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중국 미술, 동촌1 (?) (45/181)

///// 중국 미술, 동촌1 (?)

김창기 교수는 태호가 점점 커감에 따라 이별의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년에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아마 일 년에 많이 봐야 한두 번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같이 한 시간만 보면 거의 10년이다. 국민학교 2학년 꼬맹이를 두고 가르치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다. 두 사람의 관계도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르친 사제 관계라기보다는 서로 주고받은 게 많은 그런 사이였다.

김 교수는 뭔가 특별한 시간을 태호와 같이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베이징과 도쿄 여행이었다.

이 시기에 만 16세 이상이 여행을 가기에는 군대 관련으로 정말 많은 제한이 있었다. 베이징과 도쿄의 지인에게 초대장을 받고 교육부 공무원의 보증까지 받고서야 여권과 비자가 나왔다. 사실상 공무원 신분인 자신이니 이 정도였지 일반 회사원이면 이마저도 쉽지 않았을 거다.

여행이 확정되자 태호는 짐을 쌀 준비를 했다.

"3박 4일이니까 여행용 가방에 가볍게 준비해도 되겠죠?"

태호는 이번 여행을 계획한 김 교수에게 가이드라인을 받기를 원했다.

"참, 미처 얘기 안 했군. 우리가 갈 곳은 베이징의 오지 같은 곳이야. 나도 2년 전에 가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폐허 같은 곳이지. 이촌에만 살던 태호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럼 어떻게 준비할까요?"

"모기약 꼭 챙기고 비누 샴푸 등등 일회용품 잘 챙겨둬. 특히 휴지! 들고 다닐 수 있는 휴지 잘 챙겨놔. 만나려는 사람들 사는 곳이 물도 겨우 나오는 곳이라 많이 열악해."

김 교수는 2년 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화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휴지가 없는 건 당연하고 화장실에 문도 휴지도 제대로 없다는 얘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베이징에서도 그런 곳이 드물긴 해. 공동 화장실이 있거든. 다행히 남녀 구분은 있는데, 들어가 보면 재래식인데 칸막이가 없어서 너 볼 일 보는 모습 옆에 사람이 다 볼 수 있어."

"노골적으로 다 보여요?"

"그럴걸?"

"안 가면 안 될까요?"

"우리가 만날 사람은 중국 예술계의 1세대야. 저런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거야. 조만간 재개발될 지역에 사는 예술가들이거든."

*

태호는 여행이 확정되자 윌슨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여행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윌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에 지인이 있는지 넌지시 물어본 것을 기억한 까닭이었다.

"정말 그들을 만나러 가는 건가?"

윌슨이 똑같은 질문을 벌써 3번째 하는 중이다.

"정말 구하고 싶은 작품들은 있지만 자네에게 부담을 주는 건 내키지 않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위에밍중 작품이나 징샤오공, 팽리진, 양광이 작품들은 구매해 보게. 그림은 자네가 보고 맘에 드는 거라면 무엇이듯 상관없어. 자네가 그림 보는 안목도 상당하니."

"현금이 필요할 수 있으니 자네 계좌로 먼저 5만 불을 보내겠네. 베이징에서 계좌 이체가 된다면 계좌 이체를 하면 되고, 현금을 요구할 경우를 대비해서 내 체크카드 하나를 추가로 보내지. 일단 5만 불을 넣어 둘 테니 베이징에서 필요시 찾아서 쓰면 돼. DHL로 보내고 비밀번호는 내 씨티은행 계좌 뒷자리 6자리라네."

"저 네 사람 외에도 괜찮은 작가라고 자네가 판단하면 그냥 사. 미국 쪽에서 관심이 있는 작가들 리스트는 이메일로 바로 보내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벌써 중국계 딜러들이 그림을 사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뉴욕은 이제 막 불이 붙었는데, 난 아직 한 점도 못 구했지. 법이 허락하는 내에서 사 오면 돼. 세금 다 내고 정상적인 루트로 사 오는 게 좋을 거야. 선물? 선물 받은 그림은 그냥 들고 와도 상관없지."

*

출국 날.

김포 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은 티케팅하고 면세점으로 향했다.

"공항 면세점에서 담배하고 술을 사야 한다. 너 아직 미성년자라서 면세는 되지 않지만 들고 들어갈 수는 있지. 걸리지만 않으면 되고."

"평소 교수님답지 않으신데요?"

태호가 알고 있는 김 교수는 바른 생활 그 자체인데 오늘은 뭔가 살짝 이상했다.

"이런 것까지 빡빡하게 구는 사람은 아니야. 담배는 중화로 해."

"여기 황학루라고 더 비싼 것도 있는데요?"

"그건 너무 비싸서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해. 중화가 선물로 제일 나아."

"술은요?"

"양주 말고 마오타이로 두 병."

"중국에서는 담배를 권하는 게 예의야. 우리나라에서 밥 먹었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담배를 권해."

"교수님도 피우세요?"

"중국에서 사람 만날 때는 가끔. 너무 권하기도 하고. 같이 얘기하다 보면 피우나 안 피우나 똑같아. 워낙에 이 사람들이 골초여서."

"한국에서는 안 피우셨잖아요."

"한국에선 안 피우지. 하지만 중국에서 담배가 없으면 사교가 안 돼. 중국에선 이게 문화야. 술과 담배. 기본이지."

*

인당 5천불까지 신고 없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금액이지만, 5만 불을 현금으로 들고 들어갔고 그림을 사겠다고 사용 목적까지 신고했다. 여기에 신용카드까지 들고 들어갔다.

점심때쯤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내린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목적지인 동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특급호텔이었다. 김 교수가 태호를 배려한 결과였다.

"나 혼자 왔으면, 그렇게 비싼데 머물지 않을 거야. 적어도 화장실은 편하게 가라고 그 호텔로 했지. 후후." 무엇이 재밌는지 김 교수는 혼자서 웃었다.

김 교수는 중국에 오자 갑자기 악동으로 변했다. 한국에서의 점잖고 젠틀한 면모는 어디에 팔았는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뇌까지 현지화를 진행했다.

호텔에 체크인을 진행하고 가볍게 옷을 갈아입은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동촌으로 향했다. 태호의 가방에는 물티슈, 수건, 생수, 화장지, 초콜릿 등 문화인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품들이 담겨 있었다. 거기다가 라이카 카메라와 열통이 넘는 필름, 두꺼운 스케치북과 연필과 지우개도 있었다.

태호는 올해 초 수백만 원을 들여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홈페이지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때였지만 태호는 명함 삼아 하나 만들었다. 여기에 실제 명함도 만들었다. 태호의 가방에는 이 명함도 백 통 이상 챙겨왔다.

권태호

權泰浩

Kwon Tae Ho

82) 1x-1234-5678

www.kwontaeho.com

[email protected]

*

택시는 동촌(东村, 둥천)으로 향했다.

동촌의 위치는 베이징의 동쪽에 있다는 의미보다는 당시 베이징의 미술의 중심지인 서촌에 반대편에 있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택시 안에서 김 교수는 태호에게 못다 한 에티켓 교육을 했다.

"보통 중국 사람들과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아. 천안문 사태 이후에 반체제 미술가들은 기세가 확 꺾였어.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지. 오늘 우리가 만날 예술가들이 그나마 꺾이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긴 한대. 그래도 네가 먼저 나서서 정치 얘기를 꺼내진 않는 게 좋을 거야."

잠시 후 김 교수는 갑자기 혼자 피식 웃었다. 태호는 김 교수가 갑자기 웃자 물어봤다.

"갑자기 왜 웃으세요?" 태호가 물었다.

"정치 얘기를 하니까, 아이웨아웨아씨가 생각이 나서. 아마 베이징에 사는 사람 중에 중국 공산당 정부를 강하게 비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마 그일 거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가능하면 외국에서 봐.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공산당 정부가 절대적으로 그를 좋아하지 않아."

택시는 베이징 자금성 기준으로 동쪽의 3환로와 4환로 사이에 있는 동촌이란 지역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마치 전쟁이 흩고 지나간 폐허 같은 곳이었다.

벽돌로 대충 지은 집에 슬래브 지붕을 얹었고, 문밖에 쌓인 생활 쓰레기 더미 사이에는 더러운 오수가 개울처럼 흘렀다.

한국으로 치면 재개발 예정 지역이지만 시행사와 주민 간의 법정 분쟁으로 수년째 방치된 곳도 이곳보다는 깨끗할 것으로 보였다.

태호의 굳은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 교수는 성큼성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태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로 다 떠났군."

김 교수는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 얼굴로 동촌을 둘러봤다.

"이 더러운 곳에서 나가 제대로 된 사람 사는 곳에서 지내라고 떠든 건 나지만 막상 다들 떠나고 나니 정말 아쉬운걸."

김 교수의 두 눈은 동촌의 마지막 모습을 담으려는 듯, 한곳 한곳을 세세히 살폈다.

"태호야, 너 사진 잘 찍지? 카메라도 들고 왔고?"

"네. 가져왔어요."

"우리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도 될까? 2년 전에 왔을 때는 얼마 찍지 못했어."

태호는 조그만 삼각대를 이용해 타이머를 맞추고 동촌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

그날 저녁.

자금성에서 멀리 않은 동쪽에 위치한 구이궁푸는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베이징 오리가 유명한 식당이었다. 여기보다 더 유명하고 시설도 좋은 식당들도 여럿 있었지만, 일부러 여길 예약한 김 교수였다. 두 사람이 구이궁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 명의 선객이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이야 김 선생. 잘 지내셨나?"

흡사 장비를 연상시키는 부리부리한 두 눈, 주먹코에 고집 있는 인상, 덥수룩한 수염에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아이웨아웨아는 김 교수를 보자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김 교수도 아이웨아웨아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부친상에 오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네. 다시 사과하지."

"괜찮아. 자네가 안 왔어도 아주 시끌벅적했어. 내 아버지는 나와는 다르게 진성 빨갱이 아닌가? 하하."

아이웨아웨아의 아버지는 초기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으로 프랑스 유학까지 갔다 온 공산당 1세대 인물이었다.

그는 태호를 보자 알아듣기 힘든 칭글리쉬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태호가 베이징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걸 알자 칭글리쉬는 집어 치우고 사투리 하나 없는 깔끔한 베이징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이웨아웨아 옆에는 장훼얀, 마리윙민, 청신, 룽룽이 있어서 김 교수는 태호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장훼얀은 행위 예술가. 가끔 사진도 찍고 조각도 하는데 그건 부업 같고. 내일도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하니까 같이 갈 거야. 내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지."

"마리윙민은 행위 예술가. 여장을 즐겨하지."

"청신은 화가로 시작해서 행위 예술가로 넘어온 친구. 난 이 친구의 짓밟는 얼굴이라는 사진 작품을 매우 좋아해."

"룽룽은 사진작가. 동촌에서 벌어지는 모든 기록을 룽룽이 남겼지."

"이쪽은 권태호. 한국에서는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가 된 적이 있는 화가이며 개인적으로는 나의 제자."

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권태호라고 합니다."

소개를 마치자 김 교수는 종업원을 불러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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