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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7 (부제 피날레) (31/181)

///// 패션쇼7 (부제 피날레)

그렇게 시간은 흘러 10월 초가 바싹 다가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 만을 동원해 옷을 제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수들은 동대문에서 잔뼈가 굵은 재봉사들을 임시로 고용해 옷 제작을 맡겼다.

교수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이 수십 년 경력의 재봉사의 손놀림은 신기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수들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패션쇼 준비가 훨씬 수월했다.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했지만 지금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재봉사들을 추가 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달을 남기고서는 마지막 완성을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 해야 했다.

10월 중순 어느 화요일. 아침부터 조선 웨스턴 그랜드볼룸에서는 쇼 무대를 위한 U자 모양의 런웨이부터 의자 배치까지 무대 설치로 정신이 없었다.

강 교수도 이 무대를 위해 제작한 작품을 설치했다. 3미터 크기의 달이 런웨이 시작에 설치되어 있었고, 천정에는 검은색 풍선에 형광물질로 표시된 별자리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조금 무대를 어둡게 하고 조명을 조절하면 밤하늘을 런웨이 무대에 옮겨놓은 듯한 연출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모델들은 제작이 거의 끝난 옷들을 입고 런웨이를 돌고 있었다.

태호와 네 교수, 그리고 각 기업에서 나온 수석 디자이너들이 의상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미 사전 미팅을 통해 무대 진행에 대한 것은 모두 논의가 된 사항이지만 실제 의상이 나왔을 때 생각했던 흐름으로 무대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건 전날 수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너도보이의 수석 디자이너 김형권과 시스팀의 수석 디자이너 안민준은 런웨이 무대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사전 준비 기간이 길었던 덕분인지 준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어."

"이 무대 자체가 그냥 예술이야. 이렇게 수준 높은 패션쇼는 국내 처음인 거 같아."

"이처럼 주제의식이나 이야기가 확실한 무대도 처음인 거 같고."

"난 처음에는 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었거든. 너무 과하면 패션쇼 특유의 자유로움이 없어지니까. 오늘 보니 그 정도까지 아니네. 잘 정돈되고 스토리도 확실하고. 앞으로 한국에서 시스루가 유행이 된다면 이번 패션쇼가 기원이라고 얘기할 거야. 한복은 거의 역사를 새로 쓰는 수준이고."

"한복이 이쁘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저렇게 제작을 할 생각은 못 해봤는데. 천재는 천재라는 건가? 저 어린 나이에 추진력이 어마어마해."

"나중에 가서 인사라도 해야겠어. 혹시 알아? 나도 저 태호라는 천재로부터 뭔가 얻어먹을게 있을지?"

"너 같은 사람 주위에 널려있다. 이번 무대 끝나고 봐봐. 난리도 아닐 거다."

패션쇼 사전 무대에는 양중만 작가도 사진 찍기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조명 등을 조율하고 있었다. 태호는 다가가 인사를 한 후 양 작가가 좀 한가해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 말을 건넸다.

"선생님. 혹시 평소에는 어떤 일을 하세요?"

"그때 그때 다르지만 모델 찍는 일을 제일 많이 해요."

"이번 무대 끝나고 바쁘세요?"

"태호 학생 덕분에 일거리가 늘어서 바빠요." 웃으며 말하는 양 작가.

"혹시 작가님에게 사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사진을? 태호 학생이 뭐 하러? 회화로 충분히 성공하고도 남을 거 같은데."

"이번에 선생님이 찍은 사진을 놓고 작업을 하니까 정말 편하더라고요.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여러 사진이 있었으면 조금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었을 거 같더라고요."

"사진 더 보내 달라고 하지 그랬어? 공짜로 보내줬을 텐데."

"에이. 민폐죠. 바쁘신 줄 뻔히 아는데."

"고마워. 하지만 다음에는 보내 달라고 해요. 그 정도는 내 태호 군을 위해 해줄 수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사진은 배우고 싶어요. 선생님 없을 때도 작업은 해야 되니까요."

"그래요. 태호 학생은 그러면 사진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선생님이 알려주시면 그것부터 공부해 보려고요. 사진을 공부할 생각을 못했어요."

양 작가는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태호가 아직 매우 어리다는 걸 깨달았다.

"참, 그렇지. 내 태호 군 나이를 항상 헷갈려 해. 이제 막 14살밖에 안 되었는데. 하하. 나도 대학 가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거니까 태호 학생이 빠른 거지. 알았어요. 오늘은 바쁘니까 쇼 끝나고 연락 줘요.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알려줄 테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

화창한 10월 초순 하늘은 솜뭉치 같은 흰색 구름만 들어간 파란색 수채화 같았다.

패션쇼는 3시부터 시작이기에 2시 정도부터 행사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도착을 했다.

당연히 초대장이 있는 사람들만 참석이 가능했다.

자리 배치는 사전에 이미 조율이 되어 있었는데, 사실 백화점 측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었다.

태호와 두 교수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행사가 되어 버렸다. 국내 대기업과 대학의 실력 있는 교수와 수석 디자이너들까지 참석을 한데다 목적이 자선행사가 되다 보니 실제 자선행사에 도움을 줄 백화점 VVIP에 대한 배려도 우선시 되어야 했다.

거기에 패션 계통 종사자들과, 예를 들어 잡지사 에디터와 신문사 기자 그리고 모델 에이전트까지, 그밖에 다른 이해관계자들까지 참석을 하다 보니 누가 앞자리에 앉아야 할지를 놓고 체면 문제까지 얽혀 버렸다.

의외로 백화점은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백화점은 순수하게 자선 경매 행사 참여를 기준으로만 자리 배정을 했다.

다른 말로 돈 쓸 사람을 기준으로 자리 배정을 했다. 앞자리는 VVIP와 기부를 약속한 업체 관계들. 그다음은 기자들과 편집장들과 의류업 종사자들. 그리고 그 뒤에 태호 부모님 같은 행사와 관련된 가족들과 친구들이 앉게 되었다.

쇼는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남짓 진행이 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3시가 다가오자 안내방송이 나와 무대를 정돈했다.

3시 5분이 되자 홀 내부가 어두워지더니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서 무대 벽 쪽에 설치된 달이 돌면서 환한 달빛을 반사했고 풍선에 표시된 별빛들도 달빛과 같이 내부를 환하게 비춰 마치 홀 전체가 우주에 와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씩 조명이 밝게 변하면서 퓨전 가야금 연주가 깔렸다. 태호가 이번 무대의 아이콘으로 잡은 연정아가 한복을 입은 모습이 담긴 그림을 남자 모델이 들고 서 있었다.

음악이 바뀌면서 그림을 든 모델이 런웨이를 한 바퀴 돌고 들어가자 조명이 바뀌고 한복을 입은 모델과 그 뒤로 이 한복을 콘셉트로 디자인된 이브닝드레스를 비롯한 정장과 코트, 재킷 등 다양한 의상이 선보였다.

총 15개의 콘셉트 일러스트로 시작된 무대였기에 한 작품당 최소 5개에서 많게는 9개 정도의 옷이 선보였다.

작품 콘셉트 5개가 지나가고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클래식 음악이 깔렸다. 그리고 김 교수의 한복이 선보였는데 하나는 수묵 풍경화였고 그다음은 인물화였다.

마지막 작품은 치마에 거대한 맥도날드 로고를 담았다. 무대 이후 평소 그 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는 했지만, 실험성 강한 이 작품으로 김창기 교수를 동양미술의 확고한 리더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

한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렀다. 가야금 독주 뒤에 오케스트라가 실렸다. 음이 엄청나게 풍부해지면서도 가야금의 그 특유의 맛은 잘 살렸다.

경쾌한 음악에 맞춘 캣워크 그리고 다양한 콘셉트에 맞춘 의상들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지루할 틈이 없게 하라는 명제는 지켜졌다. 대성공이었다.

*

백화점 VVIP뿐만 아니라 태호와 교수들도 성공적인 무대에 한껏 업 되어 있었다.

"정말로 놀라운 무대였어요. 한복으로 보여준 무대 중 최고였을 뿐만 아니라 올해 본 최고의 쇼입니다."

"저 옷을 입고 밖에 다닐 수는 없겠지만 어디 거실 같은 데에 걸어 두고 감상하고 싶어지네요."

"한복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큰 비전을 제시한 무대에요. 한복을 순수 예술로 승화 시켰어요."

"파격, 파격, 그리고 파격! 기존 한복에서 찾을 수 있었던 단조로운 단색의 배치나 자수 등으로 표현되었던 전통문양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미술의 최근 트렌드가 많이 반영된 옷들만이 있을 뿐!"

"내가 아는 어느 패션쇼와는 달랐다. 이런 무대가 한국에서 연출되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무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볼거리가 없었다거나 따분했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VVIP 들은 오래간만에 즐긴 환상적인 문화생활에 큰 만족감을 얼굴에 드러내며 곧 이어질 자선 경매 행사를 위해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고, 기자와 편집장들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이 고급스러운 행사를 어떻게 문장으로 옮길지 고민하고 있었다.

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들은 올해 특별 보너스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에 흥분해 있었다.

각 의류업체 디자이너들은 오늘 나온 의상 콘셉트들을 다음 상품에 어떻게 녹여야 되는지 고민했다.

얼마 후 등장한 짙은 푸른색에 얕은 하얀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정장을 입은 경매사는 다시 한번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 고객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경매를 개시했다.

"오늘 자선 경매 행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이 자리를 빛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김성범이며 오늘 경매를 진행할 경매사입니다. 오늘 경매에 나온 물품들은 여러분들이 방금 보셨던 패션쇼에서 감상하셨던 작품들입니다. 패션쇼에 나온 모든 물품들이 이 자리에서 팔릴 예정이며 별도의 전화 입찰은 없을 것입니다. 자선 경매 행사이나 경매와 관련된 모든 행위들은 관련 법률에 적용을 받는다는 점 꼭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물품의 진위 여부는 이 자선 경매를 주최한 뉴 월드 백화점에서 보증할 예정이며 제품의 배송 역시 백화점에서 책임질 것입니다. 경매에서 낙찰된 물품에 대한 결제는 세금이 포함될 예정이며 경매가 끝난 즉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점 참고하시어 경매에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 경매사 옆에는 쇼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한복이 마네킹에 있었고, 그 뒤에는 패션쇼 당시 촬영 되었던 사진과 동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오늘 경매는 한복을 먼저 진행한 후 유화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겠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이번 쇼에서 가장 화려한 한복으로 눈길을 끌었던 권태호 작가의 작품입니다. 최초가 10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10만 원, 110만 원. 120. 120. 200만 원. 200. 250만 원. 300만 원! 300만 원 나왔습니다. 350. 350. 350만 원까지 나왔습니다. 400만 원 없으십니까? 호가 후 마무리하겠습니다. 400. 400. 400. 꽝! 4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백화점에서 섭외한 경매사는 마치 한국어로 하는 경매가 처음인 듯 약간은 부자연스러워 보였지만, 곧 여기가 뉴욕 크리스티나 소더비의 경매장 같은 느낌을 주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경매를 이끌어갔다.

그 뒤로 시그니처 의상들이 경매에 올랐다. 태호의 작품들이었는데 주로 백만원에서 오백만 사이로 거래가 되었다. 한복이 그리 인기가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빠르게 낙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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