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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2 (8/181)

///// 국민학교2

영준과 숙영은 태호에게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이기에 마음대로 학교를 빠질 수 없다고 알려줬다. 현재 남은 유일한 해결책은 학교를 다니다가 자퇴를 하는 것이라고.

"그럼 조금 다니다가 자퇴할래요."

"괜찮겠니?"

"아빠 엄마를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잖아요."

방긋 웃어 보이는 태호. 부부는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

태호의 국민학교 생활은 도서관의 연장이었다.

첫 수업 시간부터 아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들고 와 읽었다.

The Story of Art (서양미술사)

곰브리치의 책으로 시각 예술에 대한 가장 쉬운 입문서이다.

이미 여러 번 읽은 책이었지만 다시 봐도 새로운 책이었다.

첫 서론에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가란 존재가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로 유명하다. 예술을 복잡한 '개념'을 적용해 설명하기보다는 '작품'으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직관적이고 핵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나온 문구이다. 국민학교 1학년이 볼 책은 아니다. 더군다나 원서라면.

같은 반 아이들은 이 잘생긴 친구가 책을 읽는 것이 단순히 신기한 정도였지만 집에 가서 엄마에게 얘기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태호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퍼졌다.

'일 학년 중에 영어로 원서를 보는 아이가 있다며?'

'수업에 전혀 집중을 안 하고 책만 보고 있다네요.'

'반 아이들 하고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고 해요.'

'학교는 왜 다니는 거야?'

선생님들은 태호가 너무나도 못마땅했다.

교무회의 때 '태호를 어떻게 다루어야 될 것인가'가 안건으로 올라왔다.

"김 선생님, 태호 학생과 오늘 안건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죠."

"이번에 입학한 신입생으로 아빠는 회계사 엄마는 광고 기획을 하는 맞벌이 부부의 아들입니다. 언어와 미술에 재능이 탁월합니다. 언어는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가 가능하며 불어도 외국에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구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나 미술에 재능이 대단해서 부모도 그쪽으로 아이를 교육하고자 합니다."

"국민학생이 원어민 수준의 영어와 불어를 한다고요?"

"적어도 고등학생 수준 이상이라는 설명을 학부모에게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려요?"

"이 그림을 한번 보시죠."

김 선생은 가지고 온 태호의 그림을 선생님들이 볼 수 있게 공개했다. 선생님들은 소묘화를 돌려보며 감탄했다.

"아이 엄마에 따르면 자신들은 별다른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섯 살 때부터 스스로 찾아서 공부했다고 하네요."

"위인전 얘기 같군." 한 선생이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문제는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시끄러운 것을 못 견뎌 한다고 합니다. 국민학교 일 학년 수업 내용은 당연히 아이 수준에 안 맞고요. 아시다시피 수업 시간에 집중을 안 하고 계속 자기가 들고 온 영어 책만 보고 있어 수업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만 생각하면 월반이라도 해서 빨리 졸업하고 좀 더 고등교육을 먼저 접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태호 학생으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반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호는 딴 책을 보고 있는데 왜 자신은 수업을 들어야 하냐며 집에서 가져온 책들을 보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합니다."

김 선생의 발표가 끝나자 선생들 사이에서는 '가능하면 월반이 가능하도록 교육청에 의견을 구하자'로 의견이 모아졌다. 태호의 수업 태도로 인한 문제는 김 선생에게 일임했다.

"허락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김 선생이 물었다.

"별수 있나... 학교 교육 방침에 충실하라고 해야지요." 교감이 대답했다.

김 선생이 공문을 작성해 교육청에 보냈다. 전화로 문의를 하니 간단한 사안이 아니기에 답변에 한 달여가 소요될 것이라며 했다.

교육청 회신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학부모들의 항의는 이어졌다. 다른 책을 들고 오는 아이들이 한 명 더 늘었고, 항의 전화는 몇 배로 늘었다. 견디다 못한 김 선생은 숙영을 학교로 호출했다.

"태호가 수업 시간에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혼자 책을 읽고 있습니다. 면학 분위기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어서 주의가 요구됩니다. 다른 학생들의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도 이어지고 있고요. 어머니께서 태호를 잘 타일러서 수업 시간에 책 보는 행동은 이제 그만하게 해 주세요."

숙영은 태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당장의 주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다.

"선생님, 혹시 태호 월반은 불가능할까요?"

묻는 말에 답변을 피하는 숙영의 태도가 못 마땅했지만 김 선생도 인내심을 갖고 상담에 임했다.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한 달 안에 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김 선생의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숙영은 월반 가능성만 되물었다.

"선생님은 월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능할까요?"

"태호가 월반하여 본인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듣는 게 좋겠지만 지난 몇 년간 교육청이 월반을 허용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요.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 그렇군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숙영은 말을 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니 잠시 학교를 안 나가는 건 어떨까요?"

"무슨 말이세요?"

김 선생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학생이 다소 문제가 있긴 하지만, 등교를 거부하겠다는 얘기는 정말 상상하기 힘든 사고 방식이었다.

숙영은 아들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도 할 생각이 없었다.

"전 태호가 학교에 폐를 끼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학교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죠. 학교는 문제가 되는 아이가 없어져서 좋고 우리는 아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집에서 마음껏 해서 좋습니다. 어떠세요?"

김 선생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부모는 소설에나 있는 얘기인 줄 알았다.

"태호는 다른 아이처럼 학교에 다녀야 합니다. 의무교육이라 법적 제제도 가능하고요. 괜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닐까요?"

"전 아이가 학교에서 괜한 상처를 받는 게 싫습니다. 학습태도 불량으로 선생님들에게 손바닥이라도 맞는다면 아마 난리가 날 거예요. 아주 작은 체벌이라도 그 아이에게는 정말 큰 상처가 될 테니까요. 무척 예민한 아이입니다. 지금이야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았기에 태호를 체벌하는 선생님은 없으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타나겠지요. 전 그런 일이 생기느니 차라리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만약 체벌이 일어나면 폭력 혐의로 체벌을 한 교사를 경찰에 신고할 예정입니다. 만약 어떤 정신적 충격이 가해질 경우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 후 피해에 대한 민사 소송까지 진행할 겁니다."

저학년에 대한 체벌은 드물지만 국민학교 고학년에 대한 체벌은 흔한 시대였다. 숙영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남편에게도 강력히 주장했다. 학교와 소송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학교 선생들이 어린 태호를 체벌하는 것을 막겠다고 말이다. 숙영은 인형처럼 말없이 있던 태호의 세 살까지의 모습을 절대로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어떤 외적인 충격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원인을 제공한 사람과 사생결단을 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태호 어머니와의 면담을 마친 김 선생은 신경이 곤두섰다. 숙영은 마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의 가시를 곧추세우고 덤벼드는 호저 같았다. 부촌에 위치한 학교이니 만큼 외국물먹은 학부모들도 많았고 체벌에 대해 비판적이다 못해 적대적인 부모도 꽤 있었다.

다만 이렇게 소송까지 하겠다고 극단적으로 선생을 몰아세우는 학부모는 처음이었다. 김 선생은 태호의 학부모가 보통이 넘으니 각별히 유의하라고 다른 선생들에게 전했다.

태호의 수업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수업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도저히 컨트롤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자 김 선생은 수업 시간에 태호를 포함해서 딴짓을 하는 아이들을 모조리 교실 뒤 사물함 앞에 서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칠판에 뭔가를 쓰고 난 후, 뒤를 돌아보자 서 있던 아이들 중 하나가 부족했다.

"선생님, 태호가 나갔어요." 교실 뒷문 쪽에 앉은 아이들이 일제히 말했다.

"나갔다니 무슨 말이야?"

"금방 전에 태호가 교실을 빠져나갔어요."

아이들이 시끄러워서 문 열고 나가는 소리도 못 들은 김 선생이다.

등에 식은땀이 났다. 얼른 교실을 나가 복도를 봐도 태호가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복도 쪽으로 나가자 태호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태호야!"

김 선생은 서둘러 태호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 내려갔다.

"태호야, 너 어디 가려고 그러니?"

겨우 따라잡은 김 선생이 급한 숨을 참으며 물어봤다.

"집에 가려고요."

"왜 가는려고 하는데!" 김 선생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소리를 빽 질렀다.

"시간낭비 하기 싫어서요."

"익!" 너무 화가 난 김 선생은 태호의 멱살을 잡고 빰을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태호의 싸늘하게 식은 눈빛을 보았다. '소송'이라는 단어도 같이 떠올랐다.

"당신은 때려서 애들을 교정하나 봐요? 화가 나면 손부터 나가는 게 그런 것 같은데."

김선생은 순간 더 열이 올라 올린 손을 태호의 빰을 향해 휘둘렀다.

어린 태호의 빰을 향해 날아오는 김 선생의 손바닥보다 태호의 행동이 좀 더 빨랐다. 멱살을 풀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신 손에 맞아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면 당신은 살인 미수야. 알아?"

태호는 반말로 소리를 꽥 지른 후, 멍한 김 선생을 두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 행동이 맘에 안 들면 학생기록부에 적어! 뺨이나 때리려 하지 말고! 나도 교육청에 고발할 테니까!"

태호는 큰 소리에 구경 나온 선생들을 뒤로하고 씩씩거리면서 학교 정문을 빠져나갔다. 국민학교 6학년 아이가 울면서 학교에서 뛰쳐나간 적은 있어도 1학년이 선생에게 반말을 하며 이런 사달을 벌인 건 처음이었다.

*

다음날 오후, 숙영은 학교로 찾아와 태호의 물품들을 정리한 후 교무실로 향했다.

"너무 자주 뵙는군요. 전에 분명히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린아이에게 손을 올리셨네요?"

숙영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말을 이어갔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어. 내가 이제 막 8살 난 당신 아들이나 딸 뺨을 때리면 당신 기분 어떨 것 같아? 더럽겠지? 내가 지금 그래. 그것도 계단에서 그랬다며? 그러다 잘못되면 니가 책임질 거야? 어?"

숙영은 담담히 자퇴서만 전달하려고 했지만 말을 하더보니 점점 더 열이 올라왔다. 머리속에서는 지금이라도 두 손 가득 김 선생의 머리카락을 쥐고 앞뒤로 흔들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목소리가 커지자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선생님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숙영은 머리속의 상상을 실천했을 것이다.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숙영은 핸드백에서 태호가 손으로 쓴 자퇴서가 담긴 봉투를 꺼내서, 던지듯 김 선생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자퇴서에요. 자퇴를 시키던 퇴학을 시키던 맘대로 하세요."

*

일주일 뒤 교육청에서 날아온 공문은 월반을 허용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호는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몇 번의 독촉 전화 와 서신이 왔지만 숙영은 무시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정원 외 관리자가 되면서 태호는 실질적으로 학교에서 퇴학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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