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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아이 (4/181)

///// 깨어난 아이

태호 아빠 영준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 튼튼한 볼보를 타고 다녀야 한다며 아버지를 졸라 산 브랜드 뉴 볼보 760 GLE를 몰고 고속도로에서 한껏 속도를 내고 있었다. 6기통 2800cc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는 1.4톤에 달하는 자체를 힘차게 밀어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안전벨트를 메고 옆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고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아들 태호는 마치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하지만 자세히 눈을 들여다보면 약간의 초점이 없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눈의 초점 외에는 비교적 정상이었다. 옹알이도 늦게나마 시작했고 지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옹알이처럼 한다는 것을 빼고는 비교적 정상이었다.

태호를 본 의사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의사들은 다른 자폐아들보다는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며 조금 발달이 늦는 것일 뿐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를 했다.

태호 아빠인 영준은 공부도 곧 잘했고 대학도 소위 명문대를 나온 회계사였다. 젊은 나이지만 사자 직업이었기에 봉급이 적지 않았고, 큰 광고 기획사를 다니는 엄마 숙영의 봉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둘의 월급을 보태도 태호의 치료비는 감당이 안 되어서 본가 돈까지 얻어 태호 치료비로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자폐에 대한 정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시기라 숙영은 도서관에서 영문 원서까지 뒤져보며 아들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쏟아부어도 아들의 상태는 나아진 것인지 아닌지 둘은 알 수가 없었다.

영준과 태호는 대구에서 제법 크게 건설자재 사업을 하는 본가에 들러 하루 자고 아침식사까지 함께 한 후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숙영이 주말에 출근을 하게 되어 영준만 태호를 데리고 대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렇게 대전과 천안을 지나 기흥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태호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가서 엄마랑 저녁 먹자"

영준은 정체 길에 맘이 급해져 조금씩 과속과 급정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막 휴게소를 지나 앞에 차들이 시원하게 달리기 시작할 때 앞에서 달리고 있던 포니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다. 추월선에서 악셀에 막 힘을 주기 시작한 아빠는 순간 놀라 우측 라인으로 차를 이동 이동시켰다. 그러자 이 포니도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자신에게 급하게 들어왔다. 영준은 다시 왼쪽으로 재진입하기 위해 왼쪽 백미러를 살피고 아무 차량도 없는걸 확인한 후 핸들을 꺾는 순간 백미러 위에 붙은 볼록거울에 비친 흰색 로열 프린스를 보지 못했다.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한 바퀴 반을 돌다 뒤집어졌고 차량에 탄 두 사람은 곧 정신을 잃었다.

영준이 힘겹게 눈을 떴다. 정신도 멍했고 눈에 초점도 돌아오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있어야 했다.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이후 처음 보이는 장면은 병원의 하얀 천장이었다.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니 아내가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단지 고개를 조금 움직인 정도였지만 온몸이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목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영준은 힘겹게 손을 뻗어 아내의 손을 잡았다.

“여보?”

자다가 깬 숙영은 24시간 만에 깬 남편을 보자 비명을 지르듯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던 거야?”

숙영은 남편에게 지난 24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집안 식구들은 난리가 나 천안까지 와 두 사람을 보고 갔지만 실상은 정신을 잃은 두 사람을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검사하고 깰 때까지 내버려 둔 게 전부이긴 했다.

“어디 아픈 데가 있어? 머리가 아프다거나? 눈이 안 보인다거나? 다행히 눈에 보이는 다른 외상은 없는데 내부 출혈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당신이 빨리 아픈 곳이 있다면 알려줘야 해.”

영준은 머리가 아프다거나 복통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의 근육이 다 놀란 듯 심각한 근육통에 비명을 지를 것 같았지만 말이다.

당직을 서던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가 다가와 눈동자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몇 가지 사항들을 물어봤다.

“정말 운이 좋으세요. 보통 그렇게 차가 뒤집어지면 겉은 멀쩡해 보여도 갈비뼈 등이 부러져서 내부 장기를 찌르기도 하거든요. 다행히 환자분과 아드님이 다 안전벨트를 했기에 다른 외상은 없으세요. 내상도 없을 듯 하지만 일단은 며칠 더 두고 봐야 되지만요. 지금 근육통이 심하실 텐데 찜질 같은 물리치료를 하고 나면 서서히 나아질 겁니다.”

“혹시 태호는 어떤가요?”

“아드님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죠? 활발한 눈동자의 움직임을 봐서는 뇌에 손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조금 더 지켜보시죠. 아버님과 마찬가지로 안전벨트 덕분에 외상은 없어 보이니까요.”

빠른 안구 운동으로 아직 렘 수면 중이라는 걸을 확인한 의사의 말에 한숨 돌렸지만 그렇다고 걱정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단지 최악은 아니라는 것일 뿐이었다.

마침내 긴 잠에서 마침내 태호는 깨어났다. 사고가 난 후 48시간을 지난 이후였다.

“태호야!”

숙영은 아들이 눈을 뜨자마자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영준도 자신 때문에 아들이 이 고생을 한 것 같아 말은 못 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준과 숙영은 자신들의 아이가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초점 잡힌 또렷한 눈빛을 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영특해 보이기까지 했다.

"태호야! 아빠 보이니?"

태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훨씬 표정이 풍부해졌다. 지금껏 인형 같은 표정이 아닌 마치 영준의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영준과 숙영은 아들의 모습에 혼란스러웠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변화는 아니었기에 매우 반겼다.

퇴원을 한 후 3달이 넘게 지난 시기였다. 두 사람은 열심히 태호에게 아빠와 엄마라는 말을 열심히 가르쳤다.

30개월이 다 되어가는 아이에게 가르치기엔 한참이나 늦은 시기였지만 두 사람은 아이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후 다양한 자극을 주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였다. 숙영의 극성에 자폐 치료비보다 지금은 교육비가 더 들 지경이었다.

"자, 따라 해봐. 아빠."

잠시 까우하던 태호는 입을 오물거리며 말을 따라 하려고 했다.

"아바."

"다시 해봐. 아빠."

"아바. 아바. 아바." 그렇게 한참 동안 말을 따라 하려고 애쓰던 아들이 마침내 '아빠'라고 정확히 발음하였다.

"하하 하하." 그리고 영준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옆의 아내를 붙잡고 소리쳤다.

"우리 태호가 이제 말을 해! 말을 한다고. 하하하."

숙영도 태호를 붙잡고 엄마라고 해보라고 하자 처음에는 발음하기 어려워했지만 나중에는 엄마라는 단어까지 비교적 정확히 따라 했다. 그리고 둘은 아들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모든 식구들에게 알려 기쁨을 함께 했다. 30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아이가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해 얼마나 맘 고생을 했었던가. 그런 아이가 눈의 초점도 돌아왔고 발음도 또렷해졌다. 전처럼 웅얼거리지도 않는다.

*

아빠 엄마라는 말을 막 시작한 태호는 한동안 말없이 TV를 보거나 스케치북에 스케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옹알이도 하지 않지만 말도 거의 하지 않아 태호와 숙영의 애간장은 녹아내렸다. 말을 계속 시켜보았지만 아이가 과묵한 건지 말을 할 줄 모르는 건지 짧은 대답은 해도 긴 대답이나 말은 하지 않았다.

4살 정도가 되자 태호는 또래들보다는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가족 친지들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이 별로 없었다.

특히나 또래들과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듯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 태호를 보고 동네 꼬마 여자아이들이 말을 걸어도 태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모른 채 하거나 대화 자체를 피했다.

영준과 숙영은 아들이 사춘기가 왔다며 웃고 지나갔지만 태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이 시기였다.

대뇌의 신경 다발에 끊임없는 자극이 주어졌다. 그 자극은 전두엽 후두엽을 거쳐 측두엽과 소뇌까지 이어졌다. 뇌에 가해지는 자극은 어떤 정보를 형성했지만, 이 나이 때의 뇌는 커지는 시기였기에 파편화되어버렸다. 이 파편화된 정보가 모이기 시작한 건 뇌의 뉴런들이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5살 무렵부터였다.

태호는 온전히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억력, 판단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 집중력, 추상적인 사고력 등의 인지 능력이 향상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상도에서는 흔히들 시근이 들었다고 말하는데, 이때의 태호를 설명하기에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비교적 적절한 말이었다.

자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꿈에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태호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키가 크지 않은 백인 남자로 제법 근사하게 생겼다. 꿈속에 보이는 사람은 그림을 자주 그렸다. 그것은 제법 볼만한 것이었다. 다른 꿈에서는 그런 그림을 그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보여줬다. 수없이 많은 데생과 붓질을 통해 한 올 한 올 덧새겨진 팔의 잔근육에서 나오는 노력의 결과였다. 꿈이 이어질수록 태호는 자신도 그 키 큰 남자만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인지 능력이 향상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독서와 그림 그리기였다.

독서는 집에 책이 쌓이다 못해 흘러넘칠 듯 많았기에 시작했고, 그림은 꿈속의 남자를 따라 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했다.

태호는 그리는 모든 것이 좋았다.

엄마가 사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곧 연필과 크레파스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크레파스는 정말 신세계였다. '파스텔에 기름을 먹인' 화구인 크레파스는 그림을 그리기에 매우 적절한 도구였다. 여물지 않은 작디작은 손이기에 세세한 그림을 그리기는 힘들었지만 손끝을 통해 만들어지는 선들은 자유롭게 뻗어나갔다.

연필로 스케치한 후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는데 크레파스를 직접 칠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문지르거나 못이나 샤프같이 뾰족한 것으로 긁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중 일부는 손가락으로 문질러져 그러데이션으로 표현되었고 이쑤시개를 통해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집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림에 이용되었다. 화장실에 있던 칫솔들은 진작에 빨주노초파남보로 옷을 갈아입었고, 부엌에 있던 행주와 화장실의 흰 수건도 오래전부터 칫솔들과 커플룩을 입고 있었다.

숙영은 태호가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아봤다. 태호가 크레파스로 그린 원은 작은 손으로 크레파스를 쥐고 그린 것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에 나오는 원처럼 아름다웠다. 숙영이 알기에도 원을 정확히 그리는 능력은 손재주와 매우 큰 연관관계가 있었다.

태호의 그림은 나날이 달라졌다. 한동안 크레파스로만 그리던 그림은 곧 소묘로 바뀌었다. 크레파스로는 날카롭거나 깊이 있는 느낌을 주기가 어렵기에 연필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HB에서 8B까지 다양한 연필을 사용했다. 여러 연필을 사용할 경우 한 종류의 연필을 사용한 경우보다 명암의 전이효과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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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보니파시오 8세 Bonifacius PP VII (1230~1303) 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을 연 사람인 조토 디 본도네 (Giotto di Bondone, 1267~1337)에게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 성당 (Baslica di San Pietro) 을 위한 작품을 주문하기 전에 그림 실력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조토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완벽한 원을 그려 실력을 증명했다. 그것도 단 한번의 붓질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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