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시2 (20/181)

///// 전시2

태호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이촌동에도 퍼졌다.

"수지야, 학교에 탱화가 걸렸다고?"

"네 할머니. 그래서 오늘 식구들 전부가 학교로 나들이를 갈 거예요."

몇 년 전 예체능으로 전공을 바꾼 큰딸은 미술에 소질이 있는지 아니면 온 집안이 고생한 덕분인지 대한대 미대에 합격했다.

그 딸이 지난 월요일부터 주말에 학교에 그림을 구경 가자며 집안 식구를 설득해왔다.

"엄밀히 얘기하면 탱화는 아닌데 탱화처럼 보여서 다들 그냥 탱화라고 해요."

"그림 하나 보자고 거기에 가자는 거야?" 아빠가 물었다.

"아빠, 그게 단순한 그림 하나가 아니라니까? 걸작이야 걸작. 할머니 보여주자고 가자는 거지. 그거 아니면 나만 보고 말지."

"누가 그린 거니? 탱화라면 스님이 그린 걸 텐데." 엄마가 물어봤다.

"'작가가 누구냐'로 지금 학교에서 다들 말이 많아. 작가 이름은 권태호인데, 기성 작가 중에 같은 이름에 그런 작품을 만들 사람은 없거든?

그래서 가명이다, 외국인이다, 심지어 전시 책임자인 김창기 교수다 해서 말이 많아. 근데 엄마, 작가가 권태호야. 나 미술학원 다닐 때도 그림 잘 그리던 꼬맹이 있었잖아. 걔 이름이 권태호였거든? 걔가 지금쯤이면 중학생이 되었을까 말까 한 나인데 걔가 그린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

"그 애가 벌써 대학생이 되었니?"

"아니. 걔 나이가 몇 갠데 벌써 대학생이야. 검정고시를 봤다고 가정해도, 그런 꼬마 애가 학교 다닌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래서 나도 긴가민가해."

"그러면 날씨 좀 풀리거든 가는 게 낫지 않니? 아직 날이 덜 풀려서 할머니 살짝 추우실 수도 있어." 엄마가 말했다.

"나도 조금 늦게 가고 싶긴 한데 전시를 한 달밖에 안 해. 그리고 점점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다음 주에 가면 무척이나 불편하게 볼 거 같아서.

그리고 학생들이 관람객들 때문에 항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거든. 글쎄 그림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까지 있다니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손녀의 의견을 따랐다.

"지금 날씨 정도면 괜찮다. 내 감기는 잘 안 걸려."

할머니는 사람들이 절까지 한다는 말에 다음 주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어졌다.

주말에도 공부로 바쁜 둘째와 셋째를 집에 두고 네 식구가 대한대로 향했다. 어렵사리 주차하고 할머니를 휠체어에 모신 채 도서관 입구로 향했다.

일요일임에도 도서관 입구에는 그림을 구경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한 할머니와 경비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내 오래 안 있어요. 금방 갑니다."

"그 얘기가 아니라 오래 보셔도 되는데, 이 앞에서 절을 하시면 안 됩니다. 이 그림은 탱화가 아니에요."

"탱화가 아니라고요? 누가 그렇답니까?"

"이 그림 전시 기획한 교수님이 와서 설명해 주시고 가셨어요. 탱화가 아니니 절을 하시면 안 된다고요. 그럴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 아니랍니다.

그러니 이제 절을 그만 하세요. 계속하시니까 자꾸 다른 분들이 따라 하시잖아요."

"이게 부처님이 아니면 누가 부처님이라고."

"여기서 절을 하시니 학생들이 다니기 불편해하잖아요. 여기는 학교고 학생이 우선입니다."

비슷한 실랑이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벌어지고 있었다.

경비원은 괜한 그림을 걸어서 일을 만든다고 툴툴거릴 때도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자신이 봐도 이 신비로운 그림은 사람을 끄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그림을 계속 볼 수 있어서 가끔은 좋기도 했다.

수지의 할머니도 무릎만 멀쩡했다면 그림 앞에서 절을 할 태세였다.

앞에서의 실랑이를 본 후에는 합장만 조용히 하고 손녀딸에게 부탁해 가능한 그림 가까이 이동했다.

사찰에 가면 탱화를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온통 울긋불긋 한데다가 등장인물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무슨 의미로 그린 그림인지 이해를 못 할 뿐이었다.

이 그림은 달랐다. 등장인물이 많은 건 똑같았지만 그건 상부 그림만 그랬다. 하부 그림은 무슨 B급 영화 포스터 같았다.

홍콩의 주성치가 손에 트럼프를 잔뜩 쥐고 목에 쇠사슬 같은 금목걸이를 두르고 옆에 미녀를 끼고 사진을 찍는다면 저런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소 저렴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그림을 가까이서 관찰하니 거대한 유혹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거 탱화 맞니? 부처는 맞아?" 할머니가 물었다.

"탱화 아니에요. 하지만 밑에 그림의 가운데 있는 건 관세음보살이 맞는 거 같아요.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저렇게 화려한 관세음보살도 있니?"

"없죠. 그래서 탱화라고 안 하죠."

"저기 계신 부처님이 참 잘 생기셨구나."

"할머니, 정말 잘생겼죠?"

"그래. 저렇게 잘생긴 부처님은 본 적이 없어."

"친구들이 저렇게 생긴 남자 있으면 다들 잡겠다고 농담처럼 얘기해요.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고 행복할 것 같아요."

얘기를 듣고 있던 수지의 엄마 선영은 이 그림의 작가가 정말 권태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6년 전 작은 체구의 무척 잘생겼던 아이가 지금은 얼마나 컸는지도 궁금해졌다.

"수지야, 이 그림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가 있으면 알려줘. 그림 정말 좋네. 나도 작가가 누군지 정말 궁금해졌어."

"알았어. 나는 작가가 저 부처님처럼 잘생겼으면 좋겠다."

*

그림이 점점 알려지자 학교 신문에도 나오고 몇몇 예술 잡지에서도 그림에 대해 취재를 해 갔다. 얼마 뒤,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원하는 곳이 늘어났다.

취재를 나왔던 기자들이 작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지만 이름만 있을 뿐 정작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글을 올리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책임자인 김 교수에게 계속해서 문의가 갔다.

김 교수는 태호에 대해 공개하기를 꺼렸는데, 작품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태호의 나이를 가지고 문제 삼아 작품을 폄하할까 걱정해서였다.

이는 태호와 미리 논의한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완전히 무르익어 작가가 누구냐에 관심이 집중되면 그때 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다. 일종의 신비주의다.

*

한 달여간의 전시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주에 사람이 몰려 약간 왁자지껄했을 뿐이었다.

학교는 전시를 마치고 그림은 발해대로 옮겨 간다는 안내문을 걸었다.

*

발해대에서는 학교의 현대 미술관 건물 1층에 전시가 되었다.

도심에 학교가 있어 캠퍼스가 작고 근처에 다른 학교가 많았던 관계로 다른 여러 학교 학생들도 찾아왔기에, 제법 사람들이 방문하여 그림을 관람하고 돌아갔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소문이 대한대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퍼졌다.

90년대 한국 미술은 외국 사조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국내파들이 이끌던 시대이다.

기존의 회화 위주의 작품 제작이나 민중 미술만 있던 기존 미술계를 탈피해 다양한 설치 작품이 대거 등장하였던 시기다.

특히나 발해 대 출신 작가들의 페미니즘적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막 나오던 시기다.

태호는 그림을 완성한 후 전처럼 두 교수를 오고 가며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그날은 태호가 강 교수의 수업을 듣는 날이었는데, 작업실로 전화가 왔다.

"네? 그래서요? 언제부터 그랬고 몇 명이나 있나요? 허. 네. 알겠습니다. 곧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작품 훼손 안 되게 좀 말려주시고요.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거기 쓰여있지 않습니까. 지금 바로 갈 건데 학생들에게 경고하나 해주시죠. 그 그림 한 사람이 일 년을 넘게 작업해서 만든 그림입니다.

훼손 시 모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세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림을 떼든 말든 가서 들어보고 결정하죠. 네."

강 재범 교수는 무척이나 화가 난듯한 얼굴로 얼른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전시에 문제가 생겨서 가봐야겠어."

태호는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들어 대충 무슨 상황인지 예측이 되었다.

"같이 가시죠? 교수님."

태호는 학교이기에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험할 수 있는데? 학생들이 거칠게 나올 수 있고...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나는 네 부모님 뵐 면목이 없다."

강 교수는 정말 태호를 데려가기 싫어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그림 제가 그린 거고요. 저 안 데려가시면 저 무시하시는 거예요. 안전하게 뒤에 있을 테니 데려가 주시죠. 이런 것도 교육 아닐까요?"

둘은 곧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 건물 안에 들어섰는데 십여 명의 여학생들이 그림을 철거하고 강 재범 교수는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창 시위를 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바로 학생들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내가 강 재범 교숩니다. 학생들은 무슨 사유로 그림을 철거하라고 하는 겁니까?"

한 여학생이 일어나서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외쳤다.

"신성한 학교에서 성을 상품화하고 이제는 종교화에까지 여성을 성적 희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이에 동의하는 다른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같이 터져 나왔다.

강 교수는 재밌어하면서도 뭔가 씁쓸한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작품을 전시한 지는 거의 한 달 반이 다 되어 갑니다만, 지금 학생이 한 그런 주장을 듣기는 처음입니다. 학생 이름과 전공이 뭐죠?"

"왜 이름을 물으시는 거죠?"

"학교 총장님의 허락을 받고 전시 중인 작품입니다.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학생의 요구에 작품을 내릴 수 없어요.

여러분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그림을 내리겠습니다.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의도는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미술과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3학년 김혜린입니다."

"김혜린 양.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가능하고 혜린 양의 주장도 그 해석의 일부로 인정이 됩니다.

만약 혜린 양을 포함한 여기 있는 학생들에게 불쾌감을 줬다면 학교 전시를 추진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원작자와의 논의를 거쳐 전시를 중단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림은 천으로 덮어 볼 수 없게 하지요. 동의하십니까? "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리고 여러분들 가시기 전에 제가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여기 여러분들이 도대체 이 그림이 종교화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혜린 양?"

"당연한 거 아닌가요? 상단의 그림은 삼존불이 있고 아래는 관세음보살이 있습니다."

"성을 상품화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관세음보살 옆에 저런 많은 여성을 나열했다는 것 자체가 상품화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자 강 교수는 다시 물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삼존불과 관세음보살이 그려져 있으면 다 종교화인가요?

아니면 아름다운 여성이 많이 등장하면 성을 상품화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강 교수는 학생이 대답이 없자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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