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쇼6 (부제 모델선정)
"혹시 판매를 한다고 하면 가격은 어떻게 될까요?"
"그쪽으로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자선행사로 기부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한복은 3백만 원 이상, 사진은 50만 원 이상, 그림은... 모르겠군요. 오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만약 딸아이가 저 한복을 입은 그림이있다면 저는 그것보다도 더 불렀을 겁니다."
"상당히 높게 부르시네요."
"저 작품들을 보고 구매할 사람들이 이 나라 최고의 부자들을 불러 놓은 자리라면 불가능한 금액도 아니에요. 백화점에서도 제가 말한 금액들보다는 더 비싸게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경제력이야 되시는 분들이지만 저 작품들에게 얼마만큼의 가치를 두시냐가 문제 아닐까요?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10원 한 장도 아끼시는 분들이니까요."
"부장님 애쓰시는 것 이상의 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도 저 작품들에 대해 그 정도는 부르라고 내부에 설득을 해보죠."
"감사합니다 이사님."
"그건 그렇고 아까 발표하던 그 어린 친구는 누굽니까?"
"태호라고 작년에 성철 스님 입적하셨을 때 조계사에서 스님 초상화와 탱화가 전시된 적이있는데 100만 명이 보고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고 방송에도 몇 번이나 소개되었습니다. 그 그림을 그린 작가입니다."
"작가입니까? 벌써요?"
믿어지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다.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그림들이 억대로 팔린다는 얘기가 돌긴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하군요. 중학생 정도로 보이던데."
"학교도 안 다닌다고 하더군요. 초등학교도 검정고시로 패스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뉘 집 자식인지 부럽기 그지없군요. 음... 그렇다면 그림 값은 더 올라갈 수도 있겠어요. 저 정도라면 천재라고 불러도 틀림이 없을 테고. 저런 천재의 어릴 적 작품입니다. 나중에 큰 작가가 된다면, 지금 자선 무대에서 팔리는 그림들은 나중에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일 작품들이 될 겁니다. 이거 여윳돈이 있나 확인해서 하나라도 구매해 놔야겠군요."
"그렇게 확신하시나요?"
"나중에 유명해만 진다면, 저 친구 미래에 대한 확신만 선다면 이만한 재테크 수단이 없어요. 천만 원짜리 그림이 수십억으로 바뀔 수도 있지요. 물론 시간은 걸릴 수 있겠지만요."
"안목 높으신 이사님이 그 정도로 평가하신다니 저도 없는 돈이라도 모아 하나 구매해야겠군요."
"하하. 부장님도 잘 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 있으면 하나 잡아 두세요. 웬만한 주식보다 낫습니다."
*
태호와 두 대학교수가 제작하는 의류 약 60점, 추가로 제작할 작품 40점에 대해 누가 제작할지는 백화점에서 결정을 하기로 했다. 이는 명백히 이권이었기에 백화점에서는 계약 시점부터 요구했던 권리이기도 했다.
많은 업체가 참가할 거라 예상했지만 이는 틀렸다. 짧은 시간에 대기업 위주로 빠르게 정리가 되어 버렸다. 힘과 돈의 논리로 정리가 되었겠지만 뭉그적 거리고 생색내기만 할 줄 알았던 회사들이 달려들자 규모가 작은 업체는 바로 포기, 간단히 4개 업체로 정리됐다.
'조우너스'와 '꿈보니아'. '너도보이'. '시스팀'.
모두 다 국내 토종업체였다.
*
패션쇼에 올릴 모델을 찾는 방법으로는 패션모델 에이전시를 통하는 것일 일반적이다. 현재 모델 라임과 모델 센트럴이 가장 큰 에이전시이며 연예계로 통하는 등용문 같은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태호가 찾는 모델의 기준은 약간은 복잡했다. 세련된 워킹이나 개성적인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캔버스 내에서 빛나는 모델을 찾고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최고가 될 가능성을 지닌 모델이어야 했다.
태호 자신이 최고의 작품을 제작할 것이기에 모델도 최고이길 원했다.
연정아는 비록 신인이었지만 이런 조건을 충족했기에 이런 모델을 다시 찾고 싶어 했다.
문제는 연정아 때와 마찬가지로 기획사 측은 CF에 준하는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태호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에 바로 신인 배우나 가수 등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랬더니 태호 자신이 신인 배우나 가수를 잘 알지 못해 누구를 어떻게 연락할지 난감했다.
자신이 알아보고 연락해도 변성기도 안 지난 이 앳된 목소리로는 협상이 불가능했다.
강 교수도 작업으로 바쁘기도 하거니와 이런 잡일까지 해주긴 애매했고, 윤 교수도 이제 바빠지기 시작했다.
알바를 알아봤지만 학교 내에 공고를 낸 후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결국은 발해 대 김예랑에게 연락했다.
강 교수가 예랑을 추천했는데 평소에 똑 부러지는 그가 이런 일에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
태호가 필요한 일들을 쭉 설명을 하자 한참을 듣더니 예랑은 무슨 일인지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협상을 시도했다.
"그래서 시급이 얼만데?"
"시간당 이천 원."
지금 시급이 1100원이 안 되는 시기라 태호는 나름 크게 부른 금액이었다.
"겨우? 천하의 태호가?"
"내가 뭐?"
"너 갑부잖아."
"하아... 이천오백 원."
"쓰는 김에 팍팍 쓰지?"
"이천육백"
"이천구백"
"이천칠백. 끝. 더 이상 네고 없어."
"콜!"
예랑은 만족한 표정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신입 배우나 가수 중에 한복 모델에 적합한 사람에게 연락해서 너 대신 협상해달라는 거지? 이거 더 불렀어도 되는 일이었네. 모델은 누구?"
태호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을 뒤져 뽑은 연예인 리스트를 예랑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어쩌라고."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인터뷰하고 작업해야 돼."
"태호야.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누나가 가서 찾아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나한테 물어보면 안 되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누나 고용하는 건데."
"하... 전에 연정아는 어떻게 섭외했어?"
"윤 교수님이 소개해 줬는데?"
"윤 교수님은 어떻게 알았데?"
"그게 인맥이지 않을까?"
"그 인맥 없는 나에게 이 사람들을 어떻게 찾으라고 물어보는 거니?"
"누나가 윤 교수님에게 가서 물어보고 찾으면 되지 않을까?"
"너 정말 아무 생각이 없구나?"
"그래서 누나를 고용했지. 강 교수님이 추천했어. 이런 일 정말 잘 할 거라고. 부지런하고 똑똑해서."
"교수님이 그랬어?"
"어."
한숨을 쉬더니, "해볼 테니까 일단 활동비부터 내놔"라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게 왜 필요해?"
"찾아다녀야 될 거 아니야! 교통비, 식사비, 커피값! 아니면 니가 그 사람들 전화번호를 주던가!"
"알았어. 통장번호 불러줘. 텔레뱅킹 할게."
"많이 쏴라!"
그날 저녁 태호는 백만 원을 계좌로 쐈고, 예랑은 갑부 집 손자의 통 큼에 놀랐다.
일주일 후부터 태호는 한 명씩 인터뷰를 볼 수 있었고 옆에 예랑을 앉혀 놓고 협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 태호를 보고 중학생이 장난을 치는 것으로 여겨 바로 자리를 뜨려고 하거나 회의 자체를 거부하려 했다.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아진 태호는 이력이 포함된 패션쇼에 대한 개요가 담긴 문서까지 만들어 준비해야 했다.
대화의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 놓은 한복과 사진 그리고 그림까지 발해 대 회의실에 가져다 놓고서야 제대로 된 협상이 진행되었다.
태호가 취한 전략은 두 가지였는데 한복 모델로 적합하고 비용도 저렴할 경우는 그냥 돈을 지불했고, 한복 모델로 적합하지만 인지도가 높거나 하는 이유로 비용이 비싼 경우는 협상을 시도했는데 제작한 그림을 모델에게 재 판매한다는 조건이었다.
태호 그림을 맘에 들어 하는 경우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협상이 여기까지는 갔다.
태호는 그림값을 매우 비싸게 불렀고 당연히 한복 모델이 되어주는 비용을 크게 상회했다.
태호는 다성에 판 그림 값 즉 호당 가격을 기준으로 작품 값을 정당화시켰다.
언론 기사 내용을 발취한 것까지 들이밀며 자신의 그림 값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이 조건을 접한 모델 중 몇몇은 특이한 조건을 걸었는데 '지금 당장 그만한 돈은 없지만 나중에 시장가로 되사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태호는 이 경우에는 나중에 자선 경매 때 판매할 그림 대상에서 제외하고 추후 그림에 대한 판매 대상에 최우선권이 한복 모델에게 있다는 계약서를 남겼다.
가격은 태호가 정하거나, 최근 1년간 태호가 판매하는 그림의 호당 가격의 평균가로 책정이 되었고, 계약서에 담겨 공증까지 받았다.
한복 모델이 되는 비용은 당연히 정말 신인이 받는 비용으로 깎은 가격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낚인 모델들이 연정아까지 총 15명이었고 인물들은 다음과 같았다.
정도연, 박희선, 임소라, 전진영, 강남주, 방지윤, 엄상아, 홍수정, 정상아, 최정안, 하고은, 염민영, 노정화, 전서희.
김예랑은 정말 부지런했는데 방송에 얼굴을 비친 여배우나 가수는 거의 다 훑었고, 작품이 소개될 패션쇼를 마치 더 큰물에 놀기 위한 발판이 될 큰 무대인 것 마냥 약을 쳤다.
태호는 이게 돈의 힘인지, 예랑의 순수 능력인지, 아니면 돈이 이끌어낸 예랑의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비서로 쓰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랑에게 돈을 주저하지 않고 쓰기 했지만 그가 이렇게 일해주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돈을 더 썼을 것이다.
예랑의 도움으로 모델 문제까지 해결한 태호는 본격적으로 한복을 제작하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제작했다.
태호가 그림 제작을 위한 모델을 구하듯 패션쇼 당일에 런웨이에 설 모델들도 구해야 했다.
SS 시즌이 끝난 이후 진행할 패션쇼라 모델 수급에는 별지장이 없겠지만 이쪽은 항상 선점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한 개 회사에서 다 진행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개 회사가 같이 일을 진행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더욱 중요했고 백화점에서 과장급 전담직원이 나와 이 모든 일정을 조율했다.
국내 소매시장의 정점에 서 있는 백화점에서 일을 추진하고 국내에 한해서지만 거대 의류 기업들의 이름이 쇼에 참여할 것으로 거론되자,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모델 에이전트들이 참여를 타진했다.
백화점에서는 자선 행사라는 점을 들어 모델 인당 페이를 오픈해 버렸다. 페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탑 모델들이 참여할 만한 페이는 아니었기에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신인 위주의 모델들이 지원을 했고 그들 중 인터뷰를 통해 최종 선발을 했다.
조건은 쇼 전날 리허셜 참석과 당일 패션쇼 참석 두 번이었고, 인터뷰 당일에 사진 등을 찍고 필요한 치수 등은 기록해 놔 의상 작업에 도움이 되게 했다.
이렇게 해서 25명 정도의 모델을 선발했다. 한 명의 모델이 2벌에서 3벌의 옷을 입는 것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의류회사들은 개별적으로 모델을 선발했다.
모델 선발 과정에서 패션쇼에 경험이 많은 에이전시 대표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니 태호와 교수들은 패션쇼 무대 자체에 대해 간과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듣고 보니 매우 큰 문제였다.
작품까지 설치하는 마당에 음악과 조명 모델 동선 등 이 무대를 총괄할 예술 감독이 없다는 것에 에이전시 대표들이 큰 우려를 표했고, 즉시 감독을 섭외해 관련 업무를 맡길 것을 제안했다.
사실 처음부터 무대의 큰 틀에 대한 논의가 먼저 진행되어야 했는데 모델 오디션부터 보았으니 앞뒤가 바뀐 것이다. 예술 감독을 선임하는 일이 모델을 뽑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교수들은 부랴부랴 이런 패션 이벤트 기획에 잔뼈가 굵은 기획사를 섭외해 일을 맡겼다. 태호의 의견으로 몇 가지 무대 콘셉트를 잡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패션쇼의 명제는 단 하나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지루할 틈이 없게 하는 것. 음악과 조명을 어떻게 쓰든 간에 한 시간 내내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