과 맥도날드나 샤넬을 섞으면 돈이 된다고 최초로 생각한 중국인이에요. 외국인들도 그걸 보고 그의 그림을 사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서양의 은행가들에게는 그가 반체제 인사로 보였을 거라고요. 그분은 반체제 따위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오히려 서양 문물이 마구잡이로 중국에 들어오는 걸 우려하신 분이에요."

"서양은 근대화를 서구화라고 착각들을 해요. 둘은 엄연히 다른 얘긴데. "

위에밍중도 팽리진의 말에 동의했다.

"서양의 자본가들은 그 코카콜라나 맥도날드 로고만 보고 반체제 인사라고 생각을 했다 이겁니다. 반대로 공산당원들에게는 서양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였을 거고요. 큭큭. 그게 시작이었어요." 팽리진이 말했다.

"양광이 선생이 돈 벌고 나서는 그때부터 어두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 쓰고 다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남아요. 졸부 같아 보였죠."

위에밍중의 얼굴의 비웃음이 보였다.

"서양인들은 중국 전통 예술을 이해할 만한 눈은 없어요. 그래서 그들의 눈에 제일 익숙한 그림이 인기를 끈 겁니다. 중국판 앤디 워홀 작품들을 원한 거죠. 그리고 여기엔 그런 서양의 요구에 호응할 작가들이 많습니다."

위에밍중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서양의 요구에 호응한 작가 중 하나는 저예요.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김 교수님께서는 그런 제 작품에 큰 호평을 해주셨죠.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에밍중과 김 교수는 잔을 들어 건배 후 들이켰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선생의 작품에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무엇이 있었고, 그게 절 자극했습니다. 두 분 모두 제작한 작품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가 없어요. 그 사건이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고 말은 안 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더군요."

김 교수는 주위를 한번 살피더니 말했다.

"저도 1989년 6월 4일 이후 좌절한 예술가들의 아픔을 옆에서 같이 보고 겪었습니다. 저야 외국인이었기에 참여는 안 했지만, 학교에서도 많은 행사가 있었지요. 천안문에 직접 가는 학생들도 많았고요."

"한국도 군사 독재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최근에 민주화의 결실을 봤지만, 이곳에서 그러지 못해 많이 안타깝습니다."

"당시 천안문에 갔다가 못 돌아온 친구들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김 교수는 마치 그날이 기억난 듯했다. 그리고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더 차분히 말했다.

"나는 그때 천안문에 있었습니다. 총을 맞고 쓰러지는 학생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어요. 더군다나 내가 있던 자리에 같은 학교 학생들도 많았죠. 좋은 후배들이 많이 죽었어요. 난 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팽리진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고, 위에밍중도 고개를 돌렸다.

"날 화나게 하는 건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문화대혁명 같은 폭력을 커서 다시 겪었다는 겁니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발전하면 뭐 합니까? 정치적으로는 발전이 없어요."

"공산당은 그 사건 이후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막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노골적으로 부패하기 시작했죠."

"난 내 옆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늘 느낍니다. 하지만 하는 거라고는 민머리 백수가 실없이 웃고 다니는 그림이나 그리고 있지요."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냅니다. 사람들의 기억마저도 조작하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이 사라졌는데 경제적 성공만을 노래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배부른 개돼지로 만들고 있어요."

*

너무 기운이 가라앉자 태호는 분위기 전환 겸 좀 더 두 사람의 작품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지금 분위기가 너무 상갓집이었다.

"두 분 그림을 사진으로만 접했지만 보는 순간 작품에 매료되었어요. 팽리진 선생님의 그림도 그렇고 위에밍중 선생님의 그림도 그렇고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어요. 허무, 냉소, 공허, 슬픔이 읽히더라고요. 이유가 무언지 오늘 두 분 얘기를 듣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일이 있기 전에는 무언가 희망이 있었어.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고. 정치적으로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지. 흥미진진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림 그린다고 바쁜 아티스트 일뿐이야. 그림이 잘 팔리니 돈 걱정은 안 해서 좋군."

팽리진은 표정을 싹 바꾼 채 자신의 그림만큼 감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가면을 쓴 듯했어요." 태호가 말했다.

"훗, 가면 얘기를 하니 쯩팡즈가 생각이 나는군. 그 친구 그림은 아예 가면을 주제로 하고 있지. 징샤오공의 그림도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 세대의 예술가들은 그 사건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위에밍중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냉소, 위선, 가식, 이런 주제들도 어차피 유행이야. 한 10년 갈라나?"

"우리는 친구들이 죽어간 그때를 팔아먹는 기생충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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