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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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호는 일주일에 한 번에서 두 번, 양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스튜디오에 이젤을 포함한 그림을 그릴 도구까지 챙겨 놨다.

캔버스에 양 작가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집중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정말 멋졌기 때문이다

"선생님. 사진 찍으려면 카메라부터 장만해야겠죠?"

"카메라 중요하지. 레이카 M6나 캐논 EOS-1을 추천해."

"뭐가 다른가요?"

"레이카 M6는 기계식 카메라야. 모든 걸 손으로 제어해야 하는 카메라지. 이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각이 넓어. 프레임 라인 내부와 외부가 구분되어서 프레임 밖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알기가 쉽고. 거기에 작고 조작하기 간단하고, 조용하고 가볍기도 하고.

단점은 EOS-1에 비해 느리고 더 잘 찍으려면 좀 숙달되어야 해. 초보자가 찍기에는 까다롭고.

캐논 EOS-1 은 레이카에 비교하면 정말 사용하기가 편해. 셔터 스피드도 빨라서 필름 한 통을 순식간에 써버릴 수 있지. 옵션 설정도 편하고. 레이카와 비교해서는 무겁지만. 재밌는 건 덩치도 작고 기계식인 레이카가 캐논보다 한 세배 비싸다는 거야."

"이유가 뭔가요?"

"태호는 스포츠카 알지? 오토매틱이 아닌 수동 기어가 달린 스포츠카. 차 안은 좁고 불편해. 그런데 이뻐. 또 사람들은 최고의 차라고 칭송하지. 그래서 거액을 주고 사. 그런 거야."

"캐논은요?"

"캐논도 일종의 스포츠카지. 혼다 NSX 정도 되나?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네."

"혼다 NSX가 뭔지 몰라요."

"혼다가 영혼까지 갈아 넣어 만든 스포츠카가 있어. 혼다가 어느 나라 브랜드인지는 알지?"

"일본이요."

"캐논도 같은 일본 브랜드네. 캐논 EOS는 써보면 사실 레이카보다 훨씬 편하고 작업하기도 좋아. 건전지를 6개나 쓰기 때문에 살짝 무겁기는 해. 하지만 실내서 작업하면 삼각대에 지지하고 찍기도 하니까 그렇게 부담되는 무게도 아니고."

"두 개 다 사서 써보면 안 될까요? 불편하지만 예쁜 스포츠카라는 게 더 끌리는데요?"

"하하. 그래. 나도 같은 이유로 레이커를 들고 다녀."

*

이태원에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방문하는 사람 수가 많지는 않았다. 덕분에 양 작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뭘 공부해야 할까요?" 태호가 물었다.

"조명. 조명을 완벽히 이해해야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어. 넌 회화를 하니까 명암에 대한 센스가 있을 거야. 사진을 찍을 때도 필요하지."

"사진작가에게 제일 필요한 게 이 명암에 대한 감각인가요?"

"조명과 명암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지. 내 생각에 작가에게 제일 필요한 건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능력이 제일 중요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한겨울 영하 10도에 바람도 많이 부는 야외에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게 가능한가요? 그림은 작가가 프레임 안의 세계에서는 신이니까 가능하지만, 사진은 그런 환경을 만들던 지 찾아야 하잖아요."

"대가들은 자신만의 표현법이 있어서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곤 해.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어린아이가 짓는 그 찰나의 표정을 대가들은 잡아내. 경험이고 능력이지. 끈기가 사진작가가 갖춰야 덕목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런 데에서 차이가 나니까 같은 장소에서 찍어도 사진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인 거야."

*

"태호는 사진을 왜 찍으려고 하는 거야?"

"전 사람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어떤 장면이든 사람이 들어가야 만족하고요. 사람이 없으면 뭔가 허전해요. 다시 안 보게 되더라고요. 사람을 그리려면 그 사람이 모델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긴 시간을 앉아 있으라고 하는 게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초안만 잡으면 찍은 사진을 놓고 채색하면 될 것 같아서요."

"결국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진을 배우겠다는 거네?"

"그렇죠."

"그림이든 사진이든 결국은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지. 커뮤니케이션의 툴이라고 할까? 본질은 그 도구를 이용해서 무엇을 하느냐이고. 태호가 표현하고 싶은 건 뭐야?"

"초상화는 사람의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배웠어요. 전 거기에 좀 더 다른 모습을 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남들이 보기엔 무척이나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자식들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아빠일 수 있잖아요. 그런 양면성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보는 관점에 따라 보는 사람이 다르게 느낄 수 있는."

"하나를 보여주기도 쉽지 않을 건데?"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도전할 가치는 충분하죠."

*

"우리가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 카메라는 찰칵 소리를 내며 일정량의 빛이 조리개를 통해 필름에 닿게 하지. 그러면 필름에서는 화학 반응을 일으켜 필름에 상을 남기지. 그렇기에 사진을 기계적 기록이라고만 생각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해. 그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한 수많은 장면 중에 특별히 선택된 장면이라는 거야. 즉, 사진을 찍은 사람의 해석이 들어간 특별한 시각의 결과물이라는 거지."

*

"카메라도 종류가 많잖아요. 라이카처럼 기계식도 있고, 캐논처럼 반자동으로 나온 것도 있고.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도 나오더라고요. 막 시작한 초기라 품질은 많이 떨어지지만요."

"장비는 특성이 다 달라서. 필요에 따라서 맞게만 쓰면 되지. 필요에 따라 필름 카메라도 쓸 수 있는 거고, 나중에는 디지털카메라를 쓰는 날이 올 수도 있고. 혹시 아니? 핸드폰에 달린 카메라가 좋아져서 카메라 회사들이 다 망할지도? 하지만 내 생각엔, 필름이던, 디지털이던, 폴라로이드던 각기 다 살아남을 거야. 쓰임새가 다르거든. 폴라로이드 사진도 다른 사진에 비해 퀄리티가 형편없긴 하지만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난 폴라로이드의 거친 필름 입자가 주는 그 독특함도 좋아해."

*

"선생님! 수단의 굶주리는 여자아이를 찍은 사진 아시죠? 퓰리처상 받은 그 사진이오."

"케빈 카터?"

"네. 그 사람 자살했다는데요?"

양 작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을 정리하다가 손을 잠시 놓았다.

"왜 자살했대?"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고 해요.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총격에 죽었고. 약물 중독에 경제적으로도 궁핍했다고요."

양 작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퓰리처상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안 되었나?"

"상금이 3천 불이었다는 데요?"

생각보다 매우 적은 금액이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줄은 몰랐군. 케빈 카터가 그 수단 여아 사진 때문에 무척이나 곤궁에 빠졌었다는 건 기사에서 봤는데."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구했어야 했다. 기자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개입 없이 보도해야 한다. 이런 윤리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문제로 교수님들과도 얘기 많이 했어요."

"네 생각은 어떤데?"

"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다고 봐요. 카터는 사진을 찍고 난 후 바로 독수리를 쫓아버렸다고 해요. 아이는 구호 센터에 보냈고요. 전 그 정도면 카터가 할 일은 다 했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봐요."

*

"패션 업계에는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꽤 있어. 피터 린드버그 (Peter Lindbergh, 44년생)과 파울로 로베르 시 (Paolo Roversi, 47년생)가 유명하고, 요즘 떠오르는 작가로는 스티븐 마이젤 (Steven Meisel, 54년생)이 있지. 기회가 되면 그 사람들 작업을 한번 봐봐. 참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양 작가는 패션업계에서 제일 유명한 3대 사진작가들을 태호에게 소개했다.

"나중에 태호가 패션 쪽과 협업할 일이 생기면 그쪽 유혹에 쉽게 빠지면 안 돼. 그쪽 세상은 정말 화려해. 돈, 미녀, 파티. 성공한 남자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집약된 곳이지. 즐기되 매몰되면 안 돼. 저 세계가 주는 마약 같은 즐거움에서 헤어나지 못 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기서 만나는 모델들은 옷걸이 정도로 생각해야 해. 네 옷을 입어주는 사람. 네 피사체가 되어 주는 사람. 그 정도로."

양 작가는 태호가 이쪽 세계에 필연적으로 발을 들일 수밖에 없을 거로 생각했다.

*

"유명해질 수 있는 제일 빠른 방법은 유명한 사람 옆에 있는 거야. 그게 아니면 방송을 많이 타던가. 네 그림은 몰라도 네 얼굴을 보면 화가라는 걸 알게 될 정도로. 기회가 되면 얼굴을 알려."

*

"선생님은 누드 사진을 많이 찍어보셨어요?"

태호는 물어보는 것도 쑥스러운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난 많이 찍어봤지. 사진 시작할 때 동네 여학생들 누드 사진은 다 찍어봤어."

태호는 잠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민하다가 질문을 이어갔다.

"누드라는 게 나체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거잖아요. 여학생들이 많이 부끄러워하지 않나요?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은 그렇게 많은 여학생들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요?"

"당연히 자신의 나체를 드러내는 건 수치심을 자극할 수 있는 행위라, 나체를 찍자고 하는 그 자체로 무례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어. 또한 나체 그 자체가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경우, 합의 없이 찍을 경우 범죄 행위야. 그래서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설득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이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건 99%는 돈이고 나머지는 기타 등등 무언가지."

"그러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동네 여학생들에게 돈을 뿌릴 정도로 부자는 아니셨잖아요."

"진심을 보여줬지. 내가 찍는 사진은 예술사진이지, 너의 나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다. 누드를 찍는 거라고."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누드는 특수한 목적성을 가지고 찍은 나체 사진을 말해. 예를 들어, 여자의 젖가슴이 나오게 찍은 사진만 놓고 보면 나체 사진이지만 그 옆에 갓난아이가 보인다면 모성애를 주제로 한 사진이 돼. 여성 몸의 굴곡이 첼로와 유사하다는 주제로 찍은 사진도 누드지, 그걸 나체 사진이라고 하지 않아."

"그럼 선생님이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예술 사진 찍게 옷 좀 벗어봐, 이러셨어요?"

태호는 비록 대담하게 물어보면서도 자꾸 볼이 빨개지는 걸 피할 수 없었다.

"난 누드 모델이 되어 달라고 솔직하게 얘기했어. 내가 무슨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지 구상도 얘기했고. 사진을 찍고 난 후 결과물은 모델이 되어준 여학생에게 직접 전달했지. 난 사본을 절대 보관하지 않았어. 이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정말 지켜줘야 해."

양 작가는 정말 쿨하게 어린 태호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누드 모델이 되어준 여학생들과는 그 뒤로도 잘 지내셨어요?"

"신뢰가 쌓인 친구들은 그 뒤로도 여러 번 도와줬어."

태호는 오늘 정말 큰 가르침을 받았다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정말 최고의 가르침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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