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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행방 1 (2/181)

///// 그림의 행방 1

앙리는 40살이 될까 말까 했지만 병색이 짙은 60대처럼 보였다.

피부는 푸석푸석한 빗살 무늬 토기 같았고, 머리카락은 오래된 걸레 마냥 아무렇게나 엉겨 붙어 있었다.

얼굴은 흡사 해골에 진흙을 발라놓은 것처럼 보였는데, 그마저도 앙상하다 못해 종잇장 같아 세수라도 한다면 녹아내려버릴 것 같았다. 이빨은 남아 있는 걸 세는 게 빨랐고, 한쪽 눈은 죽은 물고기 마냥 이미 수정체가 하얗게 혼탁해져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다른 눈은 올리브 잎 색깔의 영롱한 페리도트 원석처럼 빛났다. 눈빛 만은 오롯이 병든 육체를 이기고 지난 40년의 어느 순간보다 펄펄 끓어오르는 용암 같은 열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앙리의 눈빛도 그림을 완성한 후 산란을 마친 연어처럼 죽어갔다. 거짓말처럼 녹색 빛의 눈동자는 구름 낀 하늘의 달무리처럼 뿌옇게 변했다. 불과 몇 분 사이의 일이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고자 집에 있는 손바닥만 한 거울을 힘겹게 바라보던 그는 침대로 갔다. 차디찬 마룻바닥에 누우면 죽어서도 춥지 않을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에 침대로 가서 낡아 너덜너덜해진 넝마 같은 이불이라도 덮고 죽을 생각이다.

억지로 누운 침대에서 자꾸 멀어지는 의식을 잡고 그는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대상은 누구인지 모른다. 자신의 귓가에 악마처럼 그림을 그리라고 속삭이던 예술혼인지, 자신의 혼이 담긴 성모 그림인지,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믿으라고 강요하던 그분인지는. 하지만 죽기 전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하던 기도 이후 거의 30년 만인 기도다.

그의 의식은 마지막 기도를 마치기 무섭게 빠르게 멀어져 갔고, 그의 영혼은 바람 소리 같은 낫 소리를 마지막으로 무로 돌아갔다. 앙리가 그림을 완성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집에는 시체 하나와 그림 한 점, 그리고 너덜너덜 해진 제목을 알 수 없는 책 한 권이 있을 뿐이었다.

*

앙리의 시신과 그림은 이주 뒤 밀린 방세를 받으러 들어온 집 관리인 다미앙에 의해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 그림을 빼돌려 놨다.

뼈와 가죽만 남다시피 한 그의 시체는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의대의 실습용 카데바(Cadaver)로 사용되었다. 만약 앙리가 영혼이 남아있어 이 광경을 봤더라도 만족해할 만한 결과였다. 그림을 완성 시킬 수 있었고 인류 의학 발전을 위해 나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실습 종료 후 그의 머리와 몸은 다시 꿰매진 상태로 신부의 기도를 받은 후 화장되었다.

다미앙은 그림을 빼돌리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장물이나 다름없는 그림을 팔기가 쉽지 않았다. 비록 한 겨울밤이었지만 다미앙은 미리 마련한 틀에 그림을 담아 자신의 집으로 그림을 옮겼는데, 커다란 틀을 들고 이동하는 걸 본 주민이 다른 관리인에게 알렸다. 며칠 뒤 다미앙은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에 의해 흠씬 두들겨 맞았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이런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나? 더군다나 장물을?”

두 명의 덩치와 함께 등장한 장년의 남자는 자신을 이런 곳으로 오게 만든 다미앙을 본체만체하며 그림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자신을 이런 불결한 빈민가까지 오게 만든 다미앙을 단단히 손 봐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림을 본 순간 여기 온 이유조차 잊어버린 듯 그림에 몰두했다.

“이 그림은 누가 그린 건가?”

한참을 그림을 보던 남자는 다미앙에게 물었다.

“그으게 엉마전 중은 앙리잉니다아.”

“그래? 아는 데로 다 얘기해 보게.”

다미앙은 다 터져버린 입을 움직여 아는 바를 다 털어놓았다.

“자네는 운이 좋아. 나를 만나게 되어서 말이지. 이 친구들만 왔으면 지금쯤 센 강 뻘에서 고기밥이 되었을 텐데 말이야. 이 물건은 공작님 소유의 집에서 발견된 주인 없는 그림으로 소유권도 법적으로 공작님이 가지고 계시네. 넌 그걸 훔친 도둑이고. 다행히 공작님이 나중에라도 발견해서 그림을 다시 가져간 것이고. 이해했나?”

그 남자는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다급하게 동의하는 다미앙을 보고는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 동전이 든 주머니를 다미앙 옆에 던졌다.

“오늘 일이 새어 나갈 경우 자네에게 그렇게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길 거야. 그건 장담할 수 있어. 다시 볼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정 여기서 더 잉할 수 있습니까?”

다미앙은 겨우 잡은 일자리를 잃고 집에서도 쫓겨날까 두려워 물어봤다.

“당연히 자네는 더 일할 수 있지. 다만 이번 일을 떠들 생각도 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 생각도 하지 마. 센 강에서 수영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항상 내 감시하에 살아. 알았나?”

*

그림은 버틀러의 주인인 바사노 공작의 손에 들어갔다. 밀봉된 그림을 야간을 틈타 최대한 비밀리에 옮겨졌지만 파리 빈민가에 비밀이란 게 없는 법. 다미앙의 집에서 그림을 훔쳐본 적이 있는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앙리 보나의 최후의 걸작이 바사노 공작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리에 돌았다. 하지만 곧 소문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바사노 공작 가는 나폴레옹 1세 때 대변인이자 외교가였던 위그 베르나르 마레트를 위해 만들어진 공작 가로 역사는 짧고 영지는 이름만 남았지만, 말년에 마레트는 프랑스 재상까지 지냈기에 권력이나 재산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현재 공작은 초대 공작의 손자로 파리의 주요 부동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먹고살며 소일했다.

유일한 취미는 예술품 수집이었는데 당대에 유명한 화가인 앵그르의 작품도 몇 점을 수집했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아내는 오래전에 병사했고 둘이나 있던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전사를 했기에 가진 재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과감하게 그림 수집에 열을 올렸고 나름 만족할 만한 컬렉션도 보유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 빛의 마리아를 보기 전까지만 만족스러웠다.

빛의 마리아는 지금까지 봐오던 어떤 그림과도 달랐다. 처음 보는 순간 온몸이 찌릿찌릿했고 뇌에 폭풍이 몰아친 듯했으며, 다시 보는 그 순간순간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성 베드로 성당과 시스티나 성당에서 봤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봤을 때의 감동과 비견되었다. 아니 그 이상이다. 바로 자신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이후,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작품이 무의미해 보였다. 그림 위에 펼쳐진 그 거친 붓질은 그가 아는 어떤 그림과도 달랐다. 아직도 물감이 다 마르지 않았지만 앙리라는 화가가 방금까지 붓질을 한 듯 모든 선이 살아서 꿈틀거렸다. 물감은 두텁게 칠해져 있어 얼핏 모래와 섞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많은 덧칠로 캔버스가 울퉁불퉁해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매끈하게 칠해져 있는 그림 만을 본 공작에게 두터운 질감을 표현한 그림은 무척이나 새롭게 느껴졌다. 새로움이란 말을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늘 틀에 박힌 그림만 보던 공작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한 단어였다. 그 새로움은 공작이 그림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비슷한 주제를 놓고 그린 그림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롤러코스터를 타본 사람이 회전목마를 따분해 하는 것과 비슷했다. 정말 지독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어떤 이름 없는 화가가 정제되지 않은 솜씨로 거칠게 표현한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알아본 바로는 앙리는 한때 정말 잘나가는 작가였으며 앵그르 다음으로 파리 최고의 솜씨를 자랑했다. 지금 이 거친 붓질들로 완성한 이 작품은 그가 인생의 마지막을 불살라 그린, 혼이 담긴 역작이었다.

집사를 통해 알아보니 의대에 시신을 기부하고 얻은 얼마간의 돈으로 화구를 사서 그림을 제작했으며, 피 가래가 끓어오르는 병든 몸을 이끌고 죽는 그 순간까지 정성을 다해 그렸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바사노 공작은 그 위대한 예술혼에 절로 숙연해졌다.

앙리의 인생사까지 궁금했던 공작은 사람을 시켜 그의 인생사까지 알아본 후 이를 노트에 적어 보관했다. 앙리라는 화가의 인생을 걸고 만든, 말 그대로 최후의 걸작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의 표현이다. 그의 다른 작품이 남아있는지 궁금해 알아보던 공작은 한참을 찾아봤지만 수확은 별로 없었다. 거의 5년 전부터 그의 작품이 살롱에 출품되지 않았으며 그때부터 그가 망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파리에서 정말 잘나가는 작가였다는 것도. 이혼과 술, 아편이 그를 망가지게 만든 주원인이었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겨우 찾은 그의 다른 그림들은 잘 그려진 그림이지만 빛의 마리아로 인해 취향이 변한 공작에게는 그냥 정말 잘 만들어진 기성품 같다는 느낌 만을 주는 정도였다. 빛의 마리아에서 느낄 수 있던 신성함 독특함 강렬함 이런 감정이 빠진, 매우 정제된 혹은 정신이 거세된, 과거 신화의 재현만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아카데믹한 그림에서 공작은 어떤 흥미를 찾기 어려웠다. 그 뒤로 인상파 그림에 푹 빠진 공작은 자신의 저택에 걸린 과거 그림 중 마음에 안 드는 아카데믹한 그림들을 걷어내고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들을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사노 공작은 당시 파리에서 실력이 출중한 교구 장인과 화구 조각가까지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빛의 마리아의 프레임을 짰다. 지금까지의 종교화와는 매우 다르게 캔버스에 빛의 마리아 혼자만 있어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한 공작이, 아기 천사들이 구름에서 노닐고 빛의 마리아를 반기는 모습을 프레임에 양각했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 도금과 실버 화이트 색을 칠해 더욱 그림을 빛나게 했다. 덕분에 캔버스만으로도 꽤나 컸던 작품인데 프레임까지 더해지니 그림이 정말 커졌지만 공작은 대만족이었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이 빛의 마리아가 자신에게는 더 보물이었다. 크기도 더 컸다.

공작은 빛의 마리아의 프레임을 제작한 교구 장인 등에게 거액을 주며 비밀 서약을 강요했지만 그림이 너무나도 대단했던 걸까? 비밀은 조금씩 새어 나가 파리의 알만한 사람들의 귀에 바사노 공작의 새 그림 얘기가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이 그림에 대한 소식은 바사노 공작의 사촌인 미셸 대주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바사노 공작과 사촌 지간인 미셸 대주교는 우연히 파리의 지인에게 인상파 작품 중 괜찮은 작품 하나가 바사노 공작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름이 빛의 마리아라는 얘기에 마음이 동한 미셸 대주교는 어릴 적부터 친했던 바사노 공작에게 방문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얼마 후 편지를 받은 공작은 인상을 구겼다.

"이 녀석은 왜 갑자기 오겠다는 거야?"

집사로부터 받은 편지에 찍힌 파리 대주교의 밀랍 인장을 보고 인상을 찡그린 공작은 편지를 읽고 난 후 입에 모래를 한 움큼 씹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그림에 대한 소문이 파리에 돌고 있는 듯합니다."

집사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양 죄송해 하며 대답했다.

"각오했던 일 아닌가. 자네 탓이 아니야."

아무래도 빛의 마리아에 대한 소문이 사촌의 귀까지 들어간 게 분명했다. 자신의 서재에 걸어놓고 마음껏 그림을 즐기던 공작에게는 청천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종교에 귀의했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는 하나, 어릴 적부터 원하던 물건에 대한 대주교의 집착을 봐온 공작은, 더군다나 마리아라는 이름에 더욱 집착할게 뻔한 대주교임을 알기에,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웬만한 사람이면 깨끗이 무시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자 자신의 곁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오래된 벗이기에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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