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션쇼5 (부제 업체선정) (29/181)

///// 패션쇼5 (부제 업체선정)

사진은 윤 교수를 통해 강 교수에게 전달되었다.

태호는 사진에 푹 빠져 한동안 정신없이 쳐다봤다.

"니가 사진을 선택하면 아마 중만 씨가 확대해서 줄 거야."

"사진이 너무나 괜찮아서 그림 대신 걸어도 되겠는데요?"

"그분 사진이 정말 좋긴 해. 태호 네 사진도 좋아. 정말 잘 나왔다."

"저도 놀랄 정도로 잘 나왔네요. 어떻게 찍으면 그렇게 나오는지 놀랄 정도로요."

"그게 사진작가의 노하우겠지. 뭐 고를 거야?"

"이걸로 하죠." 태호는 연정아 얼굴 중 약간은 딱딱한 혹은 근엄한 표정의 사진을 골라 윤 교수에게 건넸다. 한복 기준에서는 노출이 있는 옷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세련되면서도 섹시하고 또 밝은 옷에, 단호한 듯한 표정의 연정아 얼굴이 들어가니 사진이 훨씬 더 근사해 보였다.

"사진 퀄리티가 유지되는 선에서 제일 크게 현상하면 얼마나 크게 가능할까요?"

"크기는 제한 없을 거야. 다만 그럴 필요가 있냐는 건데. 얼마나 크게 하고 싶은데?"

"거의 그림 사이즈로 해보고 싶으니까... 가로세로 1.2미터 정도요."

"그렇게나 크게?"

"네. 그리고 이 사진도요." 태호는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살짝 잡은 사진을 선택했다.

"네 사진이네?"

"액자 걸어서 집에 두고 싶어서요."

"그렇게 크게? 너 나르시시즘이 이렇게 심했어?"

크게 현상해서 집에 걸어두고 싶다는 말에 강 교수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사진이 뭔가 계속 날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방에 걸어두려고요."

태호는 그 외에도 몇 장의 사진을 골라 챙겼다.

"아, 중만 씨가 네 그림 보더니 자기가 이런 실력이 있었으면 '사진 안 했을 거 같다'더라. 극찬을 했어."

"제 그림을 보셨어요?"

"어. 그분이 네 사진을 내놓길래 보여줬지. 나중에 꼭 하나 샀으면 하셔."

"이런 좋은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저도 하나 드려야죠."

"그래 알았다. 내 그리 전해줄게."

태호는 엄마를 통해 관련 비용을 다 양중만 작가에게 송금했고 나중에 확대한 사진을 받았다. 적정한 가격을 몰라 업계를 수소문해서 들은 최고액을 보냈다.

바로 화방에 가서 자기 사진은 고급 액자에, 연정아 사진을 걸 튼튼하기만 한 액자를 제작해 달라고 맡겼다. 물론 거기서 캔버스도 주문했다. 후에 액자를 받아온 태호는 학원에서 작업을 했다. 큰 사진을 걸고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건 무슨 사진이니?" 원장은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양중만 작가님 작품인데, 액자 속 인물은 연정아 씨고 옷은 얼마 전에 디자인하고 제작한 한복이에요. 이거 기반으로 그림 그리려고요."

"연정아라면... 탤런트야?"

"네"

"양중만 씨야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작가시니 이런 작품이 나온 것도 이해가 되네. 연정아는 첨 듣는데?"

"신인 배우라고 하던데 예뻐요. 성격도 털털하고. 까탈스러운 연예인들 많다던데 이 누나는 편하더라고요."

원장은 첨들어보는 연예인보다 태호의 사진에 더 관심이 갔다.

"한복은 누가 디자인 한 거니? 너지? 우와. 이쁘다. 이게 좀 야하긴 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경박하다는 느낌이 전혀 없어. 고급스러운 이브닝드레스 느낌이 나는걸? 모델 표정이 딱딱하지만 당당한데? 괜찮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을 정말 잘 하더라고요. 한복도 잘 나왔고. 기능대회 수상하신 분인데 옷이 까다로운데도 불구하고 잘 뽑았어요."

태호는 슬슬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림은 이미 예상보다 제작 날짜가 늦어졌다. 한복 제작도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인데 그래서 태호는 하루빨리 완성해서 작품을 윤 교수에게 보내야 되는 입장이었다. 빨리 완성한 후 사진 찍고 다시 수정 작업을 하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을 하기로 했다.

그림은 불과 삼 일 만에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태호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림을 포장해서 보냈고 얼마 뒤 다시 받아와 재작업 같은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

윤 교수는 유대, 뉴 월드, 미래 이렇게 세 백화점에 제안을 했다. 내심 기대한 건 유대나 미래였다. 미래는 본점도 적당히 크고 안 되면 근처 호텔에서 별도 행사를 하면 되었기에 괜찮았고, 유대도 붙어 있는 같은 계열의 호텔에서 행사를 진행하기 수월하기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런 기획을 받아들일지는 의문은 뒤로하고 말이다.

윤 교수의 제안 자체는 백화점에서도 호응이 좋았다. 비록 일회성 행사였지만 비교적 상위 예술이라는 설치 예술과 의상과의 콜라보도 흥미로웠고 대학교수들이 학생들과 작업하여 패션쇼를 진행하겠다는 게 놀라웠다.

두 대학의 교수들은 외국에서 유학했고 실제 학위를 받기 전에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 쇼 준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자선행사였고 사용된 의상은 경매로 판매된다는 점도 이 행사를 즐기는 VIP들에게도 어필하기 좋았다.

업계 관계자들도 참석이 실제 이루어진다면 패션쇼가 가지는 무게감도 기대 이상일 수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는 비교적 흔하지 않은 행사에 오케이 사인을 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소요될 비용도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부담 되는 수준도 아니어서 어떻게 홍보하냐에 따라 고객들의 문화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사를 굳이 백화점에서 할 필요도 없었다. 호텔의 컨벤션이나 연회장을 대여해서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회사들은 어느 정도 계산이 서자 윤 교수에게 자신들의 백화점에서 쇼를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윤 교수는 어느 백화점에서 할지 결정하는 미팅을 갖기로 했다.

"미래 백화점은 인터콘티넬탈에서 진행하고 전체 지원금 4천만 원. 아, 각 백화점 별 지원금에는 우리가 예상한 모델비 에서부터 의상 제작비 지원까지가 포함된 금액입니다. 장소 대여와 무대 설치 등은 백화점에서 맡기로 했어요. 메이크업도 백화점에서 해주기로 했고요. 백화점 내부에서 해결 가능한 건 다 백화점에서 커버하려고 하네요. 유대는 바로 옆 호텔에서 진행하고 전체 지원금은 4천만 원. 뉴 월드는 서울 웨스턴에서 진행하고 지원금은 5천만 원입니다. 단, 뉴 월드는 지원금이 천만 원 더 많은 대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적극적인 참여라는 게?" 허 교수가 물었다.

"몇몇 의류업체들이 참석하길 원하는 것 같아요."

허 교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이번 행사를 하는 취지 중 하나는 두 대학 학생들이 실제 업무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있어요. 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자체가 경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많은 업체들이 참여해서 알리는 게 학생들에게도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 생각은 했습니다. 자선 행사고 아름다운 한복을 알리자는 게 취지니까요. 현재 우리가 행사에 쓸 의상은 60벌 정도 되는데, 여기에 10벌이나 20벌 정도를 추가해서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윤 교수도 동의하며 구체적인 안까지 냈다.

"태호는 어떻게 생각하니?" 강 교수가 물었다.

"전 괜찮아요. 학생분들에게 더 좋다면 해야죠."

"그럼 뉴 월드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그쪽에 전달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다음날 윤 교수는 뉴 월드에 전화를 해 10월에 같이 작업을 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뉴 월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백화점 입점 업체들의 참석 가능 여부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

윤 교수는 가능 여부를 확인해 보자면서 참여 의사가 있는 업체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디자인에 대한 비밀 준수 서약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따라서 디자인이 먼저 세어 나가 시장에 풀리는 게 확인이 된다면 그 업체에 대해 백화점 측에서 책임을 져 달라고 요청했다.

백화점에서는 잠시 내부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며 가능 여부는 최대한 빨리 결정해서 알려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틀 뒤 관련 사항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태호는 그 주 금요일에 윤 교수와 뉴 월드 백화점 본사의 회의실에 작품 콘셉트를 설명하기 위해 갔다.

태호는 백화점 측의 도움을 받아 화면에 콘셉트 일러스트를 하나씩 띄워놓고 설명했다.

앳된 얼굴의 태호는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만 걸치고 나와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권태호입니다. 이번에 패션쇼에 쓰일 작품들 콘셉트 일러스트를 담당했습니다. 시작은 지금 한창 유행하는 사극 황명회를 보고 조선시대 한복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복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리의 한복이 지금 시중에 나온 한복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제 아이디어를 발해대 윤진환 교수님과 대한대의 허수현 교수님이 발전시켜 이렇게 패션쇼 무대까지 준비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태호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전체적인 작품 콘셉트는 입생로랑의 1968년 시스루 드레스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 충격적으로 다가온 디자인이지만 더 충격적이게도 수십 년이 지난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스루 아니면 쉬어 드레스에 대해 관심의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이 콘셉트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로코코 양식의 아이콘인 마담 퐁파두르의 초상화에 담긴 드레스를 접목시켰습니다. 지금 화면으로 보이는 사진과 그림이 첫 작품입니다."

태호는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사진에 보이는 작품을 콘셉트로 한복을 제작했고 사진을 찍었으며 여기에 더해 그림을 제작했습니다. 앞의 작품을 확대한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호는 사진을 띄워 한복에 대한 콘셉트를 소개했다.

"현재 제작된 작품은 하나이고 이 콘셉트에 맞춰 제작한 다른 옷들 역시 앞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태호는 윤 교수와 허 교수가 제작한 이브닝드레스 두벌을 소개했다.

"콘셉트 당 두 작품씩 추가로 패션쇼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에 대한 배분은 추후 뉴 월드 백화점에서 추가로 설명해 주실 겁니다. 먼저 콘셉트부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태호는 남은 14개 콘셉트에 대해 하나하나 디테일한 설명을 하고 나서 내려왔고, 그 뒤로 백화점 측에서 부장급 인사가 올라와 업체 배분을 했고 또한 비밀 엄수에 대한 주의를 다시 당부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만 디자인이 시장에 풀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회사의 명예가 달린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백화점 측 인사는 비밀 엄수를 강조하긴 했지만 패션쇼 이후, 시장 반응이 좋으면 바로 시장에 풀 수 있도록 준비는 업체마다 할 것이라며 그에 대한 양해를 부탁했다.

태호와 윤 교수는 그것 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있겠냐며 패션쇼까지의 보안만이라도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발표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앞으로 나와 음료수를 마시고 앞에 전시된 의상들과 사진과 그림을 둘러봤다.

한쪽에서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사진도 대단한데 그림은 더 대단하군요."

"이 그림을 저 어린 친구가 그렸다는 건가요?"

"사진작가는 누구죠? 이런 작품을 만들 실력 있는 작가가 있으면 우리도 도움을 받고 싶은데."

다른 한편에서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도 전달되고 있었다.

아까 발표를 진행한 김 부장과 업체 디자인 총괄 이사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사님은 이 행사가 성공할 거라고 보시나요?"

"이변이 없으면 반응은 매우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봐도 저 한복 사다가 작품으로 전시해 두고 싶어요. 저 사진도 그렇고 그림은. 와. 어떻게 저 어린 학생이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태호의 그림은 역시 인기가 좋은 아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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