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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수와 허교수가 자신있어 하는 옷들이 경매에 올랐다. 아직은 이름값이 부족한지 50만원에서 100만원 사이로 거래가 되었다.
"80만원. 80만원. 100만 원. 100만 원. 100만 원 더 없으십니까? 오른쪽 뒤편에 패들 들어주신 분 감사합니다. 꽝! 1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의류 회사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복들은 인기가 적었다. 유찰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회사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체면을 구겼다.
한복을 포함한 의복이 모두 팔린 후, 태호의 유화 작품이 경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태호는 시작 가로 천만 원을 걸었는데 안 팔려도 괜찮다며 대담하게 설정한 금액이었다.
천만 원에서 시작한 거래는 50만 원단위로 올랐는데 거래는 오래 걸리지 않고 종료되었다. 세 명 정도의 미술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작품마다 팻말을 들고 내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미술관 직원이나 개인이 아무리 팻말을 들어도 아예 팻말을 들고 내리지 않는 모습에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마치 세 사람들은 태호의 작품을 다 싹쓸이라도 할 기세로 경매에 나온 그림을 사들였다.
그중 이 전체 패션쇼를 관통하는 주제가 담긴 연정아가 담긴 그림은 맨 마지막에 경매가 되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경매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팻말을 내리지 않고 들고 있어 오천만 원에 낙찰을 받아버리는진 풍경을 연출해 참석한 다른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태호 작품 전에 김 교수와 강 교수의 작품도 각각 2천만 원과 3천만 원에 낙찰돼 두 사람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다만 김 교수의 맥도날드 로고가 담긴 한복 작품은 사려는 사람이 없어 유찰될 듯 보였지만 태호가 팻말을 들어 천만 원에 낙찰받았다.
태호는 싸게 낙찰받았다고 희희낙락 했고 미술관 관계자들은 태호가 낙찰받아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작품을 놓친 것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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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불어온 혁신 - 한복 시스루를 입다"
의류 일보, 나전시 기자
xx 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 웨스턴 호텔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에서 파격적인 디자인의 한복이 소개되어 업계 관계자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 월드 백화점에서 주최한 이번 패션쇼는 한복에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해 시스루를 접목하고 로코코 양식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꽃무늬 패턴과 레이스가 돋보이는 한복을 탄생시켰다.
한복 콘셉트를 담은 유화를 패션쇼 오프닝 무대로 선보였는데 이는 이번 패션쇼의 핵심을 담은 그림으로 권태호 군 (14)이 제작한 여러 유화 중 하나이다.
"한복은 지금도 아름답지만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대였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이번 패션쇼를 처음 기획한 권태호 군은 재작년 조계사에서 전시된 성철 스님의 초상화를 제작한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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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 아동을 돕기 위한 자선 행사로 열렸으며 소개된 한복과 그림들은 모두 모금을 위해 경매에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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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움 미술관.
다움 미술관의 기획운영단 단장은 자선 경매가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아 김 관장에게 작품 매입과 관련된 보고를 했다. 옆에는 이번에 구매한 한복 관련 유화 시리즈 9편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 관장은 그림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호 군이 제작한 전시회 작품들은 총 15점입니다. 그중 경매를 통해 9점을 입수했습니다. 남은 6점 중 3점은 모델이 직접 구매해 갔고, 3점은 태호 군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3점 모두 모델들이 추후 구매를 하겠다고 가 계약한 작품입니다." 단장이 설명했다.
"3점은 모델 통해서 구매하면 되고, 3점은 모델과 태호 다 설득해서 구매해야 되겠군요." 김 관장이 말했다.
"바로 진행할까요?"
"그래 주세요."
"혹시 어느 정도 선까지 생각하시는지요?"
"각 작품 당 오천까지 진행해도 됩니다."
금액에 살짝 놀라는 단장.
"태호 군의 중요 작품은 저희가 다 구매했습니다만. 중요하지 않은 작품까지 추가로 구매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호호. 있죠. 단장님도 짐작하시다시피 난 태호 군의 작품이 좋습니다. 사랑한다는 쪽에 더 가까워요." 김 관장의 눈빛은 결혼 뒤 첫사랑을 깨달은 여인의 것이었다.
"제일 맘에 드는 부분은 절대 자기 복제를 안 한다는 점이에요. 같은 작품을 제작하지 않아요."
"아직 어려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단장은 반론을 제기했다.
"아니요. 지겨운 걸 못 참아 하는 성격이에요. 아마, 태호 군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지 않는 이상 돈을 벌기 위해 같은 작품을 다시 제작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경제적으로 곤란함에 빠질 듯하면 옆에서 내가 도와주면 그만이에요.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죠."
김 관장의 눈빛은 흡사 일 잘하는 마름을 바라보는 주인마님으로 변했다.
단장은 조울증이 의심되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소 부족한 작품이라도 타 미술관이나 컬렉터와의 거래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태호가 대성한다면 말이죠. 그래서 모으는 거예요. 보물인 줄 뻔히 아는데 왜 남들이 가지게 합니까? 내가 차지하지."
잔잔한 웃음을 띠며 그림을 보던 김 관장은 단장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다. 관장실을 떠나려는 단장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번 패션쇼 기사도 잘 나왔어요. 앞으로 태호 군 관련 기사가 있으면 한 번 더 신경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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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차갑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만들어지기에.
사진은 기억한다. 모든 이의 머릿속에서 잊히더라도.
사진은 기다린다. 만들어진 순간을 찾는 이들을 위해서.
사진은 말한다. 수 천 개의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차디차게 만들어진 잊히지 않는 기억.
언제 꺼내어 보더라도 찍는 그 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영원함.
태호가 아는 사진이다.
양중만 작가의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사진에 감정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사진은 차갑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우연히 만들어진 걸작 같은 사진들은 사진을 배울 필요성을 제공했다.
태호가 처음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얘기하자 순순히 허락했던 영준과 숙영은 아들을 가르칠 사람이 양 작가라는 얘기를 듣자 반대로 급 선회했다.
부부는 얼마 전 방송으로 양 작가를 처음 접했다. 그 개성이 넘치다 못해 똘끼로 무장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양 작가가 태호의 패션쇼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것에 놀랐고 한편으로 뿌듯했다. 방송에서 인정하는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마치 아들이 인정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으로 아들을 맡기기엔, 그날 방송에서 본 양 작가는 태호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문신과 피어싱은 차치하고 방송에서의 그의 발언은 바른 생활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여자를 만나려고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같이 잔 여자친구 수는 세어보지 않았다."
"여자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난 한때 양성애자라고 느낀 적이 있었다."
"폭력 혐의 기소? 난 폭력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다. 싸움을 말리다가 그렇게 되었을 뿐."
그중에 백미는 향정신성 의약품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이력이다.
"사진작가 양중만 씨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 그 후 무혐의로 풀려나."
부부는 비록 작년 일이고 무혐의로 풀려났다 고는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의심했다.
두 사람은 아들에게 자신이 걱정하는 바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아들의 대답은 기대를 어긋났다.
"그게 내가 사진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평생 마약은 물론 담배도 안 할 거예요."
"그 아저씨 되게 순해요. 폭력은 커녕 지나가는 개미도 함부로 죽일 사람이 아니에요."
유유상종, 초록동색, 근묵자흑이라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태호는 듣지를 않았다.
고집덩어리 아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려던 부부는 태호의 한마디에 고심을 하다 승낙을 했다.
"아들을 그렇게 못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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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작가는 지난번 촬영했던 경리단 길이 맘에 들었는지 근처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태호는 마을버스 한 번으로 올 수 있어서 좋았다.
"태호 군이 부탁해서 받아들이긴 했는데, 사실 난 누굴 가르쳐본 적이 없어. 어떤 체계적인 지도는 힘들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물론이죠. 작업하시는 걸 옆에서 지켜만 볼게요. 가끔 설명만 해주시면 돼요. 아, 그리고 말 놓으세요. 이제 편하게 대해야 되는데 태호 군이라 하시니 불편해요."
"좋아, 그럴게."
"사진을 배우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 사진과 그림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거의 완전히 다른 세계로 접근하는 게 맞아. 네가 아는 그림에 대한 지식이 오히려 네 사진을 방해할게 거의 확실해. 단지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나 말고도 널 가르쳐 줄 사람은 많아. 내가 널 가르쳐주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래. 난 그렇게 가르치는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널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 못하는 사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제가 보고 들어서 판단하고 싶어요. 사진을 배운다고 제 회화에 대한 세계가 영향을 얼마나 받을지 잘 모르겠어요. 크게 바뀔 거 같진 않거든요. 만약 흔들린다면 그거대로 만족스러울 거 같아요."
"오케이." 양 작가는 태호의 대답이 맘에 들었다.
"보통 매번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시나요?"
"필요하면 나가는데, 요즘은 음반 앨범 촬영이 많아서 주로 스튜디오에서 해."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심부름도 하고 전화도 받고. 그러면 되죠."
"미성년자 고용인데?"
"교육비인 셈 치면 안 될까요?"
양 작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루 종일 일해도 교육비 커버 안 된다."
"나중에 그림 한 점 선물할게요."
"겨우 한 점?"
"어... 음... 선생님도 저 찍으세요." 해맑게 웃는 태호.
태호의 귀여운 척에 양 작가는 픽 웃었다.
"그림 잘 그려야 한다."
"물론이죠."
"저, 선생님.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저 카메라 배우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수락하셨잖아요."
"그랬지."
"이유가 궁금해요."
"나도 잘난 제자 하나 두고 싶어서." 살짝 웃는 양 작가.
"너 지금 김 교수와 강 교수, 두 분에게 배우고 있다며? 나까지 합치면 셋이고?"
"네."
"태호의 스승으로 알려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다른 이유로는... 난 사진을 전공하기 전에 회화 전공이었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진이 더 재미있었기에 중간에 사진으로 옮겨왔지만, 아직 회화에 대한 약간의 미련은 있거든. 네 그림을 보니까 너의 새로운 그림들을 더 보고 싶어졌어. 네 주위에 있으면 그럴 날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네가 찍을 사진이 궁금하기도 하고. 거기에다, 네 주위에 있으면 뭔가 재밌는 일이 끊임없이 생겨날 거 같아. 넌 여기저기 일을 만들 녀석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