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일 뒤에 먹히는 프로듀서-164화 (164/165)

제 164화

Happy Ending 完

요양이란 이름으로 거의 2주간 이어진 감금도 어느덧 끝이 나고.

“더 있지 그래?”

“더 있다간 진짜 죽을지도 몰라.”

도지혁은 퇴원일에 맞춰 찾아온 이혜리의 말에 진저리를 쳤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편했던 병원 생활이 괴로웠기에.

물론 그 원인의 대부분은 도지혁에게 있었지만 말이다.

“드디어 우리 영웅께서 납셨구만! 퇴원 축하한다!”

“퇴원 축하드려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도지혁은, 바로 다음날이 찾아오자마자 오랜만에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무려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별명과 함께.

[ ‘영웅’ 도지혁 프로듀서. 드디어 퇴원. ]

퇴원 소식이 뉴스에 보도될 정도이니, 사실상 이 땅에 ‘도지혁’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몇 없으리라.

‘영웅이라….’

도지혁은 그 융숭한 대접이 썩 기껍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방위대를 꾸리고 연합군과 협업을 이루는 둥 많은 업적을 세우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마왕을 처치한 건 퀸즈와 팀 서울시청.

물론 그녀들도 엄청난 대우를 받으며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도지혁에게 모여든 상황이었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은 설주희.

그녀는 제 손으로 마왕을 처치하며 틀림없는 주인공임을 증명하였다.

그런 그녀를 놔두고, 자신에게 주목이 이끌린다니.

분명 평소였다면 흡족할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괜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어쨌든…. 다 끝났네….’

카페테리아에서 받아온 커피를 들고 텅 빈 휴게실에 앉아있던 도지혁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아래로 드리워진 회색빛의 도시.

바로 얼마 전에 수많은 사상자가 일어났던 커다란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도지혁은 언젠가 세웠던 목표를 곰곰이 돌이켜보았다.

끔찍했던 원작 소설의 결말을 피하기 위해 힘써왔던 지난날을.

‘마왕은 죽었고, 설주희는 살아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도지혁은 더없이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

세상에 홀로 남아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던 설주희는 물론이고, 도중에 사망할 예정이었던 임아린과 홍유라도 멀쩡히 구해냈으며, 황폐해졌던 나라도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그뿐인가?

설주희의 앞길을 막아설 예정이었던 잔혹한 살인귀 천마도, 기구한 삶에서 벗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가 없는 최고의 결말이었다.

“결말이라….”

도지혁은 싱숭생숭한 마음에 조용히 커피를 홀짝였다.

마왕을 막으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다.

마치 소설처럼 ‘완결’하고 끝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마음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마냥 시원하기보단 길을 잃은 기분에 가까웠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

이혜리와 틈틈이 대화를 나누며, 마왕과의 결전 이후를 위한 팀 운영 계획을 세워놓긴 했다.

하지만 그건 ‘팀’을 위한 계획이지, 도지혁 자신을 위한 계획이 아니었다.

‘뭐…. 천천히 생각해볼까….’

그렇게 도지혁이 오랜만의 여유를 천천히 음미하길 잠시.

쾅─!

김준형이 휴게실로 다급히 뛰쳐 들어왔다.

“도, 도지혁!”

“뭐야?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중인데.”

“너 지금 그렇게 한가로이 커피나 마실 때가 아냐! 인마!”

“…뭐?”

“너 좆됐어!”

김준형이 다급히 도지혁을 찾는 이유가 뭔가 하니….

“설주희, 이 미친년이 진짜…!”

설주희가 또다시 사고를 쳐버린 것.

[ 설주희. 도지혁과 백년가약 올린다…. ]

[ 마왕마저 가르지 못한 사랑. 설주희·도지혁 전격 결혼 발표 ]

[ 여왕 설주희. 5월의 신부 된다. ]

바로 기습적인 결혼 발표를 진행해버린 것이다.

[ 한나♥ : 오빠!!! 이거 뭐예요? 갑자기 결혼이라뇨…? ]

[ 아린♥ : 우리한테 상의도 안 하고 이게 뭐야…! ]

[ 유라♥ : 이건 절대 그냥 못 넘어가. 당장 나도 기자회견 할 거야. ]

[ 서원♥ : 돼지 진짜 짜증나 ]

여자친구들이 모여있던 단체 채팅방은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

그와중에 설주희는 모든 내용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답장조차 보내지 않고 있었다.

“야! 설주희!”

그새 냄새를 맡고 모여든 기자들을 물려낸 도지혁은, 곧바로 설주희의 집에 찾아가 보았는데….

“어머. 우리 남편 왔어? 마침 하와이 숙소 알아보는 중인데. 잘됐네?”

정작 폭탄을 투하한 설주희는,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주희…!”

안하무인 그 자체인 설주희의 태도에 순간 욱해버린 도지혁은, 목소리를 높이며 따져댔다.

“갑자기 그런 걸 상의도 없이 막 발표하면 어떡해! 내가 이제 이런 짓은 하지 말자고 했잖아!”

그러자.

“발표 안 했으면? 네가 나랑 결혼해줬겠어?”

설주희가 뻔뻔스러운 태도로 당당하게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뭐?”

“네가 딴 년들하고 헬렐레하는 걸 뻔히 다 지켜봤는데, 네가 퍽이나 내 약속을 지키겠냐고.”

“그건….”

따박따박 정론을 늘어놓으며 도지혁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는 그녀.

“나랑 결혼해. 그리고 내 이름으로 호적 올려. 나는 합동결혼식 따윈 할 생각 없으니까, 딴년들 설치는 건 네가 알아서 막아.”

“야. 그게 무슨…!”

“네가 나 그렇게 꼬셨잖아. 결혼해 준다고. 청혼도 하고, 하와이도 갈 거라고! 그러니까…. 알아서 해야겠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던 그녀는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생명을 대가로 악마와 계약을 맺듯, 달콤한 말로 설주희를 꼬셨던 도지혁에게도 대가를 지불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설주희는 못 말린다…. 일단 다른 애들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도지혁은 일단 지뢰부터 걷어내고자, 곧바로 설주희를 제외한 여자친구들을 한 자리에 소집하였는데….

“어…. 그러니까, 양해를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양해…? 지혁아…. 내가 잘못들은 거지…?”

“상대가 잘못된 거 같은데? 우리가 아니라, 설주희 그년한테 양해를 구해야지.”

“마, 맞아요…! 이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요…! 저희도 웨딩드레스 입고 싶다구요…!”

“…절대 안 돼.”

물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당연히 여자친구들은 완고한 태도를 고수하였다.

‘미치겠네.’

그렇게 다섯 여인 사이에서 시달리던 도지혁.

밤낮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그는, 끝내 결혼식 날짜를 미루는 조건으로 설주희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하였다.

앞으로 함께 지낼 가족인데, 거짓말을 해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이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불러왔으나….

도지혁이 온몸으로 틀어막은 덕분에, 가까스로 다섯 집 살림이란 기사는 막아낼 수 있었다.

‘…이게 맞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마계 침공 사건도 점차 식어 갈 무렵.

[ 팀 서울시청 전원 계약 해지 ]

도지혁과 멤버들은 공식적으로 서울시청에서 나오게 됐다.

세간에는 도지혁과 그 멤버들이 그대로 세진에 흡수될 거란 소문이 퍼졌으나….

“길드를 설립하려고요.”

“뭐? 길드?”

“지, 진짜요?”

소문과는 다르게, 도지혁은 직접 길드를 세우기로 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두 사람이, 우리 길드에서 일해줬으면 좋겠어.”

“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준형 씨랑 저는….”

“공무원이라 함부로 일할 수가 없죠. 그래서…. 두 사람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진짜로?”

도지혁은 가장 먼저 김준형과 한규리를 영입하였다.

그것도 아주 어마어마한 액수로.

“당장 그만두고 올게요.”

“그새 사람 구하면 안 된다? 절대? 알았어?!”

“알았으니까, 천천히 다녀와.”

두 사람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며 공무원직을 포기하였다.

아무리 공무원이 철밥통이라 해도, 업계 최고의 연봉을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기회였다.

“아. 맞다.”

그때, 뒤늦게 무언가 떠오른 김준형이 도지혁을 흘끔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길드 이름이 뭐야?”

“우리 길드?”

도지혁이 세운 길드의 이름은 바로….

“히어로즈.”

“히어로즈? 영웅들?”

“오…. 요즘 길드 같아서 괜찮은데요?”

김준형과 한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Hero’란 단어를 들으면 일반적으로 영웅부터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도지혁은 다른 의미를 떠올리며 이름을 지었다.

주인공.

나름 뜻깊은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다.

[ 히어로즈 길드. 팀 프린세스로 새 출발…. ]

도지혁의 길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맹렬한 성장을 이루었다.

팀 서울시청은 팀 프린세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탄생했으며.

[ 세진 길드. 히어로즈 길드와 협업 발표. ]

[ 백일 길드. 히어로즈 길드와 함께한다…. ]

[ 명품 名家 LMVH. 히어로즈 길드와 800억 상당 계약. ]

세진과 백일부터 시작하여 온갖 후원사까지 붙더니.

[ 히어로즈 길드. 퀸즈 영입 초읽기 ]

마침내 퀸즈까지 영입해버리며, 신생 길드답지 않은 과격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누나라고 해봐.”

“절대 안 해.”

“그럼…. 나도 안 가르쳐 줄래.”

“야. 네가 알려 준다고 그랬잖아!”

“어디 인터넷에 검색이나 해보시지? 뭐, 찾는다고 나올진 모르겠지만.”

“이혜리. 진짜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누나라고 해야지?”

“…누나…. 한 번만 좀 도와주세요.”

“아유. 착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업계 선배인 이혜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도움이 있었기에, 도지혁도 수월하게 길드를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길드를 차리고, 사람을 뽑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길 얼마나 지났을까.

“예쁘네.”

“여기선 멋있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마침내 설주희와 도지혁의 결혼식 날이 찾아왔다.

“너무 예뻐서, 콱 깨물어주고 싶어.”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대기실에 앉아있던 설주희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도지혁을 바라보았다.

우여곡절이 많긴 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도지혁을 차지하였다.

오늘이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

그때, 도지혁은 문득 커다란 거울에 비친 설주희와 자신을 바라보았다.

‘…결혼이라….’

감개가 무량하다는 기분이 이럴까.

처음 이 세상에 홀로 떨어졌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마왕과의 결전 이후로는 하나같이 앞길을 예상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최강고수’는 끝이 나고, 완전히 새로운 도지혁의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다.

“신부 입장.”

그렇게 시작된 성대한 결혼식.

사회를 맡은 김준형의 목소리와 함께 설주희가 들어선다.

♬ ♪ ? ♩

유명한 입장 곡과 함께 백일 단장 강무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들어선 설주희는, 도지혁과 손을 잡으며 주례 앞에 섰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할 수 있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서울시장 이상흠의 주례가 끝이 나고.

“프로…. 아니지. 단장님! 그리고 사모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한규리의 축가에 뒤이어 자잘한 이벤트까지 이어진 뒤.

“신랑 신부의 지인 여러분께서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앞으로 모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결혼식의 꽃. 단체 사진.

‘역시 참석 안 했나….’

도지혁이 내내 안 보이던 여자친구들의 행방에 내심 씁쓸해하던 그때.

“잠시만요…!”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식장에 울려 퍼지더니….

“…하…. 씨발….”

설주희의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화려한 디자인의 하얀 옷을 입은 다섯 여인이 단체 사진에 끼어들었다.

“늦어서 미안…!”

뻔뻔한 얼굴로 사과를 건네는 임아린.

“다 같이 오느라 어쩔 수 없었어요.”

눈웃음을 살살 치며 주변에 양해를 홍유라.

“헤헷…. 옆이다….”

옆자리를 차지하여 기분이 좋아 보이는 방한나.

“…난, 여기.”

잘 보이도록 은근슬쩍 방한나와 도지혁 앞에 끼어드는 진서원.

“실례할게요?”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꾸미고 온 이혜리까지.

‘얘네. 진짜 작정하고 왔구나.’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도지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빨리 찍어요!”

그 순간, 누군가 사진사를 독촉하였고, 멍하니 서 있던 사진사는 허겁지겁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찌, 찍습니다…!”

찰칵─! 찰칵─!

밝은 셔터가 터지며 연달아 찍히는 식장의 풍경.

어두운 턱시도를 입은 신랑의 주변으로 흰옷을 입은 여성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그런지, 마치 그녀들 전부가 도지혁과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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