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하다2
강재범 교수는 김창기 교수와는 조금 다르게 사회적으로는 현대 사회에 대해 가르쳤고 미술적으로는 컨템퍼러리 아트에 대해 가르쳤다.
단순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단순 전달한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 즉 시대적 배경을 들어 태호에게 설명을 해줬다.
강 교수는 상당히 더 직설적이었다.
“예술의 중심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 19세기 후반부터는 미국으로 이동했어.
직접적인 원인은 세계 1차 2차 대전으로 예술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넘어오면서 시작을 했지.
그리고 뒤를 이어 미국에 축적된 부는 예술품들에 대한 수요를 불러왔고 지금에 와서는 예술의 중심이 미국이 되었다.”
“지금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려면 시대를 먼저 이해해야 돼.
1980년대는 정말 많은 게 빠르게 변화했고 급성장한 시대야.
MTV로 통하는 대중문화와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이 시작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은 극에 달한 시기였지.
그런 것들을 이해해야 컨템퍼러리 아트를 이해할 수 있는 거야.
작품 가격이 올랐다? 미국 중앙은행 금리가 내린 지 얼마나 되었는지 확인해 봐야 돼.
작품 가는 시중 통화량에 비례하니까."
“지금 가장 유명한 예술가를 나열해 보자면 팝 아트의 앤디 워홀 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라피티의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추상 표현 주위의 빌럼 데 쿠닝, 내가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팝 아트의 제프 쿤스까지.
제프 쿤스는 현재 제일 비싸게 거래되기 시작한 생존 작가 이기도 하지.
앤디 워홀이야 십 년도 전에 타계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이들은 모두 미국인이지.”
신문이나 잡지가 주 논의거리가 되었다.
타임지건 뉴스위크건 아트뉴스 건 필요한 잡지들은 구해와 복사를 해서라도 읽고 토론했다.
"얼마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지?
이번에는 냉전의 상징이자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된 원인과 향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얘기해보자."
"지금의 미술계의 호황은 3저 (달러, 유가, 금리)과 관계가 있어.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었고 금리는 20%를 육박하다가 낮아져 10%까지 떨어졌지.
2차 석유파동으로 40달러까지 올랐던 국제유가도 20달러 내외로 안정되면서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호황을 맞이했고, 이때 벌어들인 돈은 다시 미술시장으로 흘러들어 예술품의 가격을 다시 천정부지로 올려놨어."
물론 여기에서 미술계의 동향도 빠지지 않았다.
"뉴욕 소더비에서 옥션 최고 경매가를 갱신했어.
작품은 고흐의 아이리스(붓꽃)이고 거래액은 약 오천사백만 달러.
아트워크에서도 최고가라고 대단한 일이라고 소개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이런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들은 앞으로 옥션 같은 시장에 나오지도 않을 거고 가격을 매길 수도 없을 거야.
10-20년 후에 보면 지금 산 가격이 최저가 일 거야. 물가를 고려한다고 해도 말이지."
"컨템퍼러리 아트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새롭기 때문이야.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 비슷해.
창조적이어야 하지. 남들과 비슷한, 어디서 본 듯한, 금방 싫증이 나는 작품들은 좋은 작품이 아니야.
언제 봐도 새롭고 다르게 해석되는 작품이 정말 좋은 작품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명작들이 바로 그런 작품이야.
우리가 오랫동안 봐왔기에 새로움이 덜 하지만 그 작품들이 처음 세상에 소개될 당시에는 대단히 센세이션 했어.
지금은?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썩고 있는 옛 작품들을 지겨워하는 것 같아."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현대예술을 과학에 비교하자면 순수 과학 같은 거라고 난 생각한다.
현대예술을 통해 제안된 각종 콘셉트들이 발전해서 트렌드가 되고 그 트렌드를 따라 산업이 발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현대 미술은 콘셉트에서 시작해서 콘셉트로 끝나.
그림 좀 이쁘게 그린다고 표현 못 할 걸 잘하고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이 고리타분한 한국 예술계는 이걸 이해를 못 해.
아직도 손으로 붓으로 그림을 그려야 된다고만 생각하지."
“예술에서 우위를 논하는 게 어리석은 일 일지도 모르지만, 난 뉴욕에서 활동하시는 백남준 선생님이 우리나라의 생존 예술가 중에서 최고봉이라고 생각하고 제일 존경해.
너도 나중에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미술사 교과서를 보면 알 거야.
유일하게 그 분만이 한국 예술가 중에 미술 교과서에 이름이 실려 있어.
국내에는 잘 들어오시지 않는 걸로 아는데 네가 여기 있던 미국에 가던 기회가 되면 꼭 만나 뵙고 인사드려.”
"그라피티를 단순히 낙서로만 접근하면 안 돼.
20세기 후반 메트로폴리탄 갱들의 문화를 설명하는 데 그라피티를 뺄 수가 없어.
예술에 등급이 없듯이 엄연히 눈에 보이는 문화 현상을 없는 것 취급을 해서도 안 되고.
잘 알려진 그라피티 화가로는 바스키아 정도가 있지.
앤디 워홀 덕분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의 독창성을 가릴 정도는 아니야."
"난 그라피티가 좀 더 심미적으로 보기 좋았으면 좋겠어.
좀 더 단순하고 직관적이었으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위트도 있으면 좋고. 지금 보이는 그라피티는 그려진 동네만큼이나 지저분해."
"태호가 더 크면 자연히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넌 다른 사람들보다 어른의 세계에 일찍 발을 들여놓은 거라 설명해 주는 거야." 라면서 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주장까지 태호에게 전달했다.
"태호 네가 나중에 작품 활동을 할 때, 주의했으면 하는 건, 절대로 같은 걸 오래 그리지 말라는 거야.
다르게 얘기하면 한 시리즈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게 좋아. 몇 년 정도 비슷한 작품을 선보였다면 그 뒤로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들을 그려봐.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완전히 접어야 돼.
그래야 네가 그 시기에 그린 그림들의 가치가 올라가.
예술품은 희소성이 동반되어야 하거든.
인기 없는 작품들을 만들어도 상관없어.
형편없는 작품들을 몇 년 간 제작했다고 하자.
나중에 네가 유명한 사람이 된다면 미술관은 네가 그린 그 형편없는 작품들 중 적어도 하나는 구매를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그 시기의 너를 설명할 수가 없어.
재밌는 사실은 네가 그린 그 형편없는 그림 중에서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마스터피스를 찾아낼 평론가들은 발에 챌 듯이 많아."
"네가 유명해지면 태호라는 브랜드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작품의 질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
매출이라는 측면에서는 말이지.
단 단조로운 작품들은 브랜드를 형성하는데 큰 장애물이 될 거야."
"국가를 정면으로 비난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가급적이면 자제하는 게 좋아.
작품을 본 국민들은 아마 모욕 당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
네가 어떤 정치적 목적성을 띤 작품을 제작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해.
예를 들어 저 북쪽에 사는 김 씨 왕조를 비판하고 싶거든,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자유를 억압 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품을 만드는 게 좋다는 거지.
예술가에 대한 탄압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거든."
"종교 문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돼.
옛날에는 영감의 원천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쟁의 씨앗이니까.
하지만 그 영감이 대단하다면 말리지는 않아.
난 매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아예 접근조차 하지 말라는 건 아니니까."
"난 태호 네가 아내 될 사람으로 예술인은 안 만났으면 좋겠어.
너도 너 같은 사람이랑 평생 살고 싶은 생각은 안들 거 아니야?
네가 여자였어도 똑같이 말했을 거야."
"마약은 해도 탈세는 하지 마.
너의 고객이 될 사람들은 정신병자나 마약쟁이의 작품은 전시해도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의 작품은 전시하지 않아.
네가 범죄자가 되는 순간 지금까지 너의 모든 작품들은 수장고에 처박혀 전시되지 않을 거야.
쓰레기통으로 향할지도 모르지.
아마 너의 범죄 사실이 잊힐 때쯤 되거나 네가 재 평가될 때 쯤 되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전에는 어림없어."
"미술품 가격이 왜 올라가냐고?
첫째는 시중에 돈이 넘치기 때문이고.
둘째는 작품을 사고 싶은 사람이나 기관이 많기 때문이고.
셋째는 예술가는 많지만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가는 적기 때문이지.
태호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건, 어떻게 해야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가가 되냐는 거야."
"매스컴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 TV에 나오던 잡지에 나오던 일단 유명해져야 돼."
"성을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상품화하는 게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나올 거야.
막을 수도 없는 거고. 너무 흔해져서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게 될 때 멈출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이 성에 대해 숨기고 신비화하니까 이게 상품이 되는 거지,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면... 상품이 될까?"
*
태호와 두 교수는 작업실에서 서로 질문하고 답변 만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낸 것 만은 아니다.
절반 이상은 서로의 작업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질문했다.
비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간혹 날 선 비판도 오고 갔고, 태호도 자기 주관에 더불어 두 교수에게 배운 바를 적용해가며 작품을 해석했고 그리고 판단했다.
같은 분석을 놓고 해석과 판단은 각기 달랐기에 치열하게 서로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토론했다.
태호는 자신이 생각 없이 그린 선과 색의 사용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두 교수는 태호가 하는 비평의 수준이 빠르게 올라가는 게 놀라웠다.
진도를 천천히 나갔음에도 말이다.
인문학이나 사회적 이슈 등을 논의하는 것 이외에 두 교수가 차곡차곡 전달한 지식은 업계 지식이었다.
국내 예술계 종사자들의 파벌싸움부터 시작해서 예술 시장의 동향, 인기 작가, 심지어 경매 시장에 대한 정보까지 태호에게 전달했다.
강재범 교수는 가장 공정해야 될 대한민국미술대전 (국전) 조차 파벌싸움에 금전이 오고 간다며 한탄했고, 김창기 교수는 직접 비난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경쟁은 없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업계 원로들이 사라져야 예술 업계가 산다는 식의 표현을 종종 했다.
두 교수들은 매우 박학다식했으며 미술 주변 산업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실에 작업 중인 그림들도 많았고 완성된 그림들도 몇 있었다.
가끔 작업실을 들리는 같은 대학교수들은 태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당연히 그림을 그린 사람이 교수라고 생각했다.
국민학생처럼 보이는 꼬맹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 그림을 그리긴 하지만 저기 걸린 그림들이 그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평소 교수들이 그리던 그림과 완전히 다른 풍의 그림이 올라오자 학생들과 다른 교수들이 평소와 다르게 그림을 그렸다며 저 작품도 매우 좋다며 감탄을 했다.
다른 교수들의 평가를 듣고 나서야 두 교수는 가르치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워낙 그림 솜씨가 좋긴 하지만 평소에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 서로 토론하고 하다 보니 그림들이 눈에 너무 익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확 달라진 듯해서 놀라웠나 보다.
그제서야 둘은 태호를 스타 화가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최초 계획을 떠올렸고, 실천에 옮길 방법을 모색했다.
그와 별개로 태호는 이미 스스로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