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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3 (2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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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해대에 모인 4명의 교수들과 태호는 각자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회의가 끝나고 회식이 잡혀 있긴 하긴 하지만, 여기 있는 다섯 사람은 뭐든 시간 낭비는 줄이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회의는 발해 대 윤 교수가 이끌었다.

    "일정은 10월 중순 정도로 업체들 SS 시즌 끝나면 하는 걸로 하시죠. 지금이 4월이니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습니다. 적절한 시간이죠."

    적절하다고 했지만 사실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Tier1의 빅 브랜드들은 한 달에 한 패션쇼도 무대에 올릴 수 있지만, 좋게 말해 대학생이고 사실대로 적으면 아마추어들이 이걸 시기에 맞춰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업에 있지 않으면 교수도 아마추어다.

    "장소는 미정이지만 작품 수와 대관 비용, 여기 강재범 교수의 작품이 설치되는데 충분한 크기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비용입니다. 장소 섭외 비용 외 소요 비용에 대한 대략적인 수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협찬을 얼마나 받아야 되는지 판단을 할 수 있어요."

    "태호 군의 의상 수, 허 수현 교수님 의상 수, 저희 쪽 의상 수를 정해야 됩니다."

    "결정하기 쉬운 거부터 하시죠. 일단 의상 수부터"

    "전 15벌이요. 주요 콘셉트 별로 하나씩만 있으면 돼요. 아, 거기에 김 교수님 작품으로 쓸 거 세벌 추가해서 18벌이요."

    태호가 먼저 시작했다.

    "우리는 20벌로 하죠." 허 교수가 제안했다.

    "우리도 20벌을 기준으로 하죠. 몇 벌 더 나오는 건 그때 가서 조정하시죠." 윤 교수가 동의했다.

    "의상 제작 비용은 얼마로 할까요?" 허 교수가 물어봤다.

    "한복은 30만 원, 그 외 의상은 20만 원 어떨까요? 이건 인건비가 포함된 비용 만을 따진 겁니다." 윤 교수가 제안했다.

    "인건비 빼고 재료 비용만 먼저 보죠. 한복은 재료비만 15만 원은 가뿐히 넘을 거 같습니다. 20만 원 정도로 하시죠." 허 교수가 대답했다.

    "한복은 어떻게 제작될지 판단이 서는데 다른 의상들은 잘 모르겠네요. 아직 콘셉트도 다 못 잡았잖아요. 허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머릿속에는 적어도 몇 개는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머릿속에서 맴도는 장르가 너무 다양해서 윤 교수님하고도 맞춰서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하시죠. 일단 의상 당 10만 원으로 잡고 한 달 뒤에 들고 와서 다시 논의하시죠. 왠지 느낌이 20벌로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만약 장르 맞추지 않으면 중구난방이 되어버려서 안 되겠어요."

    "알겠습니다, 허 교수님. 대략적으로만 따져도 한복 6백만 원. 의상 8백만 원. 대관료와 기타 세팅 비용으로 3백만 원을 잡는다고 치고, 모델료도 낮게 잡아도 20만 원은 되어야 하는데 20명은 있어야 되겠죠? 그럼 4백만 원.

    거기에 헤어와 메이크업도 해야 되고... 그 비용도 대략 2백만 원으로 잡죠."

    "25명은 되어야 될 거 같아요." 허 교수가 답한다.

    "그럼 25명으로 하면 어떨까요? 한 명이 두벌에서 세벌 정도 입는 걸로 하죠."

    "그럼 모델료만 5백이네요. 그럼 다 합하면 2천8백만 원이네요. 여기에 강 교수 작품에 들어가는 비용도 한 100만 원 잡으면 2천9백만 원이군요. 고액은 아니지만 작은 액수도 결코 아니네요.

    여기에 한복 제작 인건비도 계산해야죠. 한 명이 사흘에 걸쳐 하나를 만든다고 하면 15만 원이고 15벌이면 225만 원 대충 250만 원 생각하죠.

    거기에 잡비 생각하면 3천3백만 원인데... 다들 아시겠지만 보통 예산의 30-40% 초과해서 쓰잖아요. 그럼 4천6백만 원은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우리가 이 금액을 협찬받을 만한 데가 있을까요?"

    "학교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요?"

    "1백만 원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금액도 작은 건 아니지만 4천6백만 원하고는 괴리가 있으니."

    "그럼 리스트를 뽑아보죠. 의류기업 협찬. 정부 보조금. 그리고 향토장학금..."

    "향토장학금이 뭔가요? 교수님."

    "우리 호주머니죠. 하하."

    "재미없어요." 윤 교수의 아재 개그에 허 교수가 질색했다.

    "그런가요? 흐흐. 아무튼 이게 예상은 했지만 역시 돈 나올 구석이 없으니 이러네요."

    다들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태호가 슬그머니 물어본다.

    "교수님. 꼭 그걸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직접 다 하면 우리가 돈을 다 내야 되지만 다른 장소에서 하면 되잖아요. 우리가 만들 옷들이 일반 옷들인가요? 아니죠? 그럼 그런 특별한 옷을 찾는 사람들이 찾는 곳에서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백화점이나 명품 부티크 같은 곳이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패션쇼를 하고, 그 자리에서 자선경매까지 하는 건 어떨까요? 옷하고 그림하고 전시하고 바로 경매를 하는데, 백화점 VIP 행사를 하라고 하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 구매를 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일부만 팔려도 제작 비용은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태호는 얼마 전 자신이 고민하던 경비 마련 방안을 교수들에게 설명했다.

    "말은 되는데... 그럼 태호야. 최악의 경우는 네 그림만 팔릴 수도 있고, 우리가 다 너한테 얹혀 가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어." 강 교수가 찝찝한 표정으로 얘기한다.

    "왜 그렇게 소심하세요. 잘 만든 작품은 어찌 되었던 팔리게 되어 있어요. 한복만 팔아도 비용은 남을 걸요?"

    "도대체 한복을 얼마에 팔 생각이기에 남는다고 생각하니?"

    강 교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한 5백만원이요."

    "태호야. 니가 좀 경제관념이 없구나. 5백만 원이면 신입사원 월급 다섯 달 치야."

    "서울의 백화점 VIP들은 한 달에 용돈으로 5백만 원은 쓸 거 같은데요?"

    "그건 그럴 수 있지. 너 그런 건 어떻게 알았니?"

    "대구 할머니가 한 달에 2백만 원은 쓰시더라고요. 그 동네 백화점 VIP 시고. 서울에 있는 VIP는 할머니보다 몇 배는 쓰지 않을까 해서요. 맞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가능성은 있어... 그럼 이렇게 하자. 교수님들. 먼저 작품 두 개 정도 씩 만들어보죠. 학교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그 정도는 가능하죠? 그럼 그걸 기반으로 제안서 작성해서 기획서를 작성해서 백화점에 보내보죠."

    "혹시 학교에서 말이 나오면요?" 허 교수가 묻는다.

    "학교에는 장소가 백화점 등으로 바뀔 수 있다고까지만 얘기하죠. VIP 행사나 그런 건 우리는 모르는 거죠. 백화점이 알아서 할 일이니. 나중에 학교에서 말이 나오면 뭐 받은 돈은 토해 내는 걸로 하고요. 그것도 꺼림직하면 개인 돈으로 하는 것으로 하죠. 괜찮으신가요?"

    "그럼 제안서 용으로 제작하는 옷들까지는 개인 돈으로 하죠. 그리고 반응이 있으면 그때 까서 다시 계획을 변경해도 되는 거니까요."

    "첫 작품은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이번 패션쇼의 아이콘이 될 작품으로 준비하는 게 좋겠네요. 태호도 그렇고. 그래야 제안서가 이뻐질 테니까요."

    한복은 대한대에서 제작하는 것으로 하고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혹시 연예인 한 명 모델로 섭외할 수 있을까요?" 태호가 강 교수에게 물어봤다.

    "연예인은 왜?"

    "한복 모델로 써보려고요. 아무래도 익숙한 얼굴이 있어야 제안서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렇겠지? 그런데 이름있고 얼굴이 잘 알려진 연예인들은 비용이 상당할 거야. 신인 배우 중에 마스크 괜찮은 애를 선택하는 게 방법이지 싶다. 그건 다음에 만났을 때 윤 교수에게 물어봐 봐."

    나중에 만나 윤 교수도 태호의 제안에는 동의했지만 비용 문제를 언급했다.

    "CF 하나에 억이 넘어. 기획사에서 초상화 모델이 되어 주는 걸 CF 측면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비용 측면에서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신인은 어때? 마스크 괜찮은 신인 배우 중에 우리의 기획 의도 등을 설명하고 낮은 가격에 참여시킬 수 있지 않을까?" 강 교수가 물어본다.

    "괜찮은 생각인데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우린 적어도 한 달 안에 제안서를 쓰고 보내기 시작해야 된다고. 시간 안에 가능할 거 같지 않은데?"

    "태호가 그림을 빨리 그리니까 적어도 제안서에 담길만한 그림은 빨리 그릴 수 있을 거야."

    "초상화를 그려 놓으면 나중에 그 신인 배우던 가수가 나중에 되살려고 하지 않겠어요? 자선 경매에 팔리면 팔고 안 팔리면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그 모델에게 다시 팔죠 뭐. 신인이면 지금이야 돈이 궁하겠지만 나중은 모르는 거잖아요?" 태호가 말했다.

    "너다운 자신감이긴 한데 그에 따르는 비용 문제는?" 강 교수가 물어본다.

    "처음에 드는 돈은 투자라고 생각하고 해보고요. 안 되면 방법을 바꿔야죠."

    "태호 군. 아무리 신인이어도 계약하기에 따라 몇 백에서 몇 천이 들 수도 있어. 괜찮겠어?" 윤 교수가 걱정스레 물어본다.

    "한 2천 정도는 제 수중에 있어요. 물론 엄마 통장에 잠들어 있지만요."

    살짝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태호가 이번 패션쇼를 위해 쓸 수 있는 액수를 불렀다.

    "그거 밖에 없어?" 강 교수가 놀라 물어본다. 지난번 작품 판매로 얼마가 들어온 돈이 대충 얼마인지 아는 까닭이다.

    "엄마가 집 샀더라고요. 물론 제 명의긴 하지만 미도 뭐라고 하던데 전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본 적도 없어요."

    두 교수는 놀라서 태호를 다시 봤다. 14살에 대치동 아파트의 주인이라니. 뭔가 불공평했다.

    "나도 미도를 지를까?" 강 교수도 고민에 빠졌다. 태호 엄마가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모델은 일단 내가 알아볼게." 윤 교수가 총대를 멨다.

    *

    윤 교수의 인맥의 거미줄에 낚인 모델은 신인 배우는 연정아였다.

    72년생으로 얼마 전 미스코리아 수상 이후 활동을 막 시작한 배우였다.

    기획사도 매니저도 없어 엄마가 매니저 역할을 했는데 윤 교수의 요청 사항을 들어보고 오래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다.

    "한복 모델인데 패션쇼에 나갈 예정입니다."

    "한복을 입은 그림을 제작할 예정인데 한복 모델을 해주셔야 돼요."

    "간단히 런웨이 두어 번 도는 게 다예요."

    "5백만 원은 불가합니다. 패션쇼 한 번에 그림 제작을 위한 모델이 되는 게 답니다. 일주일도 안 되어 끝날 일인데 5백만 원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2백으로 하시죠. 어머니? 거기서 그렇게 올리면 안 되죠. 그냥 3백으로 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정아에게도 좋은 기회에요. 사실 이거 우리가 돈 받고 해야 되는 겁니다."

    "그림 제작은 다음 주에 진행될 예정이고 패션쇼는 9월에 열릴 예정입니다. 날짜는 최대한 빨리 확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윤 교수의 혼이 담긴 설득에 매우 적은 모델비를 들여 정말 훌륭한 모델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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